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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27/216)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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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학점이 모자란다고요?”

날벼락 같은 소식에 코이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하얗게 핏기가 가셔 버린 그의 얼굴을 보며 담당 선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특별 활동이랑 봉사 활동 점수가 많이 모자라. 대입 시험 점수도 기대보다는 안 나왔지만…… 사실 코이, 만점을 받고도 최상위 주립 대학엔 못 가는 경우도 많단다.”

“특별 활동 점수가 모자라서요?”

불안해하는 코이의 물음에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과 봉사 활동.”

“아…….”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아르바이트와 과제에 치여 학과 외 점수를 채울 여력이 없긴 했지만 대인 관계에 무척이나 애를 먹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서는 건 무리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산뜻하게 포기할 처지도 아니었다. 대입 시험은 한 번 더 본다고 쳐도 봉사 점수와 특별 활동 점수는 지금 미리 채워 두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골탕을 먹을 것이다.

어떡하면 좋지.

몹시 불안해진 코이가 다급하게 물었다.

“저, 선생님. 혹시 소개해 주실 만한 뭔가가 없을까요?”

병원이나 교회에 가서 물어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코이에겐 그런 주변머리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나마 선생님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는 그에게 선생은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코이, 네가 직접 알아보는 것도 ‘활동’ 중에 하나인 거란다.”

“알아요.”

코이는 풀이 죽어 말했다. 하지만 아는 대로 현실이 된다면 이렇게 머리가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코이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선생이 입을 열었다.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점수에 반영이 될 텐데, 지금 운동부에 들어가긴 늦었고…….”

거기다 운동 신경도 없다.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마라톤 수업을 듣긴 했지만 그것도 겨우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팀을 망칠 게 뻔한 자신의 몸뚱어리를 생각해 보면 그런 전문적인 팀에 들어갔다간 오히려 점수가 마이너스가 되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럼 합창단이라거나, 또…….”

선생은 이런저런 대외 활동을 제안했으나 코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건 벌써 사람이 찼고, 자리가 있는 건 코이에게 불가능한 활동이었다.

“하아…….”

긴 한숨을 내쉬었던 선생이 결국 마지막 방법을 제시했다.

“내가 이건 정말로 권하고 싶지 않았는데, 코이. 이거 말고는 남은 게 없구나.”

“네, 선생님.”

코이는 잔뜩 긴장해 귀를 곤두세웠다.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기회만 있다면. 선생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코이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그녀의 입을 보고 있었다.

“……란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을 때, 코이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네?”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묻자 선생은 진지하게 말했다.

“치어리딩 팀이야, 코이.”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 버린 코이를 보며 선생이 덧붙였다.

“거기다 스커트를 입어야 한단다.”

이제 코이는 얼굴만이 아니라 머리마저 굳어 버렸다.

“잠깐만요, 스커트요? 왜요?”

몇 초의 공백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코이의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제일 먼저 떠오른 의문을 다급하게 입에 담았다. 선생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거야 우리 학교 치어리딩 팀은 전통적으로 여학생만 받고 있으니까지. 사실 네가 지원한다고 해도 가능할지는 반반이야. 입부 테스트도 치러야 할 테고…….”

한숨을 내쉰 선생이 말을 이었다.

“원래 치어리딩 팀은 굉장히 인기라서 이렇게 팀원을 급하게 구하는 일은 드물어. 그런데 올해 결원이 계속 생기는 탓에 안 좋은 소문이 나서 다들 꺼리고 있다는 거야.”

“안 좋은 소문이라뇨?”

“음, 뭐 미신 같은 건데.”

선생은 말끝을 흐렸지만 코이는 짐작이 갔다. 대충 그럴 땐 무슨 귀신이 씌었다느니 저주를 받았다느니 하는 뜬소문이 돌기 마련이었다. 고등학생다운 유치한 발상이었지만 어쨌든 지원자가 없다는 것은 코이에겐 행운인 셈이었다.

하지만 스커트라니.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코이가 물었다.

“그런데 아무리 스커트를 입는다고 해도 남자인 제가 치어리딩 팀에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음, 그게 말이다.”

