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저 멀리 날아가는 강수혁을 보며 최정이 아스라이 뱉었다.
“오늘 비행 훈련 및 전투 교신 테스트하려고 했는데 역시 안 되겠지?”
“당분간 강 소령님 협조는 기대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콩밭에 가 있거든요.”
윤조가 선을 그었다.
“무슨 콩밭?”
“그런 게 있습니다.”
강수혁이 갑자기 연애 사업에 돌입했다고 보고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장세인과의 대화 장면을 목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수작질인지 아닌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을뿐더러, 또한 심증대로 진짜 수작질이라고 밝혀져도 작전에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강수혁의 사생활 영역이었다.
페어링한 에스퍼에 대한 의리로 그가 직접적으로 뭔가 얘기를 하기 전까지는 입을 다무는 것이 옳다. ‘심플한 관계’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역경을 넘었는데 가벼운 수다 한 번으로 원점으로 되돌릴 순 없다.
“그럼 오늘은 공치는 거네.”
“그럴 것 같습니다.”
일정이 파행으로 치달아 걱정하는 대령과 준위치고는 너무 한가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제주도함 위에서의 훈련 계획표는 초등학생의 방학 계획표나 비슷한 취급이었다.
짜 놓기는 하는데 갑의 갑, 차반 중의 차반이신 강 모 에스퍼님께서 순순히 따라 주신다는 가정하에 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차암 좋겠다는 희망 사항. 더불어 강 모 에스퍼님의 은근한 지랄 때문에 다른 함선으로 피신 간 에스퍼들의 훈련도 흐지부지.
“앞으로 나흘은 더 가야 하니까 그중에 하루 정도는 어떻게 해라.”
“예. 피지 도착하기 전에는 맞춰 봐야죠.”
“그래, 김윤조. 네가 있어 내가 참 든든하다.”
“그럼 연봉 올려 주세요.”
“그건 내 소관 아니라서 미안.”
오가는 대화에 힘이 전혀 없었다.
“야, 거기서들 뭐 해?”
일과 수행을 하느라 바쁜 수병들이 오가는 갑판 가장자리. 인적이 드문 그늘에 선원의 상징인 해먹과 병사 복지의 산물인 선베드가 차려진 휴식 공간에서 느긋하게 누워 바다를 보던 심 박사가 윤조와 최정을 향해 소리쳤다.
“강수혁 날아간 거 보니 훈련 파투 난 거 아냐? 여기 와서 쉬어.”
심 박사는 알로하 셔츠에 커다란 레이벤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는 차가운 음료수 잔까지 들고 있었다.
“항모가 무슨 유람선인 줄 아는 인간이 또 있네.”
“그러게요.”
최정의 말에 윤조가 동의했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둘의 발걸음도 심 박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았어?”
최정이 심 박사 옆 선베드에 걸터 앉으면서 물었다.
“함장이 알려 주더라고.”
그러면서 심 박사는 옆에 있는 작은 아이스박스를 가리켰다. 음료수가 얼음 사이에 끼어 있었다.
최정은 그중 보리차 음료를 꺼내면서 말했다.
“이러고 있어도 돼? 피지에 도착하기 전에 검토할 자료가 많다면서?”
“많지.”
심 박사가 가볍게 대답했다.
김윤조의 첫 다국적 훈련인 만큼 심 박사가 모니터링을 위해 특별히 따라붙었다. 더불어 타 국가의 가이드 정보 수집도 할 계획이었다.
“오랜만에 바닷바람 쐬는데 즐기기도 해야 할 거 아냐. 연구실에만 있다가 탁 트인 바다를 보니 너무 좋다.”
“아주 수영복을 입고 오지 그랬냐?”
최정이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는데 함장이 안 된다잖아. 군함 내에선 금지래. 예전에 누가 그랬다가 사진 찍혀서 징계 먹은 적이 있대.”
“아, 그래? 아깝네.”
아니 항모를 유람선 취급도 모자라 무슨 크루즈 여행이라도 하는 중년 부부와 같은 대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심지어 최정은 유부남이라 둘 사이에 썸씽이 생기면 불륜이다.
“김윤조, 왜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어?”
“아닙니다.”
심 박사의 지적에 윤조는 고개를 저었다. 선베드가 비어 있지만, 선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위치라 차마 거기에 누울 자신은 없었다. 대신에 다른 각도에서 잘 보이지 않는 해먹에 몸을 구겨 넣었다.
“아, 좋다.”
저도 모르게 윤조는 앓는 소리를 냈다.
항모라 진동이 별로 없고 선실도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긴 해도 창문이 없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거대한 엔진이 돌아가면서 진동과 소음이 24시간 울리며 수천 명에 이르는 선원들이 내는 많은 기척도 수시로 울렸다.
몇 군데 기밀 시설을 제외하곤 비행기만큼이나 시끄러운 공간이었다. 더불어 각 선실 내부 소리는 각종 수송 파이프를 타고 인근 선실에 잘 퍼졌다. 귀를 벽에 대면 옆 선실 대화가 뚜렷하게 들릴 정도였다. 덕분에 청각이 예민한 강수혁은 내내 짜증이었고 윤조는 그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 의미에서 그늘진 갑판의 해먹에서 즐기는 태평양의 빛과 바람은 천국의 손길이었다.
“너도 뭐 마실래?”
심 박사가 물었다.
“아니요. 저는 됐습니다.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아서요.”
“물이나 탄산수도 있어.”
태평양 한복판에서 다양하게도 준비했다. 항모 내에 있는 PX 냉장고를 탈탈 털었나 싶다.
