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137)

-65화-

두 팔에 갇혀 있는 탓에 피하고 말 것도 없었다. 부드럽고 간지러운 감각은 애무였다. 피부를 내달리는 오싹함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이래서야 참을 수가 없어진다.

“떨어져…… 주세요.”

“싫어.”

정중한 신사와 불량한 한량을 오가던 카시어스는 기본적으로 다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면 배덕감을 느낀다지. 버텨봐.”

버티라고 한 카시어스의 입술이 뺨을 스쳐 입술에 닿았다. 커다란 손에 턱이 잡혔다. 피할 새도 없이 뜨겁고 말캉한 혀가 입안을 헤집었다. 시작부터 깊은 키스는 일방적으로 주어지기만 했다. 온몸의 신경이 달아오르는 감각에 린델은 카시어스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이 붙잡혔다.

그러면서 키스는 끔찍하게 달콤해졌다. 배덕감이 뭔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물리적으로 아프다 못해 아득해졌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린델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턱과 손은 계속 잡힌 채, 서로의 입술 끝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웠다.

“어때?”

“뭘…….”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폐하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내가 이겨.”

자신이 이긴다며 속삭인 카시어스가 다시 입술을 대었다. 이번에는 다짜고짜 키스를 시작하지 않았다.

“입을 벌려.”

카시어스가 재촉을 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린델은 입술을 다물고 버텼다.

“거부하지 마.”

가라앉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린 카시어스가 무례할 정도로 입술을 핥아왔다. 턱을 잡은 손이 목 뒤를 돌았다. 목을 단단히 붙든 손끝이 크라바트 안을 쓸었다. 등이 떨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눈을 질끈 감은 린델이 입술을 열자 다급히 혀가 파고들었다. 도망치듯 물러나는 혀가 붙잡혀 얽히면서 젖은 소리가 울렸다. 키스는 아까보다 훨씬 더 농밀했다. 여전히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지는 쾌감에 숨을 헐떡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키스만으로 머리가 하얗게 비어졌다.

카시어스는 마치 올라타기라도 할 듯이 린델의 다리 사이로 몸을 기울였다. 노골적인 욕망에 린델은 숨이 막혔다. 거부할 수도 없이 휩쓸리는 게 무섭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폐하.”

문 밖에서 시종장이 카시어스를 불렀다. 린델의 혀를 삼키듯 빨아 당긴 후에야 카시어스가 입술을 뗐다.

“무슨 일이냐?”

“타렌의 사신께서 곧 돌아가셔야 합니다.”

“간다고 해.”

카시어스는 대답을 하면서도 린델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린델은 아득한 기분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욕망에 사나운 얼굴은 침대 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잠시의 시선 교환 끝에 카시어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붙잡고 있던 목과 손도 놓아주었다.

“좀 화가 났어.”

“폐하?”

“눈이 빨개졌군. 울리려고 했던 건 아니야.”

“우는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만두지는 않아. 기쁜 마음으로 유혹할 테니까, 즐겨.”

“…….”

린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시어스가 엄지로 눈 밑을 가볍게 눌렀다. 마치 눈물을 닦아내려는 듯한 손길이었다.

“황제의 고백은 그냥 고백이 아니지. 이제 너는 내 것이야. 그러니 그 방법은 내가 정하겠다.”

뜻 모를 소리를 한 카시어스가 고개를 숙여 린델의 턱을 살짝 깨물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시어스를 올려다보던 린델은 정신을 차렸다. 따라 일어나려다가 휘청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가 풀렸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하던 린델은 단번에 제 상태를 깨닫고는 아연해졌다.

겨우 키스로 다리가 풀려?

민망하다 못해 부끄러워지려고 하는데 머리 위로 카시어스의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런. 다리가 풀렸잖아. 괜찮아?”

“부디 못 본 척해주세요.”

“내 탓인걸.”

“그러니까 더욱이요.”

린델은 당신 탓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시어스의 손이 머리칼을 쓸어주고는 떨어져 나갔다. 다정한 손길이었다.

“적당히 쉬고 난 다음에 돌아가도록 해. 그 얼굴로 나갔다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아볼 테니까.”

“그 정도로 심한가요?”

“거울을 확인해.”

“예. 그리하겠습니다.”

“내일 보자. 첫 번째 춤을 나와 춰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

카시어스가 그대로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어도 린델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이런…….”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둔하기는 했지만 카시어스가 굳이 말하지 않았어도 화가 난 걸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첫 번째 키스는 사나웠고, 두 번째는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시종장이 부르지 않았다면 키스만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붙잡혀 주겠다는 남자는, 차이기도 싫고, 잠시의 유예도 싫단다. 그러면서 유혹을 할 테니 즐겨보란다. 카시어스답긴 했지만 난감했다.

“어쩌지.”

린델의 고향인 로벅에서 치정 문제는 엄청 큰 사건이었다. 간통이 현장에서 들킬 경우 이혼 사유가 되었다. 심각하면 마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정혼자나 배우자를 두고 야반도주를 할 경우, 다시는 로벅으로 귀향할 수 없었다. 주변의 마을도 다들 비슷했다.

