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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216)

12화

커다란 사내놈들이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소리에 코이는 금세 멍해졌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녀석들은 계속해서 왁자지껄 제각각 말을 쏟아 내기만 했다. 분명히 영어를 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코이는 바쁘게 눈동자만 굴리며 두려움에 바짝 몸을 웅크렸다.

〈찐따 새끼, 이거 봐!〉

〈원숭이다, 원숭이.〉

〈아냐, 개야! 찐따 새끼야, 네 발로 걸어 봐!〉

〈멍멍, 멍멍멍. 야, 해 보라니까? 멍멍!〉

와르르 웃던 소리가 귓가에서 메아리치는 듯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방심하고 있다가 그만 버릇이 나와 버렸다. 처음 이걸 들켰을 때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 전부터도 심심하면 코이를 못살게 굴던 넬슨 패거리들은 그날을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코이만 보면 달려들었다.

그런데 또.

간신히 새로운 무리에 끼게 됐는데 또다시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리자 코이는 울고 싶어졌다. 애슐리 쪽은 아예 보지도 못했다. 그가 넬슨처럼 자신을 경멸하고 조롱하는 말을 쏟아 내는 상상을 하자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간신히 입술을 깨물고 덜덜 떨고만 있는데, 소란 속에서 애슐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코이, 정말이야?”

다 틀렸다. 이 거지 같은 습관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 그럼 그렇지, 코너 나일즈. 네 인생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있어? 주제 파악을 해야지, 뭐가 그렇게 신난다고 혼자 들떠서는 일을 다 망쳐 버렸잖아. 역시 넌 되는 일이라곤 없어. 이 바보 멍청이!

스스로를 향해 온갖 자조와 혐오와 비난을 퍼붓는데, 애슐리가 다시 말했다.

“다들 좀 조용히 해, 얘가 놀라잖아. 조용히 하라니까!”

주변을 진정시킨 그는 다시 코이에게 말을 걸었다.

“코이, 괜찮아. 미안, 이 녀석들이 가끔 자기들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잊어버린다니까. 멍청하게 몸만 커서는.”

“야, 넌 아니냐?”

“그래, 억울해! 애쉬 밀러,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크다고!”

뒤이어 녀석들이 다시 아우성을 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떨고 있던 코이는 분위기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어……?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자 애쉬와 패거리들이 아까와 전혀 차이 없이 서로를 깎아내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코이가 생각했던 끔찍한 상황은 오지 않았다.

어리둥절해하며 천천히 귀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렸다. 조심스레 시선을 향하자 곧바로 애슐리와 눈이 마주쳤다. 흠칫 굳은 코이와 달리 애슐리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그때까지 잔뜩 긴장해 있던 코이의 어깨에서 조금씩 힘이 풀렸다. 괜찮은 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는데, 다른 녀석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귀 움직이는 거, 정말 할 줄 알아?”

코이가 깜짝 놀라자 곧바로 다른 녀석이 억울해하며 항의했다.

“내가 봤다니까! 너희들 눈에도 내가 똥 싸는 하마로 보이냐?”

펄펄 뛰는 녀석에게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코이를 향해 눈을 빛내며 말을 던졌다.

“정말이지? 한번 보여 줘 봐, 보고 싶다.”

“어서.”

“제발, 딱 한 번만 해 봐. 어?”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 코이는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나쁜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애슐리조차도 흥미진진해하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자 코이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한쪽 귀를 움직였다. 곧바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와 씨, 대박!”

“야, 정말 귀를 움직이네? 존나 신기해!”

“나 처음 봤어, 와, 대단하다.”

“이거 어떻게 해? 훈련하는 거야? 원래 할 수 있었던 거야? 유전자가 있나?”

“양쪽 다 할 수 있어? 해 봐, 따로 움직일 수 있어? 같이 움직이는 것도 돼? 와, 이게 되네.”

쏟아지는 말들에 정신이 없었지만 코이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신기하고 재밌어하는 반응을 보고 코이는 좀 더 용기를 냈다. 슬그머니 두 귀를 함께 움직이자 녀석들이 박수를 치고 웃으며 여기저기서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거나 인상을 쓰며 귀를 움직이려 애를 썼다. 물론 성공한 녀석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

애슐리 또한 실패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코이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냥 됐어.”

