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야옹! 저 자식, 허접한 오토바이로 어떻게 저렇게 달려!”
오토바이 박스에 뭉크가 갇혀있어서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로저와 조르주, 에릭이 탄 차가 우리 차를 앞질렀어요.
- 루나! 내가 앞을 막을 테니 자네는 뒤를 맡게.
로저의 목소리가 우리 차 안에 울렸어요. 참고로, 플럼버인은 10m 이내에서는 전화기가 없어도 목소리를 분리해 전달할 수 있답니다.
“알겠어요, 로저!”
로저의 차가 오토바이 앞을 막아섰어요. 오토바이는 옆으로 빠지려 했지만 로저의 차가 자석처럼 경로를 막았어요. 좌우로 움찔거리던 오토바이는 느닷없이 길도 없는 옆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 어어!
“야옹!”
“밟아요!”
“다 죽었어!”
밟아요는 은별이가, 마지막 말은 제가 뱉은 말이었어요. 로저가 외쳤어요.
- 루나! 길이 없어. 위험해!
“어쩔 수 없잖아요! 저 새끼가 죽자고 달리는데!”
- 차라리 낫을 걸자!
“하지만 괜찮을까요? 여기 너무 탁 트였는데.”
- 잠깐은 괜찮을 거야!
“좋아요! 제가 할게요.”
저는 차를 세우고 재빨리 내렸어요. 낫은 장애물로 막히지 않은 삼 미터 반경의 범위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어요. 오토바이가 도약하려던 찰나였어요. 그 앞은 날 선 바위들이 어지럽게 돋아있는 바다랍니다! 은별이와 필립이 제 뒤를 쫓으며 외쳤어요.
“형! 뭉크, 뭉크!”
“야옹, 뭉크부터 꺼내!”
저는 황급히 오토바이 박스를 열었어요. 뭉크가 야옹거리며 튀어나와 제 품에 안겼어요. 가엾게도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어요.
“어어, 괜찮아, 뭉크. 이제 괜찮아.”
로저가 탄 차가 요란하게 멈추고 세 남자가 뛰어나왔어요.
“괜찮은가?”
“야옹! 무사해.”
“다행이군!”
저는 뭉크를 로저에게 건네고는 오토바이를 뒤쪽으로 잡아당겼어요. 낫을 풀자마자 오토바이가 부릉거리다가 옆으로 픽 쓰러졌어요. 남자는 다친 데가 없어서 어리둥절한지 두리번거렸어요. 곧이어 우리를 발견하고 달아나려던 그가 로저의 발에 엉덩이를 걷어 채이고 쓰러졌어요. 그동안 은별이는 오토바이 박스에 붙은 녹색 테이프를 떼어냈어요.
“역시 치킨집 오토바이 맞네요.”
에릭이 남자의 멱살을 잡았어요.
“너 뭐야?”
남자가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외쳤어요.
“죄, 죄송합니다!”
“뭣 때문에 우리 고양이를 납치한 건가?”
“너, 너무 예뻐서 그만!”
뭉크가 무섭다는 듯이 로저 품에 얼굴을 묻고 야옹거렸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저는 전생에 고양이였습니다!”
격앙되었던 분위기에 갑자기 찬물 쏟아지는 소리가 났어요. 끼룩끼룩 갈매기도 날아다니네요.
“저 고양이를 본 순간 홀딱 반했습니다! 전생의 애인처럼 보였거든요.”
발치에서 필립이 야옹거렸어요.
“거짓말이야.”
그때 은별이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외쳤어요.
“형! 아까 저 사람이 담배 같은 걸 입에 물고 있었어요.”
“담배?”
“근데 연기는 안 났거든요? 담배가 아닐 수도 있어요.”
“로저! 주머니를 뒤져요!”
그러자 남자가 느닷없이 저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루나!”
“형!”
