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당신들의 로맨스-17화 (17/35)

-17-

“잠깐만.”

차문을 열려는데, 그가 멈춰 세웠다. 그리고 손목을 움켜쥐고는 고기를 고르듯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물건 취급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빠 손목을 빼내려는데, 오히려 더 바짝 당겨졌다.

“왜..왜요?”

“너, 몸무게 원상복귀 됐어?”

주말까지 살을 찌워야 어머니를 만나게 해준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싶어서 무조건 고개부터 끄덕였다. 역시 태준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번 더 이리저리 훑더니, 이번에는 아예 턱을 잡고 마음대로 얼굴을 움직였다. 눈에 띄지 않게, 볼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눈에 띄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들켰는지 태준이 피식 비웃었다.

“그거 다 티 난다. 머리 굴리지 마. 그냥 부탁하면 어디 덧나?”

그러면 처음부터 조건을 붙이지 말든가. 원래 남자는 결혼하면 철이 든다는데, 김태준은 왜 이럴까. 그래도 정말 어머니 있는 곳을 안 가르쳐주면 어쩌나 싶어 머뭇거리는데, 다행히 비죽 웃고는 차문을 열어주었다. 냉큼 올라타자 ‘안전벨트’하고 또 한 마디 했다. 그냥 내버려두면 혼자 다 알아서 할 텐데. 그래도 어쨌든, 사고 당일부터 계속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고맙다는 말은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고맙습니다’ 한 마디가 참 어려웠다. 사귈 때에도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도, 미안했던 일도 많았는데. 이마를 긁으며 머뭇거리는데, 태준이 운전을 하다말고 흘깃 눈길을 주며 ‘그거’하고 말을 걸었다.

“그거, 스케치북이야?”

“네, 스케치북.”

“....그 안에 뭐가 들었냐고.”

“스케치북 안에는 그림이 들어있죠.”

“정해진. 난 가끔, 네가 멍청한 척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진짜 그런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

어쩐지, 며칠 좀 다정하다 했지. 내가 그렇게 회복력이 좋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그가 말한 대로 어쨌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너도 얼른 정신 차리라고 일부러 벌써부터 구박하기 시작하는 걸까. 희철의 말대로 아주 잊을 수야 없겠지만 받아들이고 그저 담아둔 채 이겨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우선은 내가 일어서야, 어머니도 모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언제까지 우울하게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벌써 예전처럼 구는 태준이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하..하물며 희철이도 내가 다 나으면 때린다고 했어요.”

“...때린다고? 널? 그 녀석이, 왜?”

“게이인 것 들켜서.”

운전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나는 안전벨트를 꼭 잡은 채 그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턱 근육이 불끈거리는 걸 보니, 화가 난 것 같았다. 실은 유부남이 된 누구 씨와 이렇게 미적지근한 사이가 된 덕분이라고 고해바치려다가, 말았다.

“고작 성향이 다르다고 때린다고? 뭐 그런 녀석이 다 있어? 너도 그런 놈이랑 놀지 마.”

괜히 혼자 씩씩거리다가 또 혼자 감감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문득 겁이 나서 다시 한 번 안전벨트를 꽉 조여 잡았다. 운전 속도가 다시 평이해졌다. 그의 입가가 웃음을 참는 것처럼 꽉 다물어지는 것을 보며, 왠지 불안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하물며 친구인 그 녀석도 널 한동안은 봐주기로 했는데, 왜 난 네 응석을 받아주지 않느냐, 이거야? 정해진, 나한테 응석 부리고 싶어?”

“아니요, 절대.”

“...됐다. 어쨌든 그 스케치북 안에 있다는 그림이나 좀 보여줘. 네가 그린 거야? 펼쳐 봐.”

“싫어요. 그냥 엄마 예전 생각나게 대충 그린 거니까.”

“차비라고 생각하고 좀 보여주지?”

