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10. 정산
태평양 연합의 주축국인 미국 전단과 캐나다 전단, 그리고 이번 피지 훈련의 기대주인 한국 함대가 F형 게이트를 만나 큰 전투를 치렀다는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다.
대(對) 게이트 시대에 접어든 이후로 각종 네트워크에는 실제 전투 영상이 차고 넘쳤다. 웬만한 규모가 아닌 이상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힘들었다.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자연 파괴를 가져오는 게이트를 엔터테인먼트로 즐기는 몰(沒) 인간성에 관한 지적이 계속 나와도 안전한 집 안에서 즐기는 게이트 영상은 지난 80년간 사상 최고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대중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소셜미디어 세상에서 ‘게이트 체이서’라는 게이트 전문 개인 미디어의 발생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구독자가 수억을 헤아리는 세계적인 게이트 체이서 중 하나는 막강한 유명세를 바탕으로 자본을 축적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지역 구독자에 의해서 촬영된 미공개 게이트 동영상을 제보받거나, 혹은 밝히는 없는 경로로 각국 정부나 군부의 미공개 영상을 입수해 공개하곤 했다.
이번 F형 게이트는 북태평양 한가운데서 벌어진 전투이기에 구독자 제보 영상은 없을 거라고 밝혔던 게이트 체이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초대박’ 영상이라며 북태평양 F형 게이트 직접 촬영 영상을 공개했다.
그건 사건 발생 당시 인근 해역을 지나던 컨테이너선 선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휴대전화 렌즈로 촬영한 영상으로, 평소 게이트에 관심 있던 구독자였던 선원은 큰돈을 받고 게이트 체이서에게 판매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선상에서 찍은 10분 짜리 영상은 초점이 잘 맞지 않고 또 노이즈도 가득했다. 그런 점이 밤하늘을 밝히는 거대한 청록색 게이트와 그 인근을 날아다니는 플라이를 더 섬뜩하게 강조했다. 이 영상은 공개 후 단 3일 만에 재생 횟수 28억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이번 북태평양 F형 게이트 사건이 크게 화제가 된 건, F형이 비교적 희귀한 게이트며 동시에 수천 마리 플라이와 벌이는 전투가 장관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80년 게이트 발생 역사상 처음 보는 ‘골드 드래곤’과, 그를 거대한 창으로 꿰뚫어 처치한 ‘영웅’의 출현이었다.
‘저 미친 에스퍼는 누군가!’
처음에는 세계 최강의 군사 패권국인 미국이 숨겨 놓은 에스퍼라는 설이 나돌았다.
항상 에스퍼 개량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했던 미 군부가 비밀리에 에스퍼급 안드로이드를 제작 성공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혹자는 한국 해군도 인근에 있었다는 근거로 저것이 한국군이 자랑하던 트리플 S급이 아니냐고도 했다. 그 의견은 군 관계자와의 인연을 핑계를 댄 게이트 체이서가 한국 해군이 당시 항모 기관 고장으로 귀환하던 중이었다는 반박에 쏙 들어갔다. 항모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한국군이 저런 에스퍼를 보유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편견이 크게 작용했다.
미군의 숨겨 놓은 최종 병기라는 초반 분위기는 캐나다 해군 측으로부터 흘러나온 좀 더 고화질에 안정적인 비디오 화면이 경쟁 게이트 체이서 채널을 통해 공개되면서 완전히 반전되었다.
두 번째 영상은 초고화질 군용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기존에 공개된 영상에 비해 촬영 거리도 훨씬 가까워서 날아다니는 플라이의 형태와 F형 게이트의 거대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거기다가 골드 드래곤의 눈코입이 없는 징그러운 외향과 함께 그에게 맞서는 에스퍼의 실루엣까지 잘 잡아냈다.
검은색 스텔스 전투복을 입은 에스퍼는 은은한 오팔색 혹은 진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의 소속을 확인하듯 팔뚝을 향해 확 당겨진 장면에서는 에스퍼의 소속을 나타내는 패치가 흐릿해도 분간 가능한 수준으로 잡혔다.
[대한민국]
흰 바탕에 선명한 검은색 한글을 읽어 낸 시청자가 동시에 의문 부호를 댓글에 남발했다. 국가명 아래에는 한국 특유의 태극 마크와 함께 부대 마크도 달려 있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단숨에 축제의 장을 열었다.
-특작부! 강수혁이다!!!!!!!!!!!!!
-말했잖아 개새끼들아!!!!!!!!!!!! 우리나라에 트리플 S급 있다고 시발!!!!!!!!!!!
-존나 말을 해도 들어처먹질 않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놈들 개나대다가 우습게 됐쥬?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씨 그전 영상도 굴러가며 봐도 강수혁인데 나만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답답해 뒤지는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상 댓글에는 순식간에 한글이 치고 올라왔다.
그 영상이 공개되고 15분이 지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트리플 S급 에스퍼’에 대한 속보가 홍수처럼 터졌다.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공신력 있는 주요 언론을 통해 결국 F형 게이트 대응에 있어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것이 한국 특수작전사령부 소속 소령 강수혁이라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공동 발표가 있었다.
발표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두 국가는 물밑에서 쌍욕이 난무하는 마라톤 화상 회의가 있었다. 특히 미 해군 사령부는 한국 국방부와 거의 드잡이질 하기 직전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캐나다는 충격이 큰지, 말이 없었다.
주요 쟁점은 미 해군이 가져간 한국형 인큐베이터와 강수혁이 확보한 로건 노리스의 맞교환이었다.
