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위이이이잉.
특작부 부대 마크를 단 중형 수송기가 수직 착륙하면서 제주도 함상에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우산처럼 위로 꺾어진 프로펠러 4개가 멈추기도 전에 수송기 몸통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헤드기어를 쓴 병사가 내리고 잇달아 귀밑이 희끗희끗한 남자 하나가 머리 위 군모를 손바닥으로 누르면서 내렸다.
“중장님!”
제주도함의 병사에게 둘러싸인 채로 수송기가 착륙하는 동안 대기하던 최정이 얼른 다가갔다. 그를 본 장선욱은 대번에 눈에 불을 켰다. 그에 최정은 찔끔하며 제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거수경례를 붙였다.
드물게 진노한 장선욱은 그런 최정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굳은 인상과는 다르게 그는 불벼락을 내려치지 않았다. 그 점이 최정을 더욱 긴장케 했다.
“우리 애들은 어쩌고 있나?”
장선욱은 별다른 말 없이 보이지 않는 부하부터 챙겼다.
“현재 심 대령 선실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격리나 구속인가?”
물어오는 음성이 다소 날카로웠다.
“아닙니다. 강 소령도 함께 있습니다.”
최정은 바로 부인했다. 강수혁을 본인의 협조 없이 가둬 둘 위인이나 위력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알아서들 얌전히 대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에 장선욱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장선욱 중장님.”
최정과 함께 착륙을 지켜보던 제주도함 장교가 다가와서 거수를 붙였다.
응답하지 않은 채 상대를 노려만 보던 장선욱은 수송기 엔진이 완전히 꺼지고 난 후에야 마지 못해 건성으로 손끝을 이마에 붙였다가 뗐다.
“여긴 영관도 없나? 쓰리 스타가 왔는데 고작 밥풀 세 개짜리를 내보내다니.”
별로 위계에 민감한 성격도 아니면서 장선욱은 환영 예우에 관해 따졌다.
“죄송합니다. 현재 모든 영관급 장교가 거동 불가능이라.”
기가 죽은 대답이 돌아왔다.
“강 소령이…….”
옆에서 최정이 나직하게 속삭이며 강수혁이 함교로 쳐들어간 잠깐 사이에 장교들이 다 나가떨어져서 현재 치료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다고 얼른 덧붙이기도 했다.
“전부 뇌진탕과 미세골절상 정도입니다.”
최정의 얘기를 듣고서 장선욱은 피식 웃었다.
“녀석, 인간 됐어. 참을 줄도 알고 말이야.”
그 정도 경미한 부상이면 강수혁 입장에선 아예 손을 안 댄 거나 마찬가지다.
“이 함장은 어딨나?”
“안내하겠습니다.”
함대 장교가 앞장섰다. 그 뒤를 따르면서 장선욱은 최정에게 말했다.
“우리 애들은 내가 온 걸 아나?”
“예, 김 준위가 일대를 위성 스캔 중입니다. 수송기 착륙 즉시 알 겁니다.”
“음.”
이후 장선욱은 함상 카트를 타고 함 내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제주도함의 작전 회의실이었다.
공간이 협소한 함내 시설치고는 상당히 큰 공간에 원목 원형 책상까지 구비한 그럴싸한 회의실이었다. 물론 장교용 회의실답게 각종 스크린과 송수신기도 자리마다 있었다. 육상의 일반 회의실과 비교하자면 의자와 책상이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점이 달랐다.
빈 책상 상석엔 이 함장이 앉아 있었다. 작은 두상 절반을 흰 붕대로 감은 채였다. 더불어 왼쪽 손목에도 얇은 깁스를 말았다. 함장의 뒤로는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병사 여섯 명이 각각 두 명씩 조를 이루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 대기했다.
“여어, 누님.”
장선욱은 들어서자마자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손을 올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호칭에 최정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미친놈.”
장선욱을 마주한 이율희는 대번에 입술을 비틀었다. 함교에서 보였던 우아한 모습 따윈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덕에 장선욱의 뒤를 따르던 최정은 반사적으로 찔끔했다. 하지만 장선욱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율희 함장 바로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많이 다쳤어?”
