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우으흣.”
허벅지를 핥고 발을 들어 발목 안쪽을 깨물자 입을 가리고 있던 린델이 반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의 성기는 만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완연히 부풀어 올라 모양을 갖췄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린델의 눈빛은 원망과 흥분으로 일렁거렸다. 열기가 훅 치솟았다. 이제 슬슬 한계였다.
“엎드려 봐.”
“?”
“끔찍하게 야한 걸 부탁한다고 했잖아.”
린델은 물기가 차오른 눈으로 카시어스를 보았다. 엎드리란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어서 린델은 팔에 힘을 주고는 엎드렸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카시어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등 뒤가 무방비가 되는 것이 오싹했다. 특히 카시어스는 늑대보다 더 위험한 생물이었다. 그가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알지만 뒤를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린델은 힐끗 고개를 뒤로 돌렸다. 카시어스의 얼굴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뒤돌아보지 마.”
카시어스가 뒷머리를 누르듯 쓰다듬으면서 뒷목을 물어왔다. 등을 매만지는 손길을 따라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오싹함이 배가 되었다.
“이 자세가 허리에 부담이 적다고 하더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카시어스가 배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치켜들게 했다. 무릎으로 버티고 엎드리게 되자 린델은 끔찍하게 야한 게 뭔지 이해했다. 야하기보다는 엄청나게 민망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어깨와 날갯죽지와 등뼈를 따라 카시어스의 입술이 흘렀다. 오싹오싹함이 등을 타고 번지며 몸이 떨려왔다. 어쩌지도 못하고 버티는데 진한 시트러스 향이 맡아졌다. 향유 냄새였다. 카시어스는 매번 향유를 바꿨는데 대부분 달달한 향을 좋아했다.
젖은 손이 주름에 닿아 잔뜩 적시더니 안으로 비벼 들어왔다. 지난 잠자리에서 삽입은 없었지만 몇 번이나 손가락이 안을 헤집었다. 그럼에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감각에 린델의 몸이 제멋대로 흔들렸다.
“괜찮아.”
카시어스의 입술이 등에 닿았지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온통 신경이 아래쪽으로 향했다. 손가락이 안쪽 깊이 파고들었다가 물러나기를 거듭했다. 그건 정사의 행위와 닮아 있었다.
안으로 파고드는 손가락이 연약한 속살을 헤집을 때마다 얕은 신음이 흘렀다.
“으……. 흐읏.”
기다란 손가락 끝이 어느 곳을 건드리자 감고 있던 시야가 순간 하얗게 변했다. 잔뜩 느끼는 곳이었다. 거기만 집요하게 찔러대자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 미끄러지려고 했다. 허리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도 한계였다.
제발.
열을 담은 애원은 머릿속에서만 외쳤다. 베개를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카시어스의 손가락이 빠져나갔다. 그의 젖은 손에 힘없이 버티던 무릎이 더 벌려졌다. 엉덩이 사이로 뜨겁고 축축한 것이 와 닿았다. 미끈한 기름기가 묻은 것이 예민한 곳을 문지르는 바람에 흠칫 놀라고 말았다.
낯설고 두렵고, 그리고 기대와 흥분이 린델을 압박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시트러스 향과, 숨소리와, 무릎에 와 닿는 시트 감촉과, 등에 닿는 뜨거운 손길과, 귀에서 울리는 맥박까지 모두 한꺼번에 느껴졌다.
“이를 악물지 마. 상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면서도 탁했다. 린델은 그러마 하고 대답하지 못했다. 참으려고 해도 언젠가 민망한 소리는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버티고 싶었다.
손가락이 구멍을 살짝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갔다가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붙잡아 왔다. 동시에 뜨겁고 단단한 것이 주름에 닿아 단번에 밀려들었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커다란 성기에 내벽이 마구 벌어졌다. 어쩔 수 없는 아픔과 이물감에 머리가 멍해졌다.
“으.”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갔다. 까칠한 음모가 엉덩이에 닿고서야 끝까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깊은 곳까지 들어찬 성기가 느릿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내벽은 물론이고 온몸이 카시어스의 움직임에 딸려 흔들리는 감각에 린델은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이 순간은 모든 것이 지독했다. 아픔과, 압박감이, 민망함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쾌감이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뒤섞였다. 특히 느끼는 곳이 긁힐 때마다 쾌감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카시어스의 성기를 조였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린델.”
카시어스의 작은 부름이 린델의 귀에 닿았다. 린델은 뒤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카시어스의 성기가 마치 빠져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물러났다가 단번에 박아 들어왔다.
“흐읏.”
거센 움직임에 세상이 한순간 정지했다. 카시어스가 움직일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숨이 막혔다. 퍽, 퍽. 안을 짓이기는 소리가 음란했다. 엉덩이 살 위로 음모의 감촉이 느껴질 만큼 격렬한 삽입이 반복될 때마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린델은 끝없이 밀려드는 감각의 홍수를 버티며 시트를 움켜쥐었다. 그 위로 카시어스의 오른손이 겹쳐졌다. 커다란 손이 힘주어 깍지를 끼면서 동시에 등 뒤로 카시어스의 몸이 겹쳐왔다. 서로의 육신이 빈틈 하나 없이 밀착되면서 카시어스가 뒷목을 물어뜯을 듯 이를 세우고 허리를 강하게 움직였다.
결국 무릎이 무너졌다.
카시어스가 체중을 실어 찍어 올릴 때마다 몸이 침대 위쪽으로 밀리는 것을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엎드린 채 베개를 물고 있었던 터라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신음은 안으로 먹혀 사라졌다. 그때였다. 카시어스의 왼손가락이 입안을 파고들었다.
