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그랑주 포인트-167화 (244/256)

167화

하늘에 작은 틈만 보인다 싶으면 마이크로 게이트가 비집고 들어왔다. 하늘이 하늘이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 같았다.

-김윤조.

수혁이 불렀다.

-정신 차려.

“……예.”

-저것들은…… 치직…… 삐이―.

노이즈가 심하게 끼었다가 이내 이명처럼 날카로운 소음이 이어졌다.

“소령님? 소령님? 들리십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보다는 그 뒤에 올…….

“통신 상태가 불안정합니다! 소령님! 제 말 들리십니까!”

-김윤조? 들려? …… 김윤…… 시발.

낮은 욕설과 함께 통신이 아예 나갔다. 통신 불안정은 다만 윤조 문제만은 아니었다. 멀쩡하던 방공호 메인 스크린도 뚝뚝 끊기더니 이내 조정 화면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켜지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작동하는 위성이 없어. 몇은 다중 게이트에 먹혔는지 식별 신호 자체가 아예 사라졌고 대부분은 방사능과 전파 때문에 통신이 끊겼어.”

최정이 사방에 난무하는 항공우주국 직원들의 외침을 듣고 전달했다.

“살아있는 건 매설한 케이블뿐이군. 그것도 사실 지상 전투가 시작되면 언제 끊길지 몰라. 비상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특수 전파를 사용하는 통신기가 딱 하나 있긴 한데 미군이 가져갔어.”

하와이에서 사용했던 특작부 전용 통신기를 언급했다.

“소령님과의 통신을 살려야 합니다. 방공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심 박사와 최정은 반대하는 대신 오히려 따라나설 기세였다.

“두 분은 여기 계십시오.”

“아니 김 준위 혼자 내보낼 순 없지. 나연이 너는 있어.”

“아니 최정, 네가 가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가더라도 내가 가야 통신을 살리든 말든 하지.”

“아니 네가 방사능 맞아서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너는 무슨 방사능 반사 기능이라도 있냐? 너 잘못되면 난 네 와이프한테 죽어.”

“아니 그래도 너보다는 내가…….”

전투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로아무아가 윤조에게 다가왔다.

-일반인은 빠져. 나갈 거면 내가 같이 가겠어.

로아무아가 가죽 전투 장갑을 챙겼다. 아무래도 전투 상황에서는 가이드가 가야 한다. 에스퍼를 통솔할 노련한 가이드는 늘 모자랐다. 로아무아는 아주 능숙한 가이드로, 큰 전력이 될 것이다.

"좋아. 대신에 이거 받아."

심 박사가 로아무아에게 얇은 와이어로 연결된 인 이어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게이트 발생 전파 무효화 장치. 대신에 이거 끼면 다른 통신도 안 돼. 전투 시에는 여기 누르면 돼. 모든 전파가 차단되니까 문자 통신 혹은 텔레패스만 써. 윤조 너도.”

-고맙게 쓸게.

로아무아가 즉시 인 이어를 꼈다.

-지금 격납고로 가게.

일단 대피하긴 했으나 다중 게이트 출현 소식을 듣자마자 전투 상황을 챙기던 노리스가 덧붙였다. 그는 항공우주국에 있는 기종을 이미 파악 후 당장 이륙 가능한 수직 이착륙기를 찾아 시동키를 확보하여 접속 중이었다. 노련한 가이드다운 신속한 조치였다.

방공호를 나선 윤조와 로아무아는 즉시 격납고로 이동했다. 불빛이 들어온 항공기가 한 대 있었다. 노리스의 지시에 따라 로아무아가 랜딩기어 잠금을 푸는 사이 윤조는 수동으로 변환된 활주로 록을 풀고 도어를 개방했다.

주조종석엔 로아무아, 부조종석은 윤조가 앉았다. 이륙은 오토 파일럿이 맡았다. 검은 입을 벌린 지하 활주로를 따라 붉은 유도등이 쭉 켜졌다.

-항공우주국을 벗어나면 통신이 끊길 거네. 위성 이상으로 GPS와 자동항법장치가 무용지물이야. 비행 자체는 오토파일럿이 담당해도 항로는 메뉴얼이네. 김에게 내장 GPS가 있으니 눈으로 보고 태평양 연안으로 곧장 가게. 거기 가면 텔레패스가 있을 테니 자네들을 감지해서 지상 레이더를 통해 함대까지 비행경로를 지시해 줄 거네. 자네들 식별 신호는 이쪽에서 지상 통신을 통해 인근 아군에게 통지하겠네.

“알겠습니다.”

수직 이착륙기가 몸체를 띄웠다. 유도등을 따라서 서서히 이동하던 기체는 멀리 출구가 보이자 즉시 가속했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한껏 올라간 뒤에 평형을 찾고 설정된 항로로 진입하기 위해 크게 선회했다. 지옥탕처럼 부글부글 끓는 하늘이 훅 가까워졌다. 자리를 펴는 중소형 게이트 사이로 불길한 색깔을 가진 마이크로 게이트 무리가 징그럽게 빼곡했다.

