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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62/216)

62화

예전에도 이랬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애슐리는 감기였고, 코이는 그를 걱정해 찾아왔었는데.

지금은 뭔가 다르다. 열에 들뜬 것 같은 애슐리도, 거친 숨소리도, 그를 올려다보는 코이도 모두 그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 이 이질감은 대체 뭘까.

무서워.

코이는 무심코 마른침을 삼켰다. 어째선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애슐리의 눈에 사로잡힌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애슐리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 속을 가득 메웠다. 코이는 그가 자신의 위로 엎드리는 것을 크게 뜬 눈으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아……!”

동시에 붙잡힌 손목이 꽉 죄어 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삼켰다. 애슐리가 그의 두 손목을 아플 정도로 세게 쥐고 있었다. 코이가 달아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애, 애쉬…….”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 난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 말하려 했다. 그 때, 애슐리가 그의 가슴에 코를 묻고 깊이 숨을 들이켰다.

간지러워……!

숨결이 닿을 때마다 피부가 은근하게 달아올랐다. 코이가 허리를 비틀었으나 붙잡힌 두 손목 때문에 빠져나갈 수도, 그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킁킁, 마치 개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가슴께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보통 열이 심한 게 아니었다. 애슐리의 열기에 코이 또한 몸이 데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애쉬…….”

덩달아 가빠진 숨결 사이로 걱정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애슐리가 그의 셔츠를 입에 물고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그와 함께 오래되어 낡은 셔츠가 힘없이 찢겨 나가고, 허연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아…….

애슐리의 입에서 더운 숨결이 흘러나왔다. 그토록 갈구하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평생 이것 하나만을 원해 왔던 것 같은 갈망마저 느껴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크게 입을 벌려 그것을 세게 물었다.

“아윽……!”

코이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어서 애슐리는 그의 가슴을 힘껏 물더니 소리를 내어 빨아들였다. 애슐리가 가슴을 빨아 댈 때마다 아래쪽에서 난잡한 소리가 흘러넘치고, 얼마 안 되는 살이 그의 입 안에서 미끈거리며 젖어 들었다.

“애, 애쉬…… 아파아…….”

코이가 울상이 되어 하소연했으나 애슐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힘을 주어 더 세게 그의 가슴을 물어 버렸다.

히익, 거칠게 숨을 들이켠 코이가 금세 훌쩍거리며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애슐리는 멈추기는커녕 계속해서 입 안의 살을 잘근거리며 씹어 댔다. 그대로 먹어 버리기라도 할 기세에 코이는 더욱 무서워져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몸 아래에 깔린 뭔가가 바르작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애슐리는 코이의 두 손목을 세게 잡은 채 자신의 몸으로 그것을 내리눌러 억지로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이런 마르고 볼품없는 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금 힘을 준 것뿐인데도 꼼짝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울고만 있지 않은가.

하아아…….

애슐리의 입 밖으로 긴 숨소리가 신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입 안에 들어오는 이 살덩이는 어떻게 이렇게 부드럽고 향기로울까. 평생 맛봐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한껏 벌렸던 입술을 다물고 대신 작게 도드라진 살점을 이를 세워 깨물었다.

“아, 아파, 애쉬, 아파아!”

곧바로 머리 위에서 비명이 들렸다. 도톰하게 일어선 그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예민했다. 다시 아래쪽에서 코이가 온몸을 들썩거렸으나 그래 봤자 벌어진 두 다리를 의미 없이 허우적거린 게 전부였다. 그에게 그나마 자유로운 것은 애슐리의 몸 밖으로 비어져 나온 두 다리가 전부였으니.

“흐으으으…….”

급기야 코이가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온 얼굴이 벌써 눈물로 흠뻑 젖어 들었다. 애슐리는 그토록 애착을 갖고 있던 가슴에서 겨우 입술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코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저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안쓰럽고 배덕한 광경이 또 있을까. 저렇게 울고 있는데 오히려 애슐리는 배 속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그를 가져야 한다. 코이의 안에 전부 쏟아부어야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배 속이 꽉 차서 흘러넘칠 때까지. 그래서 코이, 내 아이를 가지는 거야. 코이, 임신해. 내 아이를 가져.

넌 내 거니까.

“아, 아…….”

그때까지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옮겨 허벅지 안쪽을 잡아 벌어져 있던 다리를 크게 열자 코이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애, 애쉬, 뭐, 뭐 하는.”

그는 차마 뒷말을 잇지도 못했다. 그나마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 애쉬의 손을 잡아 떼어 내려 애썼으나 물론 전혀 소용없었다.

“안 돼, 하지 마!”

