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11화 (11/103)

<11화>

온갖 잘생긴 놈들은 다 루나커피로 모여드나?

씨발, 어제 구원이란 걸 받았는데 바로 오늘 폭망한 이 느낌은 뭐지? 김희상인지 김희선인지 하는 녀석도 꽤 멀끔하다고 생각했는데 허세윤인지 허세 쩌는지 하는 놈은 한술 더 떠서 완전 연예인이었다.

카페 알바하는 놈 주제에 돈이 어디 있다고 옷도 드럽게 세련되게 쳐 입고, 머리까지 살짝 갈색으로 물들여서 그렇잖아도 환한 피부가 더 돋보이고, 남자 새끼가 눈은 왜 또 저렇게 뎅그렇게 크고 난리야? 우리 루나만큼은 아니지만 큼지막한 눈이 매력 포인트인 듯.

그건 그렇고 루나는 뭐지? 자꾸만 나를 쫓아내려는 게 영 수상쩍다 했더니 이 꽃미남들이랑 삼총사 하는 걸 즐기고 있나?

“저 여기 얌전히 앉아만 있을게요.”

내 고집을 꺾는 걸 포기하고 자기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그의 포지션은 주로 주방과 커피 부스였다.

나는 사무실 쪽에서 가까운 카운터 맨 끝에 앉아있었다. 거기가 바로 명당이었다. 커피 부스가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턱을 받치고 앉아 루나가 왔다 갔다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고 있었나 보다. 커피를 내리고 있던 루나가 시선만 움직여 나를 보더니 이내 외면해버렸다.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예요?”

허세 쩌는 놈의 질문이었다. 주제까지 넘는 거냐? 내가 누군지는 알 거 없어.

“친척 아이인데 얼마간 우리 집에 있기로 했어.”

“그렇구나. 안녕-!”

헐, 애교까지? 재수 없어. 못 본 척한다.

“이름이 뭐야?”

“은별이야. 정은별.”

“와, 이름 예쁘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래요?”

“좀… 다쳤어.”

“괜찮은 거예요? 누구한테 맞은 것 같은데요?”

내가 처맞지만 않았으면 인물로 너한테 안 진다. 그때 손님이 들어왔고 김희상이 허세좌를 불렀다.

“세윤 씨, 주문 좀 받아줘!”

“네!”

그래, 잘한다 김희상. 이제 김희상은 라이벌 리스트에서 내다 버려도 될 듯.

그나저나 움직이는 걸 보니 뭔가 복잡해 보이는 게 알바 일이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조만간 내 일이 될 테니 잘 배워둬야지.

“제가 선곡 좀 해도 돼요?”

뭐야? 어느새 저 허세좌가 은근슬쩍 루나의 뒤에 바짝 다가와 귓속말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다.

기분 더럽게 키까지 컸다. 루나도 작지는 않은 키인데 내 남성미 넘치는 손으로 한 뼘쯤 더 큰 것 같았다. 저 정도면 180cm쯤 되나?

“좋죠. 난 요즘 노래 잘 몰라서.”

“에이, 사장님도 제 또래면서 가끔 보면 외계인처럼 말씀하시더라.”

그 말에 루나가 나를 보았다. 그 시선에 내 기분은 휘핑크림처럼 부풀었다.

그렇지! 루나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구나. 하지만 나는 루나와 비밀을 공유한 사이거든. 허세 쩌는 너 따위가 어딜 감히 끼어들려고! 어림없다!

허세좌가 휘파람을 불면서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거기서 평생 안 나오면 좋겠다.

잠시 후 뭔가 좀 이상하다 했는데 음악이 바뀌었다. 그동안 무슨 음악이 나왔더라? 클래식 같았는데. 이건 뭐야? 티아라?

역시나 루나가 울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루나는 이런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반면 김희상은 과일을 믹서기에 갈면서 리듬을 타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세좌가 사무실에서 나오자 그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보이기까지 했다. 둘은 흔들거리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 둘을 흘긋 본 루나가 조금 더 울적한 얼굴을 했다.

잠시 후 그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가 왔나 본데, 누굴까? 나도 모르게 휴대폰 화면을 향해 고개를 쭉 뺐다.

루나가 김희상에게 말했다.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네.”

나는 의자에서 깡총… 아니, 껑충 뛰어내려 그의 뒤를 얼른 쫓았다. 루나는 복도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마침 잘됐어요. 지금 오시면 좋겠네요. 도움이 필요해요. 꼬마 좀 부탁드릴게요.”

꼬마? 나?

“네. 얼른 오세요.”

전화를 끊고 무심코 돌아서던 그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흐악! 꼬… 아니, 은별아! 밟을 뻔했잖아.”

“밟힐 정도로 작지는 않거든요?”

“그, 그래. 그런데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거든.”

“형.”

“응?”

“정말로 없어요?”

“응, 없어. 정신이 하나도….”

“아니, 내 이름이요.”

루나의 눈이 또 왕방울만해졌다. 그 얼굴은 루나의 몸에 내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어째서 이렇게 놀라는 건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내 이름이 루나의 몸에도 있다면 왜 말을 안 해주는 걸까?

“어이, 루나.”

내 머리 위를 올려다본 루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로저!”

뭐야? 나도 얼른 돌아보았는데, 내 뒤에는 다리가 있었다.

쫙 뻗은 ‘어른’의 다리였다. 검은 가죽바지 차림의 미끈한 다리 선을 따라 내 눈이 위로, 한없이 위로 향했다. 씹, 고개 아프잖아!

헐…. 이건 또 뭐야?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나한텐 말입니다, 이미 경쟁자가 두 놈이나 있다고요. 그런데 이래도 돼?

