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147화 (224/256)

147화

어이가 달아났다. 윤조는 상대의 뿌듯한 낯짝을 무시하고 다른 궁금증을 꺼냈다.

“죽은 사람이 애를 낳는 게 가능합니까?”

“이미 실질 증거가 있는데 가부(可否)를 논해서 뭐 해.”

심 박사는 혼자서 흐뭇한 멍청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왜 그렇게 봐? 뭐가 아니꼬운데?”

“아니…… 뭐. 후…… 그래. 그렇다고 치자.”

쓸데없이 자신감을 한껏 충전한 에스퍼가 거만하게 묻자, 할 말을 잊은 두뇌 강화 에스퍼가 손끝으로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스크롤을 내렸다.

당시 신생아 시절 강수혁의 각종 지표와 함께 사망한 모체 분석 자료도 있었다. AI가 빠르게 넘어가는 화면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면서 분석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심 박사가 혼자서 꿍얼거렸다.

“으음. 그랬구나. 그럴 수 있긴 하지. 하지만 정말 희박한 확률인데.”

“박사님 혼자 알지 말고 저희에게도 좀 알려 주십시오.”

AI를 설계한 장본인이자 지구상 누구보다 두뇌 회전이 빠른 심 박사는 평범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해석했다.

“이건 네 생모로 추정되는 사망자의 유전자와 네 유전자 비교표. 이래저래 다방면으로 네 탄생의 비밀을 털어 본 거지. 자료에 따르면 네 생모는 일반인이야. 하지만 넌 에스퍼 유전자가 있어. 아마도 생부가 에스퍼거나 아니면 일반인 사이에 에스퍼가 발생한 케이스겠지. 어쨌건 게이트 발발 당시 생모가 외계 지성체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대. 그렇겠지. 게이트 지역에서 수습했으니까. 다른 게이트 관련 사망자와 다른 특이점은 게이트 파장과 방사능으로 인한 흔적이 장기에 남았다는 거야. 노출 당시에 생존 중이었다는 의미지. 명확한 전후 사정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사망 원인은 게이트로 인한 피폭이나 건물 붕괴보다는 외계 지성체 접촉이 아닌가 하네.”

심 박사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이건 네 데이터. 내가 말한 대로 강화 인간과 좀 다르지? 생모가 외계 지성체와 접촉하면서 당시 복중 태아였던 너에게도 외계 지성체의 영향이 전달되었어. 뭐 당연한 얘기지. 생모는 사망했으나 너를 둘러싼 생모의 몸이 전투복 역할을 하기도 했고 또 외계 지성체와의 접촉이 태아의 에스퍼 각성을 촉발하지 않았을까…… 하고 당시 조사관이 잠정 결론을 내렸네. 구출될 때까지 시신 안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태중 초기 각성으로 인한 무한 재생력 탓으로 추정하는데. 통상 에스퍼를 능가하는 재생력 자체는 외계 지성체의 영향이 아닌가 하네. 네 무한한 출력도 그럴 가능성이 크고. 한마디로 줄이자면 태아 시절 불의의 사고로 외계 지성체에 노출되어서 무지막지한 개망나니가 되었다, 뭐 이런 거야.”

침묵이 이어졌다.

작은 스크린을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숙였던 수혁이 거구를 천천히 바로 세웠다.

묵묵한 태도대로 수혁이 느끼는 감정은 물결처럼 잔잔했다. 대신에 주요 감정이 너무 빨리 바뀌었다. 충격, 분노, 좌절, 슬픔, 불안, 초조 같은 부정 감정을 지나 기쁨, 만족, 안도 등 긍정 감정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치솟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페어링이 강화된 윤조조차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알기 어려웠다.

생존 중에 외계 지성체와 맞닥뜨린 생모의 불행에 관해 조금은 측은함과 슬픔을 느끼고 있을까. 자신에게도 멀쩡한 부모가 존재한 사실에 조금은 기쁜 걸까. 혹은 게이트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노를 불태울까.

