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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216)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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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식당에 달려간 코이는 벌써 길게 늘어나 있는 줄을 보고 한 차례 깊은숨을 내뱉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화학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식당에서 제일 먼 건물이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코이의 뒤로도 순식간에 줄이 생겼다. 한 걸음씩 앞당기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아!”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코이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누구야? 그는 당황해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가 놀라 굳었다. 꼬박 반나절 동안 열심히 피해 다녔던 패거리들이 그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정확히는 노려보는 건 넬슨뿐이었고, 녀석의 무리는 히죽거리며 흥미진진해하는 얼굴로 구경하는 중이었다.

“찐따 새끼야, 네가 영원히 날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넬슨이 이를 갈며 내뱉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흘긋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괜한 싸움에 끼어들어 험한 꼴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충분히 경험해 왔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코이는 더없이 외로움을 느꼈다.

자신은 철저히 혼자라는 걸 실감하는 게 과연 익숙해질 수 있는 경험일까. 고통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코이는 알고 있었다. 이 마음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따라다닐 거라는 사실을.

넬슨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가면서 수차례 반복되었던 절망을 느꼈을 때였다.

“코이!”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코이는 물론 넬슨도 멈칫했다. 먼저 시선을 향한 넬슨의 패거리가 히익, 숨을 삼켰다. 뒤따라 넬슨을 포함해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는 걸 코이는 분명히 확인했다. 설마, 반신반의하며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던 코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애슐리 밀러가 저 앞쪽 줄에 서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크게 열린 시야에 그가 함께 서 있는 친구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몸을 돌리는 모습이 들어왔다.

모두가 그대로 멈춰 서 있는데, 애슐리만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무척 이질적이라 코이는 이것이 마치 일부러 만들어 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애슐리가 코이와 넬슨의 앞에 멈춰 설 때까지. 그리고 모두는 숨을 죽인 채 애슐리가 손을 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코이 또한 홀린 듯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애슐리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뭐 하고 있어? 어서 와, 점심시간은 짧다고.”

애슐리는 그렇게 말한 뒤 코이의 멱살을 잡고 있던 넬슨의 손목을 붙잡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넬슨에게 향한 애슐리가 말했다.

“다음 수업 준비하려면 빨리 먹어야지, 안 그래?”

코이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눈은 넬슨에게 향한 채였다. 애슐리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으나 넬슨은 충분히 기가 죽어 버렸다.

코이의 멱살을 잡은 손의 힘이 풀리더니 곧 넬슨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코이는 그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동자로 애슐리를 바라보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듯 가 버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패거리들 또한 황급히 뒤를 따랐다. 그때까지 침묵하던 아이들이 수군대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코이는 이렇게 어이없이 상황이 끝나 버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애슐리가 욕을 한 것도 주먹을 날린 것도 아니다. 고작 몇 마디를 하고 손목을 잡았을 뿐인데 달아난다고? 저 넬슨이?

여전히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자 애슐리 또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항상 보던 미소 짓는 얼굴에 갑자기 코이의 양 뺨이 달아올랐다.

“고, 고마워.”

더듬거리며 말하자 애슐리는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까딱했다. 사실 실제로도 별거 아니었다. 고작 몇 걸음 걸어와서 몇 마디를 한 게 전부니까.

하지만 그게 코이에겐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애슐리 밀러는 결코 모를 터였다. 누군가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주러 나섰다는 게,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애슐리 밀러라는 게 대단한 점이었다. 코이는 이 대스타가 자신 같은 소시민을 도와줬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이게 다 꿈인 건 아닐까?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뺨을 한 대 세게 쳤다. 짝, 소리가 나며 얼얼해진 뺨을 황급히 문지르는데, 애슐리가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뭐 하는 거야?”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여전히 현실이라 믿지 못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이 또 벌어졌다. 애슐리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어깨 뒤를 가리키며 말한 것이다.

“가자, 점심시간 끝나겠어.”

