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태평양 바다와 하늘의 경계쯤이 진한 주황색으로 변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지만 바다의 낭만인 석양은 얇은 실선으로 반짝이다가 이내 꺼졌다.
밤이 되어도 별이 뜨는 일은 없다. 제주도 항모 전대 상공은 게이트가 발산하는 불길한 청록색 방사능 오로라가 흥건했다.
“임 중위님.”
윤조는 임성준을 불렀다.
“준비되었습니다. 벌써 준비되었다고요.”
임성준이 반쯤 울면서 항모 갑판 위에 둥둥 떠 있는 텅스텐 빔 20기를 가리켰다.
“황금 뚱…… 초거대 플라이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통신이 어렵습니다. 회피 루트 제공이 불가능할 겁니다. 대응 작전은 지금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황금 뚱땡이 대응 작전은 있고?”
윤조의 말에 강수혁이 쪼갰다.
“네.”
자신 있게 대답하자 강수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대응 작전은 ‘강수혁’입니다.”
“음?”
“마음대로, 마음껏 하십시오.”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를 향해 윤조는 쐐기를 박았다.
마음대로 날뛰어도 좋다는 말에 트리플 S급 에스퍼의 입매가 천천히 길게 늘어졌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유독 도드라진 송곳니 4개가 반짝였다.
“간만에 속 시원한 소리 하네.”
강수혁이 떠올랐다. 윤조의 헬멧을 걱정한 주제에게 막상 본인은 헬멧을 쓰지도 않았다.
풀파워에 가깝게 능력을 전개하면서 피부를 통해 오버로드되는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점점 많아졌다. 약하게 빛나던 실루엣이 초거대 플라이처럼 강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강한 해풍에 엉망으로 휘몰아치는 강수혁의 검은색 머리카락조차 점차 밝아지다가 이윽고 찬란한 화이트 오팔색으로 물들었다.
“다치지 마십시오.”
“너나 휘말리지 않게 사리고 있어. 망할 놈의 헬멧은 꼭 쓰고.”
둥실 떠오른 채로 항모 밖을 향해 물러나는 강수혁 주변으로 20기의 거대한 빔이 가지런히 따라붙었다. 그것들은 리볼버 약실 형태로 서서히 회전했다.
-강수혁 소령이 전력을 다할 겁니다. 전 함대, 속히 후퇴하여 방어에 치중하십시오.
장세인이 이율희를 비롯한 전 함대 통신 장교에게 경고했다.
‘엔진 고장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구축함 내 승무원은 순간이동으로 소개(疏開)합니다. 모두 갑판 위로 올라와 동료의 손을 잡으십시오.’
임성준이 점프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쾅!
소닉붐이 일었다. 강수혁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1초 간격을 두고 강풍이 함상에 휘몰아쳤다. 단단한 케이블에 몸을 의지한 채 윤조는 강수혁이 날아간 방향을 주시했다.
삐이잉. 삐이잉.
비상 알람이 다시 울리면서 외부 스피커를 통해 이율희 함장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전 함대! 충격에 대비하라!
쾅!
진주색 별 하나가 황금색 덩어리를 향해 질주했다. 산개한 작은 별빛이 거대한 발광체를 향해 돌진했다. 그것들은 함께 뭉쳐졌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압도적 크기를 자랑하는 상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찢어지는 울부짖음이 터졌다. 동시에 강력한 전자기 펄스(EMP)가 다시 한번 터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각 전자 기기에 임시 차폐 포일을 덧씌워 보강하여 대비하였기에 아까와 같은 피해는 없었다.
퀘에에엑! 쿠아아아악!
서양 용을 닮은 외계 지성체가 전신을 뒤틀었다. 목과 꼬리 형상을 한 긴 촉수 한 쌍이 공중을 휘저었다. 덩달아 날갯짓도 거칠어졌다.
강수혁과 그의 빔은 놈에 비하면 초파리 같았다. 놈의 움직임 한 방에 초파리 서너 개가 빛을 잃었다. 텅스텐 빔이 놈의 몸에 박혀 사라졌다.
