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두 사람이 어떤 균형을 이루어 2년간 먹지도 마시지도 숨 쉬지도 않고 생존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또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한 쇼크사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위 파편만 최대한 제거한 후 인공 양수 탱크에만 넣어 두었다.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그저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늦은 새벽.
탱크가 있는 공군 격납고에 마련한 극비 연구소는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곤 다들 자리를 비워 한산했다. 깨어났을 때 무엇을 저지를지 모르는 위험한 에스퍼를 지켜보기에 내부 보안은 AI와 교대로 근무하는 연구원이 맡고 그 외는 전부 외부 봉쇄로 돌렸다. 그래서 기계음만 반복되는 넓은 격납고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마침 새벽 당번을 맡은 특작부 소속 심나연 준장뿐이었다.
2년 상간에 많은 일을 했다. 생떼 같아서 하여간 살아 있기만 하면 양 볼에 뽀뽀를 쪽쪽 해준 다음에 걱정시킨 벌로 명치에 대전차 바주카를 발사하고 싶은 놈과 사용한 바주카로 먼지 나도록 패고 싶은 그 파트너의 알궁둥이를 물끄러미 봤다.
삐삐삐―
탱크에 연결된 기기가 각종 바이털 사인과 함께 뇌파 그래프를 계속해서 그렸다.
두 줄기 뇌파는 하늘을 노니는 종달새 한 쌍 같았다. 같은 고저를 유지하다가 가끔 장난치듯 살짝 흔들리더니 곧 한여름 바다를 가르는 돌고래처럼 우아하게 물결쳤다.
‘뇌파 그래프가 이렇게까지 예쁠 일인가.’
지켜보던 심 박사가 생각했다.
과거 강수혁의 등에 소형 핵폭탄을 심으라는 상부 명령을 받았을 때 과연 위력이 얼마나 되어야 강수혁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나 심도 있게 연구했다. 애초에 핵을 심을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또 가이드 개발을 일찌감치 염두에 뒀기에 순전히 호기심 만족을 위한 연구였다. 당시 연구로는 강수혁을 핵으로 제거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요한 핵 위력도 계산해 냈다. 보고서를 작성하여 위에 올리기도 했다. 어차피 쓸 일 없었지만. 눈속임은 필요하지 않은가.
그 보고서가 얼마 전부터 관계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본인이 내놓은 연구 결과도 있으니 소득 없는 수색 작전을 그만두라는 압박이 슬슬 들어왔다.
제가 직접 쓴 그 연구 보고서는 틀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옳지 않다. 그건 가이드가 없어 통제 불능 상태인 에스퍼에 관한 보고서니까.
가이드가 있는 에스퍼는 다르다. 더 안정적이며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능력 한계치를 극복한다. 천재적 재능을 가졌으나 곧잘 슬럼프에 빠지는 운동선수가 좋은 코치를 만나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다가 결국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하는 서사가 과거부터 유구하지 않나.
김윤조가 빚어낸 최강의 강수혁이라면 다중 핵폭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심 박사의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돌 안에서 발견될 줄은 몰랐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사막 어딘가에서 자체 휴가를 즐기고 있으리라 여겼지, 불쌍하게 저러고 있을 줄이야.
더욱이 놀라운 것은 수혁의 척추 장치가 온데간데없는 점이었다. 부근 돌에서 척추 장치에 사용했던 금속 분자가 발견된 걸 보고 핵폭발 시에 녹았으리라 추정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척추가 녹을 열기라면 수혁 본인도 절대로 무사할 수가 없다.
‘제 가이드를 살리겠다는 의지 때문인가.’
막연한 결론을 내렸다. 30년 전 ‘가이드’라는 개념이 생긴 이후 많은 에스퍼들이 제 랭크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중에는 발전을 거듭하여 상위 랭크로 뛰어넘는 경우도 제법 되었다. 트리플 S급인 강수혁의 잠재 능력은 현 인류의 과학 수준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그렇기에 김윤조가 강수혁에게 미치는 변화를 충분히 예측하기 불가능했다.
“뭐 외계인 유전자가 힘냈겠지.”
심 박사는 전자펜 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깨어난 후에 경위 청취와 함께 심리 검사를 병행해야 했다. 그래도 정확하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메커니즘을 전부 파악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거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거라 막연히 추측할 수 있는 강수혁은 낫다. 진짜 수수께끼는 김윤조였다.
“얜 내가 만들었어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심 박사는 미간을 구겼다. 제공한 양수를 통해 외부적인 관찰을 계속 이어 가는데 별다른 특이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김윤조는 분명히 일반인을 기반하여 후천적으로 변태한 인조 강화 인간이다. 제작 초기에는 하급 에스퍼 수준이다가 트리플 S급 에스퍼에게 대량 수혈을 받아 종합 A급 에스퍼로 거듭났다. 급수 측정이 가능하기에 어쨌거나 에스퍼 범주 내였다. 핵폭발은 인근에서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란 얘기다. 그런 그가 다중 전략핵 폭발 속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지만, 밀폐 공간에서 2년이나 멀쩡히 생존한 자체는 거의 뭐 미친 얘기였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둘 사이를 연결한 코드였다. 저것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척추 장치까지 모조리 녹아내리는 중에 저 연약한 응급 코드가 어떻게 멀쩡히 살아남았냐 하는 거다.