로건 노리스를 존경한다며 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따지겠다는 표면적인 태도와 달리, 미 국방성은 즉각적인 맞교환을 은근히 미루었다.
강수혁의 위력을 생생하게 목도한 그들은 강수혁에 대한 첩보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두고 다방면으로 정보를 취합했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로 제대로 된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에스퍼에 대한 자료는 한정적이었다. 필연적으로 한국 내 첩보가 중요한데, 문제는 한국 내에서도 강수혁에 대한 파일은 극소수만 접근할 수 있어 쉽게 확보하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형이긴 해도 한국의 인큐베이터는 대단히 큰 자산 가치를 지녔다. 현재 가동 가이드가 한 명이라는 한국군의 공식 발표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그 인큐베이터의 주요 사용자는 김윤조로 추정되며, 그는 강수혁 전담 가이드였다. 거기다가 캐나다 항모에 있던 인큐베이터 자료까지 취합하면 김윤조와 강수혁에 대해 많은 정보를 캐낼 수 있다.
인큐베이터 해체 및 해킹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기 전까지 그걸 한국에 돌려줄 수 없다. 대신에 미 국방부는 은밀하게 노리스 구출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노리스는 한국에서 인질로 지내야 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일방적인 태도에 불만이 대단히 컸다. 강수혁을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나, 강수혁만으로는 미국과 아예 맞서긴 힘들었다. 무역 제재가 가해지거나 혹은 해상 봉쇄라도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8년 전 G형 게이트의 후유증을 아직도 안고 있는 경제가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 재수 없고 거지 같아도 일단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수혁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양극으로 나뉘었다.
여당에서는 그나마 강수혁이 있어서 이만한 줄 알라고 국방부와 해군을 두둔했고, 야당에서는 제주도함의 기관 고장을 강수혁이 일으켰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히라고 주장했다. 대정부 질의와 함께 해군 사령부와 육군 사령부, 특히 특작부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국정 감사가 벌어질 터였다. 덕분에 장선욱 중장의 머리카락이 날마다 한 움큼씩 빠졌다.
시끄럽게 돌아가는 부대 외부와 달리 뜨겁다 못해 활활 불타는 감자 그 자체인 특작부 그중에서도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은 본부 건물 지하 연구실에서 게으르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다음 임성준 중위.”
“네에. 중위 임성준.”
반쯤 졸던 임성준이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옆에 앉은 장세인에게 넘겼다. 느릿느릿 일어난 그는 생활복을 입고 부대 마크가 찍힌 슬리퍼를 끌면서 자신을 부른 연구진 앞으로 갔다.
“손바닥 대세요.”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진이 패드를 내밀었다. 임성준은 시키는 대로 손바닥 인증을 마치고 연구진이 시키는 대로 각종 검사를 받았다. 서너 가지 약물 주사를 맞고 에스퍼용 재활 프로그램 처방을 받은 후에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 장세인 대위.”
“자.”
이번에는 장세인이 커피를 임성준에게 넘겼다.
검은 드레스 대신에 특작부 의무대 마크가 찍힌 환자복을 입은 장세인은 산발에 창백한 낯을 하고는 느릿느릿 걸었다.
특수 수송기를 통해 특작부 비행장에 착륙했을 때 장세인은 아예 걷지도 못했다. 대규모 인원을 상대로 초장거리 텔레파시를 마구 쓴 탓이었다.
그건 임성준도 마찬가지였다. 다중 점프에 대규모 인원 이동까지. 심신이 완전히 걸레짝이었다.
둘 다 전투 포상 휴가 일주일을 받았으나, 부상 치료 및 회복만으로도 빠듯했다.
귀환하자마자 바로 의무대로 이송되어 부스터 약물이 든 링거 두 팩을 연이어 맞으며 숙면한 후라 노인네 같아도 그나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본관 지하에 있는 에스퍼 건강관리과(科)에서 각종 검사와 검진을 받았다.
“근데 강수혁 소령은? 정말로 검사받으러 안 와?”
건강관리과 과장인 조상택 중령이 손에 든 차트를 넘기면서 물었다.
“글쎄요.”
임성준이 반쯤 졸면서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조상택이 혀를 찼다.
“괴물 같은 재생력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만. 이번엔 위험했다면서. 전신 스캔도 맨날 빼먹고 말이야.”
“무슨 일 있으면 심 박사님이 잡으러 가겠죠.”
임성준이 무성의하게 대답할 때였다.
“나는 여기 있는데?”
“응?”
임성준이 뒤를 돌아보자 복도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있는 철문 사이로 심 박사가 막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난리를 치고도 피곤하지도 않은지 제법 멀쩡한 심 박사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서 이쪽으로 왔다.
“박사님이 왜 여기 계세요?”
“영감탱이 샘플 확보하러. 조 박사, 이따가 그쪽 설비 사용 가능하지? 영감탱이 정신 덜 차렸을 때 털게.”
“네. 장세인만 끝나면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 에스퍼용 표준 인큐 쓰실 겁니까.”
“응. 내 연구실 인큐베이터를 영감탱이에게 까발릴 순 없으니까.”
두 박사가 노리스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임성준은 멍하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강 소령님은 어디 갔습니까?”
“강수혁?”
그 말에 심 박사가 코웃음을 쳤다.
“어디겠냐?”
“모르겠는데요?”
“12시간 5회.”
“아.”
그제야 임성준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윤조가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동안 내내 붙어 있더니 재생 끝나자마자 잽싸게 낚아채 갔어.”
“와, 그렇게 능력을 쓰고도 그럴 힘이 있네요. 부럽습니다.”
설명 없이도 잘 알아들은 조 박사가 성의 없이 박수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