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몸을 뒤틀어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손길에 붙잡혀 한참을 신음했다. 폭발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명과 심장 소리를 들으며 헐떡이고 있는데 카시어스의 손짓에 의해 몸이 뒤집히고 엎드리게 되었다.
아무리 상대가 카시어스라고 하더라도 무방비하게 등을 보이는 것은 매번 오싹했다. 무엇보다 사정 직후 나른하고 예민해진 몸은 시트를 스치는 약간의 마찰에도 반응하고 있었다. 카시어스가 어깨를 살짝 깨물어 왔다.
“흐으.”
린델은 신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이고 시트를 꽉 쥐었다. 깨물린 곳부터 손끝과 발끝까지 저릿함이 내달렸다. 카시어스의 입술이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졌다. 오목한 등줄기를 따라 혀가 미끄러졌다.
“등까지 빨개졌어.”
카시어스의 흥겨운 목소리에 린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카시어스를 볼 수 없어서 순간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예쁜 몸이야.”
칭찬을 토해 낸 숨결이 허리와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까지 닿았다.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도 전에 뜨거운 손이 엉덩이를 벌리고는 축축한 입술이 닿아서는 안 될 곳에 닿았다.
낯선 감각에 린델은 뻣뻣하게 굳었다. 엉덩이 사이를 핥아대는 감촉에 린델은 팔꿈치에 힘을 주고 상체를 비틀었다.
카시어스가 자신의 엉덩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게 시야에 가득 찼다. 잠들기 전에 뽀득뽀득 씻기는 했지만, 거긴 누군가의 입술이 닿을 곳은 아니었다.
“하, 하지 마세요.”
당황한 린델은 손을 뻗어 카시어스의 머리를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맨살을 핥는 축축한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려 퍼졌다.
민망함과 충격에 린델은 미칠 것 같았다. 엉덩이를 빤다는 게 이런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폐하……!”
미치셨냐는 소리가 턱까지 차고 올랐다. 그러나 뾰족한 혀끝이 안을 찔러들 때는 벌린 입을 다물었다. 데일 것 같은 뜨거움이 마구 침범해 들어왔다. 여린 살이 자극받자 혼란함과 별개로 순식간에 숨이 차올랐다.
세상에.
린델은 신을 찾으며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지만 단단히 얽힌 카시어스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카시어스가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성기가 시트에 비벼져서는 피가 몰렸다. 린델은 엉덩이를 빨아도 좋다고 한, 빨리고도 좋아하는 자신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결국 시트에 머리를 묻었다.
“아, 으응.”
뒤가 축축하게 젖을수록 울음 섞인 신음이 새어 나왔다. 손가락으로 애무를 받을 때와 느낌이 달랐다. 수치심이 뒤섞인 쾌감에 흐느끼며 흐물흐물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카시어스가 떨어졌다.
숨을 커다랗게 내쉬기도 전에 그의 손이 아랫배로 파고들어 엉덩이를 치켜들게 만들었다. 커다란 손이 반쯤 발기한 성기를 쥐고는 가볍게 흔들었다.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다시 흥분했어.”
등에 한 번 더 입맞춤을 해 오는 카시어스의 목소리는 흥겨웠다. 민망한 자세도, 은근한 희롱도 문제가 아니었다. 린델은 괜한 억울함에 고개를 돌려 카시어스를 보았다. 향유를 잔뜩 손에 붓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거기에…….”
“할 수 있어.”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다른 방법도 많잖아요.”
여유롭게 웃는 카시어스가 얄미워서 린델은 항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린델은 몰랐다. 숨을 헐떡이는 상기된 뺨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울기 직전임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얼굴이 카시어스를 자극했다.
카시어스는 사납게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어렵게 부여잡았다. 그의 어린 애인은 순진한 주제에 도발적이었다.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한 번씩 그를 시험에 들게 했다.
자신이 침대 위에서 상냥한 타입이 아니라는 자각은 있었다. 욕심껏 박아버리고 싶은 것을 참으며 우는 애인을 달래고 녹진하게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울먹이는 얼굴을 볼 때면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마치 신의 시험이라도 받는 것 같았다.
신의 시험은 무슨.
그냥 린델이 너무 좋아서 마음껏 탐하고 싶을 뿐이었다.
“너야말로 그러는 거 아냐.”
“제가 뭘. 읏.”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려던 린델은 엉덩이를 벌리는 손짓에 헛숨을 삼켰다. 곧이어 손가락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구멍은 흐물거릴 정도로 풀렸지만, 안쪽이 만져진 것은 처음이었다.
단단한 손가락의 감촉은 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기대하고 있던 쾌감에 몸이 떨렸다.
“흐읏.”
린델은 다시 시트에 얼굴을 박고는 신음했다. 꿈틀대는 내벽을 꾹꾹 찔러대는 손길은 가차 없었다. 깊이 찔러들 때마다 몸이 쏠리면서 열과 땀이 솟았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향유가 다리 안쪽을 타고 내리는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크고 작은 자극에 바짝 발기한 성기는 이제 아프기까지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스스로 성기를 만지려고 하는데 카시어스가 손을 낚아챘다. 린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달프게 카시어스를 불렀다.
“카, 카시어스 경.”
“아직이야.”
으르렁거린 카시어스가 린델의 손을 다시 시트 위에 고정시켰다. 린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엉덩이 사이에 비벼졌다. 야릇한 기대감에 발가락이 곱아드는 순간에 뒤가 벌어지고 빠듯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단단히 붙잡힌 채 커다랗고 뜨거운 것이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끝까지 들어왔다 싶을 때 순간 빠져나갔다.
“흐…….”
