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살았다!”
최정이 탄성을 뱉었다.
-캐나다 해군이 계속해서 지원 사격합니다. 플라이 대형이 분산됩니다.
장세인이 숨 가쁘게 상황을 중계했다.
“임 중위는 일단 대기해.”
최정이 출격을 무르자 심 박사도 들었던 주사용 총을 내려놓았다.
농축 부스터는 포기하고 대신에 피로 회복제를 즉석에서 조합해 임성준에게 주사했다. 그건 최정과 장세인, 더불어 심 박사 본인에게도 주사되었다.
“다들 조금만 더 버티자.”
“강 소령님은 지금 어쩌고 있습니까?”
임성준의 물음에 최정이 주사를 맞은 목을 문지르면서 입체 투사기를 가리켰다.
투사기의 해상도가 아까보다 훨씬 떨어졌다. 정찰 드론 한 대가 기어이 추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하게 발광하는 강수혁을 분간할 순 있었다.
줄곧 강수혁의 아래에만 있던 형체는 서서히 회전하면서 위쪽으로 올라왔다. 오팔색 발광에 비친 구축함은 비비 꼬인 창 모양으로 변형되었다.
최정이 다시 헤드셋 마이크를 잡았다.
“위성 궤도 저격 가능합니까?”
-출력 25퍼센트입니다. 발포는 가능합니다.
초거대 플라이는 아직 재생 완료 전이었다.
“그거면 됩니다. 1분 후 즉시 발포 요청합니다.”
-오케이.
장세인이 2차 위성 궤도 저격에 대해서 이율희 함장에게 알렸고 뒤이어 캐나다 해군에도 전달했다.
1분간 전력을 다해 플라이를 저격한 각 함대가 최대한 바깥으로 빠졌을 때, 위성 궤도로부터 다시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꽂혔다.
콰아아아아!
레이저에 당한 초거대 플라이가 지독한 괴성을 내질렀다.
삐삐삐삐삐!
그와 함께 인큐베이터 패널에 위험 신호가 떴다. 안에 든 인영의 사지가 덜덜 떨렸다.
“왜 이래? ……김윤조, 왜 발작해? 뭐가 문제야?”
심 박사가 초조한 듯 혼잣말을 뱉으며 패널을 조작했다. 인큐베이터 안에 강력한 진정제와 마취제가 들어갔다. 발작하던 신체는 곧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이쪽의 심각한 상황은 임성준과 최정의 안중 밖이었다.
“강 소령님이 움직입니다!”
“강수혁! 제발!”
흐릿한 투사기에 뜬 오팔색 빛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빛을 중심으로 천천히 공전하던 거대한 창의 자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내 발사된 총탄 속도에 이르렀다.
순간 투사기 화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꺼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찰 드론의 식별 신호가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기어이 당한 모양이었다.
쾅!
거대한 충격음과 함께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파가 항모를 덮쳤다.
“으악!”
“엄마야!”
격납고에 묶인 드론이 마치 태풍에 맞서는 가로수처럼 흔들렸다. 날개가 사납게 삐걱거리더니 이내 핑핑 하면서 날개를 고정한 케이블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랜딩 기어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날개 고정이 풀린 채로 흔들리는 드론 전체를 붙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내 철근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드론이 한 방향으로 크게 기울었다.
쾅!
거대한 날개가 부러지자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드론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거면 다행이겠는데 항모 각도가 엉망으로 흔들리면서 드론의 동체마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날개가 빙그르르 돌더니 그 끝이 심 박사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어…… 어.”
죽음을 직감한 심 박사의 동공이 풀어졌다. 순식간에 들이닥치는 드론 날개를 멍하게 보았다. 정신이 아찔한 순간이었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심 박사가 정신을 차렸을 땐 임성준의 품 안이었다. 목숨을 구해 준 상대를 확인한 심 박사의 입은 고맙다는 인사를 뱉지 못했다.
심 박사가 있던 쪽은 인큐베이터 인근이었다.
간신히 피한 건 좋았지만, 그곳을 통과한 드론 날개가 인큐베이터를 덮쳤다. 거대한 항공기 날개가 지나간 바닥에 형광색 액체가 흩뿌려졌다.
“아…… 안 돼…… 안 돼애! 김윤조오!”
심 박사는 저를 붙잡은 임성준의 팔을 밀어내며 날개 쪽으로 달려갔다.
그때 드론의 동체가 이쪽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안 됩니다! 박사님 위험해요!”
임성준이 달려들어 심나연을 뒤로 끌어당겼다.
항모가 기울어지는 각도가 심상찮았다. 45도를 넘을 것 같았다.
최정은 보조 케이블을 꺼내 장세인의 침대 기둥과 격납고 벽면에 설치된 다용도 걸이와 연결했다.
요란한 흔들림에 몸을 일으킨 장세인은 최정과 함께 침대 프레임에 찰싹 매달렸다. 침대 반대편 끝에 간신히 도달한 임성준이 제 케이블을 침대 프레임에 걸고 양팔로는 버둥거리는 심 박사를 단단히 붙들었다.
드론 동체에 떠밀린 날개가 인큐베이터를 한층 더 압박했다.
끼기기긱.
쇠가 갈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드론 날개와 동체가 한쪽으로 완전히 구겨졌다. 그것들이 지나간 자리에 형광색 인공 양수가 쓸린 자국이 남았다. 꼭 핏자국 같았다.
“김윤조…….”
심 박사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최정도, 임성준도 하물며 장세인도 마찬가지였다.
“괘…… 괜찮을 거야. 덮개는 방탄유리잖아. 아마도 틈이 생겨서 양수가 샌 거겠지.”
