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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216)

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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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해 둔 애슐리의 차로 가는 동안 코이는 어째선지 억지로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당연했다. 애슐리가 그의 손을 깍지 껴 잡고 앞서서 걸어가고, 코이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뒤에서 주춤주춤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커다란 손에 마음이 불편해 슬그머니 손을 빼려고 하는데, 기척을 눈치채고 애슐리가 그것을 꽉 잡아 붙들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애슐리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는 채로 말했다.

“놓치지 않는다고 했잖아.”

이제 도망 안 갈게, 라는 말이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도무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현실적으로 그는 바로 직전에 잡힌 현행범인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신뢰가 가지 않는 말에 코이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런 분위기가 거북하고 불편한데, 한편으로는 자신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애슐리 손의 온기에 안도감을 느낀다니 이상했다. 원래 친구 사이라는 게 이런 건가? 매번 이렇게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몇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우왕좌왕하는 걸까? 코이는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친구는 애슐리가 처음이었으니까.

어쩌면 늦은 사춘기를 겪는 건지도 몰라.

코이는 생각했다. 그럴 나이는 지났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그런 변화는 있을 수 있다고 배웠다. 사춘기가 되면 신체의 변화는 물론이고 급격한 감정의 혼돈을 겪는다. 지금 자신이 경험하는 게 딱 그것이 아닐까.

어쩌면 발현이랑 사춘기는 비슷한 걸지도 몰라.

제법 그럴듯한 발상이었다. 어쨌거나 둘 다 큰 변화를 겪는 거잖아. 대부분 사춘기 이전에 경험하지만 가끔 성인이 돼서 나오는 것도 같고. 그렇다면 사춘기란 어떤 의미에선 베타가 경험하는 발현 같은 게 아닐까? 이걸로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는 것도 재미있겠다.

뜻밖에도 에세이의 소재를 찾은 건 좋았다. 하지만 현실 도피는 거기까지였다.

코이는 조심스레 애슐리의 눈치를 봤다. 여전히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있어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코이를 끌고 가는 내내 애슐리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많이 화가 났나 봐.

코이는 겁이 덜컥 났다. 당연하다. 사람을 보자마자 있는 힘껏 달려서 도망갔으니 누구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날 것이다. 거기다 애슐리는 오늘 훈련이 없는데도 지금까지 코이의 결과를 기다려 학교에 남아 있었던 건데, 코이가 그런 태도를 보였으니 그의 뒤통수를 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날 기다린 게 아닐 수도 있잖아.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날 기다린다고 말했잖아. 급히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적인 생각을 떨치려 했지만 한 번 떠오른 의심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기다린 것도 맞지만 에리얼을 기다리기도 한 거라면?

그럼 앞뒤가 맞지 않을까? 코이는 다시금 불안해졌다. 합격 불합격 얘기는 에리얼에게서 들어도 된다. 불합격이라면 계속 연습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걸로 끝인 거고, 합격이라면 언제나처럼 코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기회에 앨과 화해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렇구나, 코이는 눈이 번쩍 뜨였다. 어쩐지, 매일 훈련 때문에 안 그래도 피곤할 텐데 코이에게 스케이트까지 가르쳐 주다니 지나친 친절이었다. 코이에게 친구란 애슐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정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자신도 그랬을 것이다. 만약에 애슐리에게 코이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뭐든 하지 못할 게 없었다.

맞아, 그랬던 거야.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다. 친구를 도와주면서 여자 친구와 화해도 하고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인가. 코이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애슐리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에게 또한 도움이 되었으니.

정말 잘된 일인데.

코이는 침울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데 기분은 대체 왜 이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자, 타.”

어느새 차 앞에 도착한 애슐리가 그때까지 쥐고 있던 손을 놓고 대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역시 내가 합격했다는 얘길 들었구나. 코이는 생각했다.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그에게 애슐리가 물었다.

“타라니까.”

“아니, 저기.”

떠오르는 말이 많았지만 코이의 입에서 나온 건 가장 쓸모없는 것이었다.

“자전거 가져가야 되는데…….”

“타고 있어.”

애슐리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가져올 테니까.”

빨리, 하고 재촉하는 바람에 코이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꾸물꾸물 몸을 접어 조수석에 앉자 애슐리가 문을 닫았다. 곧이어 덜컥, 소리가 나더니 차의 문이 잠겼다.

