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37)

-120화-

문이 닫히고 단둘이 되자, 린델은 카시어스를 불렀다.

“폐하.”

“왜?”

“오늘 밤, 주무시고 가실래요?”

멋은 없었지만 분명히 유혹의 말이었다. 린델을 보지도 않고 답하던 카시어스가 놀란 얼굴을 하고 돌아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시어스는 금방 인상을 썼다.

“겨우 그걸로?”

“싫다시면 어쩔 수 없고요.”

“하려면 확실히 해.”

“그럼 손을 잡아주세요.”

린델은 카시어스 옆으로 조금 더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카시어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면서 손을 잡아주었다. 린델은 언젠가 카시어스에게 배운 대로 손을 맞잡으면서 손가락 끝으로 그의 손목을 살짝 더듬었다. 흠칫거리는 카시어스의 반응을 느끼며 소매 안쪽으로 조금 더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가 빼냈다. 괴괴한 표정을 짓는 카시어스가 웃겨서 빙긋 미소 지었다.

“싫으세요?”

“늑대가 다 되었어.”

“제가요?”

“너 말고 여기 누가 있는데.”

“멋없는 유혹인데 늑대라고 하시면 안 되죠.”

배운 대로 하긴 했지만 은밀하지 않고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래도 카시어스에게 먹힐 것 같긴 했다.

“멋없다는 건 아는 모양이지?”

“그럼요. 그래도 좋아해 주실 걸 알아요.”

린델은 카시어스를 보며 배짱을 부렸다. 멋은 없지만 그래도 카시어스가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겨울이 끝나기 전에 치유 마법을 마스터한 린델은 1순위로 전쟁에 차출되었다. 황제의 애인이라는 것도, 타국의 왕자 출신이라는 것도 치유 마법 앞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린델은 황제의 충성스러운 마법사로 활동하고자 노력했다. 마력 고갈로 쓰러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마법사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했다. 실력을 인정받고 명예를 쌓고 싶었다.

황제의 애인이기보다는 마법사로 불리기 위해 사무적으로 굴었다. 군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카시어스가 고지식한 애인을 뒀다고 툴툴거리며 불만을 터트린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기회야 만들면 그만이라는 남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손도 잡고, 끌어안고, 입도 맞춰 왔다.

전쟁 중에는 황제의 침실에서 밤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선언해도,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열흘에 한 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깨면 카시어스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곤 했다. 또 어떨 때는 카시어스가 먼저 침대 위에서 기다릴 때도 있었다.

어쨌든 전쟁이 시작되고 린델은 단 한 번도 유혹 같은 것을 먼저 한 적이 없었다. 평소에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키스는커녕 손조차 먼저 잡지 않았다.

그러니까 린델은 어설프고 멋없는 유혹이 카시어스에게 통할 거라고 확신했다.

“안 좋아하면 어쩌려고?”

“그럼 좋아하실 만한 것을 해야겠죠?”

린델은 오른팔로 카시어스의 날씬한 허리를 안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서슴없는 린델의 애정 표현에 카시어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늘색 눈동자는 확신을 가지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린델의 믿음대로 카시어스는 기분이 꽤나 풀려 있었다. 딱히 린델의 유혹을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아주 많이 속상하다고 어필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노라며 시간을 달라는 린델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결혼 허가서를 받으러 온 빅토리아가 행복으로 충만한 것을 보자니, 속이 쓰리다 못해 질투로 부글거렸다.

유치하다는 것은 알지만 태연하게 굴 수 없었다. 스웨인 남작을 보고도 깨달은 게 없냐고 린델을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이 유혹이었다. 결혼은 아직 할 생각이 없지만, 심통 난 애인을 달래주기는 하겠단다. 밀당이 고약했다. 본인은 조련한다는 자각이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이런 걸, 휘둘린다고 하는 거겠지.

사실 이것도 나쁘지 않았다. 말랑하고도 속 끓는 연애를 하고 있는 기분이 좋았다. 그저 사랑스럽고도 무정한 애인 때문에 애가 탈 뿐이었다.

“좀 더 멋있게 유혹해 봐.”

카시어스는 린델의 뺨에 얼굴을 맞대며 속삭였다. 유혹을 해준다니 제대로 즐겨야 했다.

“그럼…….”

“그럼?”

“어, 흠. 빨아드릴까요?”

여전히 멋없는 유혹이었다. 그래도 귓가에 울리는 린델의 목소리는 달콤하게 들렸다.

“어디를?”

“어……디든요?”

카시어스는 빨갛게 달아오른 린델의 목덜미를 확인하고는 웃었다. 고지식한 주제에, 수줍음도 많으면서 이럴 때면 과감해졌다.

결국 항복을 한 카시어스는 린델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겼다.

“내가 많이 참는 거야.”

“참지 않으셔도 돼요.”

“자꾸 부추기지 마. 안 참았다가는 저기 저 탁자가 침대가 될 테니까. 딱딱하기는 하겠지만, 방법은 있으니까.”

“딱딱하든 말든, 절대 안 됩니다. 여긴 회의실이라고요.”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탁자를 확인한 린델은 다급하게 거절했다. 고개를 끄덕이면 카시어스는 진짜로 할 터였다. 탁자가 딱딱한 것은 둘째 치고, 고명한 장군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에서 섹스를 할 수는 없었다.

“빨아준다며.”

