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위로가 필요하신 것 같진 않아요.”
“필요해.”
“이거 진짜 맞나요?”
“맞아. 파혼서는 오늘 저녁 늦게 도착했고, 공표는 내일 있을 거야. 제일 먼저 네게 알려주려고 이렇게 찾아왔지. 이제 나는 법적으로 완벽하게 독신이야.”
다정하게 설명한 카시어스가 린델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가져가면서 손을 잡다 못해 손목 안쪽까지 쥐었다.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망연하던 린델은 손끝에서 번져가는 온기와 짜릿함에 살짝 몸을 떨었다.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린델은 손을 빼지 않고 순순히 잡혀주며 속삭였다.
“이것 때문에 오신 건 아니죠?”
“설마, 이것 때문만일까.”
“그럼요?”
“보고 싶었어.”
마차 안은 좁았다. 카시어스가 린델의 손을 살짝 잡아당기면서 허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가까워졌다. 린델은 카시어스의 입술이 뺨에 닿는 것을 느끼며 웃었다. 이것 때문만이 아니라고 살짝 조사를 바꾸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유 중에 하나라는 소리였다. 린델은 그걸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대신에 진심을 전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고집쟁이 애인 때문에 내가 정말 속이 새카맣게 탔다니까.”
카시어스는 린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퍼부으며 웃음기 묻은 한탄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었다. 제시간에 맞춰 파혼하기 위해 루터 왕세자를 도망칠 수 없는 구석으로 몰아 압박했다. 급한 마음에 파혼서를 받자마자 달려왔다. 하지만 그걸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건 구차한 일이었다.
맞닿은 온기와 함께 선명해지는 감각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저를 가둔 건 경이세요. 얼굴도 안 보여주셨으면서.”
“욕구 불만에 빠진 애인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알게 될 거야, 린델.”
얼굴을 맞대며 카시어스를 올라타다시피 한 린델의 귀에 그의 위협은 달콤하게 들렸다. 허리를 껴안은 단단한 팔도, 맞댄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입맞춤은 곧 깊어졌다. 젖은 숨결이 섞이고 혀와 입술이 섞였다. 린델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이 구는 카시어스를 따라가지 못했다. 정신없이 물고 빨며 휘감아 오는 감각은 어지러웠고 숨이 막혔다. 신선한 공기를 찾아 입술을 떼려고 했지만 카시어스의 두 손에 목덜미와 얼굴을 잡혔다.
끌어당기면서도 밀어붙이는 힘에 마차 벽에 밀어붙여지다 못해, 카시어스에게 깔리다시피 의자에 쓰러졌다. 그제야 카시어스가 입술을 뗐다.
“혀를 내밀어봐.”
입술을 맞댄 카시어스가 사납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숨을 크게 들이쉬던 린델은 홀린 것처럼 혀를 내밀었다. 다시 키스가 시작되었다. 뜨거운 혀가 입 안을 건드릴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카시어스의 손이 허벅지를 붙잡았을 때는 등이 떨렸다.
카시어스와의 키스는 언제나 특별했지만, 오늘은 더 심했다. 10일만이었다. 핏줄을 타고 흥분이라는 불꽃이 내달렸다. 좁은 마차 안에 젖은 소리와 숨을 헐떡이는 소리, 조급하게 몸을 부비며 옷깃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탄식이 가득 찼다.
“더 이상 못 참겠어.”
“?”
“용서해.”
한껏 열이 올랐던 린델은 카시어스가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뭐냐고 묻기도 전에 카시어스의 손이 린델의 허벅지 안쪽을 쓸어 올리며 성기를 잡아챘다. 갑자기 주어지는 자극에 린델의 몸이 튀어 올랐다.
“흐읏.”
“살짝 맛만 볼 테니, 허락한다고 해.”
귓가에 입술을 댄 카시어스가 낮게 속삭였다. 성기를 압박하는 손도, 귓가에 닿는 숨결도 모두 짜릿한 자극이었다. 그래서 린델은 맛본다는 게 무슨 뜻인지 반 박자 늦게 이해했다. 그건 관용적인 어구가 아니었다.
“린델, 허락해.”
카시어스는 재촉을 하면서도 애무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입술은 계속 린델의 귓가를 지분거렸고, 커다란 손은 린델의 바지째 성기를 잡아 밀어붙였다. 린델은 미칠 것 같았다. 몇 번 훑어 올리지 않았는데도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거절할 이유는 잔뜩 있었다. 마차 안이었다. 벽은 얇았고 소리를 내지르면 마부에게 들릴 게 뻔했다. 내부가 좁아서 자세도 나빴다. 그런데도 응하고 싶었다.
