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밖에서 경호원을 비롯한 비서관들이 줄줄이 들이닥쳐 피를 토하는 이청규를 부축하려고 애를 썼다.
그때 윤조는 반사적으로 강수혁을 봤다. 이청규를 둘러싼 소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차가웠다. 심지어 입꼬리가 미미하게 위로 향하기까지 했다.
‘설마?’
강수혁은 정밀 조작의 달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에게 확인하려는 찰나 응급 구조대가 들이닥쳤다.
“관련 없는 분은 당장 나가십시오!”
이청규 비서들이 특작부 일행을 몰아냈다.
갑자기 의원실에서 떠밀려 나온 일행을 비서 장교가 눈치껏 휴게실로 이끌었다. 그는 서류 가방에서 작은 기계를 꺼내더니 휴게실 사방을 확인했다.
“클리어.”
비서 장교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장선욱이 입을 열었다.
“강수혁이, 네가 그랬냐?”
“썩은 호박 새끼가 열받게 하잖아. 어디서 괴물 운운이야. 시발 새끼. 제 면상은 타다 만 슬라임같이 생긴 주제에.”
“어떻게 한 건데?”
“위장 벽을 얇게 포 떴지. 엄청 아플걸.”
“그게 가능합니까?”
윤조가 물었다.
“당연하지. 심장 판막 뜯어내려다가 참았어.”
“소름 돋네요.”
비서 장교의 말에 윤조 또한 동의의 눈길을 보냈다. 트리플 S급 에스퍼란 생각보다 훨씬 교활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절대로 적대시하면 안 되는데 이청규는 이미 망한 듯 보였다.
“어쩌려고 그래? 들키면…….”
장선욱이 탄식했다.
“안 들켜. 칙칙한 얼굴에 검은 곰팡이 핀 새끼들은 다들 위궤양 하나쯤은 달고 살더라고. 그리고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혹시 증거 있다고 하면 알려 줘. 알아서 처리할게.”
“저게 뚫린 입이라고. 어차피 할 거면 내가 고개 숙이기 전에 하든가!”
“아, 미안.”
망나니의 태연함에 장군의 면상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어쨌든 강 소령 덕분에 오늘 국정 감사는 넘겼네요. 분명히 정밀 검진을 받을 테니 이청규 대표는 참석 못 할 겁니다. 다른 의원들은 적당히 무마하면 됩니다.”
그나마 비서 장교가 좋은 얘기를 꺼냈다.
여당 대표의 갑작스러운 각혈 발작 소식은 국회 내에 빠르게 퍼졌다. 가까운 3차 병원 특실로 이동하여 정밀 검사를 받는 동안 감사 일정을 미루냐 마느냐 하는 소리가 감사 위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청규 대표가 없는 틈을 타 어떻게든 정부에 심을 실어 주려던 여당 원내 대표와 타 의원들의 동조로 감사 일정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내심 이청규에 기대하고 있던 야당이 오히려 감사 일정을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국가 핵심 전력인 강수혁 소령을 쓸모없는 국회에 계속해서 잡아둘 수 없다는 반론에 하는 수 없이 정시에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청규가 빠지자 감사 주도권은 다른 여당 감사 위원에게 넘어갔다. 마침 여당 원내 대표처럼 정부에 호의적인 국회의원이라 무리한 질문으로 괜히 논란을 만들거나, 혹은 정부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몰아가지는 않았다.
여당 측 질문은 통상적인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장선욱은 막힘 없이 대답했다. 강수혁을 수면 위로 올리고 싶지 않은지 간단한 인사말과 전투 소감 등을 물어본 것이 다였다. 그건 전부 김윤조가 대답했다.
감사가 특작부에 호의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분위기를 일찍 감지한 야당 출신 감사 위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가지를 가지고 물고 늘어졌다. F형 게이트 발발 전에 제주도함을 파손하여 귀항하게 만든 책임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제주도 함대가 단독으로 F형 게이트에 잘 대처했을 거며, 북미에게 큰 도움을 받아 국가적 부담을 받을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는 논지였다.