“신기하다. 네가 하려고 하면 언제든 되는 거지?”

다른 녀석이 묻는 말에 코이는 더듬거리면서도 좀 더 커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때도 있는데, 그냥 기분에 따라 움직이기도 해. 습관 같은 건데…… 기분이 굉장히 좋거나, 아주 놀라거나 할 때.”

“우와, 굉장하다.”

“역시 이런 건 타고나는 거라니까.”

휘익, 휘파람까지 불며 이야기하던 녀석들은 이내 다른 화제로 옮겨 갔다. 코이는 이렇게 쉽게 자신의 콤플렉스가 해결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거였다고?

얼떨떨해하며 다시 야채 주스를 마시려는데, 한창 떠들어 대던 녀석 중 하나가 코이의 주스를 채 갔다. 다른 녀석과 이야기하느라 제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음료가 아닌 코이의 음료를 가져가 버린 것이다.

“어.”

코이가 그를 말리려 했지만 그는 벌써 주스를 쭉 빨아들인 다음이었다.

“엑, 이게 뭐야?”

곧바로 진저리를 치며 자신이 마셨던 음료를 확인한 녀석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코이는 괜한 죄책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말리려고 했는데…….”

“제대로 못 본 사람이 잘못이지 뭐, 신경 쓰지 마.”

애슐리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넘겼다. 그래도, 하면서 눈치를 보자 녀석은 찡그린 얼굴로 음료를 돌려주며 말했다.

“뭐 이런 걸 먹냐. 한 달 입은 팬티를 시궁창 물에 빤 거 같은 맛인데.”

“먹어 봤냐, 그걸?”

“너도 먹어 보면 알게 될걸?”

기다렸다는 듯이 투덕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코이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대답했다.

“난 괜찮은데.”

곧바로 다른 녀석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몸이라도 만들려는 목적이 아니면 저런 건 아무도 안 먹겠지.”

“먹은 놈들은 벌써 다 죽은 거 아냐?”

“야, 그러는 넌 전에 만들었던 팬케이크가 암살용 아니었냐?”

얘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애슐리 또한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코이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잘 넘겼다. 코이는 길지 않은 인생 동안 살면서 가장 큰 위기를 두 번 연속 맞이했던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위기가 지나고 나자 뿌듯한 쾌감이 번졌다. 자신이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6인방과 함께 점심을 먹다니 아직도 현실 같지가 않았다.

식판을 반납하고 다음 수업을 들을 건물로 향하기 전에, 코이는 슬쩍 애슐리를 불러세웠다.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애슐리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코이는 오전 내내 들고 다녔던 돈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저기, 어제 계산한 돈 때문에.”

“아, 혹시 모자랐어?”

선뜻 돌아온 말에 코이는 반사적으로 눈을 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눈이 마주치자 애슐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응?”

왠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코이는 잠시 그를 올려다보다 황급히 눈을 내리고 서둘러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아차.”

애슐리에게 주려고 묶어 놨던 돈과 함께 그의 행운의 지폐가 딸려 나왔다. 코이가 미처 그것을 주우려 하기 전에 애슐리가 먼저 허리를 굽혀 꼬깃꼬깃하게 접힌 2달러 지폐를 주워 주었다.

“자.”

선뜻 지폐를 건네주며 애슐리가 웃었다.

“오래 가지고 있었나 봐.”

“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코이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렸다.

“어제 계산하고 갔던 거, 너무 많아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주의하며 그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못 쓰게 된 물건들까지 계산해 준 거지?”

손해 본 금액이 얼마 정도인지 모르니 일부러 큰돈을 놓고 간 게 분명했다. 물론 이런 호의를 받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라거나, 날 동정하지 말라거나 하며 허세를 부릴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코이는 부끄러움을 참고 그에게 잔돈을 돌려주는 것으로 남은 자존심을 챙겼다. 물론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마워.”

조심스레 말하자 애슐리가 평소처럼 씨익 웃었다.

“먼저 빚을 진 건 나였는데.”

“충분히 갚고도 남았어.”

“다행이네, 그럼.”

애슐리는 코이가 건네준 돈을 받아 대충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손을 흔들고 기다리는 패거리들한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코이는 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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