몸부림치는 놈의 움직임은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더 거칠고 사나워졌다. 재생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몸 한가운데 있을 핵을 파괴하기 전에는 계속 재생할 거다.
강수혁이 놈의 몸속으로 빔을 박아넣은 것도 그 핵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빔이 전봇대 크기긴 해도 외계 지성체의 크기가 너무 압도적인 데다가 강력한 방사능과 전파를 발산하기에 하지만 아무래도 핵에 닿기 전에 강수혁이 빔에 대한 지배력을 잃은 것 같았다.
“이쪽 무기가 너무 작아.”
기존의 5기와 추가한 20기를 뭉쳐서 던지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벌써 반 이상을 놈의 몸 안에 쑤셔 박았고 회수하지 못했다. 나머지로는 부피가 충분하지 않다. 뭔가 거대한 물체가 필요하다.
여기가 지상이라면 곳곳에 빌딩이 있을 거고 H빔과 콘크리트 철근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긴 태평양이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방사능과 전자파, 그리고 강력한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 물체를 구할 수가 없다.
함재한 각종 장비를 파괴하여 임시 빔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다만 제주도 함대는 총력을 동원하여 일반 플라이를 상대하는 중이었다. 레이저 함포를 주력으로 하기에 다른 재래식 무기는 아직 건드리지 않았지만, 레이저가 과열로 꺼진다면 미사일이고 구식 함포고 뭐고 다 동원해야 한다. 에스퍼가 유용할 자원이 없다는 얘기다.
드론도 마찬가지였다.
펑. 펑. 쾅!
강수혁이 초거대 플라이를 상대하는 동안, 레이저를 피한 플라이는 드론이 맞섰다. 전투 중에 계속해서 추락하는 중이었다. 남은 드론을 모아서 뭉친다면 거대 플라이는 없앨 수 있을지 몰라도 도중에 함대가 일반 플라이를 방어하지 못해 침몰할 거다.
‘구축함 대피 완료.’
그때 임성준의 보고가 있었다.
“아!”
윤조의 시선이 항모 꽁무니를 향했다.
현재 주 엔진 고장으로 인해 방어력도 떨어지고, 또한 레이저 함포 사격도 불가능하기에 구축함 하나를 아예 버린 상태였다. 현대식 구축함은 대 게이트 용이라 외부에 각종 전파에 대응하는 합금 플레이트가 장착되어 있다. 크기도 충분하다.
“저거다!”
저 구축함을 꽈배기처럼 꼬아서 거대한 창을 만들면 된다. 강수혁이라면 할 수 있다. 문제는 꼬는 시간이다. 아무리 무한한 화력을 자랑하는 트리플 S급이라지만 구축함을 들어서 창으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못해도 5분 이상은 걸릴 거다. 그사이에 초거대 플라이가 그를 삼킬지도 모른다.
‘함장님!’
윤조는 텔레파시를 통해 이율희에게 제 작전을 전달했다.
-알겠다고 합니다. 구축함을 변용하는 동안 함대가 함포 가동률 100퍼센트로 뚱땡이를 비롯한 플라이 전체를 상대로 버티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5분은 불가능합니다. 현재도 함포 과열이 심각해서 냉각기 없이는 최대 3분입니다.
계산상 시간이 현저히 모자랐다.
‘임성준입니다. 제가 구축함 분해를 거들겠습니다.’
임성준이 구축함 내부 격벽을 분해하면 강수혁이 일그러뜨리는데 시간이 훨씬 적게 든다. 아마 3분 내로 가능할 수도 있다.
‘부양감이 느껴지면 바로 탈출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임성준이 구축함 내부로 들어갔다. 제주도 함포의 거울을 뜯었던 것처럼 구축함의 주요 격벽을 차례차례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작전을 강수혁에게 어떻게 전달해?’
강수혁은 현재 게이트 가까이에 있어 통신이 어려웠다. 이심전심 작전뿐이었다.
‘지금도 동조율이 통상치를 훨씬 넘었어. 더 가면 너…….’
심 박사가 걱정했다. 과부하가 걸려 뇌 손상이 있을 수도 있다. 신체 복구는 되겠지만 그래도 후유증이 생길 거다.
