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160화 (237/256)

159화

미국 중남부, 한때 우주 마니아의 성지였고, 지금은 대(對) 게이트 프로젝트의 총본산인 항공우주국 본부로 초고속으로 날아갔다. 음속을 아득히 초월하자 전투복 표면을 스치며 지나가는 건 바람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지금 둘은 하나의 유성이 되어 태평양 하늘을 갈랐다.

얼마 날아온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미대륙이 가시거리 안에 들어왔다. AI가 고자질하듯 목적한 좌표와의 실시간 거리를 띄웠다. 숫자는 미친 속도로 감소 중이었다.

-전에 소령님이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

-내가 뭐?

-외계 괴물 놈이 괜히 오겠냐고, 이쪽에서 부르니까 오는 거라고.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기억이 없었다.

-그때 그런 발언을 한 이유는 기억하십니까?

-글쎄. 내가 뭐라고 했는데?

-당시에 거기까진 말 안 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래?

수혁의 태도는 내내 시큰둥했다. 윤조가 화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최고 우방국 본토를 치러가는 미친 짓거리를 하는 사람답지 않았다. 아는데 말하기 싫은 태도였다.

-나중에 다시 물어볼까요?

-뭐, 물어봤자.

-G형이 같이 가자고 한 거 말고도 뭐라고 더 했습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조의 허리를 붙든 팔에 힘이 들어갔다. 더 들은 말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출생의 비밀도, 괴물들이 지구를 찾는 이유도 아는 마당인데. G형이 뭐라고 했는지도 말씀해 주시죠.

-그 새끼…… 나한테 관심 있어.

-예?

뜬금없는 대답이라 약간 당황했다가 금방 정신을 차렸다.

-동료니까 함께 가자고 했으니, 관심 있는 거 맞겠네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허리에 가해지는 압박이 한층 세졌다. 그러면서 수혁에게서 강력한 혐오와 공포, 가학심이 발산되었다. AI가 헬멧 스크린에 경고 표시를 띄웠다.

-빌어먹을 괴물 새끼가 나를 좋아해.

-관심, 흥미가 곧 긍정적 발산입니다만, 굳이 그런 표현을 쓸 이유가…….

-야, 그런 표현을 쓸 만하니까 쓰잖아. 안 그래도 소름 돋고 역겨워 죽겠는데 계속 눈치 없이 그럴 거야?

짜증스러운 응대에 윤조는 제가 무슨 오해를 했나? 잠시 대화를 되짚었다. 감이 전혀 잡히질 않았다.

본토 영공에 진입하기 직전, 해안에서 대기하던 해병대와 공군, 해군이 일시에 공격했다. 난수 사격으로 만든 레이저 방어망과 함께 실물 미사일과 로켓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화악―!

수혁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에 시야가 하얗게 날아갔다. 일전 시베리아 상공에 나타났던 M형 게이트를 처리할 때 썼던 수법이다. 일단 일시적으로 최대 출력을 발산하여 일정 반경 이상을 증발시킨다. 수혁을 중심으로 구형으로 발산하는 출력을 한 방향으로 모아 하늘을 가르는 긴 빛의 창 혹은 검을 생성 후, 목표물을 직접 타격한다.

강수혁의 최대 출력을 다루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서 윤조는 동조율을 올리고 에스퍼 전용 전투복에 직접 액세스하여 조종했다. 마치 칩셋 하나로 감당하기 힘든 강력한 하드웨어에 더블 코어 칩셋을 장착하여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퍼포먼스를 실행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출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과 체력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수혁을 대신하여 윤조가 비행을 비롯한, 탐지, 조준 등, 기타 영역을 모조리 대신하였다.

늘 따라다니는 쌍둥이 AI가 레이저망과 로켓, 미사일, 전투함 위치와 항모에서 날아오른 전투기들을 모조리 마크했다. 윤조의 전술 판단에 따라 거대한 빛의 창이 다섯 가닥으로 갈라졌다. 전방 일부분은 곧은 채로, 이후로는 엿가락처럼 주르륵 늘어난 채찍은 하늘을 아광속(亞光束)으로 누볐다.

빛나는 바늘과 실이 번쩍이고 사라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번쩍였다.

펑! 퍼펑! 쾅!

잔상이 흐려짐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공중에서 폭발한 미사일 파편은 벌떼처럼 쏟아지는 후속 미사일 집단 위로 쏟아졌다. 연쇄 폭발이 일어나면서 강한 바람과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덕분에 레이저 그물망이 산란하면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광 마크가 어지러운 전투 시야에 AI 지정 목표인 붉은 세모가 다시 주르륵 떴다. 빛의 채찍 다섯 가닥이 각자 살아 숨 쉬듯 날뛰었었다. 탄막이 점점 해면으로 하강했다. 동부 대서양 연안 괴멸 이후로 서부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재편한 막강한 미 함대가 확연한 수세에 몰렸다.