‘윽, 다 터트리고 싶게 생겼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바글바글하는 저 덩어리들을 스크래퍼로 벅벅 긁어 버렸을 거다. 애석하게도 우수한 능력을 자랑하는 윤조의 ‘스크래퍼’는 지금 통신 두절 상태였다.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항공우주국을 나온 직후부터 AI 신호부터 찾고 있으나 게이트로 인한 전파 교란으로 쉽지 않았다.

이럴 때 큰 힘이 되는 특정 능력을 보유한 에스퍼가 태평양 연안에 떠 있는 캐나다 항모 전단에 있다. A급 텔레패스 에이브리. 노리스가 권한 목적지가 바로 거기였다.

-이 기체 순항 최적 속도가 마하 3이야. 목적지까지 20분쯤 걸려. 좀 더 빨리 갈 수도 있지만, 중력 가속도 훈련을 받은 적 있나?

-그 이상도 문제없습니다. 강 소령님과 비행할 때는 순간 최대 속도가 마하 15를 넘기니까요.

앞 좌석에 앉은 로아무아가 고개를 부자연스럽게 돌렸다. 45도 각도로 돌아간 그의 얼굴엔 경탄이 서렸다.

-마하 15? 그걸 전투복 하나로 버텨?

-네.

-심은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사람은 맞나?

-일단은 맞습니다.

로아무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맞다니. 어쨌거나 속도를 더 올려도 된다는 얘기니까. 내가 견딜 수 있는 수준까진 올리겠어.

-알겠습니다.

기체가 가속을 시작했다.

마하 5를 넘기자 로아무아는 입을 다물고 호흡에 집중했다. 하지만 윤조는 이 정도 가속도로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혹시나 강수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하늘을 둘러보며 레이더에 집중했다. 하지만 무수한 게이트 사이에서 강수혁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부는 발달이 무르익어, 중형 서너 개는 이미 열리기 직전이었다.

* * *

위성 궤도에 있는 수혁은 제 발밑에 우후죽순 생성되는 게이트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정말 징그럽게도 많았다.

갑자기 왜?

다중 게이트 상황은 종종 있었다. 최초의 게이트가 발생한 이래 80년간 기록된 최대 다중 게이트는 중형과 소형이 동시에 7개 나타난 ‘세븐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북미 대륙 반이 날아갔다.

수십 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건 사상 최초였다. 남반구를 빼곡하게 채우는 게이트 수십 개를 보고 있자니 수혁조차 등골이 서늘했다.

이쪽이 모르는 사이에 외계 괴물 놈들 사이에 뭔가 일이 벌어졌거나 혹은 이쪽에서 뭔가 건드렸거나. 아무래도 후자에 힘이 실린다. 김윤조가 테스트에 발신한 짧은 신호가 무엇이든 간에, 외계 괴물 놈들을 상대로 광역 도발한 듯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이트 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장과 방사능은 업그레이드한 전투복의 차폐 기능을 능가했다. 쓸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고통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죽진 않지만, 가혹한 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이 소모된다. 징그럽게 많은 게이트와의 전면전을 앞둔 상태에선 체력 보전이 최우선이다. 방사능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는 대기권, 정확하게는 오존층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플라즈마 창을 만들어 막 생성되는 소형 게이트에 내리꽂았다. 불안정한 게이트는 거품처럼 펑 터졌다. 작은 틈 사이로 지구가 보였다. 하지만 수혁이 통과하기 전에 주변 게이트가 먼저 틈을 메웠다.

두어 번 더 창을 꽂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발.’

북반구로 우회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금방 포기했다. 우회하는 동안 남반구 전체가 초토화될 건 자명했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기분이 찜찜했다. 건드리면 툭 부서지는 연두부가 어디 방공호에 얌전히 있을 성격인가? 벌써 튀어나와서 무슨 짓을 벌이고도 남았다.

어차피 다 없애야 할 게이트였다. 자잘하게 대응하는지 응축한 힘을 터트려 초토화시키는 편이 빨랐다.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필살기를 날리기 위해 에너지를 모을 때처럼, 수혁은 눈을 감고 정신을 한데 모았다. 오버로드 하는 출력이 만들어 낸 광휘가 사방으로 뻗쳤다. 수혁은 그 자체로 항성이었다.

가이드란 핵연료봉을 식히는 냉각수였다. 출력에 잠식되어 가는 뇌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정신적 부담을 분담하고, 에너지를 담은 민감한 신체가 폭주하지 않도록 아주 섬세하게 근육과 신경을 매만진다. 그것이 가이드다.

지금은 통신 불능 상태다. AI ‘윤석’은 무사하나, 수혁과 마찬가지로 지상과의 통신이 끊겼다. 한계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막대한 에너지를 수혁이 혼자서 감당하란 얘기였다.

최대 출력을 정교하게 운용하기란 불가능했다. 수혁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방향으로 터트리는 것뿐. 게이트가 터지면서 휘말리는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구 종말급 대재앙에선 그건 다소 불운했다고 치부하고 말 일이다.

‘내 눈앞에서 꺼져!’

괴물 태풍처럼 몰아치는 빛이 위성 궤도에서부터 대기권으로 직진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