그가 이죽거리며 차를 도로가 쪽으로 몰았다. 보여주지 않으면 차를 세우고 내리게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의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어차피 운전 중에 자세히는 보지 못할 테니 빨리 휙휙 넘기는데, 그는 ‘다시, 다시’ 요구하다가 기어이 정말 가 쪽으로 차를 세워버렸다. 그리고 내 손에서 스케치북을 빼앗아 들고는 직접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입가가 휘어지는 게, 왠지 또 무슨 말을 할 것 같아 얼른 다시 빼앗았다. 잘 봤다, 한 마디 하곤 그는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크레파스로 그린 거야?”

“옛날 생각나도록 그렸댔잖아요. 어렸을 땐 크레파스로 그림 그렸으니까.”

“그림이 참... 너답다.”

“그게 무슨 뜻인데요? 못 그렸다고요? 당연하잖아요, 내가 무슨 화가도 아니고. 그냥, 예전에 엄마하고 같이 그림 그리고 놀던 때가... 못 그리는 게 당연하잖아요.”

울컥 해선 목소리를 높이자 그가 ‘그런 게 아니야’하고 대답했다. 그럼 무슨 뜻이냐고 따지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 봐, 못 그렸다는 말 맞잖아. 그도 그럴 것이, 미술 학원 같은 것도 다닌 적 없고, 학교에 다닐 때도 미술 시간에 칭찬 한 번 받은 적 없었다. 그림 따위, 그것도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따위, 잘 그렸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너답다니. 입을 꾹 다문 채 한참을 죄 없는 앞차를 노려보고 있으니, 그가 문득 ‘그게 아니라’하고 말했다.

“예쁘다고. 꿈꾸는 것처럼.”

“......”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자 태준은 라디오를 틀었다.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는 기상캐스터의 전달사항과 몇 편의 라디오 광고와 한 곡의 트로트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DJ가 생일축하 사연을 읽기 시작할 즈음, 태준이 문득 턱 끝으로 콘솔박스를 가리키며 ‘열어봐’하고 말했다. 왼손을 부스럭거리며 박스를 열자, 미니초코바 몇 개가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먹어도 돼.”

모르는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묵묵히 초코바를 까먹었다. 그가 몇 번 그런 나를 힐긋거렸다. 줄까... 고민하다가, 입에 넣어줘야 할지 손에 쥐어줘야 할지 몰라서, 그냥 혼자 계속 먹었다.

도착한 곳은, 요양원이라기보다는 요양병원에 더 가까웠다. 양, 한방 협진진료를 하는 치료센터 건물이 따로 있고, 클리닉 센터를 지나면 전원주택처럼 세워진 몇 채의 작은 요양원이 산과 강을 끼고 분포해 있었다. 어머니를 뵙기 전에, 태준은 안심시키려는 듯 클리닉 센터의 수준이나 그곳의 진료수준, 그리고 타 요양원과의 특화점을 마치 홍보요원처럼 소개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고...고맙습니다..”

“..응, 뭐...”

얼른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데, 그는 클리닉 센터 안으로 나를 끌었다. 휴게실에 앉아있는데,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다가와 태준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게도 그가 어머니의 주치의라고 소개시켜 주었다. 나는 두 손을 맞잡고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긴 설명을 듣긴 했지만, 지주막하출혈이라든가 심장판막증이라든가 하는 어려운 말들뿐이었다. 무릎 위에 올려둔 두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태준이 의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의 상태와 예후에 대해서만 쉽게 설명해 주세요.”

“그러니까... 출혈이 뇌실질 속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에 전신 중에 왼쪽의 마비가 온 상태고, 안구운동장애, 실어증과 같은 언어장애가 있어요. 다행히 지적장애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고 당시 받은 갑작스러운 높은 스트레스로 일시적인 감각장애가 보이고는 있어요. 그 부분은 요양 차원에서 점진적인 치료 가능합니다. 그 외의 뇌일혈에 관한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지속적인 약물요법과 재활요법을 통해서 더 이상 출혈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방법밖에 없어요.”

“......”

중풍에서, 그것도 갑자기 쓰러진 경우에는 완치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주치의에게 직접 듣는 느낌은 또 달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거리고만 있자 태준이 테이블 밑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주치의는 전신불구나 지적장애가 나타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한 일이라고 위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준이 조금 따라나서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멍하니 앉아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 보러 가자.”

