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34화 (34/103)

<34화>

“어? 왜 다들 여기 계세요?”

2층은 다락방이라 할 만큼 좁은 공간이에요. 그곳에 어른 여섯 명이 모여 앉아있었어요. 마법진 같은 문양의 둥근 카펫 위에 그렇게 둘러앉아 있으니 조금 으스스해 보이기도 하네요. 더욱이 채광창 위에는 두 개의 달이 떠 있고 말이죠.

채광창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커다란 달은 말할 것도 없이 플럼버의 달이에요. 루나커피 2층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달이죠. 그 뒤로 훨씬 멀리에 자그마한 달이 보였어요. 저건 지구의 달이에요.

제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둥글게 둘러앉은 회원들의 중앙에 좌표가 둥실 떠 있었으니까요. 투명한 야구공만 한 좌표였어요. 좌표는 각종 상황에 따라 구체나 평면 등 적당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답니다.

좌표 표면에서 각종 숫자가 차원의 위도와 경도를 탐색하는 건데, 정확한 좌표를 잡아낼 때까지 탐색과 계산을 멈추지 않거든요.

저렇게 둥근 좌표를 열고 둥글게 둘러앉았다는 건 모두 함께 건너가겠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왜 제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느닷없이 이곳에 모여 좌표를 연 걸까요?

“야옹, 루나. 로저 말로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난 이번 도킹 찬성 못 하겠다.”

“전 도킹한다고 한 적 없어요. 아시잖아요.”

“루나. 걱정할까 봐 말을 못 했는데, 한 달쯤 전부터 루나커피를 감시하는 자가 있어.”

“무슨 말이에요, 로저?”

“치킨집 배달부 머릿속에서 봤던 사람이랑 인상착의가 같아. 파란 점퍼에 뿔테안경 말이야. 그가 외계인 연구소와 관련 있다는 데 내 오성전자 주식 전부를 걸겠네.”

그때 재채기 소리가 들렸어요.

“에취-”

“은별아?”

“…….”

분명 은별이 재채기 소리였는데 은별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미 좌표가 가동 중이라 은별이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좌표를 띄울 수 없어서 저는 좁은 다락방을 두리번거렸어요.

“은별아. 어디 있어?”

“…….”

“난 어디 있는지 아는데 말 안 해줄래.”

아치볼트의 말이었어요.

“왜요?”

“저 녀석 명백히 숨은 것처럼 보이거든.”

“아니, 왜요?”

“나야 모르지.”

“어디 있는데요?”

“숨은 사람을 꼰지르는 건 치사한 짓이야. 밀고라고.”

“밀고는 무슨 밀고예요? 은별이가 왜 숨는데요?”

그러자 엘리아가 손가락을 튕겼어요.

“아! 나도 어디 숨었는지 알았다.”

“엘리아, 어디에 숨었어요?”

“루나. 나도 알았어.”

엘리아에 이어 조르주까지 손가락을 튕겼어요.

“조르주. 말씀해보세요.”

“나는 처음부터 알았어.”

이번에는 에릭이네요. 엘리아가 그를 말렸어요.

“에릭. 말하지 마세요.”

“안 해, 엘리아.”

저는 좀 짜증이 났어요.

“어우 씨! 다들 이럴 거예요?”

아치볼트가 말했어요.

“루나. 굳이 숨어 있는 애를 찾을 필요는 없잖아. 뭔가 이유가 있어서 숨었겠지.”

“대체 그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러잖아요.”

“그보다 루나, 이리 와 앉아. 필립도.”

로저의 말에 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어요.

“저는 안 간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은별이 때문이라면 이미 얘기 끝났네. 자네가 위험해지는 건 은별이도 원치 않아. 그래서 내가 전 재산을 양도하는 문서를 만들어 줬으니 은별이 걱정은 안 해도 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명은 나중에, 와서 앉아.”

“그나저나 은별이 어디 있냐고요.”

“엇! 월식 5분 전이다!”