궁정 사교계는 완전 다른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았다. 카시어스의 유혹에 아무리 흔들려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저항감이 남아 있었다.

역시나 문제는 카시어스였다. 그의 유혹은 진짜 끔찍할 것이다. 그걸 버티는 건 진짜 자신의 몫이었다.

“하아.”

뺨을 문지르며 한숨을 내쉰 린델은 방금 전까지 카시어스에게 붙잡혔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랑한단다. 이 손에 잡혀준다고 했다.

난감한데도 기뻤다. 고백을 돌려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슬펐다. 아팠다. 그리고 다시 기뻤다.

린델은 제멋대로 뛰는 심장 위를 손으로 꾹 누르며 웃었다.

카시어스가 튤립의 방을 나서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장과 근위시종들이 따라 붙었다. 카시어스는 이드나카를 불렀다.

“이드나카.”

“하명하십시오.”

“아셰리드엘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저택까지 배웅해라.”

“알겠습니다.”

이드나카가 고개를 숙인 후에 뒤로 물러났다. 카시어스는 그대로 복도를 걸으면서 다음 명령을 내렸다.

“태후마마께 다섯 시에 찾아뵙겠다고 전해라.”

“예.”

대답을 한 시종장이 뒤를 보며 눈짓을 보내자 근위시종 하나가 방향을 꺾었다. 타렌의 사신이 기다리고 있을 알현실로 걸음을 옮기던 카시어스는 등 뒤로 시종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을 느꼈다.

황제의 연애사는 언제나 흥미로운 관심거리였다. 갑자기 황태후를 만나고 돌아온 황제의 애인이, 독대를 한 후에 홀로 남겨졌다. 카시어스가 생각해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다들 궁금해할 만했다.

평소라면 그저 웃으며 넘길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예민해졌을 때는 귀찮았다.

카시어스는 자신의 입으로 말한 대로 꽤나 화가 난 상태였다. 고백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 때문은 아니었다. 헤어지자고 한 것도 괜찮았다. 비장하게 얼굴을 굳히면서도 귀가 빨개진 모습은 귀여웠다. 당신을 공유하지 않겠노라고 했을 때는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뛰었다. 솔직하고 올곧은 녀석이 마음을 준다고 하니 설렜다.

기분이 뒤틀린 것은 언젠가 끝이 올 거라고 확신하는 녀석에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린델이 현실주의자인만큼, 카시어스 역시 이성적인 성격이었다. 영원히 절대 변치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원은 무슨.

카시어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모든 것은 빛이 바래 사라진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내답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정리할 수 없는 모순에 화가 났고, 린델을 탐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해버렸다. 스스로에게 욕이 나왔다.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헤매지 않았다. 황금 새장이 아니라, 지하 감옥의 족쇄가 아니라, 좀 더 온건하고 확실한 것이 필요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고지식함을 가진 린델에게 꼭 맞는 것이 말이다.

카시어스는 사납게 웃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근위시종은 언제든 방문을 반긴다는 황태후의 답장을 받아왔다. 카시어스는 예고한 시간에 맞춰 황태후궁을 향했다.

황태후는 아름답게 꾸며진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예의 바른 인사를 나누고, 카시어스가 자리에 앉자 시녀들이 차를 대령했다.

“폐하께서 이리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리 유난히 구시면 다들 알아차릴 겁니다. 그이가 폐하의 가장 귀한 꽃이라고 말입니다.”

“라드라비그에서 그걸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노파심이 과했습니다. 차를 드시지요. 맛이 좋은 것인데, 폐하의 배행 마법사는 입술조차 대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지은 황태후가 차를 권했다. 카시어스는 거절 없이 찻잔을 들어 한 입 맛보았다. 이럴 때는 강력한 마력이 더없이 유용했다.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는 무력과 뛰어난 회복력, 그리고 독과 미약에 내성이 주어졌다. 덕분에 귀찮은 기미 과정 없이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었다. 따뜻한 차는 황태후의 장담대로 맛은 아주 좋았다.

“맛있습니다.”

“마음에 드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이곳까지 어인 발걸음이십니까?”

황태후는 탐색 없이 본론부터 물었다. 두 사람은 같은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만큼 서로를 잘 알았다. 카시어스는 장황한 미사여구와 애매한 은유를 싫어했다. 그래서 황태후는 길게 돌려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카시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후께 긴히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부디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폐하의 부탁이라는데 제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에게 양자 입적을 권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란디스 메시스가 끝난 후, 겨울쯤에 그가 입적할 수 있게 준비해 주십시오.”

화사하게 웃으며 부탁한다고 하는 카시어스 때문에 찻잔을 만지작거리던 황태후는 손을 잠시 멈췄다. 사실 그녀는 카시어스의 사나운 경고를 예상했다.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양자 입적을 준비해 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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