“…….”
장선욱은 싸늘한 이율희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이구, 고운 얼굴에 생채기가 상당한 모양인데? 우리 누님, 이래서야 이번에는 국방 달력 사진 못 찍겠어.”
“능글능글,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집어치워.”
쌀쌀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래도 장선욱은 싱글벙글 웃었다.
“너는 애들을 어떻게 관리해서 그 모양이야?”
이율희가 먼저 따지고 들었다.
“아니 뭐, 우리 애들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함대 꼴을 봐, 제주도는 당장 귀항해야 해. 내 함교 인원은 다 드러누웠고. 거기다가 감히 중장에게 항명해? 우리 해군이었으면 즉결 심판으로 사형이야.”
“아이쿠. 우리 누님 화가 단단히 나셨네.”
장선욱은 어쩐지 더 즐거워 보였다. 제주도 함대의 손실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최정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내가 출항 전에 우리 애들 또라이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곱게 피지 데려다 놓고 돌아서면 아무 탈 없었을 텐데 왜 중간에 건드려서는.”
“강수혁과 임성준이 함내에서 소동을 일으킨 건 말 안 했나?”
이율희의 물음은 정확하게 최정을 향했다. 하지만 대답은 장선욱이 했다.
“알아, 알아. 일 터지자마자 최 대령이 연락했어.”
“함내 질서를 어지럽히고 아군 레이더를 교란하여 위협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방어 장비도 없이 전신 쫄쫄이 한 벌만 덜렁 입은 우리 애들에게 레이저 함포를 마구잡이로 쏴댄 건 말이 안 되지. 그렇다고 뭐 효과를 보기라도 했나? 우리 애들이 작정하고 반격하니까 바로 운항 불능에 빠졌으면서.”
장선욱이 피식 웃었다. 에스퍼용 전투복이 전신 쫄쫄이 덜렁 한 벌은 아니지만, 어쨌든 최정은 함구했다.
이율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우아함은 사라지고 악마 같은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바들바들 떨리는 중에도 단정한 모양새를 유지하는 입매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통제 불능 에스퍼에 대한 실질적인 조처가 있을 거야. 장선욱. 특작부는 진즉에 찢어져서 각 군 산하에 들어왔어야 해. 이번이 그 계기일지도 모르지.”
“한번 해 보든가. 새로 짠 공격 프로그램 소용없어졌다고 해군 예산 축소당하지나 마쇼.”
장선욱이 팔짱을 끼면서 맞받아쳤다.
“뭐?”
“그렇잖아. 인간 같지 않은 강수혁이는 그렇다치고 임성준이도 바로 회피한 걸, 외계 괴물 놈이 왜 못 피해? 외계 괴물 놈들이 바보야? 어느 또라이가 경고 없이 날아오는 공격을 가만히 맞고 있어? 이건 위계에 의한 병사 학대 행위야. 그리고 벌써 뉴스 떴어.”
“뉴스?”
뉴스라는 말에 최정이 얼른 개인 통신 단말을 꺼내서 확인했다.
[피지 합동 훈련을 떠나던 중, 아군끼리 충돌!]
[인근 해역을 시험 비행하던 에스퍼를 오인한 해군이 사격 시작]
[제주도함의 최신 레이더가 에스퍼 식별에는 소용이 없다?]
헤드라인 몇 개만 슬쩍 읽은 최정이 이율희에게 단말기를 내밀었다. 손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단말을 거칠게 빼앗은 이율희는 다급하게 속보를 확인했다.
“시험 비행? 이런 거짓말이 통할 거라 생각하나? 금방 들통날 거야.”
