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뭐, 뭐?”
코이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런 코이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애슐리가 말을 이었다.
“어서 씻고 나가자면서. 그러니까 그렇게 하자고.”
“아, 아니, 그런데, 맞긴 한데.”
코이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뜻밖의 상황에 머릿속에서는 코끼리고 아나콘다고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지금 그에게는 눈앞에서 비누를 들고 서 있는 애슐리가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다, 다른 칸도 많잖아.”
간신히 말하자 애슐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불길한 예감을 느꼈을 때, 한숨을 내쉰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코이, 같이 씻기로 하고서 잊어버렸어?”
“어?”
무심코 눈을 깜박였던 코이가 뒤늦게 펄쩍 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 나는,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코이.”
이제 애슐리는 드러내 놓고 지루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네 말대로 경비원이 올지도 몰라. 거기다 난 지금 피곤하다고.”
“어…….”
뒷말에 코이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버렸다. 잊고 있었지만 그는 교체 없이 경기 하나를 온전히 뛰었다. 비록 5분의 페널티가 있었어도 주장인 데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맡아야 하는 포지션상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더 지쳤을 게 분명했다.
“……미안.”
코이는 자신이 배려 없는 남자 친구였다는 자각에 풀이 죽었다. 작게 사과하자 애슐리는 선뜻 말을 넘겼다.
“그럼 이제 된 거지? 자, 등 돌려. 닦아 줄게.”
“아, 응.”
얼떨결에 코이는 시키는 대로 몸을 돌렸다. 애슐리는 자신의 앞에 무방비하게 드러난 하얀 등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이걸 아는 게 나뿐이라니.
자신이 그토록 착하게 살았던가, 생각하며 그는 잠깐 신에게 감사했다. 이건 평생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이었다.
“코이.”
참지 못하고 애슐리는 그의 위로 몸을 숙였다. 귓가에서 느껴지는 숨결에 코이가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했다.
“응.”
“좋아해.”
애슐리의 고백에 코이가 흠칫 놀랐다. 그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조금씩 숙어지는 머리와 빨갛게 달아오른 목과 급하게 까딱거린 귀가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보여 주고 있었다.
“나, 나도.”
간신히 말한 코이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당장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은 걸 애슐리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건 신이 준 선물이 아니라 악마가 내린 저주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유혹을 참고 견디라는 건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아야 했다.
콘돔이 없어, 없다고! 코이는 오메가가 아냐, 안에 멋대로 해 대면 안 돼.
그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두드려 댔다. 다행히 물소리 때문인지 두근거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인지 코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애슐리는 심호흡을 한 뒤 거품이 가득한 두 손으로 코이의 뒷덜미부터 시작해 몸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바닥 아래로 얇은 몸이 가늘게 떠는 것이 느껴졌다.
코이가 오메가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랬다면 분명 페로몬 향이 넘쳤을 것이고, 애슐리는 이성을 잃고 그를 강간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임신시키고 말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왜 난 발현하고 말았을까. 아마 코이는 평생 내가 느끼는 이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이런 괴로움을 느끼는 게 코이가 아니라 나라니, 역시 신은 공평하지 않은가.
애슐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코이의 몸을 쓰다듬었다. 비누 때문에 손은 너무나 부드럽게 피부 위를 미끄러졌다. 신은 그에게 형벌과 함께 쾌락도 선사했다. 코이를 만지는 동안 다시 아랫배가 뜨거워지며 시들었던 성기가 조금씩 단단해졌다. 애슐리는 천천히 코이의 어깨를 쓰다듬고, 척추를 따라 손바닥을 쓸어내렸다. 가는 허리를 지나 옆으로 옮겨 간 손이 그대로 골반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손가락을 넓게 펼쳐 움직이자 자신이 그토록 잡고 주무르며 희롱했던 부드러운 엉덩이가 자연스럽게 스쳐 갔다. 애슐리는 거칠어지는 숨을 억지로 누르며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코이.”
“으, 으응.”
짧은 대답에도 코이의 숨결에 섞이는 열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애슐리는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벽을 짚고 서 봐. 다리를 벌리고…….”
“어, 응.”
