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뭐라…… 고요?”
“사기 결혼이라고 고소해도 소용없어. 너는 나한테 잡혔고, 절대로 안 놔줘. 이미 끝났어.”
“무…… 무슨 사기 결혼이라는 건지……. 잠깐만요! 정말 설마 진짜?”
충격에 시야가 흔들렸다. 말장난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단정적인 확답이 필요했다.
“정말 설마 진짜 그럴걸?”
“‘그럴걸?’은 또 뭡니까. 그러니까 소령님이…… 박사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찾을 이는, 저 낯선 에스퍼를 잘 아는 제 창조주뿐이었다. 한껏 발산한 탓인지 기력이 빠진 심 박사는 의자에 주저앉아 또 전자 담배를 물었다.
“강수혁이 인간이냐?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확인 불가’야.”
초콜릿 향 연기가 공중에 흩어졌다.
“확인 불가라뇨? 그게 무슨 무책임한 소립니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심 박사가 허탈하게 웃었다.
“지구를 기반으로 한 유기체는 기본적인 공통분모가 있어. 심지어 바나나와 인간의 유전자도 50퍼센트는 같아. 어쨌거나 어머니 지구의 자손이라는 거지. 다른 부분도 서로 구성과 배열이 다를 뿐 지구 생물군 범주에서 벗어난 변종은 없어. 에스퍼나 에스퍼를 기반으로 개조한 가이드도 그렇지. 강화 인간은 어쨌거나 인간 아종이야. 그런데 쟤는…… 좀 달라.”
다름을 선언하기 직전, 심 박사는 수혁을 흘끔 봤다.
“뭐가 어떻게 다릅니까. 저는 강수혁 소령의 신체 전반에 대해서 잘 압니다. 어쩌면 박사님보다도 더요. 뇌파도 공유하고 있어요. 남다른 점이 없진 않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인간 범주 내입니다. 상판 멀쩡하고 사지 멀쩡합니다. 먹고 자고 싸고, 왕성한 성욕까지 있습니다. 인조인간이지만 어쨌거나 인간을 대상으로요. 모든 신체 지표가 에스퍼 범주 오차 내입니다. 에스퍼도 인간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에 윤조는 AI가 제시하는 반박문을 참고하여 따졌다.
“그래 그런데 쟨 다르다고.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재생력이, 특정 조건에서 발동하는 에너지 생성력이 달라. 발산하는 파장이 다르다고.”
“트리플 S급 에스퍼니까요.”
답답한 나머지 윤조는 양손을 저으며 호소했다.
“그렇지. 저놈이 트리플 S급이긴 하지. 그래도 공통분모를 제외한 영역에서 다른 S급 에스퍼과 달리 외계 지성체와 더 가까운 건 말이 안 되지 않아?”
“뭐라고요?”
“너희 한창 싸우고 지랄할 때. 쟤한테서 생체 샘플을 잔뜩 뜯어냈어. 피 한 바가지에 살 한 덩이까지. 그걸로 수십 번은 더 테스트했다. 내가 뭐가 오해한 걸까? 혹은 게이트 전투를 너무 오래 한 나머지 강수혁 자체가 게이트에 오염이 된 걸까. G급의 영향일까.”
순식간에 늙은 심 박사가 떨리는 손으로 제 이마를 쓸어올렸다.
“열을 냈더니 당이 떨어지네. 후. 긴말할 거 없고 분석 자료 넘길 테니까 네가 알아서 확인해. 그리고 망할 너구리 영감 새끼는 1분이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파일을 안 보내는 거야. 수혁아, 너는 저쪽 케이스 좀 까 봐. 안에 새 패드랑 에너지바 있다.”
“이거?”
윤조의 에스퍼가 인간이 아니라는 폭탄선언을 한 박사나, 인간이 아닌 무언가일지도 모르는 에스퍼가 군용 케이스를 열어 사이좋게 에너지바나 나눠 먹는 광경에 윤조는 정신이 멍해졌다.
