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5)

[동생과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선일이 기겁하자 선영 또한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가렸다.

“혀, 형도 읽었어?”

선일은 선영이 이토록 당황해서 우물쭈물하는 얼굴을 굉장히 오랜만에 보았다. 평소라면 이 자식이 이런 표정을 짓기도 하는구나 내심 묘한 우월감을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 너랑… 그거, 안 하면… 못 나가는… 방, 이라고….”

선일이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말을 끝내자 선영의 얼굴이 불이라도 붙은 듯 다시금 새빨갛게 물들었다.

“나도, 같은 내용이야….”

선영이 차마 선일을 보지 못하고 손등으로 얼굴을 가린 그때, 선일이 성큼성큼 벽 쪽으로 다가가 쿵,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딴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 뭔지 모르겠지만 개소리하지 말고 내보내!”

선일의 길길이 날뛰는 태도에 선영이 더더욱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며 선일에게로 다가갔다.

“형, 그러다 손 다치기라도 하면…!”

그런 선영의 태도에 선일이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랑은 다르게 손 좀 다친다고 큰일 안 나거든!?”

바이올린 그만둔 지가 몇 년인데.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취미로 계속 연주하기는 했지만, 선영이 본격적으로 콩쿠르를 휩쓸고 해외 유명 주니어 콩쿠르의 대상을 평균 참가자보다 서너 살씩 어린 나이에 받기 시작한 후부터는 완전히 그만두었다.

자신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영의 반의반만큼도 따라 하지 못했다. 그 차이를 깨달은 순간부터 바이올린 연주가 조금도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활을 손에 쥘 때마다 선영이라면 여기서 틀리지 않았을 텐데, 선영은 이렇게 서툴게 연주하지 않을 텐데. 자신도 모르게 동생이 연주했던 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기 때문이었다.

“그,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어. 그냥 형이 다치는 건 싫어서…….”

선일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럼 여기 나랑 계속 갇혀 있게? 난 싫거든?”

선일은 선영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쾅, 이번엔 발로 벽을 찼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쿵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 하얀 직육면체 모양으로 생긴 방은 무너질 줄을 몰랐다.

선일이 벽을 부숴보겠다고 낑낑거리는 사이 선영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실 두 개 정도를 붙여놓은 크기의 방은 너무 크지도 좁지도 않았다. 틈이라곤 없는 꽉 막힌 공간임에도 숨이 막히거나 공기가 답답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윽, 왜 흔들리지도 않는 건데!”

거의 발악하듯 벽에 몸을 들이박는 선일을, 선영은 화들짝 놀라 등 뒤로 감싸 안으며 막아섰다.

“그, 그만해! 형 그러다 정말 다치겠어.”

얼결에 선영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된 선일이 창백히 질린 얼굴로 몸부림쳤다.

“놔! 너 설마 저딴 걸 믿고 날 강간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지?”

선일의 노골적인 물음에 선영의 얼굴이 다시금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죽어도 싫어. 여기 평생 갇혀 있게 되더라도 안 할 거니까.”

선일의 단호한 태도에 선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일단 틈이나 문 같은 게 없나 같이 찾아보자.”

진정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린 선영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안정을 되찾은 선일이 후,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자 양쪽으로 흩어져 일일이 벽을 만져보며 방 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진짜 돌아버리겠네.”

방 전체를 더듬고 다닌 지도 30분째. 이 이상한 공간은 정말 수상쩍을 만큼 어떤 빈틈도 없었다. 물리적으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긴 한 거야? 완벽하게 밀봉된 상태에 선일이 기함을 토했다.

“이제 어떡하지…?”

선일보다 반 뼘 정도 큰 키의 선영이 울 것처럼 두 눈을 깜빡이며 선일을 바라보았다. 윽. 생긴 건 누구라도 뒤돌아볼 수밖에 없을 만큼 잘난 주제에.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져 있는 게 영화나 화보 속의 장면이 따로 없었다.

분명 자신과 꽤 닮은 얼굴이긴 하지만 베이스만 같을 뿐 인상은 완전 딴판이었다. 선일은 아버지를 닮아 눈이 가로로 길고, 눈썹이 또렷해 단정하니 잘생겼다는 소리를 제법 듣는 편이었고, 선영은 풀 액셀을 밟으며 봐도 섬세한 미인이었다.

‘그야 저놈이 아빠보다 엄마 유전자를 더 진하게 물려받았으니까 그렇지.’

소싯적 시내에만 나가면 남자들이 그렇게 줄을 서고 따라다녔다던 엄마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엄청난 미인이었다. 아빠도 인물로는 크게 빠지는 편은 아니지만, 엄마가 워낙에 압도적인 미인이라고나 할까. 주위에서 아빠보다 더 좋은 집안으로 시집갈 수 있었을 텐데 왜 아빠를 골랐느냐고 무례한 질문을 농담처럼 던진 적도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었냐면….

‘울 여보를 크기로 따라올 남자가 없었거든!’

엄마는 그걸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들들 앞에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깔깔 웃는 타입이었다. 아무튼 선영 쪽이 엄마의 미모 유전자를 가져갔으면 자신에게는 그 엄청나다는 아빠 유전자라도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객관적으로 선일은 큰 편이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엄청난 대물은 아니었다.

‘평균보다 큰 편이면 된 거야.’

