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루나커피 2호점-78화 (78/103)

<78화>

와우바우 동물병원까지 어떻게 달려갔는지 기억도 안 난답니다. 나중에 필립 말로는 미사일을 방불케 하는 속도였다고 해요.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라라는 수술실에 누워있었어요. 미오가 곁에 있었죠. 저를 보자 의사 선생님은 매우 다급한 얼굴로 서류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지금, 아이를 낳는다고요? 날짜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요.”

“자궁 쪽에 물혹이 너무 커져서 제왕절개를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새끼도 엄마도 위험해요.”

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했어요. 그리고 울부짖는 미오를 안아 들고 수술실을 나왔어요.

필립이 문에 달린 지지대에 폴짝 뛰어올라 유리문에 쳐진 커튼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어요. 저는 끼깅거리는 미오를 꼭 끌어안고 쓰다듬어줬어요.

“괜찮아, 미오. 라라는 괜찮을 거야.”

그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어요. 라라는 괜찮을 거예요.

괜찮을 거예요.

괜찮지 않으면, 어쩌죠?

제가 라라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뚱땡이 아줌마라는 둥, 불륜녀라는 둥, 배운 데가 없다는 둥, 별별 욕을 다 했는데 말이죠. 물론 그 때문에 라라가 아픈 건 아니겠지만, 왜 저 때문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정말이지 엿 같은….”

은별이.

그 순간 은별이가 너무 필요했어요.

문자를 보내고 20분도 안 된 것 같은데 은별이가 나타났어요. 로저까지 달고 왔네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로저가 멀쩡해보여서 다행이에요. 그다지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어요.

“형! 라라는요?”

“루나는, 괜찮은 건가?”

둘이 동시에 질문을 했어요.

“라라 지금 제왕절개 수술 중이야. 로저, 저는 괜찮아요. 로저야말로 괜찮으세요?”

“어어… 난 또 루나한테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네.”

로저가 은별이를 흘긋 봤어요. 은별이가 숨을 몰아쉬며 로저에게 대답했어요.

“라라는 우리 집 며느리예요. 잘못되면 루나가 엄청 슬프다고요.”

“그, 그래. 그렇지. 누가 뭐랬니?”

한 시간쯤 흘렀을까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무렵 필립이 입을 열었어요.

“야옹, 수술 끝난 것 같다.”

필립이 지지대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어요. 그녀는 조금 작기는 하지만 새끼는 무사하며, 대신 라라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했어요.

“주, 죽나요?”

제 질문에 간호사는 대답 대신 마스크와 헤어캡이 놓인 탁자를 가리키고는 미오를 데려가더니 소독제를 뿌려주었어요.

“보호자 분께서도 손 소독제를 사용해주세요.”

그녀의 지시에 따라 소독을 끝내고 나자 그녀가 수술실 문을 활짝 열고 비켜섰어요. 예감이 좋지 않았죠.

그때 떨리는 제 손을 잡아주는 손이 있었어요. 은별이었죠. 은별이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금 저의 복잡한 마음을 다잡듯이 그 아이 손을 꼭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는 지금 벌 받고 있나요? 분명 그런 것 같아요. 라라의 수척한 모습은 저 자신이 루나 블랑슈의 뺨을 때리고 싶어지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손은 은별이에게 잡혀있고, 다른 손은 미오를 안고 있었어요.

제 품에서 미오가 그르렁거리며 몸을 떨었어요. 라라는 그 와중에도 제 새끼를 열심히 핥아주고 있었어요. 새끼는 블링이 세상에 나왔을 때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어요. 그럴 수밖에요, 산달이 3주나 남았으니까요.

미오가 라라에게 가려고 발버둥을 쳤어요. 저는 의사 선생님을 쳐다보았어요. 선생님은 서글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라라 옆에 미오를 놓아주자 부부는 서로 뺨을 부비고 여기저기 핥으며 애정 표현을 했어요. 그리고는 새끼를 번갈아 핥았어요.

저는 시야가 흐려져 두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답니다. 필립이 뭐라고 야옹거렸지만 들리지 않았어요. 은별이가 제 귀에 속삭였어요.

“라라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줘.”

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라라의 등을 쓰다듬었어요. 라라가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제 손등을 핥았어요. 괜찮아요, 난 루나를 원망한 적 없어요. 라라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내 목에서 녹슨 경첩 소리가 났어요. 눈물이 뺨을 타고 목을 타고 가슴까지 적셨어요. 필립이 라라의 귀를 핥고 있었어요. 라라가 필립의 얼굴을 핥고는 미오에게 입을 맞췄어요. 그 순간 새끼가 끼익, 소리를 내며 울었어요.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어요. 믿어지나요?

라라의 작은 머리가 새끼의 옆에 툭 떨어졌어요. 미오는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어요. 소란스레 울음을 터뜨린 것은 저였어요. 라라, 안 돼, 가지 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라라, 내가 잘못했어! 가지 마!”

“우월영 님 댁의 러시안 블루 고양이 라라, 20XX년 9월 17일 19시 57분 46초, 와우바우 동물병원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안 돼!”

미오가 끼룩거리며 라라의 온몸을 핥았어요. 필립은 미오를 핥았어요. 저는 은별이에게 안겨 하염없이 울었어요. 그렇게 라라는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어요.

*

라라의 장례식은 다음 날 오전 10시 루나커피 뒷마당에서 치러졌어요. 결혼식을 올렸던 바로 그 정자가 제단이 되어버렸어요.