센터를 지나 인공호수 주위에는 많은 환자와 그보다 더 많은 보호자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멀리서 간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미는 휠체어에 탄 어머니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태준이 뒤에서 문득 팔꿈치를 잡아 세웠다.

“정해진. 울면 안 돼, 알지?”

“응.”

“지금 어머니한테 가장 위험한 게 스트레스야.”

“알았어요.”

가까이서 본 어머니는 왼쪽 눈의 검은자위만 완전히 왼쪽으로 돌아간 상태였고, 의사의 말처럼 왼쪽 팔과 다리가 보기에도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한쪽만 왼쪽으로 돌아간 눈동자 때문에 나는 어느 쪽 눈과 시선을 맞추어야 할지 난감했다. 어머니는 오른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제야 나도 어머니의 오른쪽 눈을 보며, 웃었다. 태준은 간병인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 뒤, 어머니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랜만에 아들 본다고, 예쁘게 꾸며야 한다고 하셔서요.”

나는 덥썩 간병인의 손을 붙잡고는 첫인사로는 적절치 않은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뭘요, 하고 웃으면서 간병인은 휠체어의 손잡이를 태준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다. 곁을 지나면서 주의사항을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말씀을 못하세요. 소리를 낼 수는 있는데, 언어가 아니에요. 하지만 스스로 부끄러워하셔서 아예 그런 소리도 내지 않으시구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고운 분이셨다. 몸단장은 물론이고 행동이나 말투 하나도 신경 쓰시는 분이었다.

“어..엄마.. 나..나는 괜찮아요. 아픈 데도 없고, 다친 데도 없어요.”

오른쪽으로만 웃으며, 어머니가 떨리는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해진, 울면 안 돼. 휠체어를 잡고 마주선 태준이 눈으로 말했다. 울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했다. 왼손으로는 어머니의 떨리는 오른손을 맞잡고, 오른손으로는 감각이 없다는 왼손을 쓰다듬었다. 파충류의 그것처럼 차갑고 두껍고 잠잠했다.

“아버지 장례식도 무사히 잘 치렀다고 말씀드려.”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태준이 말할 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아빠 장례식도 무사히 잘 치렀어요. 제가 상주 노릇 다 했어요. 친척들도 다 왔고, 조문객도 많았어요. 아빠가 사람들한테 참 잘하셨잖아요. 여..여긴 우리 출판사 예전 팀장님이었는데요, 지금은 되게 큰 회사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신데, 장례식도 그렇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여기도 이 분이 신경 써서 추천해준 곳이에요. 편하세요? ...... 저는 다음 주부터 회사도 다시 나가요. 몸도 건강하니까 일 해도 된대요. 그러니까 저는... 괜찮아요.”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도 보여드려.”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으니 태준이 얼른 스케치북을 건네주었다. 아, 하고 그것을 들고는 어머니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우리 집 마당에 심어놓은 양상추와 고추와 토마토 나무 같은 것과, 내가 아홉 살 때까지 기른 강아지, 매일 몰래 마당에 숨어 들어와 그 강아지의 심기를 건드려놓곤 하던 고양이 가족, 어머니가 특별히 아끼던 화초들, 아버지가 특별히 아끼던 도자기, 매해 여름마다 휴가차 가곤 했던 통영의 작은 섬, 그리고 인체비례를 무시한, 아버지와 어머니와 내가 손을 잡고 서 있는 모습 등을 엉터리로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요, 엄마가 억지로 미술학원에 보냈어요. 그런데 그 미술학원 선생님이 나한테 네 그림은 왜 이러냐고 해서, 어린 마음에 상처 받고 며칠 안 다니고 그만둬 버렸거든요. 그래서 가끔 엄마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곤 했어요. 내가 미술학원 선생님한테 안 좋은 말을 들었던 걸 알고 엄마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무조건 잘 그린다고 칭찬해줬어요. 일부러 원래 그리는 것보다 더 못 그려도 봤는데, 그래도 무조건 잘한다고 하는 거 있죠.”

“응, 그랬어?”

