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카시어스는 흥겹게 웃으며, 느릿하게 손가락을 휘저으며 내벽을 눌렀다. 그러자 린델이 몸을 튕기며 목을 강하게 끌어안아 왔다.
카시어스는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그는 린델이 애달아하는 게 좋았다. 어쩔 줄 몰라 매달려 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노골적으로 안을 헤집고, 등을 쓰다듬고, 귓불을 깨물며 린델을 애무했다.
과하게 주어지는 감각에 린델은 잔뜩 흥분하고 말았다. 원래부터 카시어스가 안을 넓히는 데 공을 들이기는 했다. 그래도 오늘은 뭔가 달랐다. 그를 타고 앉은 자세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시작부터 열이 확확 올랐다.
뒤를 휘젓는 손가락도, 귓가에 닿는 숨결도 모두 자극이었다. 허리가 들썩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발기한 성기가 카시어스의 뱃가죽에 닿는 것도 미칠 지경이었다. 열이 올랐다. 뱃속이 들끓었다.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온몸이 저릿저릿한 자극을 원했다.
“이제, 이제 안 되겠어요.”
“응?”
“못 참겠다고요. 으읏.”
입이 벌어지자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린델은 카시어스의 목덜미에 이마를 문지르며 입을 깨물었다.
“원하는 걸 명확하게 말해야지.”
흥겨운 카시어스의 목소리에 린델은 난감함과 울컥함, 그리고 민망함을 동시에 느꼈다. 뭘 원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애태우는 게 얄미웠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카시어스의 손가락이 거의 빠져나갔다가 푹 찔러 들어왔다. 등이 저릿하게 울리면서 눈에서 열이 튀었다.
“흐윽. 으. 읏.”
“잔뜩 달아올랐어.”
“경을……. 우읏.”
“응? 말해 봐.”
“경을, 당신을 원해요. 훗.”
린델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더듬더듬 말했다. 당신을 원한다. 솔직하게 말했는데도 카시어스는 귀를 길게 핥으며 재촉해 왔다.
“좀 더 말해 봐.”
“사랑해요.”
“이런. 약았어.”
사랑한다는 말이 정답이었다. 카시어스가 사납게 키스를 해 오면서 손가락을 빼냈다.
“천천히, 허리를 들어봐.”
입술을 뗀 카시어스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린델은 자꾸 미끄러지는 무릎에 힘을 주며 카시어스의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잔뜩 잡아 벌린 엉덩이 사이로 뜨겁고 단단한 것이 닿았다. 주름이 벌어지고 살덩이가 꾸역꾸역 밀려드는 느낌에 린델은 고개를 내저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욱신거리는 아픔에 몸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무릎으로 버티고 선 다리가 덜덜 떨렸다. 아팠다. 그런데도 좋았다.
“흐읏.”
린델은 카시어스의 어깨를 부둥켜안고는 억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것이 끝까지 밀고 들어왔을 때는 끔찍한 압박감에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울지 마.”
울지 말라고 한 카시어스가 천천히 린델의 등을 쓸며 입을 맞춰 왔다. 잡아먹을 듯한 키스에 린델은 열렬하게 응했다. 키스는 달콤했다. 그러나 아래를 치고 들어오는 힘은 강렬했다. 더 이상 들어찰 곳이 없다고 여겼는데도, 올라탄 자세 때문인지 더 깊이 파고들었다.
강하게 치고 들어올 때마다 깊은 통증과 작열감이 번뜩이며 찾아들었다. 뒤로 빠져나갈 때는 안의 점막이 딸려 나가는 게 느껴졌다. 뱃속이 꿰뚫릴 때마다 린델은 진저리 치며 울먹였지만, 신음 소리는 카시어스의 입술에 먹혀 사라졌다. 린델은 숨이 막히는 감각에 카시어스의 등을 긁어댔다. 그제야 카시어스가 입술을 놓아주었다.
“흐으. 으응. 아. 으…….”
