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뭐라고요? 제가 또 환청을 들은 겁니까?”
윤조는 제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했다. AI는 ‘네 남편.’이라는 말을 에코가 울리도록 반복했다. 윤조의 기분이 나빠지기 전에 눈치를 보듯 AI가 알아서 재생을 멈췄다.
심 박사의 양 콧구멍에서 연기가 확 뿜어졌다.
“우리 망나니도 들었대. 그런데 이게 하필…… 하, 어쩐지 우리 망나니가 그런 애가 아니었는데 시발. 그것도 모르고 내가…….”
전자 담배를 빨아들이는 입술이 덜덜 떨렸다. 초콜릿 향이 나는 연기가 빠져나오는 콧등이 씰룩였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광대에 경련이 일고 뒤이어 냉정한 눈가가 촉촉해졌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말씀을 좀…….”
심 박사는 깊은 한숨과 함께 수혁을 향해 턱짓했다. 직접 들으란다.
“소령님?”
윤조는 내내 등을 돌리고 있는 수혁에게로 다가갔다.
야자수 그늘에 쪼그리고 숨은 심 박사와 달리 그는 어떤 엄폐물도 없이 탁 트인 모래사장 한가운데 서서 거친 파도를 노려보기만 했다.
평화로운 풍경과 다르게 윤조의 속내는 지금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중이었다. 폐부가 들썩대고 장이 꼬였다. 심장 펌프질이 일상 범주를 넘어 경고 영역에 진입하려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아무도 못 말리는 미치광이 과학자가 울먹이고, 항상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에스퍼가 소금물에 말라 죽은 고목 같을까.
삐― 삐― 삐―
업그레이드로 ‘눈치’라는 것이 생긴 AI는 경고문을 읊는 대신 빨라지는 심장 박동에 맞춰 낮고 잔잔한 신호음만 발산했다.
심란하다 못해 궤궤한 내면을 꾹꾹 누르면서 윤조는 제 에스퍼 곁에 나란히 섰다. 들썩이고 싶은 입술을 꾹 눌렀다.
뜸을 들인 후에 강수혁이 입을 열었다.
“김윤조, 나는 그 기억이 너무 싫다. 가끔은 너처럼 뇌를 갈아 끼우면 어떨까 싶기도 해.”
그 기억이 뭔지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입을 여는 대신에 윤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자기혐오에 빠져 피와 녹은 살점이 흥건한 채로 몸부림치던 광경이 아직도 선명했다.
먼 해수면을 바라보던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아는 그런 이유만은 아니야.”
수혁은 손바닥으로 제 뒷덜미를 꾹 쥐어짜듯이 쓸어내렸다. 그 덕에 삐딱하게 기운 고개를 기회 삼아 제 가이드를 흘끔 훔쳐보았다.
“네게 말하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어.”
김윤조의 힘찬 심장이 스산한 파도를 잡아먹은 지 오래였다. 심장 박동은 수혁에게만 치는 천둥이었다. 끈적한 자기 학대의 늪을 뒤흔들어 버리는 강력한 지진이기도 했다. 외면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강력한 존재는 그 자체로 자백제나 매일반이었다.
“그때 말이야. 그 씨발…… 좆……같은 괴물 새끼가 하늘에서 내려올 때.”
요즘 들어 드물어진 쌍욕이 단정하고 잘생긴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때 윤조는 강력한 불쾌감과 거부감을 읽었다.
서두를 시작한 수혁은 시간을 들여 말을 골랐다. 윤조는 종용하기보다 인내심을 가졌다.
“처음엔 M형 나중에는 다중 M형인 줄 알았어. 좆같은 G형이라는 게 말이지. 자주 생기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다른 일반 전투 부대와 에스퍼 부대가 전방에서 일단 상황 주시하고 나는 게이트가 형체가 잡히면 바로 투입되는 거였는데 말이지. 그게 갑자기 G형으로 진화하잖아. 그러면서 전방 부대가 증발했어. 군용 장비도 전부 말이야.”
길게 들인 뜸이 무색하게, 한번 말을 시작한 수혁은 달변가처럼 쏟아냈다.
사람들은 민간인 사상자만 기억하지만, 사실 서울 사건 때 에스퍼 또한 무수히 증발했다. 그들을 서포트하던 일반인 출신 군인도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한테 통신할 사람이 없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특작부 본부도 모든 통신이 끊겨서 혼란이었다더군. 민간인 대피는 그 때문에 더 늦어졌고.”
거기서 수혁은 한 박자 쉬었다. 그의 뇌파 항목 중 ‘공포’가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소령님도 뭘 들으셨습니까? 아까 본 가이드들처럼?”
윤조가 물었다.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시에 통신이 맛이 간 줄 몰랐으니까. 아군 중 누가 소리친 거라고 여겼지. 그런데 그럴 아군이 없는 걸 처음엔 몰랐어.”
“그랬군요.”
싫은 기억을 떠올린 수혁을 위로하는 겸 혹시? 하는 마음에 그의 등에 손을 얹으려던 찰나였다. 별안간 상대가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네가 들은 건 아프다는 비명이라고 했지?”
“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녹음, 녹화본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내가 들은 건 그게 아니야.”