“딱 1초면 됩니다. 제가 신호하면 동조율을 최대치로 올리십시오.”
윤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위성 궤도 타격 준비 완료.’
최정이 말했다.
뚱땡이가 나타난 후 그는 빠르게 윗선에 연락했다.
공군이 보유한 다목적 레이저 위성 사용 승인을 받아 냈다. 전략 무기인 위성 궤도 레이저는 적용 범위가 넓어 정밀 타격이 불가능했다. 자칫하다가는 아군까지 당할 수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차선책이었다.
‘강수혁 공격 준비가 완료되면 공군이 위성 궤도에서 요격 시도한다. 함대와의 거리 때문에 풀 파워의 30퍼센트만 가동할 거야. 핵은 못 부수겠지만 뚱땡이 놈을 잠시 멈출 순 있겠지. 운이 좋아 핵이 깨지면 더 좋고. 타이밍 잘 맞춰야 해. 잘못하면 당해. 아니면 전신이 녹을 거야.’
최정이 덧붙였다. 그러자 장세인이 입을 열었다.
-이율희 함장에게 답변 들어옵니다. 알았다고 하십니다. 육해공 3군이 합동 작전을 펼치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특수군인 특작부는 넓게 보자면 육군 산하였다.
‘정리하자면 강수혁이 구축함으로 거대 창을 만드는 동안 함대 포격으로 버티다가, 강수혁이 준비 끝나면 공군이 레이저로 뚱땡이 통구이 만들고 그때 강수혁이 놈의 핵을 부순단 거지?’
‘오케이.’
심 박사가 정리하고 최정이 확인했다.
이걸 1초간의 연결로 단번에 강수혁에게 전해야 했다. 윤조는 속으로 문장을 빠르게 가다듬었다. 위성 AI 또한 증폭 신호를 견디기 위해 부수적인 장비를 끄고 전파 발산에만 모조리 역량을 집중하는 중이었다.
“후.”
케이블을 줄여 기둥에 몸을 딱 붙인 윤조는 낮은 한숨을 몰아쉰 후 몸을 털었다. 시선은 강수혁으로 추정되는 오팔 빛을 향해 들었다.
“가이드 김윤조, 준비 완료. 심 박사님 고 하십시오.”
‘위성 신호 증폭 카운트다운 3, 2, 1.’
지이잉.
이명이 울리면서 정수리에 강력한 충격이 발생했다.
“욱.”
그렇지 않아도 출렁이는 바다 때문에 거대한 항모 또한 흔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윤조의 몸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휘청거렸다. 그 즉시 시야가 바깥에서부터 하얗게 번졌다. 번 아웃 현상이었다.
이를 꽉 문 채로 윤조는 두 눈을 홉뜬 채로 강수혁으로 추정되는 발광체를 응시했다. 강렬한 의식을 발산했다. 발산했다고 믿었다.
“커억.”
뇌가 작렬했다. 두부(頭部)가 폭발할 것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어지러움에 위장이 뒤집혔다.
“웩.”
쓰고 신 액이 헬멧 안을 더럽혔다. 그와 함께 무릎이 꺾였다.
텅. 텅.
케이블을 매단 쇠기둥에 몸이 부딪혔다. 감각이 무뎌서 별로 아프지 않았다. 스르륵 주저앉는 느낌이 멀게 느껴졌다.
시야가 흐릿하게 꺼져가는 중에도 오팔색 빛 덩어리가 점점 크기를 더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뒤이어 레이저 함포의 붉은색 잔상이 하늘을 어지럽혔다.
-!
누군가의 의식이 이쪽으로 쏟아졌다. 텔레파시는 아니었다.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제6의 감각 같은 거였다. 당연히 강수혁일 터.
윤조는 망가진 인형처럼 기둥에 기댄 채로 흐릿한 의식을 간신히 모았다. 검게 일렁이는 세상에 진주색과 금색이 하늘거렸다.
‘이쪽으로 오지 마……임무 완수가 먼저라고.’
윤조의 의식은 거기에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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