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상황을 인지한 순간 놀랍게도 뇌 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익숙한 분노도 짜증도, 혹은 충격이나 절망, 슬픔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팔을 뻗고 손목 스냅을 휘둘렀다.
쾅! 와장창!
격납고 반대쪽 구석으로 날아간 드론은 다른 드론과 뒤엉켜 형체도 없이 부서졌다.
쾅! 쿵!
뒤이어 남은 파편들 또한 음속으로 날아갔다. 굉음과 함께 격납고를 형성하는 거대한 철제 기둥이 푹 꺾였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에게 입력되는 정보는 오로지 하나였다.
구석에 처박힌 인큐베이터는 겉보기에도 상태가 엉망이었다.
일전에 김윤조가 인큐베이터를 두고 섬세하고 중요한 기기라고 강조에 강조를 거듭했었다. 약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잠금장치가 일그러지는 연두부 같은 기계는 드론의 날개 무게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상자째로 마구 흔든 후 꺼낸 카스텔라처럼 곳곳이 형편없이 뭉그러진 채였다. 인공 양수를 주입하는 배관이 터져서 인공 양수를 울컥 뱉고 있었다.
“김윤조!”
심 박사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갔다.
그보다 수혁이 먼저 인큐베이터에 도착했다.
방탄유리로 만들어진 덮개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가득했다. 조금 주저앉긴 했어도 산산조각이 난 건 아니었다. 대신에 덮개를 감싼 철제 프레임이 일그러져서 그 사이로 인공 양수가 샜다. 거기엔 드문드문 붉은 핏덩이가 섞여 있었다.
콱.
트리플 S급 에스퍼의 다섯 손가락이 방탄유리에 박혔다. 당기자 이미 망가진 덮개가 우지직 찢어졌다.
그 안엔 헬멧만 벗었을 뿐 여전히 전투복 차림인 김윤조가 있었다. 인공 양수에 젖은 얼굴에선 생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윤조?”
부르는 말에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대신에 귀와 코에서 핏물이 번졌다.
수혁이 그를 망가진 인큐베이터에서 꺼내려고 할 때였다.
“안 돼! 건드리지 마!”
심 박사가 달려들어 수혁의 손길을 뿌리쳤다.
“뇌 손상으로 재생 중이었어. 건드리면 안 돼.”
흥건한 눈물을 손등으로 닦던 심 박사는 빠르게 패널을 조작했다. 하지만 망가진 인큐베이터는 아예 꺼져 버렸다.
“……살아는 있는 거지?”
“…….”
심 박사가 대답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런 심 박사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은 뻘건 건지 창백한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살아 있는 거냐고.”
“몰라.”
“……그쪽이 모르면 누가 아는데?”
수혁이 조용하게 되물었다. 심 박사의 어깨를 붙잡은 손아귀에 힘이 점점 들어갔다.
“놔…… 아파.”
“김윤조, 살아 있냐고 묻잖아.”
음산한 음성에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강 소령.”
최정이었다.
“현재 김 준위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심 박사야. 할 일을 하게 두어야 생사 여부를 확인하겠지?”
그 말에 강수혁은 심 박사의 어깨를 놓았다. 그러곤 최정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그의 전신에서 찬란한 오로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꿀꺽.
최정은 마른침을 삼켰다.
능력을 최대치로 개방한 강수혁을 가까이에서 본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G형 게이트가 열렸을 때 그리고 지금.
평소라면 덜덜 떨면서 징징댔을 작전사령관은 이성을 놓은 에스퍼 앞에서 놀랍게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했다.
“강수혁, 정신 차려.”
“내가 정신 차리면 김윤조가 살아나나?”
“가능성이 있어.”
최정의 목을 거머쥐려던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발광 때문에 최정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기에 강수혁이 무슨 짓을 하려다가 멈춘 건지 자세히 보진 못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것만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최 대령님. 캐나다 해군에서 답변이 왔습니다.”
뒤에 서 있던 장세인이 드물게 육성을 냈다. 강수혁도 들으란 의도였다.
최정은 아까 심나연과 강수혁이 드론을 들어내고 있을 때 장세인을 통해 캐나다 해군의 가이드 시설 및 지원 여부를 타진했다.
“캐나다 항모에 풀 모드 인큐베이터가 있고, 즉시 지원 가능하답니다. 응급 상황을 인지하고 대비 중이니 바로 이송하라고 합니다. 대신 승선은 가이드와 가이드 관리 담당자 외 비에스퍼 인원 1명 한정입니다.”
이쪽 가이드가 죽기 직전이라는 말에 캐나다 해군이 군사적 기밀 시설을 공유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천우신조였다.
