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216)

2화

*

“후아.”

마지막으로 쓰레기를 버리고 난 뒤 코이는 한숨과 함께 등을 쭉 폈다. 그는 한 차례 가게 안을 둘러본 뒤 마무리가 된 것을 확인하고 불을 전부 껐다. 밖에서 가게 문을 잠그고 나자 이제 정말 모든 게 끝났다.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자전거 근처로 간 그는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미리 대충 훑어보긴 했지만 과제를 끝내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해져 페달을 밟는 발이 더욱 빨라졌다. 귓가로 서늘한 바람이 매섭게 스쳐 지나갔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작은 가게에서 혼자 계산을 하고 물건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다 폐점 시간이 되면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이 정해진 일이었다. 청소와 쓰레기 정리하는 시간까지 따져서 급여를 받아야 했지만 주인은 한 번도 챙겨 준 적이 없다. 코이로서도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탓에 그저 시키는 대로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폐점 시간이 지나고도 30분에서 1시간은 더 일을 하다 보니 집에 가면 대부분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과제와 공부를 하기엔 턱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코이는 조바심을 내며 더욱 빠르게 발을 굴러 어두운 밤길을 달려갔다.

*

트럭을 개조한 집 앞에 멈춘 코이는 내던지다시피 자전거를 놓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대충 씻고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부팅이 될 동안 과제 할 준비를 했다. 화면에 보이는 과제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쉬고 노트를 펼쳐 대충 정리를 시작했다.

과제는 미리 지정된 라틴 문학 중 한 권을 읽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었는데, 책은 미리 읽어 뒀으니 주제에 맞게 글을 쓰기만 하면 됐다.

한동안 그는 과제에 몰입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담당인 마르티네즈 선생은 과제에 아주 엄격했는데, 과제 내용이 허술한 것보다는 기한을 지키지 않는 것에 더 가차 없었다.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은 물론이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성적을 관리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코이는 어느새 침침해지는 눈을 비비며 열심히 문장을 만들었다.

한창 몰두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요란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낡은 트럭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코이는 놀라 황급히 컴퓨터의 화면과 스탠드 불을 끄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것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리고, 아버지가 낡고 좁은 모터홈 안으로 들어왔다.

긴장으로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코이는 꼼짝 않고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온 신경이 집중된 귀로 아버지의 움직임을 쫓았다.

아버지는 오늘도 역시 술에 취한 듯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그는 어딘가에 부딪혀 요란한 소음을 일으켰다. 역시나 욕설을 지껄인 아버지는 곧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이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냉장고 안에 있는 술을 꺼내는 것이다.

“끄응…….”

아버지는 불편한 신음 소리를 내며 의자에 앉더니 곧이어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미 밖에서 흠뻑 취하고 왔음에도 또다시 술을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코이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오늘은 그를 억지로 깨우거나 트집을 잡아 때리지 않을 테니까. 몇 병 마시면 곧 잠이 들 것이다. 그러면 다시 컴퓨터를 켜고 남은 과제를 끝내면 된다. 자주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패턴은 뻔했다. 코이는 어서 아버지가 잠들기만 기다렸다.

“크으…….”

이윽고 술에 취한 신음을 흘렸던 아버지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곧이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코이는 조심스레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고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했다. 코이의 침대에서 바로 보이는 작은 주방의 테이블에 아버지는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바닥에는 빈 술병이 몇 개나 뒹굴었다. 코이는 잠시 아버지를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곯아떨어진 채 계속해서 코를 골았다. 코이는 머리가 울리는 것을 참으며 다시 과제로 돌아갔다. 흘긋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앞으로 2시간 안에 과제를 끝내자. 그럼 조금이라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다시 과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끄응…….”

갑자기 들려온 신음 소리에 코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아직 잠든 채였다.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을 때였다.

“미란다…….”