새 패드를 켠 심 박사는 에너지바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한 손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영감탱이한테 다시 연락하는 동안 너는 이거 확인해.”
평생 처음으로 제 창조주의 태연함에 성질이 제대로 뻗쳤다. 내미는 패드를 거칠게 빼앗은 윤조는 화면상 수치와 좌표를 눈에 넣었다.
윤조 자체에는 복잡한 생체 데이터를 분석할 지식이 없다. 하지만 AI는 얘기가 달랐다. AI는 알아서 전투 모드로 바뀌었다. 윤조가 시선을 주는 곳을 따라 전투기 앞창에 뜨는 것과 동일한 형광 좌표와 확인 표시가 우후죽순처럼 돋았다가 금방 사라졌다. 윤조가 빠르게 데이터 페이지를 스크롤 해서 올렸다. 동일한 과정을 반복 후 데이터를 흡수한 AI는 제 영혼의 단짝인 김윤조가 이해할 수준을 헤아려 간략한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그동안 윤조에게만 보이는 커서가 껌뻑였다.
-삐익. 분석을 완료하였습니다. 즉시 열람하시겠습니까?
전투 모드에선 확인 없이 바로 결과를 띄운다. 0.1초 차가 생사를 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AI는 자의적으로 재확인을 했다. 인공 쌍둥이는 윤조가 받을 충격을 걱정하고 있었다.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네.’
응답을 떠올리기 무섭게 결과가 올라왔다.
일반인과 침팬지 사이의 유전자 차이는 2% 일반인과 강화 인간 간의 유전자 차이는 0.8%다. 후자의 경우 서로 간에 재생산이 가능했다. 한마디로 같은 종. 그리고 인간과 강수혁 사이의 유전자 차이가 떴다.
일반인과의 차이는 1%였다. 하지만 이 작은 차이 안에 담긴 정보 값이 문제였다.
강화 인간은 차이 값이 인간 유전자의 확장 버전이었다. 쉽게 말해 진화가 만 년쯤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을 때 자연스럽게 발생할 차이였다. 진화를 무식하게 가속시킨 건 게이트가 내뿜은 막대한 파장과 방사능이었다.
강수혁의 경우 인간 공통분모를 제외한 나머지 차이에서 강화 인간과의 교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지구상 어떤 생물과도 교차점이 없다. 그와의 공통분모는 도리어 다른 곳에 있었다.
지구가 아닌데 지구에 있는 것. 항상 지구의 대기를 열어 막대한 질량을 쏟아내는 것. 처음에는 타락한 인류에게 벌을 내리는 신의 재림으로, 다음에는 악의를 담은 외계 침공으로, 이제는 재수 없게 들이닥치는 일상적인 재난으로 재확립되는 중인 외계 지성체였다.
“기반은 인간인데 차이점이 강화 인간과는 다르다는 거네요.”
“그렇지. 99퍼센트는 인간인데 나머지 1퍼센트가 테란 즉, 지구 출신이 아니야. 쟨 인간과 게이트의 혼종이야. 정확하게는 인간에 게이트 한 방울 쉐낏쉐낏.”
심 박사는 투명 셰이커를 잡고 흔드는 흉내를 냈다. 그 옆에서 박사의 에너지바를 훔쳐먹는 에스퍼는 그런 조롱에도 딱히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쪽이 황당했다.
“이게…… 두 분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무러하면 뭐 어쩔 건데?”
에너지바를 하나 해치우고 하나 더 까면서 강수혁이 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태연하게 나오니까 도리어 윤조가 할 말을 잊었다.
“생각해 봐. 나 같은 게 순수한 인간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목에 총 두 발을 직격으로 맞아도 안 뒈지는데. 그게 인간이냐고.”
“그뿐이야? 목에 총 맞고도 1분도 안 돼서 벌떡 일어나서 양키 놈들 조지고 다녔잖아. 윤조야, 너 그거 알아? 다른 S급인 임성준과 장세인은 그 전투 후에 일주일을 의무실에서 앓았다. 후에도 컨디션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보름은 더 걸렸어.”
