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입 끝에서 가벼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촉. 촉.
린델은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카시어스의 뺨을 붙잡고는 입맞춤을 퍼부었다. 잘생긴 눈썹 끝에, 역시나 잘생긴 눈매에, 그리고 웃고 있는 입가에 입술을 찍었다.
“정말 할 거야?”
“약속하셨잖아요. 싫으세요?”
“설마, 그럴 리가.”
린델은 설마라고 대답한 카시어스의 예쁜 입술에 가볍게 맞부딪혔다. 카시어스는 허리를 살짝 안은 거 말고는 얌전히 자신을 내주고 있었다. 정말 어렵게 잡은 기회였다.
카시어스는 내일이라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날 밤새도록 울어야 했던 린델은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퉁퉁 부은 눈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오후에는 내도록 침대에 쓰러져 있으면서 욕구불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몸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카시어스는 수확제를 맞아 타국의 귀빈을 위한 만찬에 참석하느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 날은 린델이 바빴다. 치안대에 2일 동안 구금되어 있던 캐롤라인의 약식 재판이 있었다. 판결을 내린 사람은 로벅의 순회 재판관이었지만, 재판 자체는 법무청 장관의 특별 명령서에 의해 열렸다. 즉 황제가 개입했다는 뜻이다.
합의는 사전에 이루어졌다. 그동안에 캐롤라인은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비를 빌었다. 린델의 뒤에 황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납작 엎드린 것이다. 캐롤라인은 한없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죄를 뉘우친다고 했지만, 당당하다 못해 무도하게 굴던 첫날과 너무 대조적이라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린델은 거기에서 끝내기로 했다. 그녀를 용서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더 이상의 것을 바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였다.
약식 재판이었지만 공식 기록으로 남을 진술서와 판결서를 그 자리에서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캐롤라인에게는 남부의 끝자락에 있는 황제 직할령에서 30년 동안의 유배형이 내려졌다. 캐롤라인도, 필로나 남작도, 케손 백작도, 워든도, 그리고 린델도 모두 만족한 판결이었다.
긴 하루였다. 백장미 궁으로 돌아온 린델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 날은 공문서 더미가 린델을 습격했다. 공문서에 적힌 아셰리드엘 페르난의 이름을 모두 고쳐야 했다. 황제의 배행 마법사로 황궁을 드나든 탓에 여러 곳에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안 그래도 그란디스 메시스 준비로 바쁜 궁내청장의 할일을 늘려서 미안하기만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마탑의 입회서였다. 마법으로 고정시켜 놓은 서명을 수정하기 위해 난다 긴다 하는 마법사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린델은 마법을 구축하는 것보다 파훼하는 것이 더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하루가 정신없이 흘렀다. 카시어스 또한 각국의 귀빈과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느라 바빴다.
다시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역시 린델 앞에 여러 장의 공문서가 쌓였다. 다행스럽게도 어제보다 양이 확 줄었다. 그리고 카시어스를 드디어 만났다. 하루의 공식적인 일정을 모두 소화한 남자는 늦은 밤에 찾아왔다.
침전주를 마시며 그간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롤라인의 처벌도, 공문서의 습격도. 마탑의 원로들이 이름을 속이고 마법사가 된 것은 역사상 세 번째라며 한숨을 쉬었다며 웃으면서 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린델은 카시어스의 4일 전의 약속을 언급하면서 그를 침대로 잡아끌었다. 카시어스는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얌전히 굴었고, 그래서 지금에 이르렀다.
커다란 쿠션에 반쯤 기대에 누운 카시어스를 타고 올라앉은 린델은 완전히 들떴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린델은 호기롭게 코트를 벗어 던지며 속삭였다.
“잘해줄게요.”
“유혹치고는 어설퍼.”
“그럼……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것도 아니야.”
“예뻐요.”
“내 얼굴이 좋은 거지?”
“얼굴도 좋은 겁니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애인을 두었어요.”
시시한 농담을 하는 사이에 린델은 카시어스의 옷을 벗겼다. 섬세한 레이스로 된 크라바트를 풀자 근사한 목덜미가 드러났다. 린델은 목덜미를 한 번 쓸고는 코트와 베스트를 차례로 벗겨 침대 밖으로 내던졌다. 마지막으로 셔츠 자락을 헤치자 윤곽이 선명한 복근이 드러났다.