미쳤어.
린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답했다.
“해요.”
스스로 듣기에도 너무나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그러나 뺨에 입술을 댄 카시어스가 소리 없이 웃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의 손이 재빠른 손길로 바지의 끝과 단추를 풀었다. 이번에는 맨손에 성기가 잡혔다. 머릿속이 순간 새하얗게 깨졌다.
“우…….”
짜릿한 자극에 린델은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몸을 뒤틀었다.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무는데, 카시어스의 머리가 아래로 사라졌다. 곧이어 뜨겁고도 축축한 감각이 성기를 감쌌다.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몸을 퍼덕거린 린델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차마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카시어스에게 구음을 받는 이번이 세 번째였다.
몇 번 경험했다고 해서 민망한 곳을 빨리고 있다는 수치스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지독할 정도로 좋았다. 혀가 핥아 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고, 강하게 빨릴 때마다 멍해졌다.
질척이는 젖은 소리는 자신이 내는 헐떡임에 섞여 귀에 쿵쿵 울리는 맥박에 엉켜들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허리를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쾌감이 물결처럼 퍼졌다.
“아, 앗……. 흐응. 으…….”
꽉 다문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이상하게 쉬어 있었다. 절정은 곧이었다. 신음을 하며 몸을 뒤트는데 카시어스가 허벅지를 내리누르며 강하게 빨아올렸다. 끝은 한순간에 다가왔다.
린델은 본능적으로 몸을 굽혀 카시어스의 어깨를 움켜쥐며 모든 것을 폭발시켰다. 열이 오른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몸이 덜덜 떨렸다.
짧지 않은 사정이 끝난 후에도 린델은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카시어스가 마지막까지 성기를 빨고 주변을 핥았다. 살짝 맛만 보는 게 아니라 먹어치우는 모양새였다.
“이제…… 이제 그만하셔도 되요.”
린델은 필사적으로 카시어스를 말리며 어깨를 밀었다. 그러자 카시어스가 웃으면서 가슴을 안아 잡아끌었다.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그의 허벅지를 타고 앉아 끌어안긴 자세가 되었다. 속옷을 끌어 올려졌지만 앞섶은 풀어 헤쳐진 상태였다.
맞닿은 몸에서 심장 소리가 울렸다. 하나는 자신의 것이었고 또 하나는 그의 것이었다.
“카시어스 경?”
카시어스를 부르는데, 그의 입술이 눈가에 닿았다.
“혼자서는 욕망을 풀지 않았나 봐. 맛이 진했어.”
“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에 린델은 성기를 빨릴 때와는 다른 의미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대체 왜 그걸 물어보냐는 의문이 떠올랐을 때는 귀가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응? 정말 안 한 거야?”
“그걸 꼭 물어보셔야 해요?”
“궁금하잖아.”
뺨에 입술을 덧그리며 허리를 꽉 껴안아 오는 카시어스의 목소리는 흥겹기 짝이 없었다. 놀리는 게 분명했다. 다정한 애인은 야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그의 화술에 말려드는 패턴이었다.
“대답 안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기분은 어때?”
“정신없이…… 좋았어요.”
린델은 솔직하게 말하면서 카시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방금 전까지 자신의 성기를 물고 있던 입술을 찾아 키스를 했다. 입술을 맞대고 그의 입 안을 쓸자 조금 쓴맛이 느껴졌다. 린델은 입술을 맞댄 채로 속삭였다.
“이제 제가 해드려도 되요?”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저도 하고 싶어요.”
린델은 카시어스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강하게 주장했다. 지금껏 자신도 해주겠노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때마다 카시어스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중에 하자며 늘 미뤘다.
처음이니까 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해봐야 실력이 느는 법이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은 걸 해주고 싶은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왜 이렇게 용감해?”
“전 원래 용감했어요.”
용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린델은 우겨보았다. 입술이 닿고, 가끔씩 혀로 핥으면서, 그리고 서로를 매만지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무모하기까지 해. 욕구 불만이라니까. 자극해서 어쩌려고.”
“싫으세요?”
“때가 좋지 않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거든.”
“그럼 언제요.”
“나중에.”
카시어스는 애써 다음으로 미뤘다. 린델은 적극적인 애인이었고 뭐든 따라하려고 했다. 그래서 난감했다.