최정이 불안에 찌든 음성으로 지껄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었다.
“자, 장 대위.”
최정이 가까이에 있는 장세인을 불렀다.
S급 텔레파시를 보유하고 있기에 의식이 없는 사람도 가까운 거리에선 생사 정도는 알 수 있다. 장세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감지 못…… 하겠어요.”
그에 최정의 안색이 흐려졌다. 장세인이 감지 못 한단 말은 사실상 사망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어흐흐흐흐흑.”
심 박사가 울음을 터트렸다.
* * *
부우우웅!
2차 위성 저격으로 인해 재생하던 황금 뚱땡이 놈의 등짝이 다시 한번 녹았다.
증기 폭발이 가시기 전에 위로 솟구친 수혁은 한참 아래 있는 좆같은 새끼의 새파란 핵을 향해 내리꽂았다.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총알은 텅스텐 빔으로는 건드릴 수도 없었던 초거대 플라이의 핵을 단숨에 산산조각 냈다.
쿠아아아아아!
빌어먹을 새끼가 소금 맞은 지렁이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그러면서 방사능으로 질척거리는 더러운 덩어리를 사방에 뿌렸다. 놈의 몸체였다.
“더럽게 시발.”
수혁은 욕설을 뱉었다. 하지만 저런 소소한 파편 따위는 자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구축함을 꼬아서 만든 창은 초거대 플라이를 관통하고도 멀쩡했다. 그걸 다시 끌어올려 고속으로 회전시켰다.
수혁의 시선은 게이트를 향했다.
“이제 꺼져.”
수직 방향으로 직립한 구축함 창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게이트 중심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게이트의 파장이 출렁거렸다.
한껏 퍼져 있던 청록색 오로라가 급격하게 줄기 시작했다. 덩달아 인근을 날아다니던 플라이들이 빠르게 게이트 안으로 후퇴했다.
충분한 가속을 받지 못한 구축함 창의 끝이 급격하게 줄어든 게이트 중심부를 막 통과할 때였다.
휘우우욱.
거친 바람이 불면서 게이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면서 게이트를 통과한 구축함 창의 반이 사라졌다. 나머지 반은 관성으로 위로 솟구치다가 서서히 해면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큰 몽둥이를 들어야 말을 쳐 듣지. 빌어먹을 외계 놈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갑자기 멀쩡해진 밤하늘을 보던 수혁이 콧방귀를 뀔 때였다.
뒷덜미에 서늘한 감촉이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이 덜컹 주저앉으면서 불길함이 전신의 신경을 얼어붙게 했다.
뇌의 한구석이 너무 허전했다.
불꽃 주둥이를 가진 시건방진 놈과 페어링한 이후에 두 번째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처음은 외계 괴물 놈이 발산한 초강력 EMP 때문에 위성 신호가 교란되어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괴물도 없고 게이트마저 닫힌 상태였다. 신호 복구가 아직 안 된 건가.
“김윤조.”
엄습하는 불길함을 이기지 못하고 수혁은 즉시 항모로 귀환했다. 아까는 거리가 좁혀질수록 신호가 점점 명확해졌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없었다.
-김윤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신으로 불렀다. 하지만 응답은 여전히 없었다. 페어링 감각도 계속 상실 상태였다.
-야, 개새끼야! 아까 내가 대답 늦게 했다고 이러는 거야? 통신 불안정이라고 했잖아. 하여간 뭐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망할 두부 새끼. 12시간에 5번은 진짜 너무 손해라고!
욕설을 삼키면서 속도를 올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위험하게 기울어진 채로 아슬아슬 항해 중인 항모의 모습이 보였다. 뚱땡이 새끼의 폭발과 게이트가 닫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여기까지 닥친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수혁은 비행 속도를 더욱 올렸다. 그러곤 전속력으로 항모 갑판에 착함했다.
쿠웅!
올라간 우현을 내려찍자 어마어마한 충격이 발생했다.
항모가 반대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예고 없이 저지른 짓이라 망할 할망구가 또 지랄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내려찍지 않았으면 전복하여 침몰할 만큼 크게 기울어진 상태였다.
압축된 충격을 견디지 못한 수혁의 양쪽 무릎과 정강이뼈가 부서졌다. 끔찍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미간이 채 펴지기도 전에 왕성한 재생력이 손상된 신체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후.”
재생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 고통이 한결 가벼워지자마자 수혁은 아까 해군 놈들과 실랑이할 적에 뚫어 놓은 벌레 구멍을 이용해 빠르게 특작부 일행이 있는 격납고로 향했다.
끼이이익.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격납고 바닥에 긴 스키드마크를 그리면서 정지한 수혁은 눈앞에 광경을 믿지 못했다.
모든 장비가 한쪽으로 처박혀 있었다. 유일하게 제자리를 유지한 건 인간 네 마리가 주렁주렁 매달린 거지 같은 철제 침상뿐이었다.
“김윤조는?”
수혁의 말에 바닥을 뒹굴던 심 박사가 목청 놓아 울었다.
“으어어어엉.”
“왜 울어?”
버둥거리면서 일어난 심 박사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수혁에게 달려들더니 말은 못 하고 한쪽을 가리켰다.
덜덜 떨리는 손끝엔 고정 장치가 풀려서 한쪽으로 처박은 드론의 온통 찌그러진 날개가 있었다. 그 아래는 익숙한 형광 액체가 거친 낙서처럼 퍼져 있었다.
“김……윤조?”
눈이 뒤집힌다는 것이 어떤 건지 수혁은 난생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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