“물 주십시오.”
생수를 건네받은 윤조는 딱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잠시 굴리다가 조금씩 천천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으.’
오만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간밤에 혹사당한 목구멍이 아직도 부어 있었다.
짜증 난 강수혁은 윤조에게 각종 신체적 접촉을 원했다. 페어링 된 2인조임을 쓸데없이 존중받아 같은 선실까지 배정되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참을성이 부족한 망나니 새끼는 둘만 남게 된다 싶으면 은근히 몸을 비비면서 노골적인 짓을 거듭했다. 다른 사람에게 추파를 던질 때는 언제고 참나.
어쨌든 귀중한 에스퍼의 안정과 컨디션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가이드이기에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려고 했다.
문제는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선실이었다. 옆 선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활동을 연결 파이프를 통해 본의 아니게 듣는 중에 그렇고 그런 소음을 낼 수가 없었다. 미친 개새끼는 알아서 입을 막아 주겠다고 주둥이를 들이댔다. 신음이야 어금니를 악물고 참을 수 있다. 윤조의 걱정은 살 부딪히는 충격음과 또 격렬한 행위 중에 발생할 각종 소음이었다.
“임성준 불러서 가까운 섬으로 순간 이동해.”
“미쳤어요?”
강수혁은 임성준을 불러 가까운 무인도로 순간 이동을 하자고 우겼다. 무슨 야생에서 그 짓을 하자고.
“임 중위에게 그런 목적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것도 절대로 싫거니와 임 중위는 애초에 직접 가 본 곳이 아니면 순간 이동 실패율이 높아요. 자칫하다가 우주나 심해에 착지하는 수가 생겨요. 소령님은 괜찮겠지만, 저는 아니거든요. 무슨 대단한 일 하겠다고 순간 이동이야.”
윤조의 반박에 강수혁은 냉큼 다른 방안을 댔다.
“그래? 그럼 장세인 불러서 반경 100m 내의 모든 놈들 잠재우면 되겠네.”
장세인의 특성을 윤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개소리를 찍찍 내뱉었다.
“허가 없이 아군에 대한 정신 조작은 절대 금지입니다. 훈련 빠꾸 당하고 싶으세요? 또 장세인 대위가 잘도 협조하겠습니다. 떡 치려는 소령님의 수작을 알자마자 항모 내 모든 병사들에게 생생하게 떠들걸요?”
“…….”
반박 거리를 찾지 못한 수혁은 이내 자신이 직접 비행하겠다고 우겼다. 섬은 어떻게 찾냐니까 윤조의 AI 위성으로 스캔하란다. 귀중한 가이드 시스템을 그따위 음험한 목적으로 써먹겠다는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이드 시스템은 어차피 내 안정을 위해서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써도 돼.”
“안 됩니다. 인근 해상은 게이트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공해상이라도 식별 신호 없이 야간 비행하다가 위성 궤도로부터 요격이 날아올 수 있어요.”
“요격 날아오면 반격하면 되잖아.”
“우리 평화 유지 목적 훈련에 참여하러 이 큰 배 끌고 가는 중이거든요? 이 항모 전대 보여요? 다른 나라도 그렇고요? 갑자기 교전이 일어나면 즉시 태평양 대전입니다?”
“시발. 어쩌자는 거야!”
그깟 발기 정도는 좀 참으라고 역정을 내는 윤조를 향해 벌써 출항 후 이틀을 참았다고 반박하는 강수혁은 이대로 해소 못 하면 죽을 것 같다면서 갑자기 바지를 벌컥 벗었다.
“시발?”
놀란 윤조 앞에서 흉흉하게 부풀어 오른 성기를 잡은 강수혁이 갑자기 수도(手刀)를 만들더니 성기 뿌리를 가늠했다.
“어차피 못하면 뒈질 것 같은데. 차라리 자르고 재생시키면 한결 낫겠지.”
“오, 맙소사.”
윤조는 트리플 S급의 듣도 보도 못한 놀라운 지랄에 극적인 탄성을 지르며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미친 개망나니 새끼가 제 손으로 물건을 잘라내는 정신 공격을 생 라이브쇼를 펼치기 전에 물건을 잡고 입에 물었다.
격렬한 펠라치오의 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 점심은 뭐래?”
“카레라이스에 탄두리 맛 치킨이라던데.”
“항모쯤 되니까 배에서도 밥이 잘 나오네.”
“아무래도 그렇지. 주방이 우리 특작부보다 크더라.”
한가하기 짝이 없는 특작부 대령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윤조는 오늘은 점심도 텄다고 생각했다.
카레와 탄두리를 감당하기엔 목이 너무 아팠다. 특작부에 있으면 이따위 작은 부상 쯤이야 인큐베이터 요양 30분에 금방 나았다.
제주도함에도 이동형 인큐베이터가 있지만, 이동형이라 아무래도 재생 기능이 다소 떨어지는 데다가 인공 양수 또한 한정량만 보유하고 있다.
피지 훈련이 어디까지나 훈련이라고는 해도 실전을 방불케 하기에 훈련 과정에서 에스퍼와 가이드의 부상이 잦다. 그걸 대비하여 마련한 초고가의 군사 시설을 사소한, 그러니까 그렇고 그런 짓 하다가 생긴 목의 상처 정도로 낭비할 순 없다.
무엇보다 강수혁과 동거한 이후로 하루가 멀다하고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 박사와 최정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다.
‘김윤조, 네 인생 참 다이내믹해. 시발.’
늙은 할아범처럼 생수를 입으로 굴려 마시면서 윤조는 시리도록 푸른 대양에 시선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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