린델이 구음을 해준다면 분명 좋을 것이다. 린델의 예쁜 입술이 자신의 성기를 삼키는 상상만으로 허리 아래가 빠듯하게 당겨 왔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인내심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엉망진창으로 범해버릴 터였다. 린델이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매달려도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았다.
특히 10일 동안 아무것도 못 한 지금은 더 위험했다. 당장에라도 그의 안으로 들어가다 못해 잔뜩 울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린델은 물러나지 않았다.
“나중에, 언제요? 정확한 날짜를 정해요.”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전에도 나중에라고 하셨잖아요. 내일? 모레?”
린델이 카시어스의 뺨과 눈가에 입술을 대면서 약속을 강요했다. 덕분에 카시어스는 웃음을 터트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이상한 곳에서 욕심이 많은 린델은 목표지향적 성격이었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용감하게 밀어붙였다. 그래서 사랑스럽다. 큰일이었다. 아직 황궁에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유혹이 너무 강렬했다.
카시어스는 입맞춤을 퍼부어대는 린델의 뺨을 오른손으로 감쌌다. 신뢰와 기대가 어린 눈빛이 닿았다.
“내일도 같은 마음이라면, 내일로 하자.”
“그럴 바에야 지금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은 안 된다니까. 대신에 이걸 물어. 살짝, 이가 닿을 정도로만.”
카시어스가 내민 것은 오른손 검지의 구부러진 관절이었다. 린델은 모양 좋은 손가락과 카시어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다가 서슴없이 이를 드러내며 깨물었다. 괜히 억울한 기분에 아프지는 않게, 그러나 꽉 물었다.
“핥아봐.”
핥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카시어스의 낮은 목소리가 야하게 들린 데다가, 집중하는 눈빛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대신이랬다.
린델은 카시어스를 바라보며 이로 물고 있던 손가락에 혀를 댔다. 예쁜 손가락은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지만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그건 카시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신이라고 하며 충동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린델의 입술 사이로 손가락이 사라지는 것부터가 도착적이었다. 그의 입 안은 매끄럽고 따뜻했고, 성기를 물리면 확실히 황홀할 것이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뺨을 잡은 채, 검지로 혀를 눌렀다. 당황해하는 린델을 보며 느릿하게 문질렀다.
“괜찮아.”
린델을 달래며 카시어스는 입천장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린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어깨를 떨었다. 입 안을 조금 더 헤집자 열기를 품은 린델의 하늘빛 눈동자가 젖어갔다. 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도 가슴이 아렸다.
순진하고 야한 린델의 모습은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었다.
“하으. 읏…….”
벌어진 입에서 린델의 약하게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참을 자신이 없어진 카시어스는 천천히 손가락을 뺐다. 마차 안에서도 할 수는 있었지만, 좁은 데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다. 벌거벗기고 맨몸을 어루만질 수도 없었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뺨과 목을 붙잡고는 입을 맞췄다.
“이름을 되찾은 것을 축하한다. 린델 시어드.”
이름을 되찾은 린델에게 줄 것이 많이 있었다. 빛나는 영광도, 명예도, 선망과 질투도 모두 한 몸에 받는 자리에 세울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순수하게 린델의 기쁨을 축하해 줘야 했다.
그리고 린델은 다정한 입맞춤과 함께하는 축하에 감동했다. 캐롤라인과 실랑이를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이제 린델이라고 떳떳하게 불릴 수 있었다.
“모두 카시어스 경 덕분이지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났을 것이다. 평생을 거쳐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였다. 감격에 겨워 카시어스의 입술을 찾던 린델은 잠시 멈칫했다. 갑자기 해야 할 게 생각났다. 린델이 머뭇거리자 카시어스가 의아해하며 허리를 끌어안아 왔다.
“왜?”
“음…….”
“린델?”
“고백이 늦었어요. 좋아해요. 사랑합니다. 이 마음 다하여서 경모합니다.”
린델은 카시어스를 끌어안고 고백했다.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바지 앞섶을 열어놓은 채였지만, 그래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지금 이 순간에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내 것이 아니었다.
고백을 하자 가슴속에서 보드라운 꽃이 활짝 피어난다. 달콤한데도 슬프고, 지금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너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어.”
활짝 웃은 카시어스가 입술을 겹쳐 왔다. 다시 입술이 벌어지고 몇 번째일지도 모를 키스가 이어졌다. 벅찬 감각에 린델은 눈을 감고 입 안에 침범한 혀를 받아들였다. 이 순간만큼, 품에 안은 남자가 자신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