선생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남자가 여장을 하고 한 시즌을 뛰면 액땜이 된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남학생을 받고 싶다고 말하고 있단다.”

말을 끝낸 선생은 또다시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하여간 애들이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치어리딩 팀 학생들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이것이 코이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라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여장을 하고 전교생 앞에서 우스갯거리가 되는 걸 각오하기만 한다면.

물론 가뜩이나 숫기가 없는 코이에게 이것은 고문과 같았다. 즉시 거절하고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불가능했다. 모자란 특별 활동 점수가 그의 발목을 꽉 잡고 놔주질 않았다.

“좀…… 생각해 봐도 될까요?”

결국 코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라, 코이.”

선생은 눈에 띄게 어깨를 늘어뜨린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봉사 활동 점수는 좀 쉬운 걸 알아봐 줄게. 응?”

그녀는 코이의 어려운 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코이는 자신이 맞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선생은 일찌감치 눈치를 채고 넌지시 속을 떠보기도 했다. 물론 코이는 부정했고, 선생은 그 뒤로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를 도와주었다.

“아직도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니?”

가끔 물건을 사러 왔던 선생이 물었다. 코이는 네, 하고 대답했다.

“그래, 착하구나.”

선생은 미소 지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따뜻한 시선에 코이는 그나마 조금 마음을 풀었다. 그녀는 격려하듯 코이의 팔을 가볍게 토닥이더니 아, 하고 눈을 깜박거렸다.

“그렇지. 이걸론 많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지만 어떠니, 교내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네?”

뜻밖의 말에 코이는 어리둥절해졌다. 그가 묻기 전에 먼저 선생이 말했다.

“물론 보수는 없단다.”

“어, 아뇨. 그건 알고 있어요…….”

코이는 얼떨떨해져 물었다.

“하지만 그게 점수가 될 수 있나요?”

“물론 원래는 정말로 봉사일 뿐이지만.”

그녀가 미소를 사이에 두고 말을 이었다.

“허리가 몹시 아픈 선생님을 대신해 매점을 봐준 거라면 아주 적은 보너스 점수는 받을 수 있겠지.”

선생은 가볍게 윙크를 했다. 그녀의 주름진 얼굴이 장난스럽게 기울어졌다. 그 표정을 본 코이는 그제야 마주 웃을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코이.”

선생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맡은 시간은 이렇단다.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게.”

그녀는 메모지에 날짜와 시간을 적어 건네주었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금은 학기 초라서 많이 바쁘지 않니, 티켓을 사려는 애들도 많고.”

“홈커밍 파티 티켓요?”

“그래.”

고개를 끄덕였던 선생이 오, 하고 뭔가가 생각난 듯 서랍을 열었다.

“너도 생각이 있으면 여자 친구랑 가렴.”

“네? 아뇨.”

선생이 내민 두 장의 티켓에 코이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그러자 선생은 괜찮다는 듯 거듭 티켓을 내밀며 말했다.

“난 허리가 아파서 올해는 못 가겠구나.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겠니?”

“아, 네. 그 그렇죠.”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코이는 선생이 들고 있는 티켓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도 홈커밍 파티에 가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못 갈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게 온 또 하나의 기회인 것 아닐까.

망설이던 코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선생은 잠자코 기다렸다. 주저하던 손가락이 티켓의 끝을 마주 잡자 그제야 선생은 손을 놓았다.

“자, 이제 네 거란다.”

“가…… 감사합니다.”

코이는 얼떨떨해하며 인사를 했다. 홈커밍 파티 티켓을 손에 넣은 건 처음이었다. 그냥 싸구려 재질의 종이에 유치한 문구가 쓰여 있을 뿐인데, 코이는 그 티켓이 가장 잘나가는 팝스타의 콘서트 티켓보다 더 비싸 보였다. 선생은 흐뭇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가 가벼운 말투로 덧붙였다.

“치어리딩 팀도 힘내렴.”

“아…….”

저절로 흘러나오는 탄식에 선생이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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