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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51/137)

-51화-

“얼굴을 보여줘.”

카시어스가 얼굴을 가린 린델의 손을 치우며 가볍게 입을 맞춰왔다. 눈가에도 뺨에도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린델은 부옇게 번진 눈을 깜빡거리며 카시어스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욕망에 휩싸여 있던 남자는 나른하게 웃고 있었다. 그제야 평소 보아온 카시어스 같았다.

“간지러워요.”

간지럽다고 하자 카시어스가 입맞춤을 멈췄다.

“기분은 어때?”

“나른하고……. 좋았어요.”

카시어스가 지금의 기분을 묻는 게 아니라는 눈치는 있었다. 린델은 솔직하게 대답하면서 슬쩍 시선을 비꼈다. 카시어스에게 안긴 채 속닥이고 있는 게 뭔가 부끄러웠다. 아직도 아래가 이어져 있어서 더 그랬다.

“왜 부끄러워해?”

“부끄러우니까요?”

“이래서야 다음을 청할 수가 있나.”

“다음이요? 이게 끝이 아닌가요?”

린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미 파정을 했다. 그다음이 더 있단 소리는 들어본 적 없었다.

순진한 물음에 카시어스는 이런 녀석을 잘도 품었다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를 쓸면서 입술을 대었다.

“이대로 한 번 더 할 수도 있지.”

“?”

“쾌락이 지독했거든.”

린델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보며 카시어스는 슬쩍 허리를 들이밀었다. 젖어 있던 린델의 안이 수축하며 달라붙었다.

“어때?”

“……해요.”

얼굴과 목이 벌겋게 달아오른 린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는 불안과 기대가, 그리고 열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용감하게 덤벼드는 녀석을 어찌할까 싶었다.

탐욕스럽게 삼키겠지.

카시어스는 스스로를 잘 알았다. 마음껏 탐하고 울릴 것이다. 탁하고 농도가 짙은 기대에 들떠 카시어스는 린델의 입술을 찾았다.

아직 밤은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호화롭게 꾸며진 욕실은 수증기로 자욱했다. 커다란 욕조에는 따끈한 물이 가득 찼다. 노곤하게 사기 욕조에 기대어 앉아 있던 린델은 눈을 깜빡이며 설화와 이야기책 속에 등장하는 욕심쟁이들의 최후를 떠올렸다.

패턴은 보통 두 가지였다. 제 욕심에 짓눌려 파멸하거나, 혹은 반성과 후회 끝에 개과천선하는 것이었다.

린델은 무지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감히 황제 폐하를 욕심내서 용감하게 들이댄 것은 후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거리가 사라졌다. 정사의 쾌락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그 끝이 이럴 줄은 몰랐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잔뜩 구겨졌던 허리는 아팠고, 혹사당한 그곳은 화끈거리다 못해 아직도 뭔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엄청나게 키스를 한 탓에 입술이 부었다.

“으…….”

손을 들어 입술을 더듬던 린델은 눈을 감고는 물에 젖은 손으로 얼굴을 길게 쓸었다. 조금 전에 배 속에 고인 정액을 빼낸다고 카시어스가 안을 휘저었던 것이 떠올랐다. 동시에 연쇄적으로 저릿한 감각이 피부를 내달렸다. 이래서야 오늘의 강력한 기억이 며칠 동안 일상에 끼어들 터였다. 그건 좋지 않았다.

“린델?”

머리 위에서 카시어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린델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조금 전까지 욕실에 없었던 남자가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느라 카시어스가 욕실로 들어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열을 내리는 약이야. 마셔라.”

멀뚱히 올려다보자 카시어스가 푸른색 빛깔의 액체가 담긴 유리잔을 내밀었다. 어제 세투아가 주었던 약이랑 비슷한 색깔이었다. 지독히 쓴 약맛을 떠올린 린델은 핑곗거리를 찾았다.

“열은 안 나는데요?”

“마시는 게 좋아.”

마시는 게 좋다니 린델은 두 번 거절하지 않았다. 카시어스가 내민 잔을 받아 드는데 손끝이 덜덜 떨렸다.

“큰일이군. 이래서야 마음껏 할 수도 없겠어.”

카시어스가 가볍게 혀를 찼다. 왠지 억울해진 린델은 약을 마시려다가 말고 카시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

원망은 차마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같이 정사를 즐긴 카시어스가 너무 멀쩡해 보였다. 한 번도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카시어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강대한 마력의 소유자이신 황제 폐하께 질투가 났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부루퉁히 대꾸한 린델은 약을 들이켰다. 예상대로 쓴맛에 인상을 찡그리며 빈 잔을 카시어스에게 내밀었다. 카시어스는 별말 없이 잔을 받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 순간에 린델은 자신이 제국의 황제 폐하를 부려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웃었다. 이거야말로 무엄하지 않는가 하고 있는데 카시어스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었다.

달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침실과 달리 욕실은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카시어스의 하얀 나신이 수증기 너머로 드러났다. 장인의 솜씨로 빚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형미까지 느껴지는 육체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시선이 뜨거워, 린델.”

욕조 안으로 들어와 앉는 것까지 지켜보자 카시어스가 한마디 했다. 반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던 린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저는 아름다운 것에 약한가 봐요.”

“내 몸만 좋다는 건가?”

“몸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많은 비중을 차지하죠.”