목표를 달성한 린델은 웃으면서 카시어스의 입술을 찾아 깨물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턱과 목덜미에, 그리고 쇄골을 핥고 빨았다. 손으로 매끄러운 살결을 쓰다듬는 것은 덤이었다.
“간지러워.”
가슴께를 빠는데 머리 위에서 키득거림이 들려왔다. 그래도 린델은 멈추지 않고 유륜을 입에 넣고 핥았다. 그러자 손바닥 아래에서 카시어스의 가슴 근육이 움칫거리며 떨렸다. 느긋한 웃음이 약한 신음으로 바뀌었다.
그게 좋다고 생각하며 린델은 다시 카시어스의 목을 살짝 물었다. 그리고 커다란 사과를 베어 먹는 것처럼 야금야금 맛을 보며 입술을 미끄러뜨렸다. 목, 쇄골, 가슴, 단단한 복근과 배꼽 아래까지. 점점 머리를 숙이자 카시어스의 배가 날씬해지면서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그게 귀여워서 뱃가죽을 살짝 물었다. 멋진 근육으로 꽉 짜인 단단한 육신을 깨무는 맛은 각별했다.
“더 세게 물어야 해.”
“?”
카시어스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는 단단한 허벅지를 손으로 짚으며 여기에서 입술을 댈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린델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쿠션에 기대어 있는 남자가 잔뜩 열이 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린델도 덩달아 들떴다.
“네 피부는 약해서 조금만 빨아도 자국이 생기지만, 나는 아니거든.”
“아프실 텐데요?”
“괜찮아.”
괜찮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자국을 남길 생각에 린델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카시어스의 셔츠 자락을 젖히고는 목과 어깨 사이의 여린 살에 입술을 댔다가 사정없이 깨물었다. 며칠 전에 카시어스가 잔뜩 남긴 키스 마크에 대한 보복의 마음이었다.
“웃.”
정말로 아픈지 카시어스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얼굴을 보니 미간도 찡그렸다.
“괜찮으세요?”
“진짜 세게 물었어.”
“멋진 자국이 남을 거예요.”
린델은 이빨 자국이 난 곳을 핥으며 웃었다. 그다음에 다시 머리를 아래로 내렸다. 카시어스의 복부를 손으로 쓸면서 입맞춤을 온몸에 퍼부었다. 만지다 보면 약한 곳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눈가와 목덜미, 그리고 연한 젖꼭지와 배꼽 주변에 입술이 닿으면 카시어스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손이 스치면 피부 아래의 근육을 바르르 떨었다.
그의 정직한 반응에 기분 좋은 오싹함을 느끼며 린델은 바지 자락을 잡고는 고개를 들었다. 카시어스는 애매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다. 땀에 젖은 축축한 그의 손이 뺨을 쓸어왔다.
“너무 즐거워 보여, 린델.”
“왜 그렇게 집요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린델은 카시어스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는 놓았다. 화사하게 웃는 린델의 모습에 카시어스는 쓴웃음을 삼켰다. 부지런하고 똑똑한 학생인 린델은 적극적이기까지 했다. 딱 그 나이 또래의 사내처럼 말이다.
카시어스는 자신이 스무 살 때 어땠는지 떠올리려고 하다가 관뒀다. 그때도 사람이 싫어서 적당히 피해 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린델이 주는 자극은 기꺼웠다. 어설픈 손짓에도 열이 확확 올라 피가 말랐다.
“흣.”
린델의 손이 서슴없이 바지 끈을 풀고 단추를 푸는 것을 보며 카시어스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것이 린델을 더욱더 부추겼다. 바지와 속옷을 끌어 내리자 발기한 성기가 튀어나왔다. 린델은 망설이지 않고 성기를 손에 쥐었다.
“커요.”
손 안에서 꿈틀거리며 부피를 늘려가는 성기를 만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감상은 한결 같았다. 크고 뜨겁다. 잠시 이걸 어떻게 하나 노려보고 있는데 카시어스의 손이 또 한 번 뺨에 닿았다.
“싫으면 하지 마.”
“그건 아니에요.”