“캐나다 측 장비를 쓴다면…… 어쩌면 가능성 있을지도 몰라. 거긴 우리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또 김윤조는 목만 남았어도 살아난 전적이 있으니까.”
이성을 찾은 심 박사가 황급히 패널을 집어 들었다.
“그러니까 강 소령은 일단 진정하고 임 중위가 순간이동…… 억!”
최정이 임성준에게 지시를 내리기 전에 강수혁이 먼저 움직였다.
쾅!
굉음과 함께 격납고에 국지 폭풍이 몰아쳤다.
최정을 비롯한 다른 두 명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그들이 몸을 일으켰을 때, 격납고 천장 구석에 거대한 구멍을 뻥 뚫려 있었다. 그 사이로 옅은 별가루 같은 것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리고 강수혁은 온데간데없었다. 망가진 인큐베이터와 심 박사도 함께 사라졌다.
“장 대위.”
-캐나다 해군에 이미 통보했습니다.
최정의 말에 장세인이 대답했다.
“김 준위가 못 깨어나면 어떡하죠?
임성준이 물었다.
“어떡하긴. 강수혁 손에 캐나다 함대가 작살날 거고 그럼 아마 캐나다의 SOS를 받은 미 항모 전단이 하와이에서부터 날아오겠지. 북미 상대로 전면전 벌어지면 뻔하지. 우리 마누라와 딸들은 아빠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아, 시발.”
최정의 암울한 대답에 임성준이 욕설과 함께 사라졌다.
혹시라도 전면전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 측에서 강수혁을 막아야 했다.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못 막더라도 우리 측의 명령이 아닌 강수혁 개인의 일탈 행동으로 보이도록 최대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편이 좋다. 임성준은 그런 측면에서 최적이었다.
“장…….”
-네. 실시간 통보 중입니다.
캐나다 해군이 건 조건을 어긴 상황이었다. 제발 최악의 결과만은 피하기를, 최정은 천지신명에게 간절히 빌었다.
* * *
원래 캐나다 항모 전대는 벤쿠버를 출발하여 북태평양을 지나 하와이로 남하 중이었다. 도중에 갑자기 F형 게이트 출현을 인지하고 뱃머리를 북으로 돌려 달려갔다. 혹시나 F형 게이트가 캐나다 서해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가시거리에 들어왔을 때 위성 궤도에서 내려오는 레이저 저격을 발견했다. 그제야 캐나다 해군은 인근에서 타국 해군이 전투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태평양 연합 주축국으로서 태평양 바다를 수호할 의무가 있기에 즉시 전투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이제껏 기록된 바 없는 초거대 플라이를 발견했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거대 괴물은 북미의 최신 레이저 함포를 상대로도 거뜬하게 버텼다.
전투 중에 저쪽 해군에게 교신을 시도했으나, 게이트로 인한 전파 교란으로 통신이 어려웠다. 다행히 텔레파시로는 접촉이 가능했다.
한국 해군 소속 제주도 항모 전대로, 그들은 격렬한 전투 한가운데 있었다.
캐나다 측은 한국 해군이 게이트 발생 전부터 대응하고 있었음을 알고 놀랐다. 중급 F형, 그것도 해상에 발생한 게이트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버틴 것이 경이로웠다.
하지만 초거대 플라이의 발생으로 인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필요하면 전술핵을 써야 할 수도 있다.
게이트 발생 이후로 캐나다도 미국의 협조를 받아 핵 무장한 상태였다. 다만 발사 시에는 양국이 협의해야 하므로 즉시 전술핵 사용 여부를 상부에 건의했다.
F형 게이트를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서는 작전보다는 물량이 중요했다. 한국 해군은 함대 방위(防衛)로도 급급했고, 캐나다 해군도 일반 플라이만으로도 벅차다. 초거대 플라이까지 염두에 두자면 미 해군에 긴급 연락을 해야만 했다.
지구상 첫손에 꼽히는 군사 대국인 미국은 이미 F형 게이트 발생을 인지하고 하와이에서부터 북상 중이었다.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 캐나다 해군은 플라이 떼가 북미 대륙 쪽으로 향하지 않게 최대한 버티는 거였다.
캐나다 해군이 한국군 측 에스퍼를 통해 서울 사건으로 유명한 트리플 S급 에스퍼가 최전방에 있다는 한국 해군의 통보를 받았다. 2차 위성 궤도 저격 후에 그 에스퍼가 초거대 플라이를 거대 창으로 꿰뚫어 제거할 계획이라는 것도.
하지만 캐나다 해군은 그런 무지막지하고 어이없는 계획을 신뢰하지 못했다. 애초에 코스믹 호러급인 G형 게이트를 단독으로 상대했다는 얘기를 전혀 믿지 않았다.