그 와중에도 저는 은별이가 이쪽으로 뛰어드는 것을 봤어요. 저 녀석이 왜 저렇게 나서는 거야! 아무렴 내가 당하고만 있겠어?
털썩!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어요. 제 주먹에 코를 맞은 남자가 뒤로 벌렁 나자빠지자 은별이까지 뒹굴고 말았어요.
남자가 자신과 한 데 엉긴 은별이를 발로 차려고 했어요. 그야말로 제 눈이 뒤집히는 순간이었죠! 저절로 발이 나갔어요. 남자는 제 운동화 발에 처맞고 나가떨어졌고, 저는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어요.
에릭이 남자를 잡아 무릎을 꿇렸어요.
“도대체 정체가 뭐야? 대답해!”
“죄송합니다! 돈을 준다기에 그만…!”
“누가?”
“죄송합니다!”
로저가 남자의 눈을 들여다봤어요. 저도 화가 나서 리딩을 해보았어요.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참 너저분한 머릿속이네요. 녀석의 잡다한 생각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가리고 있어요. 하지만 남자가 치킨집 배달부인 것만은 확실하네요.
에릭이 배달부의 주머니에서 담배처럼 생긴 조그만 파이프를 찾아냈어요.
“피리잖아.”
에릭이 피리를 불어보았어요.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로저의 품에 안겨있던 뭉크가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어댔어요.
“야옹, 고양이 홀리는 피리다.”
“맞아. 동물의 뇌파에만 작용하는 피리야. 이런 거 어디서 났어?”
로저의 질문에 배달부는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면서 대답했어요.
“어떤 남자가 그걸 주면서 당신들 오두막 앞에서 불라고 했어요.”
로저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배달부를 노려봤어요.
“키는 중간, 파란 점퍼 입고 이대 팔 가르마, 밤색 뿔테안경.”
“마,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그 남자가 또 뭐라고 했지?”
“그 피리를 불면 쫓아오는 고양이가 있을 거라고, 한 마리만 잡아 오라고 했어요.”
“어디로 잡아 오라고 했지?”
“제가 일하는 치킨집에서 기다리겠다고….”
모두의 시선이 마주쳤어요.
“우리가 이 녀석을 태울 테니 루나는 우리 차를 따라와.”
로저의 말에 배달부가 애원했어요.
“제 오토바이는요? 제 전 재산인데요.”
“에릭, 조르주. 이 자식 태우고 가. 내가 오토바이 타고 쫓아갈 테니까.”
로저는 오토바이에 올라탔고, 에릭과 조르주가 배달부를 데리고 차에 올랐어요. 저는 은별이와 고양이들을 데리고 차에 탔어요.
우리는 한산한 도로를 달렸어요.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었지만 도로는 한적했어요. 어느새 날은 저물고, 큼지막한 달이 검은 바다 위로 둥실 떠올랐네요.
“그 피리 소리에 아빠와 다른 애들은 왜 반응하지 않았던 거죠?”
“야옹- 나는 고양이가 아니라서 그런 거고, 나나와 미오, 배리는 집 안에 있어서 반응하지 않은 거야.”
시야가 조금 환해지나 싶더니 앞에 달리던 차가 멈췄어요. 상가건물이 몇 개 모여 있는 동네였어요.
3층 건물 앞에 오토바이와 자동차 두 대가 섰어요.
“아빠는 뭉크랑 차에 계세요.”
“야옹, 뭔지 나도 궁금한데?”
“좌표를 띄워놓을 테니 보시면 되죠.”
저는 은별이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어요.
가게는 그냥 평범한 치킨집이었어요.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서 오세요, 라고 인사하다가 에릭의 손에 덜미를 잡힌 남자를 보자 깜짝 놀라네요.
“김 씨. 왜 그래?”
에릭이 물었어요.
“이 사람 여기 배달부 맞죠?”
“네. 무슨 일이시죠?”
“이 사람 기다리는 남자 없었나요?”
“아! 그분 아까 양념 한 상자 사 들고 가셨는데.”