고개를 살짝 저은 린델은 발기한 성기 끝에 살짝 혀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카시어스가 움찔 떨면서 몸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뺨에 닿았던 손은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낮고 무거운 숨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의 반응은 린델을 즐겁게 만들었다. 자신도 카시어스를 울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벌렸다.
혀에 닿는 감촉도, 입 안에 머금는 감각도, 맛도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역겹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크기가 문제였다.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도 가득 넣어 빨기가 어려웠다. 린델은 욕심을 내기보다는 천천히 핥으면서 키스를 하는 것처럼 혀를 얽었다. 그럴 때마다 커다란 성기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더 커졌다.
린델은 조금 더 집중하며 깊게 삼켰다. 그러자 머리칼을 쥔 카시어스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입을 떼.”
카시어스가 린델의 머리를 밀쳐내려고 했다. 하지만 린델은 오히려 더 세게 빨았다. 그냥 하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이, 고집쟁이가.”
낮게 으르렁거린 카시어스가 허리를 움직였다. 뜨겁고 두툼한 성기가 입술과 혀를 문질러댔다. 목구멍 깊숙이 찌르고 들어왔을 때는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일었지만 린델은 단단히 버텼다. 자신도 카시어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카시어스가 자신 때문에 쾌락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주었다.
“린델.”
신음과 함께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것도, 점점 가팔라지는 숨소리도, 입 안에서 단단해지는 성기마저도 모두 좋았다. 짙은 살 내음이, 뜨거운 열기가, 어지러움이 린델을 압박했다. 린델은 정신없이 입 안에 닥쳐드는 성기를 삼키고, 빠는 데 열중했다. 어느 순간에 카시어스의 성기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정했다. 왈칵 쏟아지는 정액을 겨우 삼킬 수 있었다. 몸을 굳히며 한참 만에야 사정을 끝낸 카시어스가 성기를 빼내갔다.
상체를 일으킨 린델은 채 삼키지 못하고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려는 정액을 혀로 핥다가 손등으로 닦았다. 정액의 맛은 확실하게 괴상했다.
“우…….”
“그러게 입을 떼라니까.”
“괜찮아요.”
린델은 괜찮다고 하며 카시어스를 봤다. 그의 미간은 구겨져 있었다. 거기에 얼굴을 붉힌 채 흐트러진 모습은 위험하고도 야하기 짝이 없었다. 린델은 카시어스의 손길에 그를 올라탄 채로 마주 안았다.
“미안.”
미안하다고 한 카시어스의 손끝이 눈가에 닿고서야 린델은 눈물이 고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저 숨이 막힌 탓에 생리적인 눈물이 맺힌 것뿐이었다.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다고 속삭이는 린델의 입술에 이번에는 카시어스의 입술이 닿았다.
“언젠가 날 잡아먹겠다고 할 기세야.”
“기분은 어떠세요?”
“빌어먹게도, 아주 좋아.”
가볍게 욕설을 한 카시어스가 린델의 입 안을 깨끗하게 해주겠다는 듯이 안쪽까지 꼼꼼히 핥고 빨았다. 그러면서 손으로는 착실하게 린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끝까지 할 거야.”
“아직 열흘이 안 됐는데요?”
카시어스의 예고에 린델은 날짜를 따졌다. 그럼에도 카시어스가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딴 건 따져서 뭐 해. 어여쁜 애인이 유혹을 하는데.”
구시렁거리는 카시어스의 손은 재빨랐다. 린델의 베스트와 셔츠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몸이 되자 카시어스가 손을 내밀었다.
“이걸 물어.”
린델은 카시어스가 내민 검지와 중지를 입으로 물고 빨았다. 손가락을 흥건히 적시자, 카시어스가 엉덩이를 벌리고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주름이 벌어지고 안에 딱딱한 것이 파고드는 느낌은 언제나 이상했다. 린델은 카시어스의 목을 끌어안고 이물감을 참았다.
“으…….”
“괜찮아.”
카시어스는 다정하게 린델의 귓가에 입 맞추면서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었다. 린델의 내부는 뜨거웠지만 너무 좁았다. 겉으로는 과감하게 굴면서 속은 참 수줍었다.
“그거 알아?”
“네……?”
“손가락만으로 이렇게나 좁은데, 내 것이 어떻게 들어가나 몰라. 응?”
명백한 희롱에 린델의 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