삐삐삐―
어지러운 머릿속에 맑은 비프음이 울렸다. 뇌파 그래프를 향해 반사적으로 시선을 던졌다. 눈꼴실 만큼 말랑하게 어우러지던 뇌파 한 쌍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며 괴리되기 시작했다. 둔탁한 고무 슬리퍼를 신은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소름이 쭉 돋았다. 드디어 깨어난단 징후였다.
엄마 배 속의 쌍둥이처럼 꼭 끌어안고 있던 사지가 움찔 경련했다. 뒤이어 멍한 안면이 일그러지더니 손끝과 발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눈을 뜬 건 윤조였다. 어리둥절한지 눈을 깜빡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봤다.
“윤조야! 정신이 들어!”
심 박사가 탱크에 들러붙어 외쳤다. 시야가 일렁이는 건 단순히 탱크 속에 담긴 양수로 인한 굴절만은 아니었다.
-박사……님?
“그래 나야!”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번에도 초기화될 것을 걱정했다. 김윤조가 초기화되면 강수혁이 또 얼마나 지랄할까. 척추 장치도 없는데 또 죽겠다고 지랄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눈 뜨지 말고 탱크 속에서 행복한 꿈이나 꾸며 살게 할까. 온갖 우려가 다 들었다.
-어떻게 된…… 소령님?
윤조는 기억이 있을 뿐 아니라 강수혁도 알아봤다. 눈을 감은 채 저를 안고 있는 에스퍼를 잠시 살피더니 손으로 그의 얼굴을 만졌다.
“수혁이도 살아 있어. 아니 수혁이가 널 살렸어. 바이털 사인 안정적이고. 정신이 들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군요. 그럼 게이트는?
윤조는 수혁을 찾아 게이트 영역으로 점프한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그에 심 박사가 간략한 상황을 설명했다.
“수혁이가 널 살린 것 같아.”
-그렇군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강수혁을 붙잡고 있던 윤조 제 에스퍼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리곤 가볍게 입술을 포갰다.
체통도 양심도 없는 놈들이 아무 데서나 애정 행각을 벌여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뭐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감격에 차 박수를 보낼 만큼 예쁘기만 했다.
살아 있어서 고마웠다. 무슨 짓을 해도 고마워서…….
펑펑 솟아나는 눈물을 닦을 때였다.
삐삐삐―
뇌파 그래프가 상승했다. 탱크와 함께 들여온 특작부 연구실 AI가 무미건조한 기계음으로 보고했다.
-뇌파 변화 감지. 성욕 상승. 대상 에스퍼 : 강수혁
“응?”
아직 깨어나지도 않은 애가 성욕이 왜?
눈을 껌뻑인 심 박사 앞에 아주 보기 흉측한 광경이 불쑥 들어왔다. 얌전하게 축 늘어져 있어야 할 인외 가랑이가 어느새 핏줄 돋은 채 빳빳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어?”
-……소령……님?
당황한 건 이쪽만이 아니었다. 가볍게 뽀뽀하려던 가이드는 어느새 에스퍼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잡혀 버둥대고 있었다.
인공 양수가 출렁였다. 마침 탱크가 밀폐형이 아닌지라 위로 흘러넘쳤다.
“으악!”
졸지에 양수를 뒤집어쓴 심 박사 뒤로 두 사람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관계자들이 우르르 섰다.
탱크 안 광경을 목격한 전부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 탱크 내부를 비추던 조명을 황급히 껐다. 어두운 탱크 저쪽에서 하얀 손바닥이 나타나 유리를 턱 짚었다. 뒤이어 다급한 표정을 한 가이드가 외부를 향해 애처롭게 도움을 구했다.
-누구라도 날 좀 구해…… 읍읍!
-이리 와, 김윤조.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무시무시한 목소리와 함께 빨판 문어 같은 손길이 가이드를 어두운 양수 속으로 쑥 끌어당겼다. 실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으응. 소령님 이건 좀…… 아!
-경고. 흥분 급상승. 성욕 급상승. 대상 에스퍼 : 강수혁. 대상 가이드 : 김윤조
무감정한 AI가 보고했다. 뒤이어 문어 빨판이 뭔가를 쪽쪽 빠는 소리가 들렸다. 갓 깨어난 중요 인물의 상태를 체크 하기 위해서 뛰어왔던 연구원들은 어쩔 줄 몰라 눈만 굴렸다. 누군가 조용히 스피커 볼륨을 죽였다. 하지만 탱크 안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소리가 점점 커져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으응…… 지금 이럴 때가…… 아.
가이드가 그나마 에스퍼를 달래려고 들었다. 하지만 노력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앗! 아! 으! 거긴! 으응…… 앗!
뒤이어 별로 듣고 싶지 않은 감탄사가 이어졌다. 계속해서 탱크 위로는 인공 양수가 태풍을 맞은 해안가처럼 출렁였다. 처음에는 마구잡이 엇박자였다가 어느새 리드미컬한 탁음에 맞춰 규칙적으로 범람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갔던 중년 여성이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는 인공 양수에 흥건히 젖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처절하게 절규했다.
“시발! 누가 저 개망나니 새끼들을 파내자고 했냐!”
지구를 구한 두 영웅이 2년 만에 생환한 기념비적 날의 기록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