그간 만났던 여자 친구들도 선일을 크기로는 뭐라고 한 적이 없었다. 만족하면 만족했지, 불평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쓸데없이 얼굴에서 자지로 생각이 넘어가는 바람에 선일은 재빨리 자기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렸다.

“뭘 어떡해. 저 좆같은 내용이 바뀌는 거 아니면 죽어도 너랑은 아무것도 안 해.”

그리고 그 순간. 둘 옆에 떠 있던 시스템 창이 반짝이며 내용을 바꾸었다.

[미션 변경 가능]

[내용 확인하기]

“이건 또 왜 이래?”

선일이 잔뜩 삐딱한 표정으로 시스템 창을 노려보자 아까만 해도 없던 [내용 확인하기] 버튼이 반짝거렸다.

“미션 변경이 가능하다는데?”

내내 울상이었던 선영의 표정이 일순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일단 내용만이라도 봐야 하나?”

선일이 인상을 쓴 채 선영과 상의도 없이 내용 보기 버튼을 누르자 줄줄 스크롤이 길어지며 설명이 나왔다.

[변경 가능한 미션]

[아슬아슬♡선 넘기 게임]

[랜덤으로 뽑을 수 있는 20가지 미션 중 5개 이상 성공할 시 탈출 가능]

[랜덤 미션 예시]

[- ★60초 동안 손잡기]

[- ★★혀 넣고 키스하기]

[- ★60초 동안 눈 마주치기]

[뽑은 미션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뽑은 미션을 폐기하고 새로운 미션을 뽑기 가능]

[단 잔여 미션 횟수가 남은 미션 수와 같을 경우 더 이상 폐기할 수 없음]

“이 무슨 또라이 같은…!”

선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메시지를 읽자 옆에 있던 선영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들었다. 선일은 그런 선영을 흘끔 바라보고는 긴 한숨을 내쉬며 시스템 창을 노려보았다.

나가려면 정말 이 이상한 말을 들어야만 하는 건가? 말도 안 된다고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침착하게 외부에서 구조해 주기를 기다리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혀엉….”

안절부절못하던 선영이 다시금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선일을 내려다보았다. 뭐, 보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하자고 하면 진짜 할 거냐? 선일은 삐딱하게 팔짱을 낀 채 선영을 노려보았다.

“시발…. 그래, 하자.”

아무리 머리와 몸을 굴려봐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눈 마주치기, 손잡기 같은 게 나올 때까지 뽑고 버리고를 반복해서 할 만한 거 5개만 하고 빨리 이 자식과 떨어지고 싶었다. 선일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선영과 상의하지 않고 불쑥 미션 변경 버튼을 눌렀다.

“앗…!”

선영이 외마디 감탄사를 내지르자 곧 시스템 창이 깜빡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아슬아슬♡선 넘기 게임]

[Mission. 01]

[★★펠라티오]

[수행]/[패스(버리기)]

그리고 바뀐 메시지를 확인한 것과 동시에 선일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아악!”

선일은 소리를 지르고도 고통을 상쇄하지 못했는지 벽을 쿵쿵, 주먹으로 내리치며 한참을 괴로워했다.

“싫어! 못 해! 하는 것도 싫고 받는 것도 싫어!”

거의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자 되레 침착해진 선영이 선일을 달랬다.

“이, 이번 건 패스하자. 다음엔 좀 더 할 만한 게 나올 거야.”

그리고 그 말 그대로. 선영이 선일 대신 패스 버튼을 누르자 정말 할 만한 미션이 나와주었다.

[아슬아슬♡선 넘기 게임]

[Mission. 02]

[★ 60초 동안 손잡기]

[수행]/[패스(버리기)]

미션 내용을 확인한 선일이 냅다 수행 버튼을 눌렀다.

“이건 꼭 해야 돼!”

혀 넣고 키스 같은 걸 하느니 손잡는 게 백번 낫지. 선일이 선영의 손을 불쑥 움켜쥐었다.

“앗, 으응!”

선영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선일과 손을 마주 잡자 시스템 창 하단에 카운트다운 버튼이 생겼다.

[59]

[58]

[57]…

초가 정말 감질나게 줄어들었다. 선일은 시스템 창에 눈을 부라리며 빨리 이 억겁의 시간 같은 60초가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근데 이 자식 손이 이렇게 컸었나?’

한창 이 손을 쥐고 놀이터에 데려갔을 때만 해도 자신의 손의 반의반만 한 크기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려서는 저보다 더 크고 단단해졌다. 바이올린을 일찍 그만둬 이제는 굳은살도 거의 사라진 자신의 손과 달리,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활을 쥐고 연습하느라 굳은살이 선명한 선영의 손의 감촉에 절로 닭살이 돋았다.

‘이 자식이야 뭐, 그게 본인 생업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선일이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때, 카운트가 끝나며 다음 미션이 나왔다. 왜 그런 생각은 해서는. 괜히 민망해진 선일은 재빨리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뿌리쳤다. 선영이 상처 입은 눈으로 선영을 바라봤지만 돌아오는 건 퉁명한 목소리뿐이었다.

“다음은 뭐야?”

선일이 못 만질 걸 만졌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선영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뭔데?”

선일이 잔뜩 눈썹을 찌푸리며 본 시스템 창은 아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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