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14. 하와이
타타타타타.
수송기는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하와이 인근에 머무는 미 해군의 제12 항모전단 기함인 항모 ‘트럼프’ 위를 선회했다.
지난 세기 또라이 대통령으로 유명한 트럼프의 이름이 항모에 붙은 이유는 제12함대가 미 해군 내에서도 감당 안 되는 또라이들을 모아 둔 또라이 군대이기 때문이었다. 아군을 상대로 전술모의훈련 중 실탄을 날려 구축함 하나를 아주 가라앉힌 주제에 못 피한 네놈들이 실력이 부족한 거라면서 손가락질부터 날리는 개 같은 놈이 함대 사령관으로 앉아 있다. 한마디로 미군 내 ‘특작부’였다.
인종차별주의자로 유명한 미치광이 대통령 이름을 자랑스럽게 단 군단답게 군 내 기강 또한 아군 존중과 인류에 대한 박애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다. 집단을 유지하는 유일한 가치관은 ‘실력’이었다. 장교들도 대부분 에스퍼였고 에스퍼가 아니라도 맨손으로 어설픈 에스퍼는 때려잡을 수 있는 노련한 실력자뿐이었다.
실제로 분위기가 매우 폭력적이고 살벌하여 누가누가 더 미치광이처럼 날뛸 수 있느냐! 이것이 트럼프 전단 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같은 선실을 사용하는 에스퍼 병사들끼리 코골이나 화장실 사용 문제 등등 아주 사소한 일로도 불법적인 결투가 빈번했는데, 미치광이 사령관이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고 이런 분위기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면 태평양 한가운데 던져 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거친 상황을 더욱 부추기곤 했다.
실제로 대(對)게이트 전투 실전 상황이 아닌, 경계 대기 모드에서 사상자가 나는 유일한 부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또라이 항모 전단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트리플 S급 에스퍼를 수용할 파병 부대였다.
태평양연합수송대 소속 조종사는 이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니 이 위치에서 강하하라고 통보했다.
“왜죠?”
윤조의 질문에 저기 인근에 접근했다가 무사히 귀환한 수송대가 드물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수송기 화물칸 입구가 열리기 전에 수송 대원들은 입구 인근에 장착된 기관총을 잡았다.
-태평양연합수송대 대원으로서 존경하는 트리플 S급 에스퍼를 태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모쪼록 비행이 편안하셨길 바라며, 기내 서비스가 마음에 드셨을 경우 저 망할 항모 새끼들을 조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종사의 원한에 찬 작별 인사와 함께 수혁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투복에 헬멧까지 완벽하게 장착한 윤조와 달리 윤조가 선물해 준 헤드셋을 끼느라 헬멧을 들고만 있던 수혁은 헬멧을 들지 않은 다른 쪽 팔로 윤조의 허리를 잡았다.
“헬멧은요?”
“귀찮아.”
“바람에 헤드셋 날아갑니다.”
“잘 잡고 있을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수혁은 들고 있던 헬멧을 공중에 띄우고 대신에 헤드셋을 잡았다. 손을 쓰지 않아도 능력으로 붙들 수 있음에도 굳이 손을 쓰면서 귀여운 척을 했다. 잘생겨서 봐줬다.
수송기 문이 일정 이상 열리자 수송대원들이 엄호 사격을 시작했다.
부아아아아앙!
총알이 주황색 궤적을 남기며 날아가는 동안, 다른 수송대원이 팔을 돌렸다. 빨리 뛰어내리라는 신호였다.
“가자.”
윤조가 한쪽 발을 발등에 올리자마자 두 사람이 수송기 밖으로 날아올랐다. 당연히 낙하산 따위는 없다.
보통 강하할 때는 팔다리를 펴서 공기 저항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낙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낙하산을 펼 때 너무 큰 충격을 받기 때문에 몸에 큰 부담이 간다. 하지만 수혁은 윤조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로 미사일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충돌 직전 풀 브레이크를 밟은 실력과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삐삐삐삑.
윤조의 헬멧 스크린에 빨간색 삼각형 네 개가 우르를 떴다. 지대공 미사일이었다. 두 개는 두 사람을 향해서 다른 두 개는 수송기를 향해서 날아갔다. 당연히 이쪽으로 날아오던 미사일은 도중에 터졌다.
-분노, 흥분, 가학.
페어링을 마친 후 AI는 오랜만에 ‘가학’ 경고를 띄웠다. 이번만큼은 자기혐오와는 전혀 관계없음을 윤조도 알았다. 하지만 당장 급한 건 열받은 수혁 쪽이 아니었다.
퐈아악! 투두두두두두두!
수송기가 막대한 플레어를 뿌리면서 회피 기동을 시전 했다.
쾅!
하나는 플레어를 따라가 터졌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이상하게도 도리어 플레어를 피해서 소송기 쪽으로 곧장 날아갔다.
‘에스퍼!’
누군가 능력으로 미사일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다이내믹한 기동은 불가능했다.
윤조가 신속하게 수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윤조가 가리키는 방향을 흘끔 본 수혁은 공중에 손을 한 번 그었다.
펑!
수송기에 부딪히기 직전 미사일이 자폭했다.
삐비비비비비비빅.
그와 동시에 붉은 삼각형이 무수하게 떴다. 이번에는 모조리 다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지랄이네.”
수혁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러면서 윤조를 흘끔 봤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었다. 윤조는 전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날아오던 미사일 전체가 공중에 멈춰 섰다. 그 사이를 두 사람이 통과하는 동시에 전부 머리를 반대로 돌리더니 이내 날아온 방향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펑! 펑펑!