나누었던 출력을 합쳐서 해면을 긁었다. 막강한 에너지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증발한 막대한 해수가 이윽고 수증기 폭발을 일으켰다. 뜨거운 열탕 해일이 한증막과 함께 사방을 퍼졌다. 전투복 없이 노출되었다가는 그대로 삶아질 고온 파도가 치자 해상과 해안에 있던 모든 병력은 무력화되었다.

상대는 살상을 목표로 나왔으나, 이쪽은 너그럽게도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응대했다. 전투기 조종사도, 해병도, 포수도 개개인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다.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 하나는 있을 거다. 천애 고아라도 친구나 동기, 동료는 있을 테니.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중에도 씁쓸했다. 하지만 인간성에 제법 큰 하자가 있는 에스퍼는 아니었다.

-끝까지 지랄이네.

쌀쌀맞은 평과 함께 전방을 주시했다. 지상 1km 상공이라 전방에 뭐가 있을 게 없다. 민간 항공 노선은 이보다 훨씬 위쪽이다. 그전에 군사 비상 상태일 땐 무조건 착륙 및 대기다. 인근에 뭐가 날아다닌다면 그건 군용기다.

삐빅.

18km 전방에 뭔가 잡히긴 했다. 지상 어딘가에서 쏘아 올린 미사일이었다. 미사일은 이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계속 상승했다. 혹여 한국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걸까? 급히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여 예상 타격 목표를 찾았다. 한국도 아닐뿐더러, 그럴 깜냥도 안되는 크기였다.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은 아니고 날아가는 방향도 그렇고요. 오작동으로 추정합니다. 저건 대기권 재진입 시 마찰열로 타 버릴 겁니다.

-김윤조, 바보냐?

-예?

수혁이 윤조를 양팔로 단단히 껴안은 즉시, 순간 최대 가속으로 미사일을 향해 날아갔다. 이미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따라잡기 위해서 여태껏 겪어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날아가는 바람에 윤조의 정신이 흩어지려고 했다.

둥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미친 가속도가 사라졌다. 사방에서 타오르던 불꽃도 사라졌다. 그리고 몸이 떠올랐다. 위도 아래도 앞도 뒤도 없이 빙글빙글 도는 시야에 검은 우주와 푸른 지평선이 휙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위성 궤도였다.

거기서 수혁은 윤조를 놓았다. 추락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그렇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전방으로 날아가던 속도가 있어서 가속하는 수혁을 등속도로 쫓아갔다. 가이드 전용 특수 위성의 범위에서 벗어난 지역이라 AI가 윤조의 위치를 잡지 못했다. 위치를 보고하라는 노란색 경고에서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AI가 잡지 못한 건 윤조와 수혁만이 아니었다. 추진 연료를 다 소진하고도 남은 속력을 잃지 않은 미사일도 마찬가지였다.

-……어?

미사일은 정확하게 위성을 향하고 있었다.

등골이 얼어붙었다. 목덜미가 뻣뻣해지면서 뇌가 화하게 탔다.

AI 위성이 직접적으로 노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공격 루트인데도 평소에 전혀 계산 속에 넣지 못했다. 아마 위성에 관심이 없는 게이트에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그들은 비교적 단순한 게이트의 행동과 달리 교묘하고 교활했다.

-……형.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저건 김윤석이 아니다. 생김새도, 하는 일도, 무엇보다 인간이 아니다. 그냥 저와 함께 설계된, 특수 군사 위성일 뿐인데. 고약한 배려심으로 인해 죽은 형과 같은 이름을 가졌을 뿐인데.

폐와 위장, 심장이 자리 잡은 심부 저 아래가 서늘했다. 그냥 위성일 뿐인데. 망가지면 고치면 그만인데. 공포를 넘어서는 인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지독한 고립감과 소외감이 윤조를 덮쳤다.

윤조가 느끼는 감정은 동조를 통해 제 에스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김윤조. 깡통 안 부서져. 너 혼자 아니야. 정신 차려.

단단한 음성이 흩어지는 이성을 꽉 부여잡았다.

세계 최강의 애인은 제 반려의 쌍둥이를 향해 날아드는 미사일을 적시에 탈취했다. 뒤이어 도달하는 제2, 제3의 미사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강수혁의 범위 안에 들어서자마자 멈춰서서 빙글빙글 부유했다.

-딱 받은 만큼만 되돌려 줄게.

수혁이 선언했다.

그의 권속이 된 미사일은 기수를 틀어 지구 쪽으로 향했다.

자유낙하 시에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공기 마찰로 인해 미사일이 자폭하지 않도록 수혁은 진입 속도를 섬세하게 조정했다. 미사일들은 안전하게 대기권을 통과하여 제 고향으로 힘차게 돌아갔다.

수혁이 윤조를 끌어당겼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윤조를 꽉 껴안은 그는 등을 아래로 하여 낙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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