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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95/216)

95화

두려움으로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었다. 이런 시간에 아버지가 깨어 그를 부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버지는 대부분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고, 그러지 않으면 코이를 무시하고 잠든 척 하거나 일을 하러 나가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무 말도 못 하고 보고 있는데, 침대에 일어나 앉아 그를 보고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코이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한 채 지켜보기만 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한데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코이는 이 긴장감을 참을 수 없었다.

“저, 저기, 느, 늦어서…… 다녀올게요!”

던지듯 인사를 한 뒤 그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모터홈에서 뛰쳐나가는 아들을 아버지는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하아, 하아.

다급하게 달려 나온 그는 모터홈과 얼마간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주변은 고요했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를 따라 나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 그제야 코이는 떨리는 한숨을 뱉어 냈다.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누군가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 그가 말을 꺼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으라고 한다면 코이는 절대 거부했을 것이다.

한동안 고요한 모터홈을 지켜보던 코이는 다시 몸을 돌렸다. 학교를 향해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휴대 전화가 울렸다. 이런 아침에 누굴까, 의아해하며 발신인을 확인하는 그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애슐리는 전날 헤어졌던 도롯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기대어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는 멀리서 달려오는 코이를 발견하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애쉬!”

크게 소리친 코이의 얼굴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홍조를 띤 얼굴에 애슐리는 마주 웃으며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 모습을 본 코이가 잠깐 주춤했다. 전속력을 내어 달리던 다리가 속도를 줄이는가 싶더니 곧이어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애슐리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그를 흔들림 없이 기다렸다.

“애쉬……!”

기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품 안에 뛰어든 코이를 애슐리가 꼭 끌어안았다. 목에 코를 묻자 곧바로 희미한 살내음이 느껴졌다. 애슐리는 크게 숨을 들이켜 코이의 체취를 확인했다. 코이 또한 그를 꼭 마주 안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보고 싶었어.”

애슐리가 속삭였다. 코이는 목에 느껴지는 그의 더운 숨결에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난 꿈에서 너 봤어.”

“정말?”

애슐리의 음성에 웃음이 가득했다. 남자 친구가 자신을 꿈에서까지 보다니 누구나 기뻐하지 않을까? 저절로 흐뭇한 웃음을 떠올린 애슐리에게 코이가 말했다.

“응, 하지만 별로 안 좋았어.”

애슐리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고개를 든 그가 코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미간을 찌푸린 그의 얼굴에 코이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이고 작게 속삭였다.

“실제로 보는 게 훨씬 더 좋아.”

애슐리의 표정이 점차 풀리더니 환한 웃음이 번졌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이자 성실한 학생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부드럽게 입술이 겹치고, 애슐리는 그의 아랫입술을 슬며시 빨았다가 다시 맞물리며 혀를 섞었다. 전날 처음 배운 딥키스를 코이는 열심히 따라 했다. 어색하게 자신의 혀를 문지르는 서툰 키스에 애슐리는 사랑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그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으.”

키스 사이로 코이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쾌감이 섞인 신음은 절대 아니었다. 잘못했다가는 코이의 뼈를 부러뜨리겠어. 

애슐리는 자신의 반도 되지 않는 코이의 체격을 떠올리며 어렵게 팔의 힘을 풀었다.

사랑스러운 코이, 널 좋아해.

다시 키스를 하며 애슐리는 두 팔로 그의 몸을 힘주어 안는 대신 한 손을 내려 엉덩이를 붙잡았다. 코이는 흠칫 놀랐으나 잠자코 키스에 몰두했다. 

오늘 코이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까끌한 천의 감촉은 그리 좋지 않아서, 애슐리는 코이의 바지 안에 손을 넣고 맨살을 주무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거기까지 하면 학교에 가지 못할 거야.