아치볼트의 외침에 조르주가 음울한 어조로 중얼거렸어요.

“루나. 와서 앉아. 어차피 이번에도 실패할 테니까.”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와중에 좌표 구체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어요. 계산이 끝나고 도킹 장소를 향해 차원 이동을 준비하는 거예요. 일종의 도움닫기죠.

“돈다!”

흥분한 아치볼트가 외쳤어요.

“조용히 해요, 아치볼트! 지난번에도 돌기는 잘 돌았잖아요.”

“이번에는 느낌이 좀 달라, 엘리아!”

“루나! 빨리!”

로저가 제 팔을 잡아당겼어요.

“엇! 안 돼요, 로저! 이거 놔요!”

“야옹, 로저가 루나를 납치한다!”

“무슨 말인가, 필립! 그럼 자네는 루나가 혼자 남아 곤란에 처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야옹, 누가 그렇대?”

“그런데 왜 훼방을 놓는 거야?”

“여기 배필이 있으니까 그렇지. 루나가 그 애를 찾으려다 이 시골 행성에서 이 고생을 하는 거라고. 그런데 만나자마자 여기 두고 떠난다니 말이 안 되잖아!”

“필립! 그런 건 결코 아니지만 말씀 잘하셨어요. 로저, 이거 놓으세요. 전 이번에 가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가 모두 도킹에 성공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이 위험한 행성에 혼자 남아도 상관없다는 거야?”

그 말에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한번 결심한 것을 번복할 수도 없었어요.

“혼자는 아니에요.”

“야옹, 그러게. 로저! 나는 유령인가? 자네 가만 보면 은근 나 고양이 취급하더라?”

“아무튼 우리만 남는다면 그것 역시 운명이겠죠.”

“안 돼요, 형.”

은별이 목소리였어요.

“가요, 형. 필립이랑 고양이들도 다 같이 데리고 떠나요!”

“은별아. 나와서 말해.”

“싫어요. 난 형이 떠난 다음에 나갈 거예요!”

“은별아…?”

엘리아가 아치볼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감탄했어요.

“오, 제법 생각이 바른 꼬마네요. 멋진 남자가 되겠어!”

“산통 깨지 말고 입 다물어, 엘리아.”

“뭐라고요? 아치볼트,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리고 산통이 뭐죠?”

그때였어요. 지진이 난 것처럼 오두막이 흔들렸어요. 이미 몇 번 도킹을 시도해본 회원들에겐 익숙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어요.

그보다, 저는 정말로 초조했어요. 그 와중에 엘리아가 외쳤어요.

“앗! 어서 서둘러요! 월식 3분 전!”

“가만, 에릭. 저 녀석 내보내야 하는 거 아냐?”

“가방 속에 들어있으니 괜찮을 거예요, 워튼 씨.”

제 귀가 번쩍 뜨였어요.

“가방이라고요?”

워튼 씨와 에릭이 입을 막았어요.

“이크…!”

저는 서둘러 침대 옆의 트렁크를 열었어요. 은별이가 벌게진 얼굴로 숨을 토해냈어요.

“후아!”

“뭐 하는 거야?”

은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를 밀어냈어요.

“어서 가요!”

“왜 이래? 형이 안 간다고 했잖아.”

“위험하다잖아요! 어서요, 제발!”

“루나! 은별이 말을 듣게! 안 그러면… 으악!”

우리는 모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어요. 오두막이 돌기 시작했거든요. 좌표가 정확한 지점에 안착하면 이 오두막은 잠시 이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 속하게 돼요. 회전운동과 함께 속도가 0 이하로 내려가는 순간 도킹하게 되는 거예요.

“다들 플럼버에서 만나요!”

엘리아가 성급하게 외쳤어요. 저도 외쳤어요.

“로저! 고양이들을 놔주세요!”

“루나, 정말 이럴 건가?”

“생각해주시는 건 너무 고맙지만, 엄밀히 말해 이건 월권이에요! 저희 의사를 존중해주세요!”

