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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9/216)

9화

“아, 안 돼, 그만둬!”

코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머릿속이 빙빙 돌았다. 어떻게든 말리고 내보내야 하는데 다른 패거리가 계속 그를 잡고 있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만하라니까, 모두 나가! 다 내려놓고 가라고!”

“이 자식이.”

코이를 잡고 있던 녀석이 멱살을 움켜쥐었을 때였다.

“잠깐, 그 새끼 놔 봐.”

갑작스럽게 끼어든 넬슨의 음성에 코이의 멱살을 쥐었던 녀석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난폭하게 뿌리치는 바람에 그만 크게 비틀거리고 만 코이가 엉거주춤 멈춰 서자 넬슨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야, 너 뭐라고 그랬냐?”

한 걸음씩 다가오는 넬슨의 몸이 평소보다 더 거대해 보였다.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주변에서 히죽거리는 녀석도, 멋대로 진열장의 과자를 뜯어서 먹는 녀석도, 기계에서 멋대로 슬러시를 뽑고 있는 녀석도 모두 안 된다고 말려야 했지만 지금 코이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은 오직 넬슨뿐이었다.

“뭐라고 했어? 어?”

넬슨이 빈정거리며 물었다. 그는 입을 열지 못하는 코이를 바라보며 건들건들 걸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 떨기만 하는 코이의 모습에 피식 웃었던 넬슨이 두 손으로 코이의 어깨를 세게 밀었다.

“야.”

“아!”

비틀거리며 물러난 코이를 넬슨이 다시 밀쳤다.

“뭐? 그만해? 나가?”

또다시 코이를 밀어낸 넬슨이 한 손으로 휘청거리는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그대로 끌려간 코이의 얼굴에 제 얼굴을 들이댄 넬슨은 흉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감히 네가 나한테 명령을 해? 병신 찐따 새끼가, 어딜 주제를 모르고.”

“윽, 으윽.”

코이는 숨이 막혀 눈물을 글썽거리며 어떻게든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점점 더 숨통이 막혀 올 뿐, 넬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이는 숨을 헐떡이며 눈물이 맺힌 눈을 넬슨에게 향했다. 넬슨이 턱을 내밀고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네가 뭘 어쩌겠냐는 듯이. 그 눈을 마주 보자 코이는 갑자기 분한 마음이 치솟았다.

“그만, 하라고! 도, 돈도 안 내고,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었잖아, 너, 는, 도둑, 이야. 너희들 다, 도둑, 강도라고!”

“뭐야?”

넬슨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의 이마에 핏줄이 솟고, 커다란 손바닥이 위로 올라갔다. 곧바로 자신의 뺨을 내리칠 기세에 코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고작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이거 맞고 기절하면 가게는 어쩌지? 청소는 언제 다 하나? 이 녀석들이 가져간 물건들이 다 얼마나 될까? 내 이번 주 주급으로 해결이 될까? 차라리 얻어맞고 영원히 눈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갑자기 딸랑, 하고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누군가가 온 것이다.

손님인가? 코이는 어렴풋이 생각했지만 그래 봤자 고통의 시간이 잠시 지연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겠지. 이 꼴을 보면 당연히 놀라서 나가 버릴…….

“뭐 하는 거야, 다들?”

어?

갑자기 들려온 산뜻한 음성에 코이는 움칠 놀랐다.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꼭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뜨면서도 코이는 설마 했다. 저렇게 청량한 음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한 명뿐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설마, 그럴 리가. 설마.

설마 애슐리 밀러가 여기에…….

드디어 뜨인 두 눈이 점차 크게 열렸다. 코이는 시야에 들어온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있다.

텅 빈 머릿속에 고작 그것만이 떠올랐다.

애슐리 밀러가 있어.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멍하니 그를 보고만 있는 건 코이만이 아니었다. 한창 행패를 부리고 있던 넬슨은 물론 패거리 전부가 그 자리에 선 채 당황해 그를 보고 있었다. 오직 애슐리 밀러만이 태연한 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자동으로 닫히는 유리문에 달려 있는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어 있는데도 애슐리는 불편해하는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태연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코이는 하긴, 하고 생각했다.

이게 일상일 테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상황에 맞지 않게 씁쓸한 기분을 느꼈을 때, 넬슨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선 애슐리가 흘긋 코이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넬슨에게로 되돌렸다.

“지금 뭐 해? 설마 때리려고 하는 건 아니지?”

넬슨이 코이의 멱살을 잡은 채로 흠칫 굳었다. 자신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에 뒤늦게 화가 치밀어 그는 더욱 큰 목소리로 내질렀다.