그 뒤에 뭐가 있을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코이는 시키는 대로 따랐다. 두 팔을 뻗어 벽을 짚고 선 채 엉거주춤 다리를 여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 애슐리는 이제 아래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하!”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붙잡는 바람에 저절로 코이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애슐리는 그런 그의 반응을 즐기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사다리꼴로 벌어진 코이의 화사한 다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 비누를 손에 묻히며 두 눈으로 그 다리를 감상했다. 이렇게 멋진 다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애슐리는 또 한 번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고 싶어졌다. 그는 잔뜩 비누를 묻힌 손을 드디어 코이의 허벅지로 가져갔다.
“……으.”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지 코이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슐리는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다리를 쓰다듬었다. 커다란 손이 허벅지 안쪽을 느리게 유영하는 감각에 코이는 온몸이 근질거렸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이렇게 그를 만지는 건 고사하고 그런 부위를 만지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리가 떨려 자꾸만 주저앉을 것 같은 걸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제야 코이는 애슐리가 자신에게 벽을 짚으라고 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져 어딘가 몸을 다치고 말았을 것이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바들거리는 다리를 보며 애슐리 역시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코이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고 있을까 떠올리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물론 그 전에 내가 널 끌어안았겠지.
허벅지 안쪽에 키스하고 싶은 충동을 참고 대신 그는 몇 번이고 부드러운 속살을 쓰다듬었다. 엉덩이와는 달리 허벅지는 탄탄하고 매끄러웠다. 이 위로 스타킹을 신으면 이 감촉은 사라지겠지. 전부 벗은 채 검은 팬티스타킹만 신은 코이를 상상하는 건 너무나 쉬웠다. 까끌한 촉감이 느껴지는 스타킹의 고간을 찢어서 벌리고 넣으면 얼마나 흥분될까.
하아, 애슐리는 들뜬 숨을 내뱉었다. 하다못해 코이의 구멍을 핥아 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는 참지 않고 손을 위로 올려 엉덩이를 붙잡았다. 안을 보는 것은 간단했다. 그저 엄지손가락에 힘을 줘 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코이의 작은 구멍이 눈앞에 드러난 순간 애슐리는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렸다. 너무나 작고 귀여운, 그러면서도 미칠 듯이 외설적인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잔뜩 움츠러든 구멍은 코이가 숨을 몰아쉴 때마다 더 작아졌다 이완되기를 반복했다.
리틀 코이, 안녕.
애슐리는 멍하니 속삭였다.
다음엔 내 아나콘다와 인사를 나눠 줘.
그렇게 생각하며 코이의 작은 분신에 입을 맞추려 했을 때였다.
〈코끼리가 이런 거 달고 다녀.〉
갑자기 되살아난 음성에 애슐리는 순간 멈칫했다. 기겁을 하던 코이의 비명 소리 또한 귓가에 선명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신의 아나콘다가 급격히 시무룩해지는 것을.
하아, 애슐리는 씁쓸한 한숨을 내쉰 뒤 몸을 일으켰다.
이러다 발기 부전이 생길지도 몰라.
심각한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애슐리는 벽을 짚고 있던 코이의 팔을 잡아 뗀 후 똑바로 서게 했다. 뒤에서 그를 껴안다시피 한 채 몸에 비누칠을 하자 코이가 또다시 몸 안에서 바르르 떨었다. 그의 반응은 너무나 즉각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천천히 그의 가슴으로 손을 내리자 코이가 곧바로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애슐리는 일부러 그를 끌어당겨 바짝 몸을 붙였다. 빈틈없이 맞닿은 몸에 애슐리는 문득 생각했다.
이게 더 치한 같지 않아?
게다가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지다니 너무나 확실한 치한이었다. 하지만 코이는 전혀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시험 삼아 젖꼭지를 잡아 비틀자 코이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애슐리는 어깨 너머로 코이의 성기가 바짝 일어서서 바르르 떨고 있는 걸 확인했다.
코이는 저것도 작고 귀엽구나.
거기에 익숙할 테니 자신의 무지막지한 크기에 더욱 공포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애슐리는 천천히 공들여 코이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젖꼭지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기도 하고 손톱 끝으로 들어 올려 둥글게 문지르기도 하자 코이가 울 것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성기는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보였다. 만약 애슐리가 그것을 움켜쥐기라도 하면 곧바로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코이보다 자신이 더 급했다. 그는 오래, 정말 너무나 오래 참았던 것이다.
“코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아나콘다를 만져 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