“들통나도 뭐 우린 어차피 찍힐 대로 찍힌 몸이라 이런 소동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거든. 그런데 누님은 어쩌나? 기강이 잡힌 훌륭한 해군의 표본이었는데. 이미지 완전히 망가지게 생겼어. 항모가 저 많은 호위함을 이끌고도 고작 에스퍼 한 놈에게 당해서 운항 불능에 빠졌는데 해군 입장이 참 떳떳하겠수다. 제주도 상태까진 내가 말 안 했는데. 자꾸 이렇게 나오면 나도 곤란해.”
“빌어먹을 새끼.”
고운 노년의 입에서 기어이 비속어가 튀어나왔다.
해상에 머무는 이율희보다 육상에 있었던 장선욱의 정치적 행보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정의 연락을 받은 즉시 보도 자료를 작성하여 여론을 먼저 선점했다. 특작부가 갖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장선욱의 이런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빈틈없는 면모 덕분이었다.
“이참에 얼른 은퇴하고 손주 봐. 얼마 전에 쌍둥이 봤다며?”
“장선욱! 이 미친 새끼야!”
이율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단말을 팽개쳤다. 와장창 부서지는 개인 단말을 보면서 최정은 아쉬움에 탄식했다.
승기를 잡은 장선욱이 목소리를 깔았다.
“이율희 중장님.”
“…….”
“우리 특수작전사령부는 말이야. 미쳤다는 얘기를 들으면 도리어 짜릿하거든?”
부서진 단말기 파편을 줍던 최정은 장선욱의 말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니 다른 놈들은 다 미쳤어도 사령관인 장선욱만은 멀쩡할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장선욱도 보통은 아니었다. 보통이 아니니 특작부라는 또라이 집단의 수장이긴 하겠지만. 강수혁의 미친 행보가 어쩌면 양부인 장선욱에서 시작된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아주 살짝 들었다.
잠시 미친놈 같았던 장선욱은 금세 능글능글한 아재로 돌아왔다.
“기왕 바다에 나온 김에 한 이틀 푹 쉬다 가고 싶은데 내가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우리 애들이나 얼른 보고 갈게. 푹 쉬고 다친 거 빨리 나아. 이 나이에 고장 나면 평생 삐그덕거린다. 나도 무릎 수술했잖아. 비만 왔다 하면 아주 시려.”
“두고 보자, 장선욱.”
이율희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또 봅시다, 누님.”
대화의 행방은 장선욱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할 말을 마친 장선욱은 슬렁슬렁 자리를 벗어났다. 최정은 화난 이율희에게 거수를 붙이고 얼른 장선욱의 뒤를 쫓았다. 이율희를 비롯한 중무장한 해군 병사들은 그들을 무시무시한 눈길로 노려봤다.
“이쪽입니다.”
최정은 장선욱을 심나연의 선실로 안내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선욱이 고개를 저었다.
“바빠. 바로 가야 해.”
“좀 전에 우리 애들 보신다고.”
“됐어. 강수혁이 새끼 상판 봐서 뭐 해. 얌전히 있지 사고나 치고. 아니 함장은 왜 건드려? 함장이 저 꼴로 매스컴에 나가 봐. 이 함장은 대쪽 같은 성격으로 유명해서 정치권에서도 눈독을 들이는 해군 스타란 말이야. 까마득한 웃어른이기도 하고. 그런 이 함장을 다치게 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나빠지는 강수혁에 대한 여론이 어떻겠어?”
아까 자신만만하던 태도와 달리 장선욱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게 직접 손을 댄 건 아니고 마침 강 소령이 페널티 맞고 쓰러지면서 이 함장님을 밀치는 바람에 다친 겁니다.”
“그럼 더 우습지. 트리플 S급을 앞두고도 의연한 노(老)함장을 에스퍼가 치사하게 밀쳤다 이렇게 될 거 아냐. 이게 말이야 방귀야. 아니 우리 배도 아니고 다른 부대 배를 얻어 탄 마당에 얌전히 있지는 못할망정, 그놈 뒤치다꺼리하다가 늙는다, 늙어. 제까짓 게 할 말이 있었으면 벌써 나한테 통신했겠지.”
문제아를 향해 길게 불평한 장선욱은 이내 사나운 한숨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