“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망했다.

지켜보던 패거리들 모두, 심지어는 넬슨마저도 같은 생각을 했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한데 목소리를 아무리 크게 내 봤자 말을 더듬어 버렸으니 다 틀렸다.

역시나 애슐리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상관있지, 너희들, 지금 마시고 있는 게 술이야?”

“뭐, 뭐?”

뒤늦게 패거리 중 하나가 들고 있던 맥주를 등 뒤로 감췄고, 넬슨은 아직 남은 맥주 캔을 황급히 바닥에 던져 버렸다. 하얀 거품을 쏟아 내며 굴러가는 맥주 캔을 바라보았던 애슐리가 다시 넬슨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곤란하네. 미성년자한테 술이라…… 우리들 다 아직 술을 먹기엔 이른 나이 아냐?”

“그, 그래서 뭐?”

넬슨이 고집스럽게 내뱉자 애슐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경찰에 신고하려고.”

그는 보란 듯이 휴대 전화를 꺼냈고, 패거리들은 당황해 눈을 크게 뜨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넬슨 또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거칠게 화를 냈다.

“너 뭐야, 진짜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뭘? 난 그냥 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뿐인데?”

능청스럽게 말하며 휴대 전화의 버튼을 누르는 모습을 본 넬슨이 코이를 내던지고 애슐리에게 덤벼들었다.

“너 이 자식……!”

힘껏 움켜쥔 주먹을 크게 휘두르는 모습에 급히 몸을 추슬렀던 코이는 놀라 숨을 삼켰다. 어떡해, 정말 큰일 나겠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그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이상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지 말아 줘!

“이 개새끼가!”

넬슨이 고함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패거리들이 놀라 바라보고, 코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안 돼!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을 때였다. 애슐리가 슬쩍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어, 어어.”

크게 주먹을 날렸던 넬슨이 헛스윙에 그만 온몸을 퍼덕거렸다.

“넬슨!”

“야!”

패거리들이 당황해 소리쳤지만 넬슨은 볼품없이 구석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녀석들은 풉, 하고 여기저기서 실소했지만 차마 크게 웃지는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그 모습을 본 넬슨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다시 애슐리에게 덤벼들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넬슨을 한심해하며 내려다보던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정말 싸울 거야? 나를 상대로?”

잘 생각해 봐.

코이는 마치 뒷말이 들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친절하게 충고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은 코이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당장 덤벼들 것처럼 사납게 이를 갈았던 넬슨 역시 주춤거리며 기세가 꺾여 버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패거리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저기, 우린 그냥, 나가려던 참이었어. 그렇지?”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나서자 다른 녀석들이 뒤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물론이지. 여기 뭐, 재미도 없고.”

“야, 가자, 어? 넬슨.”

“넬슨, 그만 가자고.”

계속된 말들에 넬슨의 주먹에서 조금씩 힘이 풀렸다. 패거리들의 재촉으로 마지 못해 자리를 떠나는 것처럼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애슐리를 올려다봤다.

“너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상황은 어이없이 끝나 버렸다. 마지막까지 허세 가득한 말을 내뱉고 넬슨은 다른 패거리의 뒤를 따라 급하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런 넬슨의 뒷모습을 보며 코이는 어릴 때 만화에서나 보던 악당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순식간에 가게 안은 고요해졌다. 뒤늦게 깨달은 정적에 코이는 머뭇거리다 애슐리를 올려다봤다. 그때까지 멀어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애슐리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코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코이는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코이와 달리 애슐리는 여태껏 몇 번이나 봤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 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코이는 망설이다 조심스레 물었다.

“저, 여긴…… 무슨 일이야?”

혹시 날 찾으러 온 건가?

내심 떠올렸지만 역시나 틀렸다. 애슐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나다가 뭐 살 게 있어서 들어왔어.”

그럼 그렇지.

코이는 무심히 한 손을 내밀어 팔을 쭉 뻗어 보였다. 알아서 찾아보라는 듯이. 그의 손을 따라 가게 안을 한 차례 둘러본 애슐리가 말했다.

“경기가 끝난 다음의 로커룸도 이 정도로 엉망이진 않을 거야.”

“알면 빨리 뭐든 사고 나가 줘. 청소해야 되니까.”

스스로가 듣기에도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목소리였다. 사실이었다. 난장판이 된 가게는 물론이고, 넬슨 패거리들이 못쓰게 만든 물건이나 먹고 마시고 가져간 것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와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가고 싶어졌다. 물론 그럴 용기는 전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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