“말은 잘해. 나는 네 아부도 좋아하는데 말이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에 카시어스가 손을 뻗어 린델을 끌어당겨 안았다. 카시어스를 마주 안게 된 린델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두 사람이 앉아도 공간이 충분한 욕조 안에서 굳이 이래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기분이 좋아서 그냥 나른하게 기대었다.

카시어스의 손이 부드럽게 등을 쓸고 머리를 넘겨주었다. 입술이 귓가와 손끝에 닿았다. 깃털처럼 가벼운 접촉에 달콤하고 시큼한 맛이 심장에서 흘러넘쳤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은 레모네이드를 들이켠 것처럼 말이다.

애인이 되면 이러는 건가.

린델은 아는 게 없었다. 자신의 무지에 소리 없이 한탄한 린델은 카시어스를 따라 하기로 했다. 자유로운 왼팔로 카시어스를 살짝 껴안아 그의 등을 건드렸다. 단단한 맨살은 물속에서 매끈매끈했다. 그리고 만질 때마다 움찔거리며 반응해서 흥겨웠다.

“린델.”

“네.”

“왜 자꾸 만져?”

머리 위에서 카시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경께서 계속 만지셔서, 저도 만지려고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중얼거리는 린델의 동그란 머리를 내려다보던 카시어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당신도 하니까 나도 한다는 의도는 아주 순수한 것이었다. 사심 없는 손길이 자극적이었지만 그것보다는 린델이 자신을 보고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난감했다.

순진하고 어린 애인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함께 그를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들떴다.

카시어스는 음습해지려는 욕망을 억눌렀다.

“내 등은 아주 민감해.”

웃음기를 머금은 경고를 하자 린델이 손을 딱 멈췄다. 카시어스는 린델을 살짝 고쳐 안으면서 다음을 알려주었다.

“이럴 때는 베갯머리송사를 하는 법이지.”

“송사요?”

“특별히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을 해봐.”

베갯머리송사가 뭔지 의아해하던 린델은 특별히 바라는 것을 말하라는 카시어스를 쳐다보았다.

“내일 잉그란 사제님을 만나러 가도 되나요?”

두 번째 습격의 위험과 다친 몸을 회복하기 위해 린델은 하루 종일 갇혀 있다시피 했다. 내일 만나자며 잉그란과 헤어졌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안전을 위해 잉그란은 숙소까지 바꾸었다고 했다. 걱정하고 있을 그에게 얼굴을 보여줘야 했다.

카시어스는 린델을 마주 보며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안 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는 길에 호위를 잔뜩 붙이면 되겠지 싶었다.

“그를 만나러 가도 돼. 대신 한낮에 움직이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그늘 없이 활짝 웃는 린델을 보며 카시어스는 자신의 결정에 만족했다.

“아, 카시어스 경도 바라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음?”

“이럴 때는 송사를 해야 한다면서요.”

당연하다는 얼굴로 덤덤히 대꾸하는 린델 때문에 카시어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베갯머리송사를 하라고?

권력자로 나고 자란 카시어스는 지금껏 상대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린델이 뭐든 다 들어준단다.

카시어스는 그런 것까지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든가, 혹은 자신은 베갯머리송사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주어진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뭘 바랄 줄 알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냐.”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건 대단한 게 아닌걸요.”

“글쎄. 네 입장에서는 대단한 게 될 수도 있을걸?”

“?”

카시어스는 말간 얼굴을 하고 올려다보고 있는 린델의 귀밑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기고는 젖은 손등으로 상기된 뺨을 살짝 쓸었다. 린델의 하늘색 눈동자가 동그래지는 것을 지켜보며 모양이 좋은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품에 안긴 녀석은 확연히 굳었다. 그럼에도 피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못 피한 건가?”

“다 들어드린다고 했잖아요.”

뺨을 붉힌 린델의 대답은 역시나 씩씩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린 카시어스는 린델의 턱을 잡고 입을 맞댔다. 나머지 팔로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아 허벅지 위에 앉혔다.

“제 송사 하나만 더 들어주시겠어요?”

입술이 떨어지자 린델이 속삭였다.

“무엇을 부탁하려고?”

“만져도 돼요?”

린델이 순진한 얼굴을 하고는 야한 부탁을 가느다랗게 떨린 목소리로 했다. 귀가 빨갛게 변해 있는 것은 덤이었다. 카시어스는 다시 웃었다. 린델은 베갯머리송사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만져봐.”

허락이 떨어지자 린델은 물속으로 오른손을 집어넣고는 조심스레 카시어스의 성기를 잡았다. 반쯤 발기해 있던 성기가 움칫거리며 달라붙는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도 직관적인 감상은 한가지였다. 컸다.

“린델.”

린델은 곤혹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카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사이에 다시 손안의 성기가 꿈틀거리며 커졌다. 용기 내어 만지기는 했는데, 왠지 자신이 민망해졌다.

“커져요.”

조용히 감상을 말하자 잘생긴 카시어스의 미간이 애매하게 구겨졌다. 그의 시선도 손안의 성기도 뜨거웠다. 린델은 오른손에 살짝 힘을 주고는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그러자 미간을 구긴 카시어스가 약하게 신음 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다.

“이제 놔.”

“만지는 게 싫으세요?”

“왜 이렇게 용감해?”

카시어스가 양손으로 린델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동시에 린델의 입술과 혀를 삼켰다. 그래도 린델은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았다.

젖은 소리,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 야한 신음 소리가 오래도록 뒤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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