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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54화 (54/61)

54화

숙취란 원래 잔을 내려놓은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반쯤 안긴 채였다. 관자놀이를 치는 두통이야 참는다지만 울렁이는 속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라도 자야 이 울렁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당장 침대로 쓰러지려는 걸 그가 겨우 달래 씻겨주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씻겨준다는 말에 몸을 비틀어 버둥거리는 걸 보고 신이혁은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냥 씻겨만 준다니까?”

“거짓말.”

“넌 날 뭐로 보는 거야?”

“… 파렴치한?”

취해 숨을 색색거리면서도 일갈하는 주하얀에 신이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하겠다.”

솔직히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맹세코 지금 이 순간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싫다는 주하얀을 끌고 욕실로 들어간 신이혁은 제법 성실히 양치와 세수 시중을 들었다. 반항이랍시고 혀로 칫솔을 요리조리 밀어내거나 눈이 맵다고 미간을 잔뜩 찡그릴 때도 속에서 드는 험한 욕구를 꾹 참아냈다.

“팔 들어.”

침대에 눕자 마치 몸이 아래로 꺼지는 것 같다. 분명히 매트리스가 자신을 잘 받치고 있음에도 자신이 누운 자리만 녹아내린다. 그리고 세상이 그 주위를 빙빙 돈다. 어지러웠다.

주하얀이 목 끝에서 꿀렁이는 멀미와 싸우는 동안 신이혁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겼다. 순순히 팔을 위로 툭 떨어트리면 아래 흰 티를 받쳐 입은 맨투맨을 벗겼고, 다리를 끌어올려 양말을 벗겨냈다. 술 때문에 속이 부대끼는 와중에도 몸을 바르작대 옷 벗는 걸 돕는 게 기특해 벌어진 입술에 짧게 입맞췄다.

손으로 한쪽 볼을 다 감싸 반대 볼과 턱에 마른 입술을 문지른다. 입은 옷이 가벼워지자 부르르 떨던 주하얀은 다가오는 체온에 손목을 잡았다. 그는 마치 주하얀이 조르기라도 한 양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많이 힘들어?”

가지런한 치아가 콧방울을 약하게 깨문다.

“곤란한데….”

애초에 그는 오늘 무슨 일이든 치를 작정이었다. 과정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 술을 권한 건데. 자승자박이다. 주하얀은 언제나 자신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음을 간과했다.

속으로 쯧 혀를 찬 신이혁이 심술궂게 볼을 깨물자, 잠을 방해하는 행위가 귀찮았는지 우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튼다. 하지만 하필 그 피한 방향이라는 게 그의 얼굴 앞이라 도리어 붙잡혀 입맞춤 당했다. 신이혁으로서는 눈 앞에서 웅얼거리는 입술을 모른 척할 재간이 없었다.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 같은 어지럼증에 헥헥거리는 게 꼭 새끼 강아지 같다. 유약한 모습은 그를 자꾸만 충동질했다.

“어쩐다….”

이대로는 무엇을 하든 무리다. 물론 의지만 있다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런 방식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손을 대지 않자니 그거야말로 불가능이다. 인사불성으로 몸을 맞긴 채 누운 주하얀 옆에서 건전하게 밤을 새운다, 라. 생각만 해도 자신이 없다.

“으응….”

자꾸만 맨살 위에서 뭉기적거리는 기척이 간지러운지 주하얀의 배가 푸르르 떨린다. 힘도 없는 손이 어깨를 꾹꾹 눌러 밀어내자 신이혁은 몸을 일으켜 주하얀을 안아 달랬다. 뒷목 아래로 손을 넣어 바짝 끌어당기자 시트에서 붕 뜬 몸이 품에 안긴다.

“사장… 졸린, 저….”

칭얼대는 입술이 퉁퉁해 쪽소리가 나게 뽀뽀하자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누가 귀엽게 입술을 내밀고 있으랬던가. 모든 책임을 주하얀의 탓으로 밀어 두고 피하는 입술을 따라가 짧은 키스를 남겼다.