“여기 말고 다른 데서요.”

“그럼 다른 것도 해줄 거야?”

“뭐든지요.”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니까. 내가 무엇을 해달라고 할 줄 알고. 응?”

카시어스가 뺨을 부비며 키득거렸다. 부드럽고 다정한 몸짓이었다.

“괜찮아요. 끔찍하게 야한 것도 해드릴게요.”

“정말? 원망하지 마.”

“원망할 만한 것을 시키실 건가요?”

“아마도?”

침대 위에서 카시어스를 원망할 일이란다. 부끄럽거나 민망하거나 수치스러운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린델은 엉덩이를 빨리는 것을 끔찍해했다. 싫은 건 아닌데, 그 순간만큼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연인이라면 침대 위에서 동의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애쉰 부인이 그랬다. 두 사람만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좋고 싫은 것은 확실히 해두라고도 조언해 주었다.

원망할 만큼 야한 것을 시킬 거라는 예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시어스가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끝에 쾌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말만 하세요.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어요.”

“너는 협상 같은 건 하면 안 되겠다. 그렇게 다 해준다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안 된다고 해요?”

“오, 그건 아니야.”

뺨에 입술을 부비는 카시어스가 키득거렸다. 딱딱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기분이 완전히 풀렸다는 의미였다. 린델은 웃음을 삼켰다. 정말 오늘 밤에는 무슨 일이든 다 해줄 수 있었다.

***

린델은 뺨에서 턱으로 미끄러지는 감촉이 귀찮았다. 잠결에 고개를 돌리며 뒤척였다. 그러자 목덜미에서 웃음기 담긴 목소리가 울렸다.

“자는 거야?”

멋진 목소리의 주인공은 카시어스였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의아해하던 린델은 아프지 않게 목덜미를 무는 감각에 정신을 차렸다. 조금 전에 있었던 대화가 기억났다.

카시어스는 자신의 침실에서 자자고 했지만 린델은 거절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언제나처럼 카시어스가 린델의 숙소를 찾기로 했다. 린델은 뽀득뽀득하게 씻고는 카시어스를 기다리다가 저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거기까지 단숨에 떠올린 린델은 눈을 번쩍 떴다. 카시어스가 반쯤 자신을 덮친 상태였다.

“어…….”

“깼어?”

깼냐고 묻는 카시어스가 목을 길게 핥는 바람에 린델은 잠시 어깨를 떨어야 했다. 잠이 완전히 떨쳐졌다.

“언제 오셨어요?”

“방금 전에 왔어. 피곤해?”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 카시어스가 상태를 물었다. 졸리다고 하면 자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그는 먹이고 재우는 데 민감했다. 특히 마력 고갈로 쓰러지고 난 다음에는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린델은 고개를 저었다. 잠은 다 깼고, 그다지 피곤하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잠 깼어요.”

“그래?”

커다란 손에 뺨이 잡히면서 웃음기를 머금은 입술이 닿았다. 살짝 겹쳐졌을 뿐인데, 순식간에 접촉이 깊어졌다. 린델은 숨을 헐떡이며 카시어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키스는 시작부터 음탕했다. 카시어스가 입 안의 예민한 곳을 쓰는 바람에 정신이 흐릿해졌다. 섹스가 주는 쾌락을 기억하고 있는 몸이 가늘게 떨렸다.

“우웅.”

카시어스가 몇 번이고 각도를 바꾸며 길게 키스를 이어나가자 린델이 숨을 헐떡이며 작게 신음했다. 야한 목소리에 카시어스는 키스를 하면서 만족과 오싹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곧 뻐근한 흥분이 되어 아래에 피가 몰리게 만들었다.

키스를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코로 숨 쉬는 것도 어려워했던 린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혀를 빨아주면 곧잘 응한다.

린델의 입술은, 타액은, 숨결은 더없이 달았다. 다른 곳을 깨물어도 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따끈하고 향기 나는 몸을 이대로 파고들고 싶었다. 쾌락에 허덕이는 숨소리를 들으며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으면 갈증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카시어스는 언제나처럼 과격한 충동을 억눌렀다. 침대 위에서 즐길 수 있는 유희는 다양했다. 은밀한 즐거움을 놓칠 수 없었다.

카시어스는 길게 숨을 들이쉬며 린델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숨을 헐떡이는 린델의 눈가는 붉어졌다. 정직하게 유혹을 하면서도 다정하게 웃는 녀석은 이럴 때면 더없이 야한 얼굴을 했다. 촉촉하게 젖은 눈빛이, 도톰하게 부풀은 입술이 음탕하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뺨을 한 번 살짝 깨물면서, 그의 등을 끌어안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순식간에 린델이 카시어스의 다리를 타고 앉은 자세가 되고 말았다.

“폐하?”

어리둥절해하며 린델이 카시어스를 불렀다. 전쟁터에서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린델은 언제나 폐하라고 칭했다. 목소리가 야한 건 좋은데 이름이 불리지 못한 것은 별로였다.

카시어스는 린델의 허리를 붙잡은 채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덕분에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전쟁 따위는 얼른 끝내야겠어.”

“예?”

“애인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니 말이야.”

카시어스가 툴툴거리자 린델이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웃었다.

“무엇을 할까요? 카시어스?”

목을 끌어안은 채 속삭이는 다정한 애교는 담백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멋진 유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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