코이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애슐리에게는 귀찮을 뿐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뭐라고 소리치는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코이는 드디어 두 손이 자유로워졌지만 그 두 손으로 아무리 기를 써 봐야 애슐리의 손 하나를 감당해 내지 못했다. 입을 막은 손을 어떻게든 떼어 내려 애쓰는 코이를 무시한 채 애슐리가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아래쪽에선 코이가 연신 꿈틀거리고 있었다. 애슐리는 한 손으로 코이의 입을 틀어막은 채 다른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붙잡았다.

코이를 가질 것이다. 지금, 바로.

아, 얼마나 간절히 염원했던가.

“……!”

그의 안에 들어가기 위해 몸을 고정했을 때였다. 불현듯 둘은 시선이 마주쳤다.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된 코이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애슐리의 손목을 붙잡아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아, 하아.

둘의 숨소리가 뒤엉켰다. 애슐리는 숨을 헐떡거리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런 그의 무의미한 노력을 지켜보았다. 코이의 두 눈에서 또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서워.

두려움으로 전신이 굳어졌다. 이런 애슐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애슐리는 그에게 다정했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상냥한 말투로 내 이름을 불렀지.

- 코이.

언제나, 항상.

자신을 바라보던 다정한 은청색의 눈동자는 더 이상 없었다. 거기엔 끝없는 어둠으로 물든 보라색 눈동자만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애쉬가 아냐.

코이는 그를 떼어 내려 안간힘을 쓰며 어깨를 때리고 온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뿐이다.

그럼 이건 누굴까.

“끅, 끄윽…….”

억눌린 숨소리를 내쉬며 그는 애슐리의 두 손목을 붙잡았다. 제발, 이러지 마…… 정신 차려.

애쉬.

그때, 불현듯 코이의 귓가에 애슐리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쾌한, 더없이 청량하게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

- 코이.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

- 코이.

만약에 정신이 돌아오면.

코이는 어렴풋이 떠올렸다. 이 일을 기억해 내면 애쉬는.

얼마나 상처받을까.

그는 애슐리를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슐리는 무척 자책할 것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후회하겠지.

괴로워하는 애슐리의 얼굴을 떠올린 순간 코이의 몸에서 힘이 풀렸다. 온 힘을 다해 애슐리의 손을 떼어 내려던 손이 머뭇거리며 물러가더니 곧이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

애슐리는 거친 숨결 사이로 자신의 뺨을 감싸는 코이의 모습을 보기만 했다. 코이는 곧 눈을 감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모든 게 다 괜찮다는 듯이.

아.

눈앞에 쳐져 있던 장막이 한순간에 걷힌 기분이었다. 애슐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아래에 있는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코이가 울고 있어.

애슐리의 시야가 점점 명확해졌다. 곧이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모든 감각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던 작은 몸, 지금 그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까지도.

내가, 코이를.

내가 어떻게.

곧이어 애슐리는 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자신의 팔을 물어뜯었다.

“애쉬……!”

코이가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애슐리는 멈추지 않았다. 더욱 이를 세워 깊숙이 파고들어 살점을 기어이 뜯어냈다.

침대 위로 흘러내린 피가 점점이 붉은 자국을 남겼다. 코이는 다급하게 일어나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내 애슐리는 다시 뒤로 물러나며 고함을 질렀다.

“물러나……!”

거친 음성에 코이는 주춤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애슐리는 피가 흐르는 팔을 내버려 둔 채 코이를 향해 다른 손을 뻗었다.

“가까이 오지 마, 당장, 나가.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애쉬.”

거친 숨결 사이로 내뱉는 말에 코이는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신 애슐리의 얼굴과 피가 흐르는 팔을 번갈아 보면서 그는 애타게 말했다.

“팔을 치료해야 돼, 제발…… 괜찮아, 애쉬. 난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아! 난 널 강간하려고 했어!”

애슐리가 또다시 고함을 질렀다. 코이는 화들짝 놀랐으나 아까처럼 두렵지는 않았다. 그만큼 애슐리가 몰려 있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안타까움에 가슴이 막막해졌다.

“애쉬, 괜찮다고 했잖아. 그보다 팔…… 팔에 피가 많이 나. 제발, 치료를…….”

“너 정말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어?”

애슐리가 숨을 헐떡거리며 이를 갈았다. 떠오르는 게 너무 많아 코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즉시 말하지 못하는 그를 보고 애슐리는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이렇게 냄새가 넘치는데 전혀 모르겠어? 베타라도 페로몬 냄새는 맡을 수 있잖아.”

“어…… 어어?”

페로몬?

무슨 말인지 즉시 반응하지 못하는 코이에게 결국 애슐리가 울분을 토하듯 내뱉었다.

“난 발현했어, 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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