“태평양 공해상에서 발생하는 게이트는 태평양 연합의 주도하에 대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태평양 연합 합의에 따라 북미 전대는 당연히 공동 대응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도함의 파손 여부는 북미 전대 합류 여부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을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장선욱이 정확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했다. 사실 야당 의원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의미 없는 물고 늘어지기밖에 안되는 데도 저런 질문을 한 것은 지지층 중에 소식이 늦거나 편견에 가득하거나 혹은 지적 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을 부추기기 위한 요식 행위였다.
“그렇다면 제주도함은 단독으로 F형 게이트를 상대할 능력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돈을 들여서 제주도함을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특작부가 아니라 해군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특작부는 책임이 없고 전부 해군 탓이다?”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주도함은 해군 소속이고 그에 관해 기본적으로 육군인 저희 특작부가 왈가왈부할…….”
“그러니까 장 중장 말은 해군이 못나서 그렇다는 거지 않습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아주 물고 늘어지려고 작정을 했다. 싸움을 괜히 육군과 해군 반목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어차피 같은 국방부 산하에서 어떻게든 동고동락해야 하는 각 군 입장에서는 좆같은 일이었다.
해군도 감사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겠으나, 여기서 불똥이 자기들 측으로 튀면 내년도 예산 편성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어떻게든 특작부 탓으로 돌려야 한다.
한 아버지 아래 삼 형제처럼 치고 박고 싸우기가 일상인 육해공 삼군 사이가 앞으로 더 벌어질 수 있다. 대(對) 게이트 시대에선 사이가 좋아도 모자랄 판인데. 망할 국회의원들은 다음 선거가 중요할 뿐, 정말로 중요한 게 뭔지 따위 모르고, 설사 알아도 무시하는 무리였다.
“특작부 강수혁 소령. 소령이 제주도함을 임의로 파괴했다는 소리가 있어요. 전투 불능 상태에 빠트렸다고. 사실입니까?”
다음 질문은 강수혁에게 바로 던져졌다. 사전에 합의한 대로 그에 대한 답은 김윤조가 하려했다. 마이크 버튼을 누르자마자 한 야당 의원이 소리쳤다.
“강수혁 소령, 직접 답변하세요.”
팔장 끼고 상체를 뒤로 느긋하게 젖힌 강수혁이 보란 듯이 눈알을 굴렸다. 질문 당사자를 비롯하여 인근에 앉은 인물들이 연이어 흠칫거렸다.
“강수혁 소령,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감사 위원장인 여당 의원이 권했다. 대충 대답하고 넘어가자는 신호였다. 장선욱이 김윤조에게 김윤조가 강수혁에게 빠르게 눈치를 전달했다. 귀찮은 기색을 팍팍 내던 강수혁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뭘 대답하라고……요?”
반말이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지금 한 질문 말입니다.”
“질문이 뭔데요?”
“지금 장난합니까? 국민이 지켜보는 엄정한 자리입니다. 집중하십시오.”
조롱당한 야당 의원이 호통쳤다. 그에 강수혁의 시선이 그자에게 꽂혔다. 화를 내다가 흠칫 굳은 야당 의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맞받았다. 딴에는 국회의원이랍시고 배짱이 있는 편이었다.
“제주도함을 파손한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
마이크가 켜진 중이라 강수혁이 김윤조에게 물어보는 음성이 크게 났다. 김윤조는 그의 귓가에 대고 빠르게 답변을 알려 줬다.
“훈련 중에…… 조준 실패로…… 격벽을 파손했습니다…… 죄송합…… 아니 훈련 중에 파손이야 흔한데 그게 왜 죄송해? 그리고 조준 실패한 적 없…….”
김윤조의 손이 책상 밑에서 강수혁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방금은 말실수입니다. 취소합니다. 훈련 중에 사고로 격벽을 약간 부쉈습니다. 해군에서 양해했답니다. 감사합니다.”
