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가이드가 된 이후로 이렇게 마음이 푸근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물먹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방사능 기운이 물씬 풍기는 공기를 만끽했다. 전통적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에게 버려져 오지가 돼 버린 신성한 제(祭)의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즐길 수 있다니. 인조인간이 된 보람이 있다.
평화로운 이쪽과는 반대로 옆에 있는 에스퍼는 혼돈의 도가니였다. 툭 던진 한마디에 안절부절못하면서 눈치를 살살 살피는 남자를 한때 얼마나 미워하고 두려워했는지. 이렇게 귀여운 것을.
“저기 김윤조.”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상대를 향해 피식 웃었다.
“농담입니다.”
“응?”
“농담이라고요. 두 분이 아무 사이도 아니란 건 바보도 알 겁니다.”
그 말에 에스퍼는 눈에 띄게 안심했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리다가 별안간 미간을 구겼다.
“알면서 왜 사람을 놀라게 해? 이 자식아.”
“사실 약간 섭섭하긴 했어요. 하지만 그거야 제가 소령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제 눈에 초합금 콩깍지가 낀 걸 인식하고 앞으로 질투심이 생길 시, 즉각적인 판단을 다소 유보하고 감정 민감도를 낮춘 상태에서 재심사하기로 AI와 합의했습니다.”
담담하게 보고하자, 수혁은 기가 막힌 듯 콧바람을 픽 뱉었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한숨을 발사하더니 이번엔 대뜸 눈에 불을 켰다.
커다란 손이 윤조의 목 뿌리와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을 끌어당겼다. 앉은 자세가 자연스럽게 상대를 향해 무너졌다. 에스퍼의 굵은 목은 생각보다 유연해서 윤조가 고개를 돌리기 전에 입술이 포개졌다.
매끄럽고 음흉한 혀가 살짝 벌어진 이쪽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 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기운을, 윤조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체를 젖히면서 거대한 남자가 제 위로 겹쳐질 수 있게 환영했다.
풀썩.
방사능에 찌들어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은 마른 땅 위에 두 인영이 포개졌다. 선선한 바람에 말랐던 입술이 촉촉해졌다. 혀가 얽히면서 뜨거운 숨이 양편을 가리지 않고 오갔다.
느슨한 손길이 윤조의 허리께를 쓰다듬더니 새로 산 하와이언 셔츠 자락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바닥 모래가 신경 쓰였으나, 키스에 몰두한 나머지 가슴의 돌기를 희롱하는 손길을 밀어내지 못했다. 대신에 얼른 끝내고 싶어서 상대의 셔츠를 끌어 올렸다.
“여기서 해도 돼?”
“……이미 할 마음 만만이시면서 왜 물어봅니까?”
“혹시나 해서.”
입술을 붙인 채로 수혁이 히죽 웃었다. 혀를 내어 얄밉고 귀여운 미소가 번진 입술을 핥았다.
가슴을 더듬던 손이 다급하게 내려와 윤조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반대로 윤조는 그의 셔츠를 끌어 올려 기어이 벗겨 냈다. 허물처럼 훌렁 벗겨진 특대 사이즈 하와이언 셔츠는 곧 윤조의 허리 아래에 깔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다리를 벌리면서 윤조는 손을 내려 수혁의 바지춤을 끌렀다. 속옷 밴드를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성기가 반쯤 일어선 채로 머리를 드러냈다. 딱딱하고 굵은 기둥이 똑같이 일어선 윤조의 성기에 닿았다. 스파크가 팍 일었다.
커다란 손이 윤조의 엉덩이 양쪽을 붙잡았다. 골반이 훌렁 들리더니 국부가 단단하게 맞붙었다. 기둥과 더불어 그 아래 주머니까지 짓눌렀다. 잔잔한 스파크가 곧 강력한 발화점이 되어 활활 타올랐다.
슬금슬금 문지르는 동안 거대한 음경이 바짝 섰다. 욕망에 부푼 성기는 존재만으로도 윤조의 적당히 잘생긴 기둥을 짓눌렀다. 핏줄이 불거진 기둥이 비벼질 때마다 자잘한 화약이 윤조 안에서 터졌다.
“흐으…….”
눈가가 일그러졌다. 두 팔로 우람한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허리 아래가 완전히 들떴다. 반대로 어깨와 목으로만 바닥을 지탱한 덕분에 고개가 꺾여 두툼한 흉근과 함께 제 국부를 짓이기는 성기의 흉악한 귀두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강수혁은 섹스 중에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단순히 물리적 힘을 사용할 뿐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일반인 성인 남자에 비해 상당히 크고 무거운 윤조를 어린아이처럼 쉽게 다루었다. 지금도 한쪽 팔로는 땅을 짚어 제 상체를 세우고, 다른 쪽 팔로만 윤조의 허리를 휘어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민감한 국부가 트리플 S급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용을 자랑하는 성기에 뭉개질 것 같았다.
“후우……. 넣는 건 안 할게.”
한창 비비는 중에 갑작스러운 소리였다.
“흐……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헉…… 으…… 왜 갑자기?
“젤도 없이 넣으면…… 찢어지니까.”
딴에는 꽤나 생각해 주기에 속으로 웃음이 났고 한편으로 굳이?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말마따나 젤도 없이 저 무시무시한 것을 무사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면 역시나 불가능이었다.
통각 신경을 마비시킨 후 찢어지든 말든 하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러면 정기 체크에서 국부의 부상이 탄로가 날 것이다. 특작부도 아니고 타국에 파병 온 마당에 개인사를 일일이 밝히고 싶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기특함에 절로 헛웃음이 터졌으나, 금방 사라졌다. 가까이에 있는 에스퍼의 눈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검은 홍채 가장자리를 따라 실처럼 얇은 진주색 고리가 생겼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대단한 흥분 상태를 의미했다. 성기를 비비기 시작할 시점부터 자연스럽게 페어링을 통한 감정 동조를 임시 차단했기에, 그가 얼마나 강한 성욕을 느끼고 해소하고 있는지 몰랐다.
