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1>
“…하여, 피고 류연비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일대 파란이 일었다. 절규하는 누나의 지지자들 틈에서, 나는 똑바로 서 있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일곱 차례에 걸친 장기 재판이었다. 그동안 누나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지자들의 피 끓는 응원에도, 재판소가 떠나가라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에도 담담했다. 모든 게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누군가 내 손을 움켜잡았다. 이틀 전 처형당한 곽재헌의 아들이었다. 그가 권주혁에게서 누나의 선처를 약속받았다는 사실을, 누나를 살려 주는 대가로 처형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곽현우가 말했다.
“우리가 속았어.”
커다란 밤색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누나!”
방청석을 뛰어넘어 달려갔다. 누나와 함께 가고 싶었다. 곽재헌의 피가 뿌려졌던 그 처형장에 누나를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군인들이 누나를 일으켜 세웠다. 단단하게 묶인 두 손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을 보았다.
“누나!”
무장한 군인이 앞을 막았다. 그가 곤봉을 휘두르자 수박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게 내 머리에서 난 소리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시야가 빙글 돌았다. 두 팔이 뒤로 꺾이고, 차가운 바닥에 뺨이 쓸렸다.
“놔, 놔! 이거 놔, 미친 새끼야!”
큰 손이 뒤통수를 짓눌렀다.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친 끝에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축축한 피가 이마와 콧대를 타고 흘러내렸다. 겨우 한쪽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을 때, 이미 누나는 자리에 없었다.
***
호출기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하신성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뭐야.”
“가야 해.”
류진은 발로 하신성의 어깨를 밀었다. 벌써 세 번째 삽입이었다. 흥분해서 딱딱해진 살덩이를 머금은 엉덩이 사이가 찢어질 것 같았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류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좀 빼, 이제.”
삽입 부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신성이 말했다.
“한 번만 더 싸고.”
“나 늦으면 안…!”
끝까지 빠져나갔다가 푹 꽂혔다. 류진은 목을 움츠리고 신음을 삼켰다.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런 행위에서 쾌감은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뒤로 하면 편하련만, 하신성은 류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걸 싫어했다. 그는 류연비와 꼭 닮은 류진의 얼굴을 좋아했다. 단정하고 섬세한 이목구비가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에 흥분했다.
이를 드러낸 하신성이 꼿꼿해진 유두를 깨물었다. 류진은 고개를 저었다. 가슴에 달라붙은 하신성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 양 손목마저 붙잡혀 베개 위에 눌렸다.
“아…!”
류진의 두 다리가 하신성의 어깨에 걸쳐졌다. 몸이 완전히 접혔다. 천장으로 쳐들린 마른 다리가 맥없이 흔들렸다.
“아, 아, 아! 아…! 아파! 아파!”
불에 달군 곤봉이 내장을 찌르는 것 같다. 류진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돌렸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하신성이 류진의 턱을 잡아 정면을 보게 했다.
“얼굴 보여 줘.”
“개새끼!”
하신성이 키득거렸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하신성이 쳐올릴 때마다 류진의 머리가 헤드 보드에 쿵, 쿵 부딪쳤다. 하반신의 통증 때문에 머리는 아프지도 않았다. 꽉 깨문 입술이 터져 피가 맺혔다. 하신성은 그 핏방울까지 핥아 먹었다.
호출기가 울려 댔다. 하신성의 큰 손이 그쪽으로 향하는 류진의 마른 손을 붙잡아 깍지를 꼈다.
“어디 가.”
“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퉁퉁 부은 구멍에서 정액이 튀었다. 이미 류진의 하반신은 시퍼런 멍과 붉은 손자국, 선명한 잇자국으로 엉망이었다.
하신성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깊숙이 박아 넣었다.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류진은 작살에 꿰인 생선처럼 파르르 떨었다.
“부드러워.”
하신성의 단단한 손바닥이 류진의 가슴팍을 쓸었다.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비틀었다. 손톱을 세워 유두를 찌르듯 긁자 류진이 어깨를 움츠리며 하신성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만해.”
“너 한 번도 못 갔네. 진짜 불감증 아니냐?”
대답하지 않았다. 하신성의 손이 류진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홱 당겼다.
“아!”
입 속으로 파고드는 혀가 뜨겁다. 류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호출기 소리에 마음이 급하건만, 하신성은 초조해하는 그를 조롱하듯 아주 천천히 몸을 뺐다.
마침내 성기가 빠져나갔다. 류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다리를 오므렸다. 무릎을 모아 한쪽으로 누우려는데 하신성의 손이 무릎 사이로 들어왔다.
“왜 이래, 또!”
“빼 줄게.”
“됐어.”
하신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앞에 류진의 다리가 확 벌려졌다.
