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헉! 헉!”
구축함 내부를 파괴한 임성준은 간신히 항모로 이동했다.
장거리 이동에 단거리 이동까지. 점프를 너무 남발했다. 단신 이동이라면 그럭저럭 버틸 만한 피로였지만, 아까 구축함 승무원을 대규모로 이동시킨 것이 결정적이었다.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었다.
갑판에 있는 김윤조를 데리고 제03 격납고로 다시 점프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지도 몰랐다.
“김 준위! 정신 차리십시오!”
기둥에 기댄 채로 멍하게 앉은 김윤조는 의식이 없었다. 대신 헬멧 안에 핏물과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동조율을 무리하게 올리더니 기어이 뇌 손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우르릉.
무시무시한 파동이 임성준의 뒤를 덮쳤다. 넘어지듯 주저앉으며 김윤조의 케이블을 기둥에서 분리했다. 그러면서 임성준은 본능처럼 뒤를 돌아봤다.
맥동하는 황금색 초거대 플라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현저하게 작은 은색 빛 무리들은 황금색 거대 물체를 향해 하나둘씩 달려들어 사라졌다.
케이블을 분리한 임성준은 정신을 잃은 김윤조의 한쪽 팔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곤 반쯤 일어섰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환하게 빛나는 은색이 해면으로 후퇴했다. 임성준이 헤집어 놓은 구축함이 공중에 떠올랐다.
“부탁합니다. 강수혁 소령님.”
임성준은 마지막 힘을 다해 제03 격납고로 이동했다.
정신이 아찔해진 임성준은 제대로 착지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억. 허억.”
“임성준! 괜찮아?”
최정이 달려들었다.
“네…… 그냥 지쳐서…….”
최정의 걱정에 임성준은 고개를 저었다.
“최정! 김윤조부터!”
심 박사는 세팅을 마친 인큐베이터를 가리키며 다급하게 외쳤다.
최정과 함께 김윤조를 들어 올린 심 박사는 윤조를 인큐베이터에 눕혔다. 그러곤 바로 헬멧을 분리했다.
“코피…… 귀에서도 피가 흐르잖아. 뇌 손상 같은데. 이동식으로도 뇌 치료가 가능한가?”
“완벽한 재생까지는 힘들지. 그래도 일단 담가 놔야 더한 손상은 막을 거 아냐.”
두 대령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전투복 외피가 사라지고 내피만 남았다.
곧 인큐베이터 덮개가 닫히고 바닥에서부터 은은한 형광색 액체가 차올랐다. 인공 양수가 김윤조의 머리 꼭대기까지 완전히 차 버리자 그의 폐에 남은 공기가 기도와 비강을 통해 빠져나왔다.
푸르륵.
김윤조가 토한 공기 방울에는 끈끈한 핏물이 섞여 있었다.
“스캔 및 자동 재생 시작.”
인공 양수를 통해 산소가 과다 공급되는 동시에 특수 스테로이드제가 투여되었다. 혈류량 증가로 인해 상승했던 뇌압이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삐―삐―.
쿵!
외부에서 강한 충격파가 닥쳤다. 내장이 울렁거리는 부양감이 닥치더니 이내 격납고 바닥이 크게 기울었다.
격납고에 있는 드론이 끼긱 거리면서 옆으로 이동했다. 하필이면 그들 쪽으로 향하는 드론을 보면서 심 박사와 최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텅.
랜딩 기어가 바닥 고정장치에 걸리면서 드론의 움직임이 멈췄다. 누구랄 것도 없이 옅은 한숨을 토했다.
기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윤조가 든 이동식 인큐베이터 또한 휘청였다. 함 내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특수 케이블로 인큐베이터를 고정해 두긴 했으나 흔들림이 너무 거세다 보니 약간의 흔들림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재 김윤조는 두뇌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약간의 흔들림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안 돼!”
심 박사가 인큐베이터를 사지로 덮었다. 임성준은 지친 중에도 장세인이 누운 간이침대 밑에 앉아 등으로 침대를 벽면으로 밀어붙였다.
두 사람이 전신으로 인큐베이터와 침대의 흔들림을 막는 동안 최정은 제 장비로 달려가 전투 상황을 확인했다.
항모 우현에 대량의 플라이 떼가 우글거렸다. 그걸 피하느라고 크게 드리프트 중이었다. 구축함과 호위함에서 레이저 함포로 엄호하고 있지만, 점점 항모 갑판에 닿는 개체가 생기고 있었다.
갑판에 설치된 대피 참호에선 함대 호위 전투병은 화염 방사기와 보병용 레이저로 중무장하고 함선에 착륙하는 놈들을 무차별 사격 중이었다. 하지만 물량이 너무 딸렸다.
“아무래도 함대가 3분을 못 버티겠어. 빌어먹을 뚱땡이는 그렇다 치고 일반 플라이가 너무 많아.”
“지긋지긋하다, 정말.”
심 박사가 탄식했다.
게이트는 아직도 플라이를 토해 내고 있었다.
게이트 인근은 마치 이상 형성된 메뚜기 떼처럼 플라이가 자욱했다. 그것들은 불길한 모양으로 시커멓게 일렁이다가 이내 항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율희 함장으로부터 ‘즉각적인 위성 궤도 저격’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장세인이 전달한 즉시 최정은 헤드셋을 마이크를 붙잡고 빠르게 외쳤다.