로저는 조금 화가 난 것 같았어요. 당연히 화가 날 만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도 화가 났답니다. 로저의 행동이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저를 말리지 않고 케이지를 건네줬어요.

“안 돼요, 형! 가요! 제발 가라구요!”

은별이가 제 등을 마구 밀었어요.

“조용히 해, 정은별! 형은 가지 않아! 약속했잖아.”

“나와 한 약속 때문이면 난 괜찮아요. 이해한다구요.”

“아니, 형이 가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몰라?”

은별이의 초롱초롱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어요. 그러면서도 아이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어요.

“안 돼요! 그냥 가요. 난 형이 위험해지는 거 원하지 않는다구요.”

“형은 위험해지지 않아!”

“그냥 가요, 제발! 내가 따라갈게요!”

“뭐…?”

이건 또 무슨 말인가요? 자기가 말해놓고 놀란 걸까요? 은별이가 왕방울만 해진 눈으로 절 응시했어요. 그리고는 뭔가 실수했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어요.

“너… 설마…?”

은별이는 지구인이니 다른 차원의 좌표 안에 저절로 흡수되지 않아요. 그렇다고 일부러 뛰어든다면, 그땐 어떻게 될지 저희도 확실히 모른답니다.

원래는 지구인이 차원으로 뛰어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은별이는 좌표를 볼 수 있으니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론적으로 따지면, 최악의 경우 차원의 틈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 거예요.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혼자서!

“저길, 뛰어넘을 생각이었어?”

은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저었어요. 별똥별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흩어졌어요. 필립이 떠들어댔어요.

“야옹,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 멜로네.”

“으앗! 30초 전!”

“중계방송은 필요 없어요, 아치볼트.”

“무슨 말이야, 엘리아. 저기 이산가족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치볼트와 엘리아가 투덕거리는 동안 조르주가 물었어요.

“루나. 정말 가지 않을 텐가?”

저는 모두와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들었어요.

“네, 조르주. 안녕히 가세요. 모두 성공하시기를 빌게요.”

워튼 씨는 섭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동안 고마웠네. 루나와 루나커피가 있어서 그나마 즐거웠어. 플럼버에 가게 되면 지구와 교신할 방법을 꼭 찾아보겠네.”

엘리아도 손을 흔들었어요.

“나도 약속할게요, 루나.”

“고마워요. 워튼 씨, 엘리아. 그리고 에릭, 조르주, 아치볼트, 모두 안녕히 가세요.”

저는 마지막으로 로저와 눈을 맞췄어요. 오늘 일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요.

“로저. 고마웠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로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어요.

“내려가세!”

“네? 안 가시는 거예요?”

“서둘러!”

“잠깐!”

그런데 그때, 에릭도 벌떡 일어나며 외쳤어요.

“나도 안 갈래.”

“에릭도 안 가신다고요?”

“응.”

“역시 희상이 때문인가요?”

제가 대뜸 묻자 에릭은 눈살을 찌푸렸어요.

“상관 마.”

워튼 씨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어요.

“5초 전! 정신들 나갔나? 진짜 안 갈 거야?”

“그러니까. 어쩐지 이번에는 잘될 것 같은데?”

아치볼트가 거들먹거리자 엘리아가 눈을 흘기더니 제게 외쳤어요.

“그 아이, 잘 키워요. 근사한 남자가 될 거야!”

“행운을 빌게요!”

제가 던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몹시 바빴어요. 로저가 외쳤어요.

“서둘러! 빨리 내려가!”

그다음은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답니다. 돌이켜보면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우리는 기민하게 움직였어요.

로저가 케이지를 집어 들고, 에릭이 은별이를 안아 들었어요. 필립은 제가 안아 들었어요. 그리고 거의 동시에 순간 이동했어요. 우리가 앞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좌표 구체에 감싸인 오두막이 통째로 뽑혀 회오리바람 속으로 휩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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