보통은 전술 자원과 최신식 전략 자산은 위력을 가늠할 선전 영상을, 국방부 공식 보유 발표와 함께 공개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통상적인 관행을 깨고 세계 군사 랭킹에 영향을 미칠 초월자급 에스퍼를 8년이나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여느때보다 협조가 중요한 동맹국의 큰 불만을 감수하고 말이었다.
그 태도가 올해 급변했다. 이번 피지 훈련에서 드디어 말 많은 에스퍼를 드디어 공개하기로 한 것이었다.
올해 피지 훈련은 어느 때보다 참석률이 높았다. 트리플 S급을 생눈으로 볼 기회를 어느 나라가 마다하겠는가.
캐나다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한국 해군은 이동 도중에 항모 기관 고장으로 귀환한다는 통보를 보내왔다.
이쯤 되면 공개하기 싫은 게 아니라 공개할 것이 없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래서 ‘트리플 S급’은 한국군의 뻥카로 잠정 확정되었다. 대신 서울에 발생한 G형 게이트가 어떻게 조기에 사라졌는지에 관한 의문이 남았다.
그런 중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한국 해군이 통보한 대로 2차 위성 궤도 저격을 받은 초거대 플라이가 주춤하는 사이, 정말로 투박한 창이 괴물의 푸른 핵을 관통했다.
거대한 삼각뿔 모양의 창은 그대로 게이트를 향해 로켓처럼 쇄도했다. 그러자 게이트가 빠르게 소멸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운이 좋은 상황이며, 동시에 대단히 당황스러운 결말이기도 했다.
캐나다 항모 전단 사령관은 트리플 S급의 존재를 목도하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웬만한 구축함 크기의 창을 초음속으로 날리는 미친 에스퍼가 존재한다고? 그것도 한국에? 그는 수집한 시각 자료를 즉시 상부에 보고했다.
충격을 수습하기도 전에 한국 해군 측으로부터 더 충격적인 협조 요청이 도착했다. 가이드가 생사를 헤매는데 그쪽 가이드 장비가 파괴되었으니, 캐나다 가이드 장비를 빌릴 수 있겠느냐고.
한국군이 보유한 가이드는 트리플 S급을 담당하는 가이드다. 한국 측 기밀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긴급 대 게이트 대응 체제를 구축한 캐나다 총리와 군 관계자는 사령관의 실시간 보고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한국 측이 보유한 가이드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캐나다 사령관이 휘하 에스퍼를 통해 협조 가능함을 알리자마자 함대 레이더에 초음속 비행체가 떴다. 뭐냐는 물음에 레이더 담당 장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망원경으로 전방에서 접근 물체를 관찰하던 부사령관이 경악성을 뱉었다.
사령관은 그에게서 망원경을 뺏다시피 가져와 제 눈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미친 속도로 접근하는 오로라 발광체를 발견했다. 트리플 S급이 친히 날아오고 있었다.
캐나다 해군 소속 가이드 개발자이자 관리 조정 전문가인 제이콥 롭슨 대령은 항모 내 에스퍼-가이드 전용 의무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원래 에스퍼와 가이드 관련 시설은 최중요 기밀 시설로 외부에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 롭슨이 관리하는 항모 전단 의무대 소속 의무실은 사실상 원천 기술 보유자인 미군 외에는 아예 접근 불가능이었다. 사실 미군도 들어오려면 캐나다 측의 우선 협조 요청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군도 아니고 한국군이라고?
롭슨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고작 2년 만에 단독 기술로 만들어 냈다는 한국군의 가이드가 어떤지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인큐베이터를 작동시키면서 각종 약물을 준비했다. 한국군 측 가이드 조정관도 함께 오기로 했기에 일단 그에게 모든 장비를 전적으로 맡길 셈이었다. 그가 롭슨의 시설을 사용한 기록과 함께 의무실에 사각 없이 설치된 카메라를 통한 시각 자료를 추후에 꼼꼼히 조사할 거다. 한국군도 그 정도의 기밀 누설은 각오하고 가이드를 캐나다 이송하는 걸 테니.
쿵!
갑자기 거대한 충격이 의무실을 뒤흔들었다. 약병이 마구 흔들렸다. 의무병을 비롯한 롭슨은 놀라서 사방을 경계했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트리플 S급 착함! 트리플 S급 착함! 모든 전투병 전투 태세로!
잠시 후 요란한 군홧발 소리가 의무실 인근에 가득했다. 롭슨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의무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의무실의 슬라이딩 도어로 향했다.
삐익.
밖에서 누군가 도어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 눈부신 오로라 빛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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