그중 일부가 도중에 터졌다. 파편을 맞은 다른 미사일도 잇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수혁은 당연히 아닐 테고, 상대측 에스퍼 같았다. 미사일에 대한 지배력을 강수혁에게 잃은 중에도 자폭을 유도하는 걸로 봐서는 실력이 상당했다.
자폭을 피한 미사일은 수면 바로 위에서 비행 각도를 틀어 항모 옆구리를 향해 직진했다.
쾅쾅쾅!
잇달아 옆구리에 직격하면서 거대한 물보라가 튀었다. 하지만 항모는 멀쩡했다. 누군가 보이지 않는 방어막을 쳤다. 당연히 에스퍼의 짓이었다.
“착함한다. 충격에 대비해.”
경고와 함께 수혁이 머리부터 떨어지던 자세를 틀어 두 다리를 아래로 내렸다. 거친 착함으로 정강이뼈를 부러뜨리는 대신에 능력으로 신체로는 중력을 거스르면서 반대로 낙하 에너지는 전체 아래로 쏟아내는 방식을 택했다. F형 게이트 전투를 면밀하게 탐구한 윤조가 고안한 방식으로 페어링 직후 수혁에게 전달, 숙지시켰다.
쾅!
항모 갑판에 무지막지한 충격이 작렬했다. 그와 함께 웬만한 태풍에도 꿈쩍하지 않는 거대한 배가 휘영청 기울었다. 뒤에서 솟아오른 물보라가 갑판 위로 솟아올랐다.
솨아아아!
배를 크게 뒤흔든 수혁은 윤조를 양팔로 안은 채로 물보라를 헤치고 즉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발자국이 그대로 남은 자리에 소형 빔이 날아와 꽂혔다. 꽂혔던 빔은 즉시 두 사람을 향해 날아왔고 수혁은 그것들에 대한 지배력을 빼앗아 전방위로 날려 보냈다.
퍽! 퍽!
자욱했던 물보라가 가시기도 전에 사방에서 다양한 물체들이 날아왔다. 척 보기에도 순간 최대 십만 볼트는 되어 보이는 전기 그물에 국숫집 젓가락 같은 철제 바늘 수십 기에, 하다못해 쿠크리가 부메랑처럼 빙빙 돌면서 날아들었다.
“허.”
짧은 코웃음과 함께 공중에 흩어졌던 수백 만개의 물방울이 거짓말처럼 정지했다가 사방으로 뻗었다.
적절한 운동 에너지를 가한다면 다이아몬드도 잘라 내는 물질이 물이었다. 그리고 강수혁은 움직이는 핵발전소였다.
팅! 쾅! 퍽버버벅!
날아오던 물체는 총탄처럼 날아간 물방울에 튕기거나 부러져서 흩어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비중이 큰 바닷물은 강수혁을 중심으로 하여 갑판 위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박살이 난 갑판 위에 간신히 멀쩡히 서 있는 것도 제법 있기는 했다. 예를 들자면 앞에 마침 엄폐물이 있어서 물벼락을 일부 피했으나 피해지 못한 곳은 다 떨어져 나간 함포라든가. 혹은 그나마 에스퍼 전용 항모랍시고 튼튼하게 지어서 버틴 함교라든가. 그리고 다짜고짜 시비를 건 트럼프 함대의 에스퍼 세 명이라든가.
윤조는 그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총 여자 둘에 남자 하나였다. 그들은 전부 카키색 민소매 셔츠에 군복 바지 차림이어서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남자는 수염을 길게 기른 후덕한 인상의 중년 남성으로 그의 주변으로는 거대한 반원이 그어져 있고 그 뒤에 있는 함포는 반원 범위 밖으로 벗어난 끝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멀쩡했다. 방어막 능력자로 추정했다.
수혁의 주력 병기인 전봇대 텅스텐 빔에 비하면 젓가락에 불과한 작은 바늘을 사용한 건 20대로 추정되는 히스패닉계 여자, 그리고 쿠크리를 잡은 건 웬만한 프로 레슬러라도 쪽도 못 쓸 듯한 엄청난 근육질을 자랑하는 코카서스 계열 30대 여성이었다.
“여자 둘은 일반적인 염력 사용자 추정, 남자는 방어막 사용자 같습니다.”
“방어막은 또 처음이네. 시험해 볼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수혁 뒤로 거대한 물 벽이 솟아올랐다. 물 일부는 두꺼운 수벽이 되어 윤조 주변을 에워쌌다. 나머지는 금방 전봇대 모양으로 쪼개져 제자리에서 회전을 시작했다.
각종 미네랄을 함유해서 담수보다 더 비중이 높은 묵직한 해수 기둥은 미사일처럼 앞이 뾰족하게 늘어졌다. 직격으로 맞으면 A급 재생력을 보유하지 않은 에스퍼는 가슴에 거대한 바람구멍과 함께 즉사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A급 재생력 보유자라도 메딕이 당장 가사 처리해야 살 수 있을 거다.
정리하자면 강수혁은 눈앞에 있는 놈들을 죽일 생각이었다.
“살살 하십시오. 죽이면 곤란합니다.”
“저 새끼들이 먼저 죽여 달라고 용을 쓰잖아.”
들을 기색이 없는 수혁이 턱짓했다. 그와 함께 묵직한 물기둥이 총알 같은 속도로 각 에스퍼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