말이 되지 않은 신음이 제어되지 않았다. 내벽을 두드리다 못해 짓이기는 카시어스의 허리짓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느끼는 곳을 푹푹 찔러드는 강렬한 자극에 여린 내벽은 끊임없이 경련하며 쾌감을 터트렸다. 무릎이 무너졌다. 카시어스가 박아 넣는 대로 몸이 흔들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한 자락 남은 이성이 사라지다 못해 감각조차 마비시켜 버릴 것 같은 쾌락 속에서 린델은 울음을 터트렸다.
“카, 카시어……. 읏.”
“괜찮아.”
“너무……. 흐, 으읏.”
“린델.”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목에 매달려 오는 린델을 달래며 카시어스는 만족감에 웃었다. 찔러 넣을 때마다 부드럽고, 점막이 버거워하면서도 빨아들인다. 약한 곳을 두드리면 몸을 경련하면서 반사적으로 성기를 잘라먹을 듯이 강하게 조였다.
가느다란 흐느낌도, 필사적인 손길도, 어설픈 움직임도 모두 카시어스의 욕망을 부추겼다. 특히 린델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우는 모습을 좋아하는 자신의 고약한 취향에 혀를 차면서 카시어스는 열락에 빠져 들었다. 쾌감에 속절없이 무너진 린델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도망치려는 동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꽉 부여잡고는 있는 힘을 다해 아래를 처넣었다. 린델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카시어스의 쾌감도 함께 고조되었다.
서로의 거친 숨소리가, 제멋대로 튀는 신음이, 난잡하게 질척이는 소리가 가득 채웠다.
먼저 절정에 이른 것은 린델이었다. 몸을 굳히며 사정을 시작했다. 카시어스는 자신의 배를 적시는 린델의 용두질에도 더욱 거세게 움직였다.
“흑, 잠시. 으윽. 그만…….”
사정을 하고도 계속 주어지는 자극에 린델이 애원해 왔지만 카시어스는 멈추지 않았다.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였다. 내벽이 빨아 당기는 강한 압력에 타오르는 듯한 쾌감을 느끼면서도 몇 번이나 강하게 찔러 넣었다.
린델의 입에서 기어코 다시 울먹이는 소리가 나고서야 카시어스는 달아오른 속살 안에서 사정을 시작했다. 절정의 순간은 길었다.
잦아드는 숨소리와 함께 긴 여운이 두 사람을 감쌌다. 서로를 끌어안은 채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정신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추슬렀다.
먼저 움직인 것은 린델이었다. 숨을 헐떡이던 린델은 치솟은 억울함에 눈앞에 있는 카시어스의 어깨를 깨물었다.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왜?”
카시어스가 린델의 뺨을 잡고 물었다.
“아프라고요.”
“내가 잘못한 거야? 좋았잖아.”
“그럼 깨물고 싶어서요.”
린델은 삐죽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다정하고 배려 깊은 남자는 꼭 정사의 마지막이 되면 사람을 끝까지 몰아붙이다 못해 괴롭혀댔다. 과하게 주어지는 감각이 싫지는 않았지만 버거웠다. 카시어스는 그걸 알면서도 제멋대로 해댔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큰일이야.”
큰일이라고 속삭이는 카시어스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린델은 그가 자신의 뺨과 눈가에, 입술에 하는 입맞춤에 눈을 감았다. 달콤한 후희에 기분이 사르르 풀렸다.
입안을 침범해 들어오는 카시어스의 입술을 빨며 린델은 생각했다. 자신은 그에게 너무 약한 것 같았다.
잠을 자려고 침대의 쿠션에 반쯤 기대어 누워 있던 린델은, 상체는 헐벗은 채 린넨 바지만 입고 젖은 머리를 털어내는 카시어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천사님처럼 아름다운 남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는 때는 지금처럼 일상생활을 할 때였다. 천사라면 머리를 감지도, 수건으로 물기를 털어내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잠시 천사가 수건으로 머리칼을 짜내는 장면을 상상하던 린델은 소리 없이 웃었다.
신의 사자인 천사는 오로지 신의 의지를 행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이신 황제 폐하께서는 천사를 닮은 외모를 하고 계셨다. 어쩌면 그는 인간이기보다는 무시무시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천사를 더 닮았는지도 몰랐다.