그림을 다 보여주곤, 고개를 들어 태준에게 재잘재잘 떠들어대자 그는 마치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대꾸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별로 놀리는 것 같진 않아서, 오히려 엄마의 오른쪽 미소와 비슷하기도 해서, 그냥 얌전히 ‘네’하고 대답해주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서, 그리고 둘만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합류한 태준과 셋이서 밥을 먹고 재활치료를 함께 하고, 별로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해질녘이 되었다. 나는 직접 휠체어를 몰아 어머니를 병실 안까지 모셨다. 병실은, 일반 가정집의 안방처럼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태준에게 ‘고맙습니다’ 작게 속삭였다.

어머니를 담당하는 개인 간호사와 간병인, 복지사를 찾아가 태준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건네고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다시 어머니의 병실을 찾았다. 나는 태준에게 ‘잠시 만요’하고 부탁했다. 태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휠체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양손을 모두 맞잡았다.

“또 오겠습니다. 해지... 정해진 씨는 출판사에서 없으면 안 되는 인재라서, 제가 책임지고 지금보다 더 살찌워서 데려올게요.”

뭔가 더 말할 것 같아 얼른 눈치를 줬다. 차 가지고 올게, 말하곤 그는 방문을 닫았다. 나는 그가 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어머니의 양손을 맞잡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오른쪽으로만 웃고 계셨다. 왼쪽으로 돌아간 왼쪽 눈. 남에게, 그게 설령 남편이나 아들일지라도, 흉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소녀 같은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오른쪽 눈에 시선을 박았다. 그리고 양손을 모두 꽉 잡았다.

“엄마. 낳아주셔서 고맙고, 이때까지 길러주셔서 고마워요. 어렸을 때, 넘어져서 무릎 까지면 저보다 엄마가 더 속상해 하시고 눈물 고이신 거 다 알아요. 내 몸 깨끗하게 할 줄 알고, 소중하게 대할 줄 알고, 또 그만큼 다른 사람도 귀한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주셔서 고마워요. 어렸을 때 학교 가기 싫다고 속 썩여드린 거 죄송해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독립해 나간 것도 죄송해요. 그리고, 엄마... 엄마, 아빠라고 안 불러드려서 죄송해요. 이제 제가 다 해요. 아빠 제사도 제가 챙겨드리고, 엄마도 제가 모셔요. 그러니까 엄마도 얼른 일어나세요. 그래서 저랑 같이 살면서 아빠 제사, 같이 해드려요. 예?”

어머니의 오른쪽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죽어도 보이기 싫었던 관광버스 춤을 췄다. 어머니는 오른쪽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태준은 내가 무릎을 감싸 안으려 신발 신은 채로 다리를 의자 위로 올려도 혼내지 않았다. 그리고 콘솔박스에서 미니초코바를 꺼내주었다. 초코바를 우물거리면서도 대성통곡을 멈추지 않자, 그는 우스꽝스러운 트로트 CD를 볼륨 높여 틀어주었다.

*    *    *

어머니에게 보여주려던 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은 계속 보실 수 있도록 요양원에 놔두고 왔다. 그래서, 다음에 어머니를 뵈러갈 때 또 그림을 그려서 보여줄 새 스케치북을 샀다. 어릴 때처럼 배를 깔고 누워 크레파스로 이것저것 그리다보니, 한 장과 다음 장의 그림이 이야기로 이어졌다. 동물들이 말을 하거나, 꽃과 바람이 대화를 하거나, 어린 아이들이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강으로 되돌려주는 이야기.

“재밌네...”

스트레스가 중풍의 최대의 적이라고 해서 무조건 예쁘고 희망적인 이야기들만 그리다보니, 어느새 스스로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림이 그려진 부분을 제외한 여백의 부분에 악필로 이야기를 적어나가다가 문득, 홍종욱 작가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무슨.”

에이, 고개를 흔들며 또 다리를 흔들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배로 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끙, 하는 소리가 났다. 앓는 소리를 내며 ‘여보세요’ 하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곧바로 ‘나’하고 응답해왔다. ‘나’가 누구냐고 한 소리하려는데, 또 제 할 말만 했다.

-배로 기어서 수화기 든 정해진 씨, 뭐하면서 놀고 있어?

“......책 읽는데요.”

