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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58화 (58/61)

58화

느지막이 일어나 집안을 어슬렁거리던 주하얀은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나갔고, 문 앞엔 김 팀장이 서 있었다. 그나마 자주 봤던 얼굴이라고 꾸벅 인사를 하자 가볍게 고개를 숙인 김 팀장은 들어오길 권하는 주하얀에게 손을 내보이며 현관에 섰다.

「 잘 지내세요? 」

「 네. 뭐…. 괜찮습니다. 」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삼가는 김 팀장을 살피며 주하얀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잔머리 하나 없이 넘긴 머리나 잘 정돈된 옷차림으론 가릴 수 없이 눈 밑이 검었다.

우상동으로 귀양인지 휴양인지 모호한 것을 갔던 신이혁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결재해야 할 서류와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중요한 건은 틈틈이 봐왔겠지만 본격적인 업무 복귀에 성가시게 됐다며 혀를 차던 남자를 기억한다.

그 일정을 모두 함께 소화하며 수족 노릇을 하는 게 녹록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상동에서 김 팀장을 운전기사로 쓰는 데 익숙해진 신이혁은 이제 습관처럼 출퇴근을 김 팀장과 함께했다.

그런 속사정을 다 아는지라, 주하얀은 눈앞의 불쌍한 회사원이 ‘상사 잘못 만나 그런 걸 어쩌겠습니까’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못 들은 척해주었다.

「 그러고 보니 이제 입학했겠군요. 하얀 군도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 다행입니다. 」

「 아, 네…. 」

되돌아온 안부 인사에 멋쩍게 대답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전날 밤까지 술자리가 있었던 탓에 지금도 속이 편치 않아 몰골이 엉망이었다. 부은 눈과 까치집이 앉은 머리를 그대로 내보였음을 깨달은 주하얀이 민망함에 얼른 머리를 매만졌다.

그 후엔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나란히 서로의 아픈 구석을 찔린 둘은 붙박인 듯 서 시간을 보냈고, 그런 둘을 구해준 건 막 채비를 마치고 서재에서 나온 신이혁이었다.

「 일찍 왔네요. 」

「 방금 도착했습니다. 」

현관에 서 있은 지 족히 십오 분은 된 것 같은데. 주하얀은 태연히 답하는 김 팀장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옆을 지나쳐간 신이혁은 오늘 귀가가 늦을 것이라 말하며 가볍게 볼에 입을 맞췄다. 놀라 어깨너머를 살피자 김 팀장은 어느새 등을 돌려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덕분에 더없이 부끄러워진 주하얀은 그의 등을 떠밀어야 했다.

떠올리고 보니 부끄러운 경험이잖아…. 기억을 더듬던 주하얀은 괜히 화끈거리는 볼을 숨기려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슬슬 짐 옮겨야지.”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지난달 함께 바다에 다녀온 후, 둘은 곧장 거처를 옮겼다. 잠시 비워뒀을 뿐 이미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시끄러운 이사 과정을 겪지도 않았다. 필요한 것을 챙기려 할 때마다 이미 구비해두었다고 만류하는 통에 결국 챙긴 짐은 작은 크로스백 하나 정도였다.

서울의 집은 단층이었으나 면적은 우상동보다 커 보였다. 낯선 집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방을 소개해주겠다며 거실에 가까운 방문을 열어주었다.

‘와.’

붙박이장에 개별 화장실까지 딸린 방은 이전에 지내던 방의 딱 두 배 크기였다. 기본적인 가구를 배치하고도 휑해 보일 정도로 큰 방을 둘러보다 마음에 드냐는 물음에 목이 뻐근하도록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상동에 남은 짐은 차차 옮겨주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지금이구나. 지난 대화를 떠올린 주하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슬슬 봄옷을 꺼낼 때가 되었다. 짐을 가져오면 겨울옷 정리부터 해야겠다.

“김 팀장이 짐 챙겨 오면 어디다 둘지만 정해놔.”

“그런 건 그냥 제가 할게요. 제 짐이기도 하고.”

“괜찮아. 추가 수당 주면 돼.”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받아치는 신이혁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돈 많은 사람의 생각이란 다 저 모양인가. 태어나 한 번도 부유해본 적 없는 주하얀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사고였다.

“그래도.”

“방 꾸미는 데에는 흥미가 없는 편인가.”

“네?”

“지금 방은 좀 삭막하잖아. 당장 필요한 것들만 들여놓기도 했고. 마침 김 팀장 만난 김에 원하는 거 있으면 얘기해. 알아봐 줄 거야.”

“전 괜찮은데….”

“어차피 네 방이니까 꾸미고 싶은 대로 해. 강요는 아니야. 생각해보라고.”

“네.”