하늘도 우울한 걸까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아침부터 온통 잿빛이었어요. 고맙게도 샘이 엄마님, 샘이 아빠님, 샘이 할머님까지 참석해주셨어요. 샘이 할머님은 알고 보니 옆집 슈퍼에서도 종종 마주쳤던 분이었어요. 아직 할머니라고 할 만한 분이 아니라서 전혀 몰랐죠. 오늘도 식혜를 들고 오셔서 제 손을 꼭 잡아주셨어요.

“고양이는 목숨이 아홉 개라잖아요. 라라는 착하니까 좋은 데서 더 좋은 고양이로 환생했을 거예요.”

“그럴까요?”

“그럼그럼.”

만약 그렇다면 우리 미오에게 다시 와주면 좋겠네요. 그때는 둘을 진심으로 축복해주겠어요. 라라가 아무리 뚱뚱해도, 새끼를 열두 마리 낳았어도, 둘이 나이 차가 5백 년이 나도, 전혀 구박하지 않겠어요.

로저와 은별이가 올리브나무 아래에 구덩이를 판 다음 조그만 참나무 관을 집어넣었어요. 흙이 한 삽 한 삽 덮일 때마다 미오가 구슬프게 울었어요. 필립과 고양이들이 미오의 온몸을 핥아주며 위로했어요. 전날 은별이가 만들어놓은 나무 비석이 꽂혔어요. 그 비석에는 라라와 미오, 블링이 함께 찍은 사진이 붙어있답니다. 그 사진도 은별이가 찍은 거예요. 은별이 아니었으면 추억 한 장 남아있지 않을 뻔했어요.

손님들을 배웅한 다음 우리는 집으로 올라와 주방 식탁에 둘러앉았어요. 필립은 아기고양이들을 데리고 텐트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은별이가 와인과 음료를 서브했어요.

“필립이 저렇게 상심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필립은 라라를 무척 예뻐했잖아.”

로저가 말했어요.

“라라가 미오를 끔찍이 사랑하는 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하더군.”

“아빠가, 그렇게 말해요?”

“자네가 둘 사이를 반대할 때도 라라는 자네 욕을 한 적이 없었대.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걸 잘 안다면서 말이야.”

저도 그건 잘 알고 있었어요. 필립이 말해준 적 있거든요. 그때 저는 고양이 주제에 고양이답지 않다고 비아냥거렸죠. 그 생각을 하니 또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런데 마주 앉은 로저를 보자 생각나는 게 있었어요. 라라의 임종 때였어요. 그 와중에 제가 뭘 잘못 봤나 싶은 게 있었답니다. 한쪽 구석에서 로저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거든요.

“로저, 엄청 우시던데요.”

로저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저와 은별이를 번갈아 봤어요.

“난 그런 적 없네.”

“에이, 제가 봤어요. 그 와중에도 깜짝 놀랐는데요. 은별아. 너도 봤지?”

“폭풍눈물을 흘리셨어.”

그제야 로저가 시치미 떼는 걸 포기하고 와인을 홀짝였어요.

“요즘 내가 마음이 좀 약해져서 그런 거야.”

그때 거실에서 미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필립이 달래는 소리도 들렸어요. 은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미오, 괜찮을까요?”

저는 엄마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았지만 두 분의 임종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답니다. 그때 저는 엄마, 할머니의 손을 잡고 생각했어요. 어째서 붙잡을 수 없는지를 말이에요.

인생은 제멋대로 흘러가고, 우리는 그저 그 방향을 따라 움직일 뿐이에요.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시시한 것뿐이죠. 가장 중요한 것에는 저항조차 할 수 없어요. 삶과 죽음 말이에요. 시곗바늘 위에 놓인 그것은 우리를 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요.

불과 일주일 전의 루나 블랑슈는 일주일 후의 루나 블랑슈와 똑같은 인간이 아닐 거예요. 라라의 죽음에 이토록 슬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이 엉뚱하고도 허탈한 감정은 그동안 제가 가져왔던 루나 블랑슈의 신념에 뭔가 명확하지 않은 개념 하나를 얹어놓은 것 같아요.

라라와의 시간 속에서 저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는데 저 자신은 그걸 깨닫지도 못했어요. 라라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 거예요. 저는 이미 라라를 제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그 아이를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요. 그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말이죠.

“시간이 흐르면, 미오도 다른 고양이를 사랑하게 될까요?”

은별이의 질문이었어요. 저와 로저는 약속한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마도.”

“그렇겠지.”

은별이는 침울하게 중얼거렸어요.

“그게 제일 슬픈 일 같아요.”

로저가 대답했어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야.”

저도 고개를 끄덕였어요. 슬프지만 그 말이 맞으니까요. 자연스러운 거, 그건 어쩌면 삶에서 가장 잔혹한 부분인지도 몰라요.

“저도 한 잔 주세요.”

“응, 그래….”

빈 잔에 무심코 와인을 따르려던 저를 로저가 냉랭한 어조로 지적했어요.

“루나, 정신 차리게.”

“네…?”

하마터면 한잔 따라줄 뻔했지 뭐예요! 은별이가 능청스럽게 빈 잔을 내밀고 있었어요.

“정은별. 혼나고 싶어?”

“칫. 스무 살 되는 날 자정에 쏘맥 말아서 나발 불어야지.”

“겨우 그게 성인이 되는 날 하고 싶은 일이야?”

“그럴 리가 있어?”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은별이는 로저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아이스티를 나발 불었어요. 그리고는 손등으로 입술을 쓰윽 훔치더니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그건 그때 가서 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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