“물지 말라니까.”
“아, 아아……. 읏, 하아. 흐읏.”
린델이 입을 벌려지자마자 가쁜 숨과 신음이 연신 흘러나왔다. 거기서부터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쾌락과 본능에 몸을 내맡겼다.
격렬하게 살 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가득했다. 카시어스는 자신 아래에 갇혀 흐느끼는 린델을 끌어안으며 웃었다. 아까부터 계속 울리고 싶었다. 더 없는 쾌락을 주겠노라고 마음먹었으면서도, 몰아붙이고, 꼼짝도 못하게 가둬두고는, 깊게 박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하고 말았다. 이래서야 침대 매너가 좋다는 소리를 결코 듣지 못하겠지만 상관없었다. 빨아들일 듯 죄여오는 린델의 안은 끔찍하고도 감미로울 정도였다.
이렇게나 완벽함을 선사하는 그는 자신의 것이었다.
비할 데 없는 쾌락과 사나운 독점욕이 카시어스를 집어삼켰다. 좀 더 쾌락을 얻기 위해 카시어스는 몸을 움직였다.
“으, 아흐. 아아, 흑.”
울먹거리는 린델의 신음성이 카시어스를 더욱 부추겼다. 쾌락이 머리에 닿자 세상 전부가 사라지고 오로지 둘만이 남았다. 얼마나 몰두했는지 모른다. 허리를 뒤튼 린델이 탄성을 내지르며 내벽을 힘껏 조이자 카시어스에게도 벼락같이 절정이 찾아들었다.
긴 사정에 아찔한 감각이 신경을 불태웠다. 카시어스는 조금 더 린델의 안으로 파고들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절정의 마지막 여운을 즐긴 카시어스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린델의 귀 뒤에 입을 댔다. 혀끝으로 짠맛을 느끼며 그를 불렀다.
“린델.”
평소라면 어깨라도 움찔 떨었을 린델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기절을 한 모양이었다. 너무 몰아붙이기는 했다. 그래도 반성은 하지 않은 카시어스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 조심스럽게 린델의 안에서 제 것을 빼내었다. 그래도 린델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시어스는 몸을 일으켜 앉은 채 린델을 바로 눕혔다. 정신을 잃은 린델의 눈가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맺혀 있었다. 카시어스는 입술로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린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상냥한 애인은 아니로군.
카시어스는 자신을 평가하면서 쓰게 웃었다.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마 같은 순간이 닥쳐도, 아니, 다시 10일 후에도 역시나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그나마 10일이라는 텀을 둔 게 용할 정도였다.
8일로 줄일까 생각하면서 카시어스는 린델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머리카락이 감기는 감각을 즐기며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홍조를 띤 뺨, 붉은 입술, 턱, 목덜미, 가슴과 매끄러운 배까지 부드럽게 쓸었다.
의식을 잃은 애인을 희롱하고 있다는 자각에 카시어스는 손을 거두었다. 조금만 더 위험했다간 그대로 범해버릴지도 몰랐다. 아무리 상냥한 애인이 아니더라도 지킬 선은 분명히 존재했다.
“린델.”
한 번 더 부르자 린델이 힘겹게 눈을 떴다. 바르르 떨리던 긴 속눈썹이 몇 번이고 깜빡거렸다. 우아한 미인이 눈을 뜨는 광경은 어딘가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카시어스는 어딘가 멍한 린델을 향해 웃어주었다.
“잠시 기절을 했어.”
“어…….”
“얼마 안 지났어. 괜찮아?”
카시어스는 다시 린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린델이 살짝 인상을 썼다.
“왜?”
“너무…….”
“너무?”
“지독해요.”
린델의 목소리는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몸을 섞고 난 후에 지독하다는 평은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것이었다. 솔직하기 짝이 없는 애인 때문에 카시어스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좋았어.”
활짝 웃으며 뺨에 입맞춤을 하고는 떨어져 나가는 카시어스를 보며 린델은 기분이 묘해졌다. 자신도 좋기는 한데 카시어스처럼 상쾌하게 웃을 수 없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은 정말 지독하다는 말로 부족했다.
만족스럽게 웃고 있는 카시어스를 보자니 괜히 심통이 나면서도, 좋다니까 또 좋았다. 마음이 갈대처럼 왔다 갔다 했다.
“물을 마시자. 목소리가 엉망이야.”
카시어스가 알몸으로 침대 밖으로 나갔다. 힘겹게 자리에 일어나 앉은 린델은 침대 옆의 탁자에 놓여 있는 물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는 카시어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등을 만져보고 싶다는 욕심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자신도 카시어스의 등에 입술을 대고 이를 세워보고 싶었다.
“카시어스 경.”
“그래.”
“등에……. 경의 등에 입을 맞춰도 될까요?”
막 물컵을 들고 돌아서던 카시어스가 잠시 멈칫거렸다. 그러다가 웃으면서 침대 끝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라고 내밀었다.
“자꾸 부추긴다니까. 지독하다면서.”
“안 돼요?”
컵을 받아 든 린델은 물을 마시지 않고 다시 허락을 구했다. 그러자 카시어스가 손을 뻗어 볼을 살짝 꼬집었다.
“용감하고, 무모하고.”
“욕심내라면서요.”
“지지도 않아. 씻고 하자. 땀 때문에 맛이 별로일 테니까.”
“네.”
허락이 떨어졌다. 린델은 활짝 웃으며 물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