“돌봐 준다니까?”
“필요 없어! 꺼져!”
하신성의 입매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그는 앞으로 기어가는 류진의 발목을 붙잡아 당겼다. 엎어진 몸이 질질 끌려왔다.
“내가 해 준다고.”
“됐다고 했잖아! 싫어! 싫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
하신성은 류진의 목덜미를 눌렀다. 베개에 얼굴을 처박은 류진이 숨을 쉬지 못해 버둥거렸다. 신음인지 욕지거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하신성은 자기 정액으로 질퍽해진 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으….”
류진은 베갯잇을 그러쥐고 떨었다. 하신성의 손가락은 필요 이상으로 깊이 들어왔다. 내벽을 긁듯이 후벼 파면서 젤과 뭉친 정액 덩어리를 대퇴부에 문질러 닦았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류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결코 원하지 않는 관계가 필요 이상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곽현우가 체포된 지 나흘째였다. 일단 체포되면 송장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는 풍기 교육대였다.
류진은 하신성에게 무릎 꿇었다. 곽현우를 빼 주는 대가로 그의 추잡한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늘 새벽, 어젯밤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굵어질 무렵 하신성은 자신의 검은 캐딜락을 끌고 나갔다. 하루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던 그는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사람을 방으로 끌고 가서 한 짓이 이거였다.
류진은 지친 몸을 일으키고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호출기 소리는 멎었지만, 곧 다시 울려 댈 게 분명했다.
“풍기대 다녀왔지?”
하신성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리 위로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현우 형 만났어? 뭐래? 언제 나올 수 있대?”
“그런 얘긴 못 했어.”
“풍기대 관계자들은? 거기 사람들이랑 얘기된 거 아니야?”
하신성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만 물어봐. 안 그래도 복잡하니까. 너까지 신경 쓰게 만들지 마.”
셔츠 단추를 채우던 류진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이 그래?”
“뭐가?”
“현우 형 빼 준다고 그랬잖아. 나랑 약속했잖아!”
“알아. 아는데, 지금 함부로 입 놀리면 다 잘못돼. 다 틀어져. 그러니까 당분간 얌전히 있어. 넌 그거면 돼.”
“그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한테 말은 해 줘야 할 거 아냐!”
“보채지 좀 마.”
“지금 내가 보채는 거야?”
“좀!”
하신성이 돌아봤다. 류진은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약속 안 지키기만 해. 가만 안 둬.”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하신성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야. 내일 아침에 곽현우가, 저기 부엌에서 죽음의 토마토 주스 제조하고 있을지 누가 알아? 기다려. 좀.”
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불안과 초조를 마른침과 함께 삼킬 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호출기가 울려 댔다.
<해범 1>
3교시를 마친 직후였다. 화사한 노란 원피스 위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카디건을 걸친 담임이 나를 불러냈다. 고모가 기다리고 있다며 조퇴증을 내미는 그의 눈 밑이 붉었다.
고모는 광장으로 차를 몰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차창을 두들겼다.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가방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 건, 고모의 대답을 듣는 게 두려워서였다. 아버지가 체포된 지 일주일째였다.
진입로부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고모는 미친 듯이 클랙슨을 눌러 댔다. 나는 두 귀를 틀어막았다.
광장 시계탑에 세 개의 목이 매달렸다. 군인은 피 묻은 기요틴 앞에서 엄숙한 목소리로 총통의 선언문을 읽었다. 멀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 고모는 있는 힘껏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손에는 커다란 비닐 가방, 다른 한 손에는 내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지 일 분도 안 되어 온몸이 흠뻑 젖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빗소리가 섞였다. 고모가 내 뺨을 후려갈겼다.
“아버지 내려 드려!”
지프가 떠났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와 카메라맨들이 달려들었다. 고모는 그들을 향해 마구 가방을 휘둘렀다. 웅성거림이 증폭됐다. 사방이 울음, 비명, 고함이었다.
“고인 모독이다!”
“군부의 개들, 꺼져라!”
“학생 얼굴 찍지 마!”
고모가 코트를 벗어 나를 감쌌다. 그래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플래시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밧줄이 둘려 있었다. 동아줄이 피부를 더 파고들기 전에 풀어야 했다. 하지만 비에 젖은 데다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 탓에 밧줄을 푸는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고모가 내게 비닐 가방을 집어 던졌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경멸했다. 절단면에 피가 말라붙은 머리를 비닐 가방에 담고 입구를 가능한 한 꽉 묶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젖지 않도록.
분노한 사람들이 카메라를 밟아 부쉈다. 마이크를 든 기자들은 군중에 떠밀렸다.