“하얀이 졸려?”

“….”

물어도 대답이 없다. 언뜻 입을 달싹이는 것 같았지만 작은 숨만 훅 끼쳐올 뿐이다. 결국 그는 주하얀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베개까지 바르게 괴어주고 내려가다 불현듯 얄미워 약하게 볼을 꼬집었다. 취한 와중에도 고개를 털어 손을 피한다.

“내가 너 때문에 무슨 짓을 하는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목소리는 낮고 손길은 조심스럽다. 어느새 새근거리며 잠에 빠진 주하얀은 미동 없이 가슴팍만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 위로 덮듯이 침범한 신이혁이 볼과 귀, 턱에 입술을 찍었다. 점점 내려간 입술이 목에 길을 낸다.

“지금부터 나 좋을대로 할거니까,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정말 잠이 든 건지 숙취로 귀가 먼 건지 주하얀은 조금에게선 어떤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뺨이라도 때려 깨워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대신 상체를 숙여 몸을 더 밀착했다. 종아리의 마른 살결을 매만지다 다리를 끌어올려 허리 가까이 무릎을 붙였다. 티셔츠 자락이 다른 손 안에 구겨진다. 차츰 내려간 입술은 이제 상의의 목덜미 위로 드러난 쇄골에 닿았다.

“잘자. 주하얀.”

어쩌면 본인에겐 이대로 잠에 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처음부터 끝까지 주하얀이 할 일은 없다. 신이혁은 천사처럼 곤한 얼굴을 올려보다 감은 눈꺼풀 위에 깊이 입 맞췄다.

* * *

다음 날 아침 주하얀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잠에서 깼다. 침대 옆 창문으로 드는 햇빛이 가뭇한 시야를 찔러대 서로 눌어붙은 눈꺼풀을 잘 뜨지도 못했다.

“으어어….”

전날 과음의 결과가 꽤 고약하다. 숙취로 말도, 울음도 아닌 소리를 뱉곤 들이치는 빛을 피해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달라붙어 감탄했던 창이 성가시기 그지없다. 그렇게 한참 침대에 비비적대며 몸부림을 치던 주하얀은 덮고 있던 이불을 휙 밀어내고 일어났다. 밤사이 히터가 얼마나 돌았는지 훈기가 느껴지다 못해 더웠다.

작은 냉장고에서 300ml 생수를 하나 꺼내 들고 창에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 이 물을 마시면 돈을 내야 하나 생각했지만 먼 걱정보다는 당장의 갈증이 더 심했기에 고민의 끝은 짧았다.

그래 봐야 생순데 얼마나 비싸겠냐는 마음으로 뚜껑을 따 한 모금을 마셨다. 창틀 잠금을 풀어 창문을 조금 열자 찬바람이 얼굴로 부딪혀온다.

“하. 살겠다.”

안팎으로 냉기를 맞으니 울렁이는 속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가슴이 부풀도록 크게 숨을 쉬었다. 강한 볕에 눈도 뜨지 못하고 물을 몇 모금 더 들이켠 후에야 발을 움직였다. 미세한 환기를 기대하며 창문은 다 닫지 않고 좁은 틈만큼 열어두었다.

갈증과 숙취로 잠시 깼을 뿐 아직 시간이 이른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 주하얀은 아까 걷어찬 이불을 끌어와 목까지 꼭 덮었다.

“어제 여기서 잤네.”

처음부터 같이 자자느니 수작을 부리더니 결국 한 침대에서 잠들었구나. 음식점에서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답답하고 더워 바다에 갔던 건 알겠는데 이후론 기억이 흐리다. 술 취해 잠든 사람을 상대로 수상한 일을 벌이진 않았겠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옆에 누운 남자를 돌아보았다.

신이혁은 햇빛이 따갑지도 않은지 곤히 잠들어 깰 줄을 몰랐다. 바르게 누워 주하얀 쪽으로 향한 얼굴은 딱 절반만 그늘이 졌다. 그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보다 손을 뻗었다. 눈 위에서 손가락을 쭉 펴 차양을 만들면 손의 모양대로 그늘이 진다.