“어? 나?”

당황해 묻자 먼저 돌아섰던 애슐리가 또다시 햇살처럼 웃었다.

“물론 너지, 코너 나일즈.”

코이는 눈을 깜박이다 부랴부랴 애슐리의 뒤를 쫓았다. 큰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 뛰다시피 걸으면서도 여전히 머릿속이 멍했다.

애슐리가 내 편을 들어서 날 구해 주고 거기다 점심까지 같이 먹자고 말했어. 애슐리 밀러가, 나한테.

거기다 이번엔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기까지 했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던 애슐리의 친구들은 애슐리와 돌아온 코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가볍게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까딱여 인사한 그들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이어 나갔다. 코이는 자신이 아이스하키 팀 여섯 명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항상 혼자 밥을 먹었던 자신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섯 명과 함께 서 있다니, 이게 정말 현실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어젯밤 잠들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미리 말해 줬다면 분명 코이는 그가 천사가 아닌 악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사기에 가까운 일이 생길 수가 없지 않은가.

애슐리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간 작은 정도인 덩치 여섯한테 둘러싸여 있자니 바깥세상은 전혀 안 보이고 머리 위로 그림자마저 진하게 드리워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평생 햇빛 따위 보지 않아도 좋아! 코이는 기쁘게 생각했다.

“앞에 서, 코이.”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애슐리가 슬쩍 코이를 앞으로 밀었다. 자신이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점심을 받게 된 것을 알고 코이는 또 한 번 놀랐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평생의 운을 이렇게 다 써 버린 걸 보면 아마도 사신이 불쌍하다고 그에게 하루쯤은 좋은 일을 몰아준 걸 수도 있다.

어쨌든 상관없었다. 코이는 아주 좋은 꿈을 꾸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바닥에 발이 닿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여섯 명은 아주 자연스럽게 코이를 둘러싸고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어서 귀만 쫑긋 세우고 눈동자만 굴릴 뿐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기뻤다.

여섯 명은 요란하게 웃어 대며 계속해서 화제를 바꿔 떠들어 댔다. 친구들이 있는 건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코이는 생각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귀를 기울였다.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전날 성적 때문에 아버지에게 무척 혼났다는 말을 하며 한 명이 투덜거렸다.

“아기들은 말이야, 먹고 자기만 해도 칭찬받잖아? 우리 누나 아기만 해도 그래, 걘 그냥 누워서 똥만 싸는데 다들 잘한다고 좋아한다고.”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그가 푸념을 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이랑 별로 다르지 않은데?”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다른 녀석의 말에 코이는 순간 마시던 야채 주스를 뿜을 뻔했다. 놀라운 건 아무도 그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대화는 흔히 있었던 것처럼. 처음 말한 녀석이 진지하게 물었다.

“왜 지금은 화를 내지?”

샌드위치를 손에 든 채 애슐리가 대답했다.

“10년 넘게 같은 공연만 보는 관객들 입장도 생각해야지. 거기다 관람료는 계속 오르잖아.”

또다시 뿜을 뻔한 코이와는 달리 다른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말을 꺼낸 녀석이 억울해하며 항의했다.

“너 진짜 나쁘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코이는 웃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쓰느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마침 그 모습을 본 패거리 중 하나가 어, 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너 그거 뭐야?”

갑자기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집중되었다. 간신히 웃음을 참느라 숨을 죽이고 있던 코이는 갑작스러운 관심에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응? 나?”

겨우 떨리는 음성으로 묻자 일의 발단이 된 녀석이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움직이잖아. 어떻게 하는 거야? 와, 나 처음 봐.”

그 말을 들은 순간 코이는 사색이 되어 급하게 귀를 움켜쥐었다. 어떡해! 그는 패닉에 빠져 버렸지만 벌써 다른 녀석들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소리쳐 대기 시작했다.

“뭐? 귀가 움직여?”

“어디, 어디?”

“귀를 움직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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