고분하게 대답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나름대로 방이 깔끔하니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의 집도 아닌데 생필품 이외의 물건을 늘어놓기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집의 인테리어에 민감한 편이 아니다. 평생 곰팡이 슬고 정돈되지 못한 공간에서 살았다. 침대 옆의 큰 창으로 드는 햇빛 냄새만으로도 자신에겐 충분했다.

잠시 고민하던 주하얀은 누운 몸을 일으켰다. 자연히 따라오는 시선을 못 본 척 이불을 걷어내는데 당장 손목이 잡혔다.

“어디 가.”

“방이요. 제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생각해보려고요.”

“그냥 여기서 찾아.”

“제 방 매트리스가 더 푹신해요.”

원래 헛소리엔 헛소리로 대응해야 하는 법이다. 등 뒤에서 아쉬운 소리가 났으나 단호히 손을 털어냈다. 어차피 깬 잠, 구태여 남의 방에 누워 뭉갤 이유가 없다.

더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리 방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방에 있는 짐이 적어 자리가 모자랄 일은 없겠지만 정돈되지 못한 부분을 보이는 건 조금 민망하니까. 방으로 돌아가 곧장 장롱부터 열어본 주하얀은 저 혼자 요리조리 팔을 움직이며 내일 들어올 짐을 어떻게 정리할지 상상해보았다.

아무렴 한 사람 짐인데 얼마나 많으려고.

* * *

“어….”

쿵-

그리고 다음 날 짐의 주인은 문에 걸려 버둥대는 끌차를 보며 떡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건을 담았을 박스의 크기는 일상적으로 보던 택배 박스가 아니었다. 잘하면 사람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박스는 얼마나 물건을 욱여 담았는지 옆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심지어 그런 박스가 세 개나 쌓여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잠시만요! 도와드릴게요!”

주하얀은 얼른 현관으로 뛰어가 박스를 붙잡았다. 두 명이 겨우 매달려 현관 안으로 끌차를 주차시키고 박스를 내렸다. 양팔로 안기도 버거운 박스를 둘이 한쪽씩 맡아 낑낑대며 집안으로 옮긴 후에야 주하얀은 흐트러진 모습의 김 팀장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음, 물이라도 드릴까요?”

“아니, 괜찮습니다. 이 짐들은 어디에 두실 건가요.”

“제 방에…. 이쪽 방이요.”

등 뒤의 방문을 가리키며 말하자 잠시 양해를 구한 김 팀장은 곧장 방으로 들어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정면에 보이는 붙박이장으로 가 문을 여는 모습에 주하얀이 얼른 방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마도 짐 정리까지 하시려는 모양이었다.

“두세요. 제가 할게요.”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정리까지 맡기셨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하얀 군은 거실에서 쉬고 계세요.”

김 팀장은 군더더기 없는 투로 말했지만, 문제는 주하얀의 마음이었다. 저리 무거운 짐을 혼자 싸매고 온 것도 죄송스러운데 정리까지 떠넘기는 건 생각만으로도 불편했다.

“제 짐이잖아요. 당연히 제가 정리해야죠.”

다시금 강조하며 거절하자 김 팀장이 고민스러운 듯 고개를 틀었다.

“어쩐다. 돈은 이미 받았는데.”

진짜 돈을 준 거야? 주하얀은 어이가 없어 당장 튀어나오려는 호통을 삼키고 웃는 낯을 해 보였다. 최대한 의뭉스럽지 않고 친절한 느낌을 자아내려 신이혁의 말투를 따라 했다.

“사장님껜 김 팀장님이 다 정리해주고 가셨다고 할게요.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흠….”

“직접 꺼내 보면서 원하는 위치에 두고 싶어서 그래요. 아무래도 본인이 해야 제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테니까.”

즉흥적으로 갖다 붙인 이유인데 나름 설득력이 있다. 김 팀장도 그 점에 대해선 동의하는지 잠시 말이 없다. 거의 다 넘어온 것 같은데. 주하얀은 마지막 쐐기를 박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사장님 일찍 들어오세요?”

“… 저녁 약속이 있으셔서 아마 늦으실 겁니다.”

“그럼 문제없네요. 지금 바로 시작하면 밤 전에 끝낼 수 있어요. 완전범죄.”

마지막엔 은밀한 이야기라도 하듯 속삭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고, 김 팀장은 결국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생떼가 먹혀들었음을 알아챈 주하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건지 김 팀장은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자리를 털고 돌아섰다. 죄송하다 말하는 얼굴엔 은은한 웃음까지 걸려있어, 사실 그도 이 일을 떠안기 귀찮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참 직장이란 게 뭔지. 아직 학생인 주하얀으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안녕히 가세요.”

집을 나서는 김 팀장을 배웅한 주하얀은 집안에 놓인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현관부터 방 앞까지 산발적으로 놓여있는 박스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앞이 깜깜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방을 기준으로 제일 가까이 있는 박스의 포장을 뜯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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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세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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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희 장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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