뻔지르르한 낯으로 시키는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한 강수혁이 다시 상체를 뒤로 젖혔다.
“태도가 그게 뭡니까? 여기가 무슨 놀이터인 줄 알아요?”
이번에는 태도를 따지고 들었다. 어떻게든 몰아가려고 안달이었다.
“훈련 중 파손 비용이 얼만 줄 알아요? 최신식 항모를 반파시켰으면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제주도가 멀쩡했으면 F형 게이트도 단독으로 대응했을 거 아닙니까!”
줄줄 이어지는 성토에 장선욱이 마이크를 켰다.
“제주도함이 파손되지 않았다고 해도 훈련을 위한 경무장 상태라 F형 게이트 단독 대응은 불가능하다는 전력 평가 전문가의 보고서를 방금 전송해 드렸습니다. 전체 중무장을 했다고 해도 일개 함대 단독 대응은 대단히 위험한 행위로, 태평양 연합 합의에 따라 공동 대응이 당연합니다.”
해당 파일이 각 의원 개인 스크린에 일제히 떴다.
“또한 강수혁 소령은 어디까지나 육군 특작부 소속입니다. 태평양 훈련에 주도적 참여 당사자는 해군 소속 제주도 함대이며 강수혁 소령은 태평양 연합 각국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참여했습니다. 그렇기에 지휘권은 제주도 함대 이율희 사령관에게 있으며 F형 게이트 발발 시 해당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대응에 나선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G형 게이트도 혼자서 닫았잖아요. 그런 에스퍼가 F형 게이트를 혼자 못 잡아요?”
“그 말씀은 군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왜 단독 행동하지 않았느냐는 말씀입니까?”
“실력이 있으니 아군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특수 상황에.”
“군이 평소에 엄격한 지휘 체계를 갖춘 것은 실전 전투라는 특수 상황에서 돌발적인 변수를 만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강수혁 소령은 대단히 강합니다. 유례가 없는 트리플 S급으로 G형 게이트를 단독으로 상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 전략 분석가에 의하면 강수혁 소령이 단독으로 국군 전력의 70퍼센트 이상 담당합니다. 70퍼센트 전력을 개인의 판단에 맡기라는 말씀입니까?”
장선욱의 반박에 의원이 코웃음을 쳤다.
“아니 너무 과장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우리 군이 그렇게 약하지는 않을 텐데요?”
“국방부 산하 군 연구소, 전략방위사령부 산하 전략분석실, 우주과학부 산하 한국 우주 게이트 연구원의 공동 평가입니다. 자료 보내 드렸습니다. 참고로 국군이 약한 게 아니라 강 소령이 너무 강한 겁니다. 단독으로 미국과 캐나다 북태평향 함대를 전투 불능 상태에 빠트렸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할 말을 잃은 의원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한 의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강수혁 소령은 대답할 줄 몰라요? 왜 전부 다른 사람이 답변하는 겁니까.”
“원래 말하는 거 안 좋아합니다.”
장선욱의 뻔뻔한 변명에 김윤조와 비서 장교는 입을 꾹 다물면서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본인에게 묻습니다. 강소령, 혼자서 F형 게이트 처리 가능하죠?”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군 기강 유지를 위해서 단독 작전은 되도록 삼가고 있습니다.”
“장 중장 말고 본인에게 물었어요.”
이번에는 김윤조가 나섰다.
“가능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해서 단독 행동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아니 나는 본인에게 물었습니다.”
고집을 피우는 통에 김윤조는 어쩔 수 없이 강수혁 마이크를 켰다. 김윤조를 슬쩍 본 강수혁이 다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가능함.”
“길게 말하세요!”
단답형에 의원이 호통쳤다. 김윤조는 강수혁의 허벅지를 지긋하게 눌렀다. 흥분하거나 화내지 말라는 의미였다. 의도를 알아먹은 망나니가 단조로운 어조로 답변했다.
“가능, 완전 가능, 혼자 하면 더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