솔직히 궁금했다. 몸을 겹치는 중에 어떤 감정을 얼마만큼 느끼는 걸까. 척추가 녹아내리는 처절한 상황에서도 능력은 잘 갈무리했던 사람이 단지 하체를 비비는 중에 홍채에 진줏빛이 비치다니.
생각난 김에 차단을 해제했다. 그 순간이었다.
감정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파도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숫제 사태(沙汰)였다. 폭발하는 화산 곁이 무너져 뜨거운 용암 덩어리와 함께 밀려오는 거대한 산사태. 혹은 행성을 불태우는 지각 해일일지도.
-경고! 감정 과잉! 경고! 감정 과잉! 수용 한계를 넘어섭니다. 동조 차단을 하시겠습니까?
“으…… 흐으…… 하으!”
전신에 도파민이 홍수처럼 흘러넘쳤다. 엄청난 환희와 지독한 소유욕, 끝을 알 수 없는 성욕에 정신이 아득했다. 신경에 수십만 볼트 전류가 흘렀다. 신경의 연결 고리에서부터 각 세포까지 벼락이 내려쳤다. 그건 태양계에서 제일가는 덩치를 자랑하는 가스 행성에 몰아치는 치는 벼락 수준이었다. 아득한 울림이 가져오는 진동이 지나쳐서 고막이 제풀에 터질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눈깔이 돌아갔다. 등이 뒤로 휘고 전신이 뻣뻣하게 굳었다. 지나친 쾌락 때문에 쇼크가 온 것이었다.
몸짓이 뚝 멎었다. 수혁의 눈을 휘둥그레 떴다.
“김윤조?”
여전히 제 가이드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에스퍼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 덩달아 윤조 또한 아래로 잡아 당겨졌다. 바닥에 닿은 등이 바닥에 쓸려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에 가벼운 고양감과 함께 공중에 떴다. 섹스 중에 능력을 사용한 건 처음이었다. 그만큼 놀란 상태였다.
“아……으…….”
수혁의 능력에 의해 상체가 떠오른 만큼 윤조의 목이 뒤로 넘어갔다.
-경고! 경고! 과부하 쇼크 발생! 응급 시 우선 명령에 따라 감정 동조를 임의 차단합니다.
AI가 고함을 질러 대며 응급 프로토콜을 실시했다.
감정 동조가 즉시 끊겼다. 하지만 강렬한 감각은 여전히 남아 여진(餘震)을 일으켰다. 자잘한 경련이 이는 동안 강수혁은 윤조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하와이 주둔군 내 가이드 전용 의무실을 찾아갈 셈이었다.
“김윤조,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도착해.”
흥분할 때와 달리 완전히 가라앉은 음성이 얼얼한 고막을 파고들었다.
짠 내음 나는 바람이 훌렁 벗은 다리를 스쳤다. 해발 4천 미터에 이르는 화산 능선을 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빠르게 내려왔다. 일반인이었다면 급격한 기압 차로 크게 앓았을 거다. 하지만 산소의 유입은 도리어 멍한 윤조의 뇌를 일깨웠다.
“……괜찮습니다.”
“정신이 들어?”
“네. 속도 좀 줄이세요. 춥습니다.”
그 말에 하강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수혁은 윤조를 꽉 껴안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왜 눈을 뒤집고 그래? 뭐가 문제야?”
“별거 아닙니다. 가벼운 쇼크 증상이니 약간만 쉬면 됩니다.”
“가볍긴. 전혀 가볍지 않았어. 너, 거품 물기 직전이었다고.”
수혁은 윤조의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꽉 끌어안긴 윤조는 불안에 떠는 연인의 등을 달래듯 어루만졌다.
“평소에 안 하던 걸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별일 아니고 감각이 오버되면서 가벼운 쇼크가 온 겁니다.”
“감각이 오버되다니? 혹시…… 밖에서 비비는 게 너무 고자극이었어? 그런 거야?”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상상에 헛웃음이 터졌다. 발작 직후여서 그런지, 웃을 때마다 전신이 뻐근했다.
근심이 어렸던 상대의 미간에 옅은 노여움이 실렸다.
“사람이 걱정하는데 왜 웃어?”
“아니. 밖에서 좀 비볐다고 발작할 정도로 제가 순진해 보였습니까?”
“연두부처럼 생겨서…… 그럴 수도 있지.”
민망했는지 수혁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윤조를 안은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숨쉬기 힘듭니다.”
팔을 툭툭 치자 그나마 조금 느슨해졌다.
활공 속도가 한층 늦어지면서 거의 굼벵이 속도가 되었다. 실바람에 떠밀린 비눗방울처럼 느리게 둥실 떠 가는 두 인영의 뒤로 에스퍼의 하와이언 셔츠와 가이드의 여름 반바지가 유령처럼 따라붙었다.
“그래서 왜 그런 건데?”
“소령님 때문입니다.”
“내가 뭘?”
먼 산을 보던 시선이 갑자기 윤조에게로 내리꽂혔다. 윤조는 팔을 뻗어 조각 같은 턱을 어루만졌다.
“섹스 중에 소령님의 심리가 궁금해서 감정 동조를 한번 해 봤거든요.”
저를 바라보는 에스퍼의 시선이 한층 진해졌다.
“원래 섹스 중에는 그런 거 안 했잖아.”
“그냥…… 소령님도 저만큼 기분이 좋은 건지 좀 궁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