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조용히 서서 간판을 보고 있는 윤조에게 전시회 담당 직원이 다가왔다.
“백화점 구매 영수증 보여 주세요.”
“아, 예.”
다른 말은 할 생각도 못 하고 반사적으로 단말기를 내밀었다. 전자영수증을 확인한 직원이 입구를 가리켰다. 딱히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안 들어갈 수 없었다.
어두운 입구 통로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자 흰 국화 무늬 조명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깔린 저주파에 가까운 음악이 자잘한 진동을 만들어 냈다. 약해도 무시할 수 없는 파동이 심장을 흔들었다.
각종 미디어 클립과 사진, 그리고 짧은 글귀로 구성된 전시는 해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도시의 일상 풍경으로 시작했다.
그날 게이트의 중심지였던 더블 역세권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서울 동북부 최대 번화가를 조망하는 화면에는 익숙한 풍경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다니던 쇼핑몰. 세일 때마다 엄마를 졸라 옷을 사러 갔던 백화점. 그 앞에 있는 분식 파는 노점상. 대학 원서 접수 후 아빠와 함께 등록하러 갔던 자동차 운전학원. 쌍둥이와 함께 출근 도장을 찍었던 PC방. 늘 막히는 거대한 도로 양편으로 줄줄이 이어진 익숙한 상점들.
숨이 턱 막혔다.
“지나갈게요.”
다른 관람객이 들어와 살짝 밀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윤조는 떠밀리듯 안으로 들어갔다.
흑백으로 찍은 거대한 서울 동북부 사진이 한 벽 전체를 채웠다. 무의식적으로 찾았다.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 한 동이 3D처럼 불쑥 튀어나와서 윤조를 사로잡았다.
집이었다. 엄마와 아빠, 형이 있었던 접. 작은 돌조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아주 사라져 버린 집. 손에 닿지도 않는 저 높은 곳에 그 집이 있었다.
“흑…… 흐윽.”
흐느낌이 터졌다. 반사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른 손으로는 눈가를 황급히 가렸다. 하지만 손등에 묻어나는 물기는 없었다. 울음소리는 윤조가 낸 것이 아니었다.
“흐윽…… 여기가…… 할머니 집이야.”
바로 옆에서 낯선 손이 눈앞으로 불쑥 들어왔다. 굵은 금반지를 낀 손이 닿은 곳에는 일련번호를 공유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시작점이 있었다.
돌아보니 노년과 중년 사이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흐느끼는 아주머니 옆으로 자식으로 추정되는 젊은 남녀 둘이 있었다. 그들은 모친을 부축하며 달랬다.
“엄마, 울지 마. 벌써 울면 어떻게 해. 나도 눈물 나잖아.”
“그날 엄마만 두고 우리끼리 나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불효녀야. 내가.”
“나도 할머니 보고 싶어.”
자식들은 서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모친을 모시고 가까운 곳에 있는 벤치로 갔다.
이제 보니까 전시장 곳곳에 벤치가 있었다. 거기엔 다리가 아파서 앉은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반쯤 넋이 나간 채로, 혹은 갈 곳을 잃은 채로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순 없었다. 이 슬픈 전시회의 출구는 하나뿐이었다. 직원은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되도록 주변을 보지 않았다. 어떤 사진도, 혹은 어떤 화면도 굳이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성큼성큼 걸어 숨 막히는 공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가 사람을 밀치기도 떠밀리기도 했다.
“뛰지 마세요.”
직원이 윤조의 팔을 잡아 제지했다. 당황한 나머지 들고 있던 커피를 놓쳤다. 바닥에 흩어지는 얼음과 갈색 음료를 보곤 근처에 있던 직원이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당황하는 윤조를 본 직원이 일단 그대로 두라고 말렸다. 빈 컵을 윤조의 손에서 빼앗듯 받아 얼음을 주워 넣던 직원은 거들기 위해 바로 옆에 쭈그려 앉은 윤조를 흘끔 보더니 이내 손을 내저었다.
“안색이 안 좋으세요.”
“네?”
계속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윤조를 본 직원은 허리춤에서 무선기를 꺼내 다른 직원에게 연락했다. 금방 종이 타올 뭉치를 들고 온 다른 직원은 바닥을 닦았고, 처음부터 함께 있던 직원은 윤조를 일으켰다.
“일단 앉으세요.”
가까운 벤치에 떠밀리듯 앉은 윤조를 유심히 뜯어본 직원은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바로 밖으로 모실까요?”라고 물었다.
“괜찮습니다. 약간 당황해서…… 정말로 괜찮습니다. 잠시 앉았다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혹시 어지럽거나 그러시면 가까운 직원에게 바로 알려 주세요. 출구로 모시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커피를 쏟았는데도 직원이 응대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멍하게 앉은 채 어둑어둑한 전시관 벽면을 보는 중에 문득 깨달았다. 아까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저와 비슷했겠구나.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오는데도 딱히 말리지 않은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저쪽 편에 앉은 사람은 속이 탄 듯 연신 물을 마시고 있었다. 티슈 갑으로 추정되는 종이 상자도 곳곳에 있었다.
합판으로 만들어진 가벽에 뒤통수를 대고 멍하니 흐린 천장을 봤다.
불현듯 입대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8년 전.
어리숙한 일반인 신병이 되어 고참에게 욕을 듣고 구정물에서 뒹굴고 정신없이 훈련과 작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말뚝을 박았다. 치명적인 방사능과 끔찍한 외계 괴물이 돌아다니는 포스트 게이트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극단에 몰아붙였다.