“루나가 이렇게 나를 반기는 건 처음인 것 같군.”

“아뇨. 늘 반가웠는데 오늘은 특별히 더 반갑네요.”

“이 아이로군.”

로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대충 두 명의 알바생보다 대충 두 배는 잘생긴 남자였다.

나이가 좀 있어서 그런지 여유로운 세련미를 폴폴 풍겼다. 갸름하게 빠진 얼굴에 길고 가느다란 눈매가 특히 돋보였다. 콧날과 입술도 조금 길었는데, 그래서 섬세한 분위기를 풍겼다. 선명한 갈색 머리도 단발 정도로 길었는데 그러고 보니 잘생긴 종마 같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은별아, 인사드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른이니 인사는 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정은별입니다.”

“어, 그래. 난 로저 드뷔라고 한단다.”

그때 김희상이 복도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장님. 손님이 찾으세요.”

“네! 로저, 부탁드려요.”

“어, 그래. 걱정 말게.”

로저는 멋진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제군. 루나가 몹시 바쁜 것 같으니 우리는 필립에게 가도록 하지.”

뭐야? 이 아저씨, 아까부터 말투 이상한데.

“필립이 누군데요?”

“아직 통성명이 안 끝났나?”

“통성명이요?”

로저는 내 물음에도 대답은 없이 복도 끝의 문을 열었다.

“우와!”

나는 되묻는 것도 잊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문을 열자마자 꽃향기와 허브 향기가 몰려들었다.

건물 양옆으로 높지 않은 담장이 있고 좁은 철 대문 위로 장미 넝쿨이 봉오리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담장을 따라 아래쪽은 허브와 채소들이 만발이고, 정면에는 달맞이꽃 화단이 키 작은 올리브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둘레를 붉은 벽돌길이 감싸고 돌았다.

정자는 오른쪽에 있었다. 고깔을 씌워놓은 것 같은 지붕 위로 엄청나게 큰 월계수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어서 무척이나 아늑해 보이는 정자였다.

“저 월계수는 앞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그 자리가 원래 저 녀석 자리인데, 하늬로는 문 앞이 바로 인도라서 앞마당을 둘 자리가 없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차차 알게 될 거다.”

로저는 정자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어이, 필립!”

나는 두리번거렸다. 정자 안에는 고양이들밖에 없었으니까. 고양이 다섯 마리가 소파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로저는 야옹거리는 귀머거리 옆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체스나 두려고 전화했는데 루나가 나를 엄청 반기더군.”

“야옹, (아마 고구마 봐주라고 그러는 걸 거야.)”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로저가 손짓했다.

“이리 와 앉으렴.”

뭐야. 앉으렴? 루나가 쓰는 말투가 저 아저씨 말투였어?

정자에는 등나무로 만든 소파 두 개가 마주 놓여있었다. 나는 로저 앞에 마주 보고 앉았다.

“고양이랑, 말도 하세요?”

“야옹!”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그럼 아저씨도 요정이세요?”

“요정?”

“루나도 요정이잖아요.”

“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아니에요?”

“그건 이따가 루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꾸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정원과 집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동화 속 그림처럼 예쁜 정원이지만 그뿐이었다. 어젯밤 그 신비로운 정경은 온데간데없었다.

“혹시 달도 제 맘대로 들락날락해요? 아침에도 저기에 달이 떠 있었는데.”

“아! 그 달은 집안에서만 보인단다. 창문에 반사경이 설치되어 있거든.”

“아….”

무슨 말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설마 이 고양이 이름이 필립은 아니죠?”

“왜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냥…. 암컷인 줄 알았는데.”

“야옹!”

로저는 웃음을 참는 게 분명한 얼굴로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이 고양이 이름은 필립이란다. 수컷이고.”

“야옹? (지금 나한테 수컷이라고 했나?)”

“귀머거… 아니, 필립이 뭐라고 해요?”

“응? 뭐, 그냥….”

느닷없이 눈 둘 곳이 없어졌다. 지금 처음 봤다는 듯이 로저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던 것이다. 진짜 빤히, 요리조리 구석구석. 왜 이래?

“음…. 그런 건가. 이거 곤란하군.”

“네? 뭐가요?”

“야옹. (왜, 녀석이 못된 생각이라도 하고 있어?)”

“아니, 그건 아닌데…. Luna habere hic puer nomen? (루나가 저 아이 이름을 가지고 있나?)”

“야옹. (응.)”

“이런… 그런 거였어?”

로저는 내 얼굴을 또 빤히 보았다.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 왠지 머릿속이 통째로 읽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Hoc hedum in frusta concerperet veniemus, et mansionem apud XVIII~XX. (이 아이는 열여덟에서 스무 살 사이에 발현할 거야.)”

“야옹? (설마!)”

“Vere. (정말일세.)”

“야오옹- (얘는 지구인인데?)”

“Interdum populus quasi qui sunt in terra. Suus 'rara. (간혹 지구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네.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야옹! (대박!)”

나는 불쾌해졌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둘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저씨.”

나는 한껏 도전적인 눈으로 로저를 쏘아보았다.

“지금 고양이랑 내 욕하죠?”

그러나 로저는 내 말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또 한 번 빤히 보더니 이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저씨. 혹시 사람 마음 읽어요?”

내 말이 정곡을 찔렀음을 나는 알아보았다.

뭐냐, 이 인간들. 아니, 요정들은 남의 마음을 막 읽고 그러나?

“꼬마야. 사실 내가 먼저 말해주기는 좀 그렇구나. 루나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저씨.”

“응?”

“한 번만 더 꼬마라고 불러보세요. 당신들 비밀을 세상에 폭로할 테니까.”

“헐….”

“야오옹-! (배은망덕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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