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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68/216)

68화

“애쉬!”

“애쉬, 너!”

애슐리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코이는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이 떼를 지어 애슐리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봤다.

“어떻게 된 거야? 또 감기라니.”

“너 정말 이렇게 자주 아파도 되는 거냐? 이 근육은 다 어디다 쓰는 건데.”

“이야, 며칠 쉰 거치고 뭐 멀쩡해 보이는데? 너 혹시 나오기 싫어서 그냥 짼 건 아니지?”

“아냐, 멍청아.”

애슐리가 웃으며 마지막으로 말한 녀석의 턱을 가볍게 쳤다. 윽, 하고 날아가는 시늉을 했던 녀석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무리는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코이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저게 우정이라는 걸까?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따금 어울리기도 했지만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그들이 함께 나누는 시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관계는 코이가 끼어들기 이전부터 이미 두텁게 쌓여 있었을 테니까.

좀…… 부럽다.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을 우정의 무게에 왠지 쓸쓸함을 느꼈을 때, 애슐리가 뒤를 돌아보더니 코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와, 코이.”

어?

일시에 모두의 시선이 코이에게 집중되었다. 엉거주춤 서 있던 코이는 당황해 두리번거리다 다시 애슐리를 쳐다봤다. 애슐리는 웃더니 그대로 손가락을 까딱여 어서 오라는 표시를 했다.

“아…… 응.”

코이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코이의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당긴 애슐리가 옆으로 몸을 숙여 그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기댄 채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무게가 온통 쏟아져 순간 비틀거렸지만 어깨에 둘러져 있던 애슐리의 팔이 코이의 몸을 붙잡아 금세 중심을 잡았다.

시시한 농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코이는 그들 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었다. 빌의 농담에 코이는 어느새 상기된 얼굴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설마 빌을 좋아해서 날 거절한 건 아니지?”

단 둘이 되자마자 애슐리가 물은 말에 코이는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아냐, 절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고도 모자라 손까지 내저었던 코이는 현기증이 나 간신히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애슐리는 팔짱을 끼고 서서 못마땅해하는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다 곧 팔을 풀었다.

“아니면 됐어.”

“절대 아냐.”

코이는 한 번 더 강조한 뒤 고개를 돌렸다. 내가 좋아하는 건 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내 의기소침해진 코이의 머리 위로 애슐리가 턱을 괴더니 두 팔을 그의 어깨에 걸쳐 늘어뜨렸다.

“무, 무거워!”

“난 좋은데.”

코이는 쩔쩔매며 애슐리의 팔을 붙잡아 떼어 내려 했지만 한 손에 하나씩 들기에도 버거웠다. 팔이 어찌나 굵은지 무게 또한 만만치 않았다. 코이는 작전을 바꿔 두 손으로 애슐리의 팔 하나를 걷어 내려고 노력하다 결국 지쳐 나가떨어졌다.

“이익, 이익.”

휘청휘청 앞으로 전진하는 코이의 뒤에서 그를 덮치다시피 내리누른 채 애슐리는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급생이 알은체를 하고, 애슐리는 코이에게 기댄 채 한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코이는 끙끙거리며 필사적으로 걷고 있었다. 지금껏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꽤나 무거운 짐을 옮겨 봤지만 지금까지 들어 본 그 어떤 것보다 무거웠다. 당연하다. 이건 거의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하지만 분명히 너무너무 힘든데 반대로 마음은 조금씩 편안해졌다.

우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거 같지 않아……?

애슐리가 그에게 고백하기 전, 코이가 그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기 전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만큼 애슐리는 스스럼이 없었고, 코이 또한 어색했던 분위기를 잊어버렸다. 가능할 것도 같았다. 계속 이렇게 예전처럼 지낸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것도.

“애, 쉬.”

코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힘이 들어서 저절로 숨이 달렸다. 애슐리가 머리 위에서 대답했다.

“응, 왜?”

코이는 낑낑거리며 물었다.

“아이스하키 팀은, 어떻게, 됐어? 계속, 하는 거야?”

“음…… 글쎄.”

애쉬가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사이를 뒀다가 대답했다.

“아직 모르겠어. 선생들도 알고 있고 감독님한테도 얘기를 했는데, 아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내가 경기를 뛰어도 규칙에 어긋나는 건 없긴 해도…….”