린델은 눈으로 카시어스의 오른쪽 어깨를 살폈다. 바로 조금 전에 자신이 같은 곳을 두 번이나, 그것도 세게 물었던 곳이다. 하지만 멍이 들기는커녕 흔적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치흔과 키스 마크가 잔뜩 생긴 자신과 달리, 카시어스에게는 아무것도 남길 수 없는 게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반면에 다행스럽기도 했다. 언제나 치유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그의 곁에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력한 치유력은 축복이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야?”
한참을 바라보니 카시어스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린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고개를 젓자 카시어스가 웃었다.
“내 얼굴도 좋다고 했지. 또 뭐가 좋은데?”
“멋진 몸매도 좋아해요.”
“즉물적이군.”
웃음을 터트린 카시어스가 린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내일, 빅토리아가 티파티에 초대했다고 들었어.”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녀가 나도 초대했거든. 그리고 샤트밀 후작 영애도.”
“아……. 네.”
잠시 샤트밀 후작 영애가 누구인지 생각하던 린델은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트윈문 파티에서 춤을 추었던 어린 아가씨였다. 노란색 드레스가 인상적이었다.
“트윈문 파티 때, 감싸준 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다며 빅토리아를 졸랐다고 하더군. 그녀에게 잘해주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질투하시는 거예요?”
“그래.”
장난스러운 마음에 물어본 것인데 카시어스는 진지했다. 린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누구든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어, 린델. 그녀가 꼬맹이라고 했는데, 춤추는 모습을 보고 속이 좀 쓰렸거든. 후작 영애에게 너무 웃어주지 마.”
너무 솔직한 고백이었다. 잠시 멍했던 린델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카시어스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너무의 기준을 몰라서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어요.”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어디 있어?”
“질투해 주시는 것도 좋아요.”
“황제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모양이군.”
카시어스가 활짝 웃는 린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 순간에 린델은 카시어스의 버릇이 뭔지 깨달았다. 왠지 모를 감동에 휩싸여 있는데, 손을 거둔 카시어스가 반지를 빼서 협탁 위에 올려두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6개의 반지 중에 4개가 협탁 위에 올랐다. 그의 손에 남은 반지는 2개뿐이었다.
“폐하……? 아, 카시어스 경? 반지를 빼시는 건가요? 괜찮으세요?”
린델이 알고 있기로는 마력 제어 반지는 폭주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마력을 가진 귀족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개 이상의 제어 반지를 꼈다. 보통은 1개가 대부분이었다. 카시어스처럼 6개인 경우는 200년 만에 처음이랬다.
하지만 그만큼 카시어스의 마력은 강력했고, 그는 씻을 때도, 잠잘 때도 반지를 벗지 않았다. 필요한 경우에만 하나씩 뺏다 꼈다 하면서 조절했다.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 네가 내 보석인걸.”
“아…….”
린델은 자신의 효용이 뭔지를 새삼 되새겼다. 카시어스에게 목숨이 구해진 것도, 충성을 맹세하고 이름을 되찾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이 그의 디비티에였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보석.
고개를 끄덕이는데 카시어스가 웃으면서 끌어안아 왔다. 그리고 그대로 안긴 채 침대로 쓰러져 누웠다.
“너는 종종 그걸 잊어버리는 것 같아.”
“가끔이요.”
솔직하게 대답하는 린델의 머리를 끌어안은 카시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헤루스와 디비티에의 주종 관계는 명확했다. 막강한 마력을 가진 헤루스가 디비티에를 그 뜻 그대로 지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필사적으로 의지하는 쪽은 헤루스라고 카시어스는 생각했다. 디비티에의 부재를 상상하면 숨 막히는 공허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 사실을 린델은 모른다.
카시어스는 자신이 린델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느끼는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다. 반지가 사라지고 린델이 곁에 있으니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내게는 너밖에 없어. 그러니 웃어주지 마.”
마음껏 끌어안은 이도, 이렇게나 마음을 준 이도, 미래를 생각한 이도 너밖에 없다. 그러니까 꼬맹이에게 웃어주면 속이 뒤틀릴 것이다.
린델은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어깨를 떨며 웃었다.
“저는 냉철의 마법사니, 너무 웃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됐어.”
상황이 정리되자 카시어스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의지하는 상대와 잠자리에 들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끌어안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