거기서 윤조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수혁은 손으로 제 머리를 쓸어넘겼다. 초조해 보였고, 뇌파 분석도 그렇다고 했다. 공포 그래프가 주요 감정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쓸어넘기는 손가락 끝이 살짝 떨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잇달아 내장이 울렁였다.
윤조는 두 팔을 활짝 벌려 겁먹은 에스퍼를 와락 끌어안았다. 상의를 벗은 두툼한 가슴에 얼굴을 대고 허리에 두른 팔을 꽉 조였다. 잠시 주춤하던 수혁은 긴 팔로 윤조를 감싸는 동시에 윤조의 머리에 이마를 대었다.
“떨고 계십니다.”
“응. 그렇네.”
의외로 수혁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윤조를 간절히 붙잡았다.
안긴 이의 입김이 에스퍼의 심장 언저리에 닿았다. 그러자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인류 역사상 최강의 에스퍼가 뭐가 무섭습니까?”
“말을 걸었어.”
윤조는 고개를 떼지 않았다. 하지만 느닷없는 얘기에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말을 걸었다고요? 그러니까 좆같은 G형이요? 단순한 비명이나 고통 호소가 아니라요?”
“그랬던 것 같아.”
외계지성체와 의사소통이 된다고? 그걸 강수혁이 했다고? 다른 의미로 정신이 아득하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폭주 기관차에 타면 이런 기분일까? 윤조는 안전 띠를 조이듯이 강수혁을 단단히 붙들었다.
“정확하게 설명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건 뭐랄까, 전에 통신이 끊어졌을 때 네가 동조율을 강제로 올려서 내 뇌에 의식을 꽂았잖아. 그와 비슷하달까. 누군가의 의식이 내게 쏟아지는 것 같은 그런 거였어.”
솔직히 당황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강수혁의 가이드인 윤조 조차 뇌를 걸고 했던 수준의 동조를 누가? 어떻게? 하지만 그보다 다른 것이 더 궁금했다. 도대체 왜?
“그게 뭐라고 했는데요?”
“나더러…… 오라고.”
이번만큼은 윤조는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수혁을 빤히 봤다.
수혁의 홍채가 희게 일렁였다. 깨끗한 오팔 빛이 아니라 꼭 화재 연기 같다고 생각할 때, AI가 경고했다.
-경고 정서 불안정 대상 에스퍼 : 강수혁. 심리 안정이 필요합니다.
뇌파 패턴이 PTSD 온 참전 용사와 유사했다. 더불어 공포가 제1 감정이 되자 능력이 불안정하게 개방되었다. AI의 경고음이 점점 피치를 높였다.
정서가 불안정한 에스퍼가 벌이는 난동을 흔히 폭주라고 한다. 폭주한 에스퍼를 말로 진정시키긴 어렵다. 군사력 순위로 10위 안에 드는 한 국가의 전력 70퍼센트를 담당하는 트리플 S급이 폭주를 일으킬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윤조가 제 감정에 치중할 때가 아니었다. 불안 증세를 보이는 에스퍼의 안정이 더 중요하다. 척추 장치를 통한 통제나 페널티를 먹이는 방법도 있지만 되도록 피하고 싶다.
“괜찮습니다. 소령님. 지금은 전투 상황이 아닙니다. G형도 없습니다. 여긴 하와이입니다. 우리 신혼여행 왔어요. 제가 함께 있습니다. 제가 도와드립니다. 일단 심호흡부터 하시고요.”
윤조가 먼저 심호흡을 반복했다.
“그냥 안아 줘. 그게 더 좋겠어.”
수혁의 요구대로 윤조는 다시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찰열이 생길 때까지 그의 등을 문질렀다.
긍정적 감정은 좀처럼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공포의 가파른 상승세는 꺾였고 덩달아 폭주 기미도 느릿느릿 잦아들었다.
한껏 떨던 수혁은 마침내 제 공포를 털어놓았다.
“처음 느낀 무서움이었어. 내가 그래도 나름대로는 지구 최강인데 말이지. 그런데 마치 코끼리 발에 밟히기 직전의 개미나 혹은 흰수염고래의 아가리 앞에서 유영하는 크릴새우 신세랄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죽을 만큼 발광하는 것밖에는.”
외계지성체와의 사상 최초 의사소통이라는 경악할 만한 내용은 차치하고 일단 사건 발생의 정확한 맥락부터 파악해야 했다.
“환청을 전투 중 언제 감지하셨습니까?”
일부러 ‘환청’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거의 포기했을 때.”
“그게 정확하게 언제죠”
“마지막 공격 진전에.”
별안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성적 판단 아래, 인류를 살리기 위해, 대의를 위해서 스스로 몸을 던진 게 아니었다.
강수혁은 그저 무서웠다. 극심한 공포에 싸여 폭주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미필적 고의도 아닌 단순한 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강수혁은 괴로움에 끔찍한 자학을 했다.
윤조는 눈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불안정한 에스퍼를 안정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주제에 먼저 울면 안 된다. 얼굴을 수혁의 가슴에 완전히 묻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를 껴안았다.
“그때 소령님은 화가 난 게 아니라……”
발음이 뭉그러졌다.
윤조를 감싼 수혁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혔다.
“무서웠어……무서워서 죽을 뻔했어.”
사상 최강의 에스퍼가 두려움에 휩싸인 아이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