태준은 곧바로 ‘무슨 책?’ ‘그래서 감상은?’하고 꼬치꼬치 캐물어왔다. 대충 얼버무리는데 그가 문득 내 목소리 얘길 했다. 들은 대로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은 편이라고 하자, ‘아, 그럼’하고 뭔가 낌새가 수상한 투로 말을 꺼냈다.

-내일 사람들 갈 거야. 포장이사니까 자잘한 것들만 미리 짐 좀 싸놔.

“이사라니... 저 집 안 옮겨요. 부모님 집은 좀 더 준비가 되면 정리할 거예요.”

-그건 그냥 놔두고, 출판사랑 좀 더 가까운 아파트에...

“왜 마음대로 해요?! 그런 거 안 한댔잖아!”

-...그런 게 뭔데? 정해진, 그런 게 뭐냐고.

예전부터 있어왔던 문제였다. 그러니까 내가 집을 옮기면서부터 그는 자신과 좀 더 가까운 곳, 좀 더 넓고 주변이 안전한 곳, 채광이 잘 되는 집을 선택하길 바랐다. 집값이 문제라면 자신이 부족한 부분만 보충해주겠다는 식이었지만, 싫었다. 가끔씩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만큼 값비싼 선물을 할 때도, 선물이라고 하니 그저 받기야 했지만 언제나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정도면, 일반 월급쟁이들 몇 달치 봉급인데.

자격지심이라면 자격지심이었다. 문제는, 그가 그러한 것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럴 때마다, 한 걸음씩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설령 우리가 이성간이라 할지라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에 언제나 끝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당장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선물의 경우가 그러했는데, 하물며, 집이라니. 그건 그저 자격지심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집을 사준대? 그냥.. 거기 전세금 빼서 옮기라는 거야. 모자라는 것만 내가 보충해주고.

“여기 전세금 빼봤자, 그 근처 가장 작은 평수 아파트 들어가려면 열 배는 부족해요. 그게 보충이라고?”

-걱정되는데 어떡해! ....그럼 나중에 갚는 걸로 해. 거긴 동네도 위험하고, 옆집 소음도 다 들린다고 네가 매일 투덜거렸잖아. 채광도 형편없어. 공기도 탁해. 어쨌든 내일 옮겨. 다른 것 다 둘째 치고 우선 너도 출판사하고 가까우면 편하잖아. 그리고 나도 좀 더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

“싫어요! 그게 뭐야, 화대랑 다를 게 뭐가 있어!”

-정해진, 아주 웃긴다. 너 개그맨 시험 봐도 되겠다. 내가 언제... 너랑 자고 싶다고 했어? ...끊어.

말이 너무 심했다고, 감정이 앞서서 의미 없이 나온 소리라고 변명하려는데 뚝, 전화가 끊겼다. 화대라니. 심했다. 칼날을 손을 쥔 채 그에게 협박한 꼴이었다. 수화기를 든 손바닥이 따끔, 아팠다. 다시 전화 걸어서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번에는 초인종이 울렸다. 설마, 화나서 달려온 건가. 벌써. 덜컥 겁이 나서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살금살금 걸어가 현관문 구멍으로 밖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선희야...”

“아이스크림 사 왔는데, 먹을래?”

여장부가, 눈에 띌 정도로 야위어서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나는 얼른 선희가 내미는 봉지를 건네받았다. 어서 들어오라고 어깨를 끌어당기는데 바짝 마른 나뭇가지를 만지는 것 같았다. 스치면서, 아직 이마와 볼에 이어진 흉터가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안으로 들어와서도 선희는 쉽게 앉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처럼 좁은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사고에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담을 접시와 스푼을 준비하면서, 내가 아픈 것만 생각하느라 선희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아버지가 그렇게 되시는 순간을 유일하게 목격한 사람이 선희였다.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데 문득, 아무 말도 없이 아이스크림을 퍼 먹던 선희가 입술을 꾹 깨물고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해진아.”

“응.”

“미안. 미안하다, 해진아.”