“끙.”

모로 누운 몸이 불편해 상체를 세운 주하얀은 침대에 팔꿈치를 괴었다. 베개를 끌어안고 볼을 기대자 눈높이가 높아져 그런지 얼굴이 더 잘 보인다.

“잘 생기긴 했지.”

워낙 매일 얼굴을 보는 탓에 새삼스레 생각하지 않았을 뿐, 객관적으로 꽤 잘생겼다. 처음 봤을 때는 인상이 차가워 보여 무섭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잠결에 흐트러진 머리로 아침 해를 맞는 그에게선 어떤 안온함마저 느껴졌다.

평소에 추근대지만 않으면 이렇게 멋있는걸. 이 잘생긴 얼굴로 왜 그리 시정잡배처럼 구는지. 주하얀은 괜히 얄미워 입을 삐죽였다.

“팍. 팍팍.”

입으로 타격음을 내며 뻗은 손을 흔들었다. 얼굴 가까이 다가가나 싶던 손이 피부에 닿기 전에 떠올랐다 다시 얼굴로 떨어진다. 차마 진짜 때릴 순 없어 시늉이나 해보는 것이다. 진심으로든 장난으로든 그를 딱 한 대만 때려봤으면 싶을 때가 있다. 현실로 시도해보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으나 괜히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이 될 거다. 그리고 그가 보상이랍시고 요구할 것이라면 뻔했다. 변태. 주하얀이 작게 꿍얼거렸다.

“아야.”

얌전히 잠든 줄 알았던 사람이 입을 열자 주하얀은 움칠 굳어버렸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내려보는데 감고 있던 눈꺼풀이 스르르 열리더니 단번에 시선이 마주쳤다. 막 잠에서 깼다기엔 선명한 눈이다.

“왜 때려. 자는 사람을.”

자세히 보니 타박하는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다.

“어, 언제 일어났어요?”

“방금. 얼굴에 자꾸 바람이 불어서.”

얼굴에 바람. 아마 주하얀이 팔을 휘두르며 바람이 일었나 보다. 바보. 살랑살랑 부채처럼 손을 흔들면서도 피부에 닿을 바람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밤에 부모님 몰래 찬장에서 초콜릿을 빼먹다 걸린 아이처럼 얼어붙어 머쓱하게 눈을 굴렸다. 그를 빤히 바라본 신이혁은 눈가에 걸리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팔에 가볍게 힘을 주자 딸려간 몸이 가까이 붙는다.

“…죄송해요.”

“진짜 때렸어도 괜찮아.”

어깨 아래쪽에 볼을 기댄 신이혁의 목소리에는 막 자다 깼을 때의 나른함이 묻어있었다. 졸지에 그를 품에 안은 꼴이 되어 허둥대다 등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그는 닿은 볼을 비비적거리며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었다.

“속은 어때.”

“안 좋아요.”

“그러게 적당히 마셨어야지.”

“앞에서 부추긴 사람이 할 말은 아니죠.”

놀리듯 핀잔을 주는 목소리에 발끈한 주하얀이 되받아치자 자신이 들어도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픽, 웃음을 흘린다.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집적대는 건지 자꾸만 잠옷 위로 얼굴을 비비는 통에 상체를 슬그머니 뒤로 물렸다. 잘 땐 얌전했는데 깨자마자 이런다. 슬금슬금 그의 얼굴 아래로 손바닥을 밀어 넣어 살에서 떼어냈다.

“근데 저 왜 여기서 잔 거예요.”

“음?”

“옆에 떡하니 침대가 있는데 굳이 좁게 붙어 잘 이유가 없잖아요.”

사실 장정 둘이 누워 좁게 잤다기에는 지금 누운 침대가 심히 컸지만 시치미를 떼고 추궁했다. 나름 단호하게 미간에 힘을 주고 내려보자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신이혁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춰온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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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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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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