애슐리가 말을 할 때마다 턱이 따닥거리며 코이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코이는 꾹 참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애슐리는 계속해서 심드렁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발현한 지 얼마 안 돼서 러트 주기나 뭐나 아무것도 모르니까 지금 바로 결정을 내리긴 힘들 거야. 그래도 일주일 내로는 답을 주지 않을까?”

“그렇, 구나아.”

코이는 헉헉거리며 말했다. 그때까지는 다른 애들에겐 비밀인 걸까? 아까 주고받았던 말들로 미루어 보아 모두들 애슐리가 또 감기에 걸렸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애슐리의 거취를 결정한 뒤에 발표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내내 숨길지도 모른다. 어차피 발현 여부는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공개할지 안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었다. 경기를 뛴다고 해도 우리 팀의 위험 요소일 뿐 상대편에게는 큰 영향이 없다. 남은 건 감독의 선택뿐이었다.

어차피 애쉬가 없어도 팀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문득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현을 했다면 당연히 페로몬 향이 날 텐데 다른 애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된 거지?

코이는 냄새를 맡지 못하기 때문에 애슐리에게서 페로몬 향이 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애들은 향을 느낄 테니 분명 반응을 했을 텐데, 혹시 억제제를 먹은 걸까? 코이의 물음에 애슐리는 선뜻 대답했다.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어. 완벽한 건 아니지만 억제제도 일단은 가져왔고.”

“그렇구나…….”

코이는 애슐리를 매달고 발을 끌며 걷다가 조심스레 운을 뗐다.

“저, 애쉬.”

“응?”

애슐리가 이내 반응했다. 코이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저기, 난 어제 몰랐는데…… 나한테서 페로몬 냄새가 났었나 봐. 그건 네 냄새였던 거지?”

“뭐…….”

애슐리가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말해야 한다. 애슐리는 그때까지 코이에게 엉겨 붙어 있던 몸을 어쩔 수 없이 떼고 대신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사라진 무게에 멍해진 코이에게 애슐리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학교에 있는 동안은 어쩔 수 없지만 저택에 돌아가면 페로몬을 풀어 놔야 돼. 페로몬이 쌓이면 뇌에 안 좋거든.”

“응, 그렇구나.”

전날 코이는 인터넷에서 최대한 극알파에 대한 지식을 많이 얻으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많았다.

“저기, 넌 극알파로 발현한 거지? 너네 아버지 비서라는 분이 우리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했대. 거기에 휩쓸려서 오메가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하면서.”

“……그래, 맞아.”

애슐리는 지금까지와 달리 조금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그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들었던 코이는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차이점은 곧 깨달았다.

“너, 눈동자.”

“응?”

코이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물었다.

“저, 네 눈 색깔이 좀 달라 보이는데, 극알파로 발현했기 때문이야?”

이전에 맑은 은청색이었던 눈동자는 어두운 남빛으로 변해 있었다. 극알파는 보라색으로 눈동자색이 변한다는 자료를 기억해 내며 묻자 애슐리는 선뜻 대답했다.

“일단은 뭐, 그렇지. 지금은 컬러 렌즈를 꼈어.”

“아…….”

그래서 저런 색이 된 거구나. 순순히 납득했던 코이가 이내 얼굴을 찌푸렸다.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걱정하는 표정이 가득한 그를 보고 애슐리가 피식 웃었다.

“어차피 남의 눈동자 색 따위 아무도 신경 안 써.”

애슐리는 곧이어 가벼운 어투로 덧붙였다.

“넌 내 발현 전 눈동자 색을 기억해?”

당연히 못 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코이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물론이지. 얼마나 예쁜 은청색이었는데!”

“어…….”

이번에 당황한 것은 애슐리였다. 그는 코이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뜻밖에도 진지한 얼굴에 머쓱해져 시선을 피했다.

“대부분은 남의 눈동자 색에 그렇게 신경 안 써.”

한껏 가볍게 말한 그였으나 코이는 생각이 달랐다. 그럴 리 없다. 애슐리의 그 예쁜 눈동자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도 안 돼!

애슐리는 의외로 다른 애들이 얼마나 자기를 동경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거 같아.

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진지하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말해 주면 조금이라도 알게 될까?

“왜?”

애슐리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내가 너무 잘생겼어?”

“어…….”

그의 너스레를 들은 코이는 방금 전 했던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받아들였다. 애슐리 밀러는 자신이 얼마나 잘난 남자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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