어느 감정도 뚜렷한 그래프를 그리지 않고 다만 기저에서 들끓었다.

“거참 묘하긴 하네. 이걸 행운이라고 봐야 할지, 불행으로 봐야 할지.”

단순명료의 화신인 심 박사조차 복잡하고 미묘한 눈길로 수혁을 다시 훑었다.

“이미 이렇게 태어나서 살고 있는데 뭘 따지고 들어.”

수혁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계면쩍어 보였다.

신체 개조를 통하여 강화 인간이 되었으나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자아를 형성했던 윤조는 자연산 강화 인간들이 벌이는 대화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현실 지향적이다 못해 과거를 깡그리 무시하는 저들의 가치관과 정서에 진저리가 나려고 했다.

외계 지성체로부터 뭔가가 백 로드되는 바람에 외계인급 출력을 내는 초강력 에스퍼가 된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생모’, ‘친부 추정’, ‘사망 당시 생존’ 이런 단어를 언급하면서 애도는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저들보다 차라리 입 닥치고 있는 AI가 더 인간적이었다.

“혹시 돌아가신 분 성함이나 유가족 연락처 같은 건 없습니까.”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음…… 없네. 다른 파일에 있을지도 몰라.”

고개를 저은 심 박사는 즉시 다음 파일을 열었다.

태아 이름은 강원도의 강, 아파트 이름을 따서 수정으로 하려 했으나 남아라서 강수혁으로 명명. 에스퍼 발달 전문 교수, 소아청소년과 교수, 신생아실 전담 간호장교(대령) 합류. 전부 접촉 실패. 수혁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 본인 유일. 전문가들은 곁에서 육아 교육 및 세부 지시.

고주파 울음으로 인해 인큐베이터 파손.

간호장교 고막 파손.

이후 관여자 전체 에스퍼용 전투복과 헬멧 장착.

소아청소년과 의학 박사 및 에스퍼 발달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본인은 항공 정비사용 헤드셋 장착 후 맨손으로 접촉 분유 급여.

울음 멈춤. 분유 급여 후 배변 및 수면.

이후 2시간 간격으로 분유 급여.

분유 양과 배변 양이 일반 아이 5~6배 능가.

이후로 울 때마다 고막을 터트리는 초강력 신생아의 양육 담당이 장선욱이 2시간마다 일어나서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처절한 육아 기록이 이어졌다.

날 때부터 S급으로 판정받은 미친 아기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리창을 깨트리고 집기를 날려 버리고 심지어 사람을 공처럼 굴리는 무시무시한 악마였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라 스스로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모르는 채로 짜증만 부리는 S급 신생아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목숨을 건 실전이었다.

“중장님 모발이 달아나는 이유가 있네요. 이렇게 고생해서 키웠는데 보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아마도 뒤늦은 허탈함과 함께 가출…….”

윤조가 읊조렸다. 심 박사도 덩달아 감탄했다.

“꼰대가 이 새끼랑 의절하지 않은 게 놀랍다.”

“그럼 갓 태어난 애를 버려?”

수혁이 언성을 높였다. 과연 뻔뻔함도 트리플 S급.

그러거나 말거나 심 박사는 제 할 말부터 했다.

“그런데 너는 꼰대가 만지는 건 왜 괜찮았는데?”

“그러게요. 다른 사람은 수시로 실려 나가는데 중장님만은 왜 괜찮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빈 젖병에 수시로 난타당하고, 똥 기저귀를 머리에 쓰긴 했지만 말입니…… 아, 똥을 쓰면서 외계 방사능에 오염되어서 머리가 뒤늦게 달아나는 걸까요?”

윤조의 해석에 수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어떻게 알아.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간 넌 앞으로 꼰대한테 효도하고 살아라.”

그때 AI가 강수혁의 감정 변화를 알렸다.