코이는 그대로 굳어서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뒤이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고요해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잠꼬대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코이는 다시 과제에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그녀에 관한 얘기는 그들 사이에서 금기였다. 아버지가 입었던 상처만큼 그에게도 아픈 기억을 일깨우는 기억이었기에, 코이 또한 입 밖에 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직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여전한 애정이든, 그리움이든, 미움이든. 언젠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마음을 흘렸던 기억이 뒤따랐다.

〈네가 그 여자를 이렇게 닮지만 않았어도…….〉

그 이후로 코이는 줄곧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애초에 이 모든 불행은 자신의 탓이었으니까.

문득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눈앞의 과제가 최우선이었다. 코이는 다시 글을 마무리하는 데 전념했다.

*

하아, 하아.

새벽까지 과제를 끝내고 잠이 들었는데 덕분에 완전히 늦어 버렸다. 눈을 떴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었지만 해는 벌써 저만큼 높이 올라와 있었다.

놀란 코이는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대충 얼굴만 씻고 가방을 손에 든 채 뛰쳐나와 자전거에 올라탔다.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는데, 한창 줄을 지어 서 있어야 할 차들이 평소보다 훨씬 적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망했다.

그는 다급하게 페달을 밟아 미친 듯이 교정을 가로질렀다. 하필 수업이 있는 건물은 제일 먼 곳에 위치했다. 첫 수업은 교재가 없어 굳이 사물함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벌컥, 문을 열자 마침 수업 중이던 마르티네즈 선생이 곧바로 그를 돌아보았다. 코이는 숨을 헐떡이며 급하게 구석의 빈자리로 향하려다 멈칫했다. 항상 자신이 앉던 자리에 다른 녀석이 앉아 있었다.

그간 이런 상황이 아예 없진 않았다. 하지만 하필 오늘이라니.

당황해하며 급히 두리번거리는데, 뜻밖의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나처럼 교실 한가운데 앉아 있던 애슐리 밀러가 미소를 지었다. 공교롭게도 빈자리는 그의 뒷자리 하나뿐이었다.

언제나처럼 상큼한 얼굴로 웃는 애슐리 밀러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코이는 마주 웃을 수 없었다. 당황해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리 봐도 빈자리는 거기뿐이었다. 학생이 자리에 앉기만 기다렸던 선생은 더 이상 수업이 끊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니? 어서 앉으렴.”

선생의 지시에 코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주춤거리며 빈자리로 향했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 먼저 선생이 주는 프린트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자 선생이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코이는 서둘러 지퍼를 열어 필기구를 꺼내고 수업을 들을 준비를 했다. 그러고 간신히 허리를 펴고 정면을 보는데, 눈앞에 벽이 있었다. 바로 어마어마한 애슐리 밀러의 등이었다.

어째서, 왜, 무엇 때문에.

아무리 목을 빼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기분 때문인지 선생의 목소리조차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했다.

이제 나 같은 민간인의 앞길까지 가로막다니.

수업 시간 내내 코이는 분한 마음을 곱씹으며 넓디넓은 애슐리 밀러의 등을 노려보았으나 물론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코너 나일즈, 잠깐 오거라.”

어찌어찌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교실을 나가는데, 갑자기 마르티네즈 선생이 코이를 불러 세웠다. 멈칫한 코이는 자신의 뒤로 나가는 녀석들을 한 차례 돌아보고 마르티네즈 선생이 기대서 있는 교탁 쪽으로 다가갔다. 선생은 불안해하며 자신의 앞에 선 학생의 얼굴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왜 불렀는지 이유를 알겠니?”

코이는 고개를 저은 뒤 대답했다.

“아뇨. ……수업에 늦어서요?”

혹시 지각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거라면 과제 때문에 늦게 잤다고 선처를 호소해 볼 생각이었다. 조마조마해하며 기다리는 코이에게 선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더구나.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네? 과제요?”

생각도 못 했던 얘기에 코이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선생은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기한을 몰랐다고는 하지 않겠지? 과제를 확인했다면 그 옆에 적힌 날짜도 분명히 봤을 테니 말이다.”

“봐, 봤어요. 과제도 분명히, 냈는데.”

코이는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끼며 말을 더듬었다. 자신이 밤을 새워 기울였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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