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강수혁이 가져온 위성 자체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만 SETI 프로젝트가 아직도 작동하는 중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외계 문명 탐사 신호를 아직도 발산한다고? 설마 몇백 광년이나 떨어진 보이저 1호를 저들이 발견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 프로젝트는 폐기한 지 100년이 넘었다네. 당시 경제 위기에 시달리던 우리 정부, 그러니까 미합중국 정부 말일세. 그들이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프로젝트부터 즉각 폐기되었지. 어떤 프로젝트도 예산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아. 군 소속 연구자이니 누구보다 잘 알 것 아닌가.
“민간 펀딩이 있잖아요.”
-인공위성과 전파망원경에 말인가? 그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군사적으로 민감한 기술을 다루기에 반드시 정부와 군 주도로만 이루어지잖나. 민간사업용 위성도 쏘아 올리는 주체는 정부 혹은 정부 산하 기관이야. 어느 나라에도, 어느 시대에도 예외는 없었네.
더불어 노리스는 파괴된 천문대와 전파망원경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물리적 한계라는 이유로, 더불어 수혁이 가져온 인공위성이 발신하는 전파는 딥스페이스에 닿기에 너무 약하다며 외계 지성체를 이쪽에서 끌어당겼을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고요.
롭슨이 드물게 노리스의 의견에 토를 달았다. 그러면서 그는 어떤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당시 좋게는 돈 많은 괴짜, 나쁘게는 미치광이 우주 진출론자가 세운 통신 회사의 내부 문건 스캔본이었다. 딴에는 일급비밀이니 회사 외 반출을 엄격히 금하며, 혹시 그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있었다. 하지만 수십 년 전에 망한 회사의 법무팀이 찾아올 일은 없을 거다. 혹시 찾아온다고 해도 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우주 사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회사 측이 털렸을 거다.
-이걸 어디서 발견했나?
-다큐멘터리 채널에서요. 주로 음모론을 다루는 곳이죠.
롭슨이 어깨를 으쓱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 전용 서버 회사가 게이트로 인해 망했다. 그들은 폐업하기 전에 파괴되지 않은 서버 장비를 골라 무게 단위로 고물상에 넘겼다. 고물상은 서버를 분리해 팔아 치웠는데, 보통은 서버 스캐빈저라고 불리는 아마추어 해커나 음모론자들이 그것들을 사서 안에 든 데이터를 복구하곤 했다.
대부분은 가치 없는 정보들이지만, 때때로 외딴 은행에 있는 누군가의 비밀 계좌를 발견하여 떼돈을 벌거나 혹은 아주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발굴하기도 했다.
돈이 될 만한 정보는 인터넷 개인 영상 채널 운영자에게 아주 비싸게 팔렸다. 게이트 발발 후에 에스퍼, 우주, 외계인 관련 주제는 항상 핫했기에 큰돈이 되었다. 온라인 시대의 유물 발굴 및 관광 산업 같은 거였다.
-이걸 왜 이때까지 몰랐지?
노리스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국 감사를 피하려고 페이퍼 컴퍼니를 세워서 정보와 자본은 빼돌린 거지. 각국 군 정보부도 흔히 하는 짓을 민간 회사라고 왜 안 해. 당연히 하지. 아니 더 할걸? 원래 민감한 정보는 한 군데 담아 놓는 게 아니잖아요. 다 분리해 놓으면 누가 낌새를 알아차려도 하나만 털리고 나머지는 세이브하잖아. 위성 수백 개 올리는 대기업이면 분명히 다국적일 테고 당연히 세계 각국 감사를 피해서 민감한 정보를 알뜰살뜰하게 찢어 놨겠지. 세금도 피할 겸.”
정기 감사에 관해서 만큼은 할 말이 많은 최정이 덧붙였다.
-꽤 정확합니다. 각기 다른 서버 스캐빈저에게 접촉하여 관련 정보를 요청했어요. 회신이 꽤 왔는데요. 문제는 비용입니다. 돈을 요구하네요.
“돈?”
-네. 저들 네트워크에 소문이 돌았는지 금액이 상당해요. 어쨌건 정보상이니까요.
롭슨이 난처하게 주변을 돌아봤다. 예산을 끌어쓰려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명확한 근거 없이 보고하기에는 너무 민감한 얘기였다.
“역추적해서 그냥 징발하면 안 되나?”
심 박사가 아주 간단하고 폭력적인 해결법을 내놨다.
-정보상입니다. 숨고 숨기기에 아주 능숙해요. 당연히 잡을 수는 있지만, 그럴 시간과 비용이면 그냥 주는 편이 더 경제적입니다.
“정보상이면…… 저쪽에서 흥미로울 정보와의 교환은 불가능합니까?”
윤조가 물었다.
-그것도 가능하지. 그런데 민감한 군사 정보를 넘길 순 없잖아요.
“전혀 안 민감한데 정보상에는 아주 비싸게 팔릴 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윤조는 한쪽 구석에 구겨져 있는 제 에스퍼를 응시했다.
“뭐, 나?”
관련 주제에 흥미가 눈곱만큼도 없으나 단지 윤조가 여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구실에서 자리를 지키던 수혁이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가리켰다.