또 한 번 우리들의 시선이 부딪쳤어요. 로저가 말했어요.
“내가 이 근처를 돌아보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여기 다 있을 필요는 없잖아. 내가 같이 갈게.”
조르주와 로저가 가게를 나갔고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어요. 저는 배달부에게 방금 일은 용서해 줄 테니 다신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에릭은 그 정도로는 못마땅한 눈치였어요. 배달주문이 들어왔다는 주인의 말에 배달부는 다행이다 싶은지 뛰어나갔는데, 에릭이 그 뒤를 쫓아나가더니 우리 차를 몰고 배달부의 오토바이 뒤를 따랐어요.
창을 통해 그것을 지켜보던 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조금 놀랐어요. 은별이 얼굴이 너무나 어두웠거든요.
“은별아.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뇨. 지금 기분 좋은 얼굴일 수는 없잖아요.”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은별이 얼굴은 뭐랄까, 그 상황에는 조금 맞지 않아 보였어요.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이었죠.
역시 많이 놀란 거겠죠? 아직 어린애인데 제가 너무 무심했던 걸까요? 당연하게 은별이는 씩씩한 아이라고 생각해버린 것 같아요. 이 정도 일로 겁먹을 아이가 아니라고 제멋대로 단정했나 봐요.
동료들을 기다리며, 우리는 몇 마디 담소를 나누며 앉아있었어요. 마침 가게에는 TV가 켜져 있었어요. 늘 보던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죠. 저는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부러 드라마 이야기를 주절댔어요. 은별이도 저만큼이나 드라마를 좋아하니까요. 역시 애들은 단순하네요. 몇 마디 나누고 나니 금세 드라마에 신경이 쏠린 듯 얼굴이 풀어져서 안심이 됐어요.
잠시 후 에릭과 로저, 배달부가 돌아왔어요.
“찾았어요?”
로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이미 나간 이상 가게에 다시 올 리는 없으니 일단은 철수하기로 했어요. 어쨌거나 저도 장사하는 사람인데 남의 영업장에서 빈손으로 나가기는 뭣해서 치킨 두 상자를 사 들고 나왔어요.
그러고 숙소에 돌아오니 몹시 피곤했어요.
“다들 어서 가서 쉬세요. 치킨 가져가서 드시고요.”
“불안한데. 여긴 루나와 꼬마, 고양이들밖에 없는 거잖아.”
로저가 테라스를 가리켰어요.
“저기서 텐트 치고 자면 되는데.”
“주무실 거면 거실을 쓰셔도 되는데,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도 그렇게 둔한 몸은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가서 편히 주무세요.”
“그럼, 무슨 일 생기면 아까처럼 낫을 걸고 즉시 연락해.”
“알겠어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 파란 점퍼의 남자는 찾아내지 못했어요.
그날 밤에는 비스듬한 채광창 위로 조금 이지러진 달이 떠 있었답니다. 은별이와 저는 나란히 누워 그 달을 바라봤어요.
“지구의 달도 제법 예쁘네.”
“형.”
“응?”
“다 잘될 거예요.”
“응? 뭐가?”
“그냥 뭐든.”
“그래, 알아.”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은별이가 불안해하는 것 같아 저는 아이에게 팔 베개를 해주었어요. 이내 품속에 파고드는 게 확실히 겁먹었나 봐요.
“괜찮아. 자장….”
도닥여주자 은별이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이내 숨소리가 들리네요. 어느새 저도 잠들었어요.
저야말로 불안했나 봐요. 저도 모르게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잤나 본데, 은별이가 무섭다고 칭얼대는 꿈을 꿨거든요. 그런데 한참 달래주다가 문득 내려다보니 은별이는 없고, 까만 눈의 새끼 고양이가 야옹거리고 있었어요. 왜인지는 몰라도 저는 그 고양이에게 ‘형 말을 그렇게 안 듣더니 벌 받아도 싸다’며 화를 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