“즉시 위성 궤도 저격하십시오! 지금 즉시 위성 궤도 저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비에서 낯선 목소리가 흘렀다. 공군 통신 장교였다.
-카운트다운 10초, 9초…… 3초, 2초, 1초, 발사…… 명중. 추후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쿠르르릉.
시차를 두고 강렬한 충격파가 닥쳤다. 레이저 자체 충격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광열로 인해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뜨거운 증기가 되어 사방으로 폭탄처럼 퍼지는 현상이었다.
거대한 항모가 출렁였다. 드론의 낭창한 날개도 흔들거렸다.
공포에 질린 심 박사는 반사적으로 인큐베이터에 몸을 붙였다. 안에 든 가이드의 뇌 상태를 확인하면서도 곁눈으로 사방을 경계했다.
“다 처리했어?”
“확인 중.”
최정이 기기를 조작했다. 그러자 아까부터 흔들거리던 입체 투사기의 해상도가 올라갔다.
게이트 인근에 형성되었던 대규모 플라이 떼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남은 것들은 항모 전대에서 감당할 수준이었다.
“후.”
“강수혁은? 우리 개망나니는 멀쩡한지 살펴봐!”
한시름을 놓으려는 최정을 향해 심 박사가 닦달했다. 뒤늦게 정신이 확 든 최정은 정찰 위성을 통해 강수혁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곤 항모 전대의 정찰 드론이 보내 주는 화면을 조합하여 입체 투사기로 보냈다.
인간 형상은 찾을 수 없고 대신 찬란한 오팔색 광원이 공중에 떠 있었다. 최정은 그 아래 있는 검은 물체를 최대한 줌인했다. 구축함은 아직도 구겨지는 중이었다.
“뚱땡이는?”
뚱땡이도 위성 저격 범위에 있었다. 최정이 예상한 대로 등이 훌러덩 벗겨져 핵으로 추정되는 진한 푸른색 물체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당했다. 하지만 추락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빠르게 재생하고 있었다.
“시간 못 맞추겠어.”
최정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2차 저격은?”
“위성 레이저는 풀 차징에 30분 걸려. 50퍼센트라도 15분 이상.”
최정이 대답하기 무섭게 장세인이 더욱 어두운 소식을 전했다.
-레이저 함포 과열로 작동 불능. 현재 공격률 55퍼센트……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사방이 막혔다.
“후우.”
임성준이 크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심 박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부스터 준비해 주십시오.”
극한 상황에 대비해 에스퍼의 체력을 확 끌어 올려 주는 물건이 있다. 인공 양수를 베이스로 각종 약물을 혼합하여 만든 것으로, 공식 명칭은 ‘부스터’지만 사람에 따라 에스퍼 전용 노동 샷 혹은 공진단이라고 부른다. 계속 쓰다가는 내성이 생기기에 최대한 아껴서 사용한다.
“임 중위가 나가서 어쩌게?”
“함대에 재래식 무기가 있지 않습니까. 미사일이나 포탄 같은 거요. 그걸 공중에 이동시켜서 터트려야죠.”
최정의 물음에 임성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손끝과 다리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체력 소모가 심했다.
“미쳤어? 포탄이든 뭐든 네가 그걸 가지고 게이트 인근으로 이동한다는 뜻이잖아!”
최정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임성준은 염력이 미약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기 때문에 물건만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직접 두고 오는 거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는 없잖습니까.”
“네가 직접 뛰느니 드론으로 처박는 편이 훨씬 나아!”
“드론 손실률이 70퍼센트를 넘었습니다만.”
임성준의 지적에 최정은 답을 하지 못했다.
-이율희 함장이 승낙합니다. 각 구축함에서 기뢰를 준비합니다.
기뢰는 건드리면 터진다. 플라이를 향해 새총처럼 날리기 딱 좋은 무기였다.
-미사일은 레이저 손실을 보완하기 위해 이미 발사 중입니다. 하지만 곧 바닥납니다.
애초에 대 G형 게이트 대응 훈련에 나선 참이었다. 재래식 무기까지 모조리 다 실어 중무장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제주도 함대가 소진하는 물량은 예비용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구축함에 있는 B급, C급 에스퍼들은 제 함성에 접근하는 플라이를 막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은 특별히 더블 샷으로 말아 줄게.”
심 박사가 기기 패드를 빠르게 조작했다. 인큐베이터와 함께 인근에 설치된 약물 혼합기가 빠르게 약물을 생성해 냈다. 붉은색 약물이 담긴 투명한 약병을 권총 모양 주사기에 조립했다.
막 임성준의 목에 약물용 총구를 들이댔을 때였다.
-어!
장세인이 놀랐다. 동시에 그의 텔레파시 영향권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놀랐다.
입체 투사기 영상에 갑자기 붉은색 점이 우르르 생겼다. 대 게이트용 레이저 함포였다.
퍼퍼퍼펑!
잔류 플라이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레이저 함포 연사가 이어졌다.
“누구야! 아군인가?”
발사 각도로 보아 게이트를 기준으로 제주도 함대와 반대편에서 쏜 것이었다. 그 해역은 북태평양으로 그 방향으로 접근할 만한 세력은 소수다. 솔직히 2개국이 다다.
-게이트 주변을 선회하는 드론을 통해 식별 신호 들어옵니다. 캐나다 해군입니다!
장세인이 반갑게 외쳤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