가이드가 되어 외계 괴물을 쳐부수고 게이트를 닫으며 살면 속이 풀릴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무덤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가족을 위해서라도 외계 괴물 하나라도 더 처리하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은 풀릴 줄 알았다.
그도 아니면 도대체 외계 놈들은 왜 지구에 왔고 게이트는 왜 생겨서 아무런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들을 그렇게 삼켜 대는지 영문이라도 알자고.
아마도 입대하면서, 특수부대를 자원하면서, 그리고 특작부로 기어이 이동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았다.
‘지금도 모르겠어.’
눈앞에 돌아다니는 슬라임 괴물을 봐도, 하늘에 열린 청록색 게이트를 봐도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저들은 왜 나타나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윤조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져야 했는가.
몸을 개조하고 생사를 넘나들어도 자신은 여전히 아기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에 화가 났다. 주먹으로 무릎을 내려쳤다.
우르릉 쾅.
깜짝 놀랐다. 무릎을 치는데 무슨 소리가? 처음에는 제 마음속에서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쿠르르릉.
연이어 진동이 들렸다. 실제로 등 뒤에 있는 가벽 저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까 옆에서 울던 아주머니처럼, 기가 막힌 타이밍에 헛웃음과 함께 짜증이 불쑥 치솟았다.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벽을 돌아갔다.
이런 종류 전시에 흔히들 설치하는 미니 상영관이었다. 전시 중인 짧은 영상과 사진만으로도 허물어지는 사람이 속출하는 중에, 이 작은 상영관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화면은 핸드헬드 카메라처럼 마구 흔들렸다. 화면 위는 시뻘건 색이 번져 있었고 아래는 흐릿한 영상이 미치광이 유령처럼 뒤얽혔다. 도대체 뭘 비추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흐릿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길게 줌아웃했다. 그것은 정찰 헬기에서 찍은 것이었다. 군용이라 사운드가 없는 건지, 혹은 보안을 위해서 사운드를 없앤 건지도 몰랐다. 상영관에 깔리는 건 우퍼가 내지르는 진동뿐이었다.
작은 화면은 ‘그것’을 다 담아내지도 못했다. 아득한 크기를 가진 붉은 입구 아래 깔린 도시 건물이 꼭 모래알 같았다. 예상을 훨씬 능가하는 게이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고 필사적으로 회피하는 헬기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불길한 색깔이 일렁이는 외계의 문 사이로 검고 긴 형체가 스르륵 내려왔다. 언뜻 보면 곤충 다리 같은 것은 크기가 상식을 아득히 초월했다. 게이트가 내뿜는 강한 전자력 때문에 휘몰아치는 대기가 형성한 회오리바람도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한낱 우주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단순히 수사(修辭)가 아니라 물리적 사실로 와닿았다. 인간의 상상력으로 자아낸 어떤 예술도 존재적 절망을 저만큼 생생하게 표현하진 못할 것이다.
지구 멸망의 순간이 이러할까.
사고가 멈추고 맥박이 잦아들고 얕은 호흡만이 간신히 이어지는 순간에 저 아래 자욱하게 깔린 먼지구름을 뚫고 섬광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외계 지성체에 비하면 깨알 같은 그것은 날카로운 빛을 뿌리며 검은 형체를 향해 다가갔다. 화면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까지 아마도 수십 킬로미터는 될 까마득한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꼭 슬로모션 같았다.
섬광이 닿자 아득한 형체는 놀란 듯 관절을 굽혔다. 섬광은 다리 주변을 날아다니며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으나, 물리적 크기 차를 극복하기엔 어려웠다.
거기다가 다리는 둘이었다. 다른 다리가 느릿느릿 다가와 빛을 건드렸다. 그렇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음속의 몇 배나 되는 속도로 후려쳤을 것이다. 빛이 픽 꺼졌다. 그러다가 좀 더 아래에서 반짝이며 떠올랐다.
다리에 맞고도 다시 떠올라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빛은 꼭 코끼리에 달려드는 반딧불이 같았다. 수시로 흐릿해졌다가 다시 반짝이는 빛이 가여웠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만해.”
윤조의 목소리는 8년 전 그날에 닿지 못했다. 두 다리를 감당하지 못한 작은 반딧불은 끝끝내 사라졌다. 왼쪽 아래를 아무리 응시해도 빛을 찾을 수 없었다. 헬기 카메라도 아래를 수색하는 듯 각도가 어지럽게 바뀌었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절망처럼 도사렸다. 작은 상영관 위쪽으로 붉은 기운이 강해져 꼭 핏물이 내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런 허무한 기록을 반복 재생하고 있나?
바닥이 흐물거렸다. 지진인가 했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스트레스성 혈압 상승이었다. 가벽을 짚어 어지러움이 빨리 가시기를 기다렸다.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우퍼가 만들어 내는 진동만이 어두운 상영관을 가득 메웠다. 어지러움이 금방 가셨기에 바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전방 왼쪽 아래가 반짝였다.
여린 빛은 이내 무수한 빛 바람을 휘감아 거대한 삼각뿔처럼 피어올랐다. 콘크리트와 철근과 그 외 모든 인류의 파편을 끌어모아 우상향으로 질주하는 빛무리를 향해 붉은 섬광을 뒤집어쓴 검은 다리 둘이 서서히 다가왔다.
둘 간의 간격이 점점 좁아졌다. 빛나는 창과 어두운 칼날이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김윤조.
섬광의 주인공이 이쪽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