분노와 함께 수치심이 올라왔다. 수치심은 매우 드문 감정이었다. 다른 감정과의 배합도 아주 기묘했다.

심 박사를 아줌마, 최정 대령은 최저씨라고 곧잘 부르는 강수혁은 장선욱 중장도 꼰대라고 칭했다. 셋 다 똑같이 부대끼면서 중지와 쌍욕을 달고 산 만큼 스스럼없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다른 두 사람과 달리 장선욱에 관해서 만큼은 적개심이 꽤 강했다. 그런 장선욱이 사실은 목숨을 걸고 어린 자신을 구조한 것도 모자라, 정말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서 기른 사실이 드러났다. 심경이 꽤 복잡할 거고, 실제로 수혁의 감정 패턴은 여전히 어지러웠다.

그가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모르기에 자못 궁금했다. 이젠 증오할 이유가 없어서 안타까운 걸까. 아니면 좀 더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까. 나중에 심 박사가 없는 자리에서 자세히 물어보기로 하고 윤조는 원래 용건으로 돌아갔다.

“유가족 연락처는요?”

“여기도 없어. 다른 파일에도 없는 것 같은데.”

무작위로 파일과 폴더를 열어보던 심 박사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다 죽었을 텐데 뭐 하러 찾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수혁이 물었다. 그는 정말 생모의 존재에 관해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묘지가 있으면 가서 향을 올리려고요.”

“나도 안 하는 걸 네가 왜?”

“인간이, 한국인이 되었다고 즐거워만 마시고, 한국인의 정서적 보편 행위에도 좀 동참하시죠? 김치만 먹는다고 한국 사람이 되는 건 아닙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일일이 입 밖으로 내야 하는 게 제법 피곤했다.

잔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은 강수혁이 팔짱을 단단히 꼈다. 불만 가득한 반문이 돌아왔다.

“그래서 뭘 어쩌라고?”

“돌아가신 생부모에 관해 어떤 안타까움이 없어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척, 슬픈 척, 괴로운 척하세요. 그리고 참배할 땐 같이 가는 겁니다.”

“……알았어.”

못마땅해도 싫다고는 안 했다.

“그래. 외계인과 같은 취급 받기 싫다면서 사람답게는 왜 안 굴어. 윤조 말대로 죽어서도 지켜줘서 고맙다고 절 백 번 해라.”

“박사님도 함께 갑니다.”

덩달아 가당치 않은 잔소리를 하는 심 박사를 향해 윤조가 선언했다.

“내가? 내가 왜?”

“소령님의 이모를 자처하셨으니, 따지고 보면 의붓자매 아닙니까. 사람답게 함께 가야죠. 설마 소령님에겐 사람 되라고 하신 분이 사람 아닌 짓을 하시진 않겠죠?”

“…….”

논리적 설명에 할 말을 잊은 심 박사를 보며 수혁이 히죽 웃었다.

“중장님께 관련 자료 요청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젠 나한테도 명령이냐?”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윤조는 씩 웃으며 제 두 번째 어머니의 어깨를 꾹꾹 주물렀다. 처음엔 아프다고 찡그리던 심 박사는 이내 이쪽, 저쪽을 가리키더니 아예 바닥에 누워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실컷 주물러 드린 후에 윤조는 수혁을 시켜 엉망이 된 현관문을 수리하고 군용 케이스를 전부 풀어서 정리까지 마쳤다.

이사를 도왔으니 하와이산 짜장면을 먹고 가라는 심 박사의 권유에 호텔 중식당에 연락하였다. 배불리 먹고 난 후, 숙소 호텔로 돌아오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미 해군이 객실 비용 일체를 부담하는 고급 스위트룸에 들어서서 문단속을 마친 윤조는 제 곁을 맴도는 남자를 향해 버럭 고함쳤다.

“강수혁 씨! 도대체 내가 그쪽의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