“스폰서 점퍼와 볼캡 사진, 이참에 찍죠?”
그에 최정이 눈을 반짝였다. 내내 들고 있던 카메라 렌즈가 번뜩였다.
잠시 후 요란한 점퍼를 입은 수혁은 어색하게 연구실을 돌아다녔다.
“자자, 이쪽 보시고.”
수혁은 괜히 심 박사의 어깨를 주무르고, 한 번도 관심 가져 본 일이 없는 스크린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지켜보는 윤조 곁으로 오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몇 마디 했다. 사진만 보면 오늘 지구 어디로 출동해서 어떤 게이트를 조질까? 묻는 줄 알 거다. 하지만 실상은 “오늘 점심은 나가서 먹을까?”였다.
“이보세요? 여기 특급 보안 시설이거든? 그거 싹 다 폐기야.”
기가 막힌 심 박사가 잔소리했다.
그제야 연구실 내 사진은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달은 최정은 수혁과 윤조를 데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이동할 조차 그는 대포 카메라 셔터를 아저씨 속도로 꾸욱 꾸욱 눌렀고 그럴 때마다 수십 장이 촤르르 찍혔다.
하와이 주둔군 사령관이 사진 촬영을 눈치채고 달려왔다. 처음에는 보안 시설에 대한 기밀 유지를 이유로 촬영을 중단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수혁과 윤조 사이에 끼어 어울려서 함께 사진을 찍기를 원했다. 물론 외부 공개용은 아니고 개인 소장용이었다. 어딘지 신난 그는 윤조의 점퍼를 어깨에 걸치고 중년 백인 다운 엄지 척을 발산했다.
“설마하니, 촬영 허가도 안 받고 찍고 있었겠어?”
벙찐 윤조를 향해 최정이 실실 웃었다.
사령관과 함께 온 부사령관을 비롯하여 장교들이 줄줄이 사진을 찍었다. 그도 모자라 어디서 들었는지 하와이 주둔군에 있던 B급, C급 에스퍼들도 멋쩍은 표정으로 슬금슬금 얼굴을 내밀었다. 개중에는 사인지를 들고 온 인원도 있었다.
평소 연구소 안팎이나 주둔군 인근에서 마주칠 때는 냉정한 낯으로 눈짓만 까딱하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슈퍼스타를 영접한 팬이 되어 싱글벙글 한마디씩 했다.
-와우, 도미니카 게이트 때 정말 멋졌어요.
-‘켈리에게’라고 써 주세요. 딸인데 강의 아주 큰 팬입니다. 물론 저도 팬이고요.
갑자기 벌어진 사인회에 수혁도 어이가 없긴 해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순서를 기다렸다가 멋쩍게 내민 사인지의 주인공이 에이브리와 롭슨인 걸 보고는 코웃음을 치고 말았다. 심지어 로아무아도 있었다.
“아니 니들은 왜?”
-부모님에게 보내게요. 팬이시거든요.
-전 기념으로 티셔츠에 박을 겁니다.
-인터넷 경매에 부치면 비싸게 팔릴 것 같아서.
“꺼져.”
각양각색의 이유에 수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해 주세요.
냉대에도 에이브리는 아주 당당하게 사인지를 내밀었다.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셋은 기어코 사인과 사진을 뜯어냈다.
팬 미팅을 한바탕하고 난 후에 최정은 찍은 사진을 특작부 행정실로 전송했다. 태평양 연합 사령부를 겸하는 하와이 주둔군에서도 보안 체크를 받은 사진을 골라 서버 스케빈저에게 정보와의 교환을 제공했다. 거래는 즉시 성사되었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자료를 끌어모아 정리, 취합하기까지 나흘 정도 걸렸다. 그동안은 게이트도 열리지 않고 잠잠했다. 팬 미팅을 계기로 한결 친근해진 B급 C급 에스퍼들은 때때로 수혁을 찾아와 말을 걸고, 에스퍼 농구를 하자고도 했다.
에스퍼 농구는 다른 게 아니라 미친놈들이 농구 핑계로 몸싸움을 벌이는 난투극이었다. 보통은 셋셋, 혹은 둘둘 팀을 나뉘어서 골을 노렸는데, 수혁이 끼면서 승부가 너무 싱겁게 났다. 그래서 결국 에스퍼 대 강수혁이라는 다구리에 가까운 변형 경기로 변했다. 물론 다구리 피해자는 수혁이 아니라 저쪽이었다.
“에스퍼 계급장 떼고 그냥 일반인 해.”
바닥에 누워 헐떡이는 에스퍼들을 보며 수혁이 조소했다. 예전 신병 훈련 때도 그랬지만, 하급 에스퍼를 상대로 봐줄 법도 한데. 꽤 치졸했다.
그때였다. 경기장 밖에서 구경하던 윤조 뒤로 로아무아가 나타났다.
-이번엔 나도 끼지.
“에스퍼도 아니면서?”
-가이드지만 원래 에스퍼였어. C급이었지.
군용 민소매에 군복 바지를 입은 로아무아는 목 관절과 손마디를 뚜둑뚜둑 풀었다.
“해 보든가.”
수혁이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