우리는 사람들을 꾸역꾸역 헤치고 나갈 필요가 없었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길이 만들어졌다. 놀라운 광경이었으나 기쁘지는 않았다. 끌어안은 비닐 가방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버지의 눈 감은 얼굴이 시야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는 고모의 등만 바라보고 걸었다.
길 끝에서 또 다른 장의사들을 만났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시신을 수습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나와 마찬가지로 검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이의 표정은 푹 눌러쓴 학생모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
곽현우가 죽었다. 취조를 시작한 지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진치우는 하루 종일 시말서를 붙들고 씨름 중이었다.
“야. 친구야. 바쁘냐?”
힐끗힐끗 곁눈질하는 게 아무래도 도움을 바라는 눈치였다. 신해범은 친구의 SOS를 가차 없이 무시했다.
“그러게 손 좀 작작 올리랬지.”
“왔을 때부터 갈비뼈 작살나 있었어. 그리고 그 새끼가 말을 안 하는데 다른 방법이 있냐?”
신해범은 키득거리면서 펜대를 굴렸다. 금연으로 예민해진 친구의 성정을 모르지 않았다. 진치우가 시말서에 무슨 똥을 싸지르든 형식만 지킨다면 쿨하게 처리해 줄 생각이었다.
오늘 새벽, <백사자>의 수장 하성록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 시신을 수습해 갔다. 하신성은 자신의 검은 캐딜락을 끌고 왔다.
놈은 자기가 유령처럼 들어왔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신해범은 하신성이 지하 안치실에 보관된 곽현우의 시신을 빠르게 옮기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제스처도 없었다.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룰이었다.
신해범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진치우가 발광했다.
“야! 나 금연이라고!”
건강 검진 패배자의 말로였다. 서른셋 나이에 고혈압, 당뇨, 빈혈 삼 종 세트를 선물 받은 진치우의 심경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 컨디션이 곽현우를 취조함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에, 신해범은 한 달 치 월급도 걸 수 있었다. 그는 짧게 말했다.
“심신 미약 얘기 써.”
“너 같으면 믿겠냐?”
“어차피 형식적으로 쓰는 거잖아. 칸만 적당히 채워 넣으면 되니까 그만 투덜대.”
신해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류진은 소식 없나?”
“없어. 원래 정보조 새끼들 밖으로 잘 안 나오잖아. 당분간은 더 몸 사리겠지. 곽현우 때문에.”
“아쉽네.”
“왜, 맘에 들었냐? 꼴려?”
“…….”
신해범은 모니터 화면을 봤다. 현장에서 찍힌 정류진의 사진이 떠 있었다.
“치우, 이리 와 봐.”
“왜?”
멀리서 찍은 탓에 흐릿하고, 초점도 빗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외모였다. 누가 봐도 류연비의 핏줄이었다. 신해범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류연비의 사진을 화면에 나란히 띄웠다.
진치우가 중얼거렸다.
“좆나 똑같네.”
“닮았지?”
“사진으로 보니까 완전 붕어빵이다, 야. 류연비가 남자면 딱 이렇게 생겼겠다.”
진치우가 혀를 찼다.
“나 같으면 성형했다. 국민 불륜녀 동생으로 어떻게 사냐?”
“칼 대기엔 아까운 얼굴이잖아.”
“…솔직히 말해 봐. 너 이 새끼 동하지? 혹하지? 그렇지?”
신해범은 자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친구의 손을 쳐 냈다.
“이런 얼굴로는 숨어서 못 살아. 가만히 있어도 시선을 끄니까. 이름 같은 건 몇 번을 바꿔도 똑같아. 결국 누군지 알아볼 거야.”
신해범이 내뿜은 담배 연기가 모니터를 가렸다.
“곽현우 소식은 지금쯤 조직에 알려졌겠지?”
“시신 가져갔으니 빼도 박도 못하지.”
진치우가 한탄하듯 말했다.
“걔 호적에 노모 한 명뿐이던데, 장례는 어떻게 하려나.”
“그렇게 걱정되면 화환 보내든가.”
“야!”
진치우의 목소리가 돌연 능글맞아졌다.
“그래서 하신성, 반란군 대표 간판 영접하신 소감은?”
“생각보다 평범하던데. 사진발 받는 타입인가 봐.”
“…….”
“왜?”
진치우의 표정이 묘했다.
“됐다. 네 눈에 누군들 미남으로 보이겠냐. 넌 그냥 거울이나 보면서 딸 쳐라.”
자리로 돌아간 진치우가 자신의 책상 위에 두 발을 턱, 올려놓았다. 신해범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씩 웃은 진치우는 서랍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뚜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룡문 23기 공개 채용에서 대규모 부정 입사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총통 각하께서는 공공 기관 전체에 만연한 채용 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하고, 부정 합격한 당사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