“어, 어?”

당황해 두리번거렸던 코이가 고개를 들자 애슐리는 자신의 스마트 키를 보란 듯이 들어 보이더니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가 버렸다. 코이는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그 뒷모습을 보기만 했다.

설마.

당황한 코이가 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하지만 문은 덜컥거리는 소리만 낼 뿐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에서 문이 안 열리는 게 가능해? 여기 그런 장치까지 있단 말이야? 아니, 설치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이런 게 왜 있어?

다급하게 두리번거렸던 코이는 몇 번이고 문을 열어 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쉬가 날 감금했어.

*

애슐리가 다시 차로 돌아온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서였다. 코이의 자전거를 어깨에 걸치고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큼성큼 돌아온 애슐리는 트렁크를 열고 자전거를 실은 뒤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자, 코이. 얘기해 봐.”

다시 차의 문을 잠근 애슐리가 코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한없이 넓게 느껴졌던 카이엔의 내부가 갑자기 숨 막힐 정도로 좁게 느껴졌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젖혀 한껏 뒤로 물러나자 그 모습을 본 애슐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코이.”

시간을 두고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코이는 내심 긴장했으나 이어진 애슐리의 음성에 밴 감정은 화가 아닌 다른 것이었다.

“코이, 내가 널 겁먹게 했어?”

“어, 어?”

뜻밖의 물음에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급하게 눈을 깜박이는 코이에게 애슐리가 말했다.

“왜 갑자기 도망간 거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또 달아나려고 했었지? 왜 그랬어? 내가 뭐 잘못했어?”

“어…….”

상상도 못 했던 말들이 이어지자 코이는 당황해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오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눈만 깜박이고 있는 코이를 보며 애슐리가 미간을 모았다.

“설마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잘못이야?”

“뭐…… 아냐, 절대 아냐!”

뒤늦게 코이는 소리치며 마구 고개를 내저었다. 급기야 현기증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멈춘 그는 숨을 몰아쉬며 다시금 부정했다.

“그렇지 않아, 애쉬. 그래서 그런 게 아냐.”

“그럼?”

애슐리의 얼굴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괜한 짓으로 그를 오해하게 했다. 코이는 후회가 밀려들었으나 지금은 자책보다 그의 오해를 푸는 게 더 급했다.

“저기, 그러니까, 그게.”

코이는 허둥지둥 말을 골랐지만 쉽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한단 말인가.

고맙게도 애슐리는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찾지 못하는 그를 잠자코 기다려 줬다. 어쩌면 애쉬는 인내심도 이렇게 많을까. 그에 대한 존경심과 자신에 대한 한심함을 동시에 실감하며 코이는 깊이 심호흡을 했다.

“저기.”

“응.”

일단 말문을 열었던 코이는 곧이어 애슐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한없이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괜찮아.

코이의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애쉬에게는 말해도 돼. 그는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해도 애슐리는 자신을 비웃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한 번 더 숨을 들이켠 뒤 마침내 고백했다.

“나, 사춘기가 온 것 같아.”

말을 끝낸 뒤 코이는 입을 다물었다. 애슐리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 동안 그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한참 만에 애슐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 반응은 고작 이게 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춘기라니. 그들은 11학년이었다. 남자를 여장시켜 액땜을 하겠다던 에리얼의 말보다 더 황당했다.

하지만 코이는 자신의 추측에 나름의 확신이 있는 듯했다. 들어 봐, 하고 좀 더 열의를 담아 그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근거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도 온다고 하잖아. 발현처럼 말이야, 물론 20살이 넘어서는 변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나도 그런 거 같아.”

“발현했다고?”

“아냐, 사춘기라니까.”

코이는 힘을 주어 말했다.

“베타들이 경험하는 발현이란 말이야.”

“하아…….”

최대한 진지하게 그의 말을 들으려 애썼지만 도저히 무슨 얘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던 애슐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코이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 코이는 내심 긴장한 채 애슐리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보니 애슐리는 그저 헛소리라고 넘길 수가 없었다. 그는 최대한 코이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그럼 네가 사춘기라고 생각한 이유는 뭔데?”

애슐리가 코이만큼 진지하게 물었다. 코이는 어, 하고 입을 열었다. 대답을 하려던 찰나, 갑자기 시야에 자신을 바라보는 애슐리의 얼굴이 가득 차올랐다.

그 순간 코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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