“응, 아버지 장례식 안 온 건 좀 섭섭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는데, 선희는 갑자기, 그렁거리는 것도 없이 곧바로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너는 무슨 눈물을 준비도 없이 수돗물처럼 쏟아 내냐고 타박하며 얼른 티슈를 뽑아주었다. 그리고 한참, 선희는 무릎을 모아 안은 채 소리도 없이,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괜찮은데, 나는 되게 쪽팔리게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는데.

“선희야. 아버지 돌아가신 거, 네 탓 아니다.”

행여나 그렇게 생각할까봐, 계속 가슴에 쌓였던 말을 미리 터뜨렸다. 그러자 선희는 붉어진 얼굴을 들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내..내가 그냥 돈을 줬으면 됐거든. 그 사람이 처음엔 나한테 위협했거든. 그런데 아..아저씨가 대신 막아준 거거든. 해진아, 내가... 잘못한 거거든. 아저씨는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돌아가신 거라서 해진아...”

이번엔 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녹을까봐, 먹다 남은 것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 네가 나한테 그런 말 한 적 있는데, 선희야, 내가 너한테 책임 느끼면 너는 실패한 게 된다고. 나한테는 지금이 그렇다, 선희야. 네가 우리 가족한테 죄책감 느끼면, 아버지는 정말 허무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돌아가신 거고 나는 정말 실패한 인생에다가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후레자식이 되는 거야. 물론 완전하게 책임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있잖아, 선희야. 나도 할 수 없이 대한민국 남잔가 보다. 네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너한테 계속 책임 느끼고 미안해했거든. 손바닥도 맞대야 소리가 나잖아. 그러니까, 그때처럼, 이번에도 너한테도 반쯤 책임이 있고 또 나한테도 반쯤은 책임이 있다고 치자. 그러니까 그 책임감으로, 너 다른 남자하고 결혼해도 우리 엄마한테는 계속 며느릿감 노릇 좀 해줘야겠다. 응? 너는 그 정도만 책임 느끼면 돼.”

“내가.. 며느릿감 노릇만 하겠냐. 딸 노릇도 하지. 그런데 해진아, 내가 정말 그런 거 해도.. 되나? 내가 그래도 되나?”

“응, 그렇게 해주면 우리 엄마도 얼른 일어나실 거다. 그러니까, 뚝.”

“...지랄, 저도 울면서.”

“그게... 21세기의 남자는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된다고 했나... 하여튼 그렇다.”

훌쩍, 코를 훌쩍이며 대답하자 그제야 선희도 눈물을 방울방울 단 채 웃었다. 자세히 보니 눈가가 발진 같은 것이 오른 것으로 보아, 그동안 참 많이도 울었구나 싶었다. 죄책감. 누군가를 망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다치게 하고, 또는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했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책임감, 상대방에 대한 연민. 다만 그 정도가 다를 뿐이지, 우리는 한 생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고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고 또는 등에 지고 살아가는 걸까. 나는, 앞으로 또 누구에게 죄를 짓게 될까. 내가 느껴야 할 죄책감을 생각하며 벌써 눈가에 발진이 오르는 것처럼 따갑고, 가려웠다.

“그래도 선희야.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날까, 설마. 그러니까 우린 전 생애 통틀어서 죗값을 미리 치렀다고 생각해버리면... 너무 뻔뻔한가?”

입술의 각질을 떼어내며 조심스레 묻자, 선희는 킁 코를 풀었던 휴지를 내게 던지며 웃었다.

“이걸로 충분해. 누굴 다치게 하는 것도, 거기에서 책임감, 죄책감 느끼는 것도. 그러니까 벌써 또 무슨 일이 생길까, 그 죗값은 뭘로 치르나,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 끔찍하다. 응? 너나 나나, 우선은 서로 걱정이나 하자고.”

“...그래. 대신 너 다음 성묘 때 같이 가자. 아버지한테 장례식 못 간 건 사과해야 돼.”

“응. 그리고 조만간 어머니한테도 가자.”

“그래, 그러자.”

킁킁, 둘 다 코를 풀다가 수북이 쌓인 휴지를 옆에 놔 둔 채, 우리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다. 잘 먹다가 선희가 가끔 훌쩍였고, 나도 따라 훌쩍였다. 그러다가 또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울보라고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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