점막이 달라붙어 쓸려가는 감각에 덜덜 떨고 있는데 다시금 뜨거운 것이 박혔다. 난폭한 움직임이 반복되자 입에서 절로 우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뜨겁게 열이 오른 안이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게 떨렸다. 숨이 막혔다. 힘에 밀려 자꾸 앞으로 미끄러졌다. 얼굴이, 머리가 뜨거워졌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신음조차 되지 못한 억눌린 숨소리가 목에서 울렸다.
밀어붙이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릎이 무너지려는데 카시어스의 손이 엎드려 있는 가슴 아래로 파고들었다. 상체가 들렸다. 린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뿌연 시야의 위치가 바뀐 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무릎으로 버티고 선 자세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건…….”
“괜찮아.”
이 자세는 이상하다고 하려는데 카시어스가 등 뒤에서 단단히 부둥켜안아 왔다. 발기한 성기까지 손에 쥔 그가 강하게 아래를 쳐올렸다. 미끄러지는 무릎으로 무게로 무게를 지탱하고 아래를 치고 오는 충격을 견디는 것은 힘들었다. 린델은 필사적으로 카시어스의 팔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흐윽. 이 자세…… 싫. 아, 아앗. 아.”
입을 벌리자 엉망진창인 신음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싫다고 했지만 머리끝까지 솟아오른 강렬한 떨림에 순간순간 앞이 사라졌다. 결합은 한없이 깊었다. 도망갈 곳 없이 단단히 옥죄인 자세에서 카시어스가 찔러드는 대로 몸이 들썩거렸다. 미칠 것 같은 순간에 바라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이 끔찍하게 달콤한 고통 속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린델은 자신의 성기를 틀어막고 있는 카시어스의 손을 뜯어내듯 붙잡았다.
“이제, 흐으읏. 이제 놓아주. 읏. 아.”
“흣. 조금만 더.”
“제발. 아. 아앗.”
감당할 수 없는 쾌락에 린델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른쪽 목덜미를 깨무는 감각에 린델은 숨을 멈췄다.
새하얗게 변한 시야가 겨우겨우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저 거친 숨소리와 질주하는 맥박이, 그리고 이명, 열기만이 가득했다.
“린델.”
다정한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뒷목에 닿았다.
카시어스에게 단단히 안겨 있는 것도, 눈물이 흘러내리는 시야가 흔들리는 것도 여전했다. 그리고 뒤는 깊게 채워져 있었다.
“진짜…….”
“응?”
“때리고 싶어.”
린델은 자신의 폭력성을 고백했다. 침대 위에서는 집요하게 몰아붙이는 남자를 한 대가 아니라 몇 대고 때리고 싶었다. 감히 황제 폐하를 두들겨 팰 수 있는 특권이 필요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맞닿은 등으로 카시어스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때려도 돼. 허락하겠다.”
때려도 된다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이명도, 어지러움도 점점 심해졌다. 의식을 잃을 거라는 신호였다.
까만 어둠이 다가왔다. 린델은 과감하게 암흑 속으로 뛰어들었다.
린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새벽의 차가운 푸르스름한 색감이었다. 동시에 등 뒤에 달라붙은 온기도 느껴졌다. 카시어스의 팔이 자신을 휘감고 있었다. 익숙한 안온함에 기대어 다시 잠을 청하려던 린델은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눈을 번쩍 떴다. 잠이 달아났다.
“아…….”
어젯밤에 느꼈던 감각이 고스란히 재생되는 바람에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당황하고 말았다. 정사는 거칠고도 농밀했다. 마지막에는 정신을 잃어버리고는 깨질 못했다. 분명 씻고 잠옷을 입었을 텐데도 말이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린델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참았다. 거기에 정말로 혀가 들어올 줄은 몰랐다. 끔찍하고 강렬한 순간이 계속 머릿속에서 번쩍거렸다. 간지러운 설렘도, 숨 막히는 쾌락도, 바닥을 모르는 추락도 한꺼번에 덮쳤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좀 더 심했다. 근육은 삐꺽거리는데 피부는 예민해져 있었다. 사타구니는 욱신거렸고 뒤에는 아직도 뭔가가 들어찬 것 같았다.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럴 때야말로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한참을 내적 비명을 지르던 린델은 언제나처럼 길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껏 잠자리에서 별별것들을 많이 해보았다. 애인 사이니까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도 정사의 한 부분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나 죽도록 민망했으니까 거기만큼은 빨지 말라고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시간을 가늠했다.
지금 자세에서는 시계가 보이지 않았지만, 주변의 밝기로 6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해 뜨는 시각도 많이 늦어졌다. 보통은 지금쯤 일어나서 준비할 때였다.
린델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에 살금살금 몸을 움직여서 카시어스를 정면으로 마주 보며 누웠다. 잠귀가 밝은 남자가 가늘게 눈을 떴다. 그러나 깨어나는 대신에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더 잘 모양이었다.
잠든 얼굴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과 달리 주변이 어두워서 그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채광 때문에 평소보다 창백해 보이는 얼굴은 조각을 깎아놓은 것같이 반듯했다. 자신의 애인은 눈썹도, 입술도, 이마도 예뻤다. 몇 대 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사르륵 사라질 정도였다.
한참 동안 멋진 얼굴을 감상하던 린델은 자유로운 오른손 검지로 카시어스의 턱 선을 살짝 쓸었다. 잠이 든 것인지 카시어스는 반응이 없었다. 린델은 조금 더 과감하게 손끝으로 눈가와 광대뼈를 더듬었다.
“안 주무시는 거 알아요.”
코앞에서 속삭였는데도 카시어스는 눈조차 뜨지 않았다. 작은 기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가 웬일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