전날 그렇게 한참을 뺐는데도 아랫도리엔 또다시 피가 몰렸다. 극알파들의 수명은 평균보다 길다는데 이러다가는 자신이 최초로 단명하는 케이스가 되어 새로운 연구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애슐리는 자제하려 애쓰며 간신히 입술을 뗐다. 여전히 손은 코이의 엉덩이에 머물러 있었지만 그나마도 많이 참은 것이다.

적당히 해, 애슐리 밀러. 서두르지 마.

시골 이층집에서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할아버지 커플을 상상하며 그는 간신히 충동을 억눌렀다. 꿈꾸는 미래를 위해서 절대 단명해선 안 된다.

“갈까, 코이?”

애슐리가 묻자 코이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대답했다.

“응.”

여전히 몽롱한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코이는 애슐리와의 키스를 아주 좋아했다. 그것을 너무나 확실히 알 수 있어서, 애슐리는 또다시 그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학교로 향하는 내내 애슐리는 한 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코이의 손을 깍지 껴 붙잡고 있었다. 

이따금 신호에 걸리거나 속도를 늦출 때면 어김없이 얽혀 있는 손가락을 쥐었다 펴기도 하고 만지작거리기도 하며 손장난을 쳤다. 

코이는 그의 크고 단단한 손바닥에 잡힌 손이 꼭 자신의 전부인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하지만 달콤한 시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길가에 차를 세운 애슐리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여기라면 아무도 보지 못할 거야.”

“응.”

코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릴 준비를 했다. 사실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먼저 숨기자고 제안한 것은 코이니까.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백번 잘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결코 좋을 리 없었다.

애쉬를 위해서니까.

자신이 맞는 건 상관없었지만 애슐리가 아버지에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끔찍했다. 애슐리는 절대 그런 대접을 받을 아이가 아니었다. 코이와 사귀게 된 탓에 쓸데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코이는 죄책감을 느끼며 잡혀 있던 손을 슬그머니 빼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애슐리가 그의 손을 꽉 잡더니 그대로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코이의 손을 깍지 낀 채로 손등에 키스를 한 애슐리가 코이를 바라보았다. 또다시 코이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날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알은척하는 건 괜찮지?”

“어, 응.”

갑자기 내외하는 것도 이상할 것이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코이는 스스로에게 작은 보상을 주기로 했다.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너무나 괴로울 테니까.

그런 코이의 표정을 본 애슐리가 다정하게 웃었다.

“걱정 마, 네가 한 말은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응.”

애슐리가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코이는 뭐든 믿을 수 있었다. 애슐리는 다른 손을 내밀어 코이의 뒤통수를 잡아 끌어당겼다. 코이는 먼저 눈을 감고 그의 키스를 기다렸다. 이번 키스는 좀 더 길게 이어졌다.

부드럽게 입 안을 문지르고 핥았던 혀가 빠져나간 뒤, 코이는 아쉬운 기분으로 눈을 떴다. 애슐리가 미소 짓는 얼굴로 코이의 입술에 묻은 타액을 닦아 주었다.

“그럼, 곧 다시 봐.”

“응.”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인 코이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마지막까지도 둘은 손을 놓지 않았다. 최대한 몸을 빼 가능한 한 오래 잡고 있던 손이 조금씩 멀어지고, 코이가 몸을 세우자 결국 마지막까지 엮여 있던 손가락이 풀렸다. 어쩔 수 없이 조수석의 문을 닫으며 차 안을 보자 애슐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코이는 “금방 봐.” 하고 한 번 더 말한 뒤 문을 닫았다.

학교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외진 거리에 코이를 내려 준 애슐리가 먼저 차를 출발시켰다. 

아마 쏟아질 관심에 코이보다 먼저 대처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코이는 그의 배려에 무한한 감사와 죄책감을 느끼며 느릿느릿 학교로 향했다.

애슐리 밀러가 ‘또’ 차였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전날 아이스하키 경기가 끝난 뒤 애슐리 밀러가 웬 남자애한테 고백하고 키스했다는 소문보다 훨씬 더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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