심 박사가 강수혁을 거들었다.
“다른 에스퍼들도 그래. 재생력이 강해도 총 맞고 살 찢기고 뼈 부러지면 다 시간 들이고 품 들여서 고쳐야 해. 그에 비하면 이건 뭐다? 척추를 부러뜨려도 1분이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는데 인간이면 이상하지. 정말 장기간 두통거리였어. 너무 이해가 안 돼서. 심증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이번에 생체 샘플 분석으로 오히려 후련해졌지.”
“그래? 나도 이번에 좀 후련해진 건 있어.”
“뭔데?”
심각한 사안을 두고 심 박사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에너지바 부스러기가 초정밀 극비 통신 기기 위에 떨어졌다.
“내가 이래 봬도 김치찌개 먹고 자란 한국인이잖아. 혹시 망할 촉수 괴물이 우리 엄마라고 찾아와도 내 배우자가 한국인이니까. 한국인이라고 우길 수 있게 되었잖아.”
“아니 네 호적이 대한민국에 있는데 왜 한국인이 아니야?”
“친권이라는 게 원래 인지 후에 찾으러 오면 문제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알았는데.”
“이 띨띨한 놈아! 법 바뀐 지가 언젠데! 고리짝 시절 드라마 얘기를 하고 있어! 요즘엔 기른 놈이 장땡이여! 학대하지만 않으면…… 음…… 그 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한데. 어쨌든 너는 성인이기 때문에 네 의견이 중요해. 네가 인간이고 한국인이라고 하면 누구도 뭐라고 못해.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인류라고 생각하면 전 인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인류라고 받아준다. 아니 받아 주니 마니 할 것도 없어. 넌 인류야. 1프로 가지고 지분 요구하는 놈이 개시발 도둑놈이지, 99프로가 사람인데. 거기다가 지구에서 태어나서 지구에서 자랐어. 신토불이! 지구인 한국인 땅땅!”
“그런 건 진작 좀 얘기했으면! G형 그 무지막지한 놈이 동료랍시고 자꾸 오라니까 헷갈렸잖아. 아줌마는 내 컨디션 담당이면서 도대체 하는 게 뭐야? 김윤조 아니었으면 진짜 외계인한테 잡혀갈까 봐서 무서워서 제풀에 뒈질뻔 했잖아!”
“야, 이 개망나니 새끼야! 네가 무슨 말을 제대로 지껄여야 내가 알지! 내가 무슨 텔레파시 에스퍼냐? 아니 텔레파시도 안 통하는 개새끼 주제에 누굴 탓해!”
“아니 영화에 보면! 인간인데 외계 괴물 유전자가 요만큼이라도 들어가면 다들 외계인 취급 받잖아. 요즘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도 내 애비가 사실은 외계 괴물이었다! 이러면 인류의 배척을 받고 쫓겨나고 그러잖아. 그런데 사실 내가 그래요! 하고 어떻게 얘기해!”
“너는 외계인의 후손 운운하기 전에 네가 친 사고부터 생각해! 쫓겨나도 자업자득이야, 망할 놈아!”
“그래서 쫓아낼 거야?”
“아니 이 새끼가 툭 하면 가출 시위하네? 이참에 진짜 쫓아내 줘? 어디 김치도 된장도 없는 휑한 우주 공동(void, 아무런 천제가 없이 비어있는 공간으로 통상적으로 약 1억 5천만 광년 크기)에서 혼자 찔찔 울게 해 줘?”
“인간적으로 김치는 챙겨 줘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솜씨가 정말 쌍욕이 나올 정도로 정다운 이모 조카 사이였다. 저런 망할 새끼들을 데리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다.
욕지기와 함께 열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내내 전투 모드였던 AI가 강수혁과 심 박사를 상대로 적색 표시를 띄우면서 ‘공격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하마터면 승인할 뻔했다.
대신에 윤조는 망할 개새끼들을 버리고 뛰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