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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96/216)

96화

소문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애슐리가 코이에게 고백하고 키스했다는 소문보다 차였다는 말을 먼저 듣는 경우도 숱하게 발생했다. 덕분에 학교는 온통 애슐리에 관한 얘기로 들끓었다.

“또 차였다고? 애슐리 밀러가?”

“설마 다른 밀러 아냐?”

“앨한테 차이고 연속이잖아, 말도 안 돼.”

“남자애한테 사귀어 달라고 했다잖아, 당연히 거절당하지.”

“앨한테 차인 충격이 컸나 봐.”

“정말 깬다.”

“솔직히 좀 시시해졌어.”

“나도, 쿨한 이미지였는데.”

“실망이야.”

애슐리를 비롯한 아이스하키 팀 녀석들은 종알거리며 멀어지는 여자애들의 뒷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빌이었다.

“애쉬, 이 상황에 대해 뭔가 설명해야겠다는 생각 들지 않아?”

그의 물음에 일제히 시선이 애슐리에게로 향했다. 애슐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고백했는데 차였어, 그게 다야.”

남은 녀석들이 서로를 마주 보다가 참다못한 한 명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러니까. 어째서 코이한테 고백을 한 거냐고.”

“그래, 같은 남자끼리 어떻게 그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알파나 오메가가 아닌 동성이 서로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어쩌면 상대가 애슐리 밀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코이 또한 처음에 같은 반응이었던 걸 떠올려 보면 이쪽이 아마도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다. 

애슐리가 쉽게 자신의 마음을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환경이 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들도 자신의 부모가 베타가 아닌 다른 형질이었다면 다르게 받아들였을까? 애슐리는 답이 없는 의문을 떠올렸다 이내 지워 버렸다.

“그렇게 됐어. 누굴 좋아한다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고.”

“그건 그렇지.”

빌은 동조하더니 잠시 다른 녀석들과 같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 오랜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그는 곧 평소처럼 웃으며 말을 꺼냈다.

“뭐, 우린 상관없어, 네가 누굴 좋아하든.”

“맞아. 넌 내 친구잖아.”

“나도.”

“나도 그래.”

언제나 팀워크가 최고인 녀석들은 이번에도 합심해 애슐리를 지지했다. 애슐리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고마워.”

“뭘, 별것도 아닌데.”

괜히 으쓱해져 코를 문질렀던 한 녀석이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코이는 왜 그랬대?”

그 말을 들은 다른 녀석이 나섰다.

“맞아, 왜 널 거절한 거야? 뭐 베타인 동성끼리 사귀는 게 평범한 건 아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잖아.”

“너라면 같은 남자라도 좋다고 할 녀석들이 많을 텐데.”

“그렇지, 애쉬라면 누구나 그러지 않겠어?”

맞아, 맞아 하며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친구들을 보며 애쉬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들까지 거짓말을 하고 속여야 한다는 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코이를 위해서니까.

대신 결혼식에 모두를 초대하면 되겠지.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사과하기로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았다.

“코이는 남자끼리 좋아하고 사귀는 게 이해가 안 간대.”

“엑.”

“우와, 진짜?”

“코이, 그렇게 안 봤는데 꽉 막혔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스하키 팀의 우상인 애슐리 밀러가 두 번이나 연속으로 차이다니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슐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 노력이 부족했나 보지.”

한창 코이를 성토하던 친구들이 멈칫했다. 애슐리는 가방을 고쳐 메며 말을 이었다.

“내가 더 노력하면 돼. 그러니까 괜찮아.”

의외로 평온한 반응에 친구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하고 애매한 반응을 보이는데, 먼저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난 갈게, 다음 수업이 있어서.”

“어, 어, 그래.”

“이따 보자.”

“가.”

황급히 그의 말을 받은 친구들은 선뜻 걸음을 옮기는 애슐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저만큼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어깨의 긴장을 푼 그들은 한 마디씩 속에 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 자식, 어쩌다 그런…….”

깊은 한숨을 내쉰 녀석에게 옆에 서 있던 친구가 물었다.

“‘그런’이라니? 코이가 ‘그런’인 거야? 아니면 남자애를 좋아하게 된 게 ‘그런’인 거야?”

“둘 다지, 뭐.”

다른 녀석이 말을 받았다. 곧 여기저기서 동조했다.

“사실 코이 입장에서도 당황스럽긴 했을 거야.”

“맞아, 친구라고 생각했을 텐데 갑자기 좋아한다고 한 거니까.”

“애쉬가 코이한테 호감을 가진 거 같긴 했어. 전에도 그랬잖아, 귀엽다고.”

“귀엽다는 건 우리가 말했지, 애쉬는 안 그랬을걸?”

“귀엽다는 말을 엄청나게 늘여서 하긴 했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같은 생각을 동시에 떠올렸다.

설마 그때부터 좋아했던 건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누군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난 아직도 못 믿겠어, 애쉬가 남자를 좋아한다니.”

그의 말에 동의하며 다른 녀석이 말을 받았다.

“앨하고 헤어져서 충격이 컸나 봐.”

“다시 앨하고 잘 지내게 해 줘야 하나?”

걱정스럽게 물은 또 다른 녀석을 한 명이 제지했다.

“야, 앨의 의사가 더 중요하지. 그리고 남 연애에 끼어드는 거 아냐.”

엄마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버지와 평생 살았던 아들의 경험상 그것만은 확실했다. 평소보다 엄격한 친구의 충고에 모두는 알았어, 하고 동의했다.

“그래도 우리는 애쉬의 편을 들어 줘야지.”

“맞아, 친구잖아.”

“그럼 코이 편은 누가 들어?”

누군가의 지적에 모두는 멈칫했다가 곧 한 명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코이는 코이의 의사를 확실히 했으니까 그걸 지지해 주면 돼. 우린 그냥 애쉬가 뭘 하든 응원해 주자.”

“맞아, 범죄 같은 건 안 되지만.”

“설마 코이를 납치하고 감금하거나 그럴 리는 없잖아.”

한 명이 한 말에 모두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누구라면 몰라도 애슐리 밀러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

“으응…….”

입가로 흐르는 신음을 참지 못하고 코이는 눈을 꼭 감았다. 고개를 든 애슐리가 이번엔 반대쪽으로 입술을 겹쳤다. 

또다시 이어진 키스에 코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업 중간중간, 둘은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단둘이 숨어 키스를 나누고 몸을 만졌다. 찰나처럼 지나가는 그 시간에 목이 말라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마침 선생 한 명이 수업을 펑크 냈다. 코이는 애슐리의 문자를 받고 남들의 눈을 피해 한적한 건물 뒤로 숨어들어 갔다. 그리고 곧바로 애슐리는 그를 낚아채 키스를 퍼부었다.

“하아…….”

간신히 입술이 떨어지고 난 후 코이는 막혔던 숨을 내쉬며 애슐리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전신을 그에게 기대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애슐리의 손이 계속해서 그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지만 그것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키스를 할 때는 엉덩이를 만지는 거구나.

고작 이렇게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럼 나도 애슐리의 엉덩이를 만져야 하나……? 어렴풋이 생각을 떠올렸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아직 거기까지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코이는 잠자코 그에게 기댄 채 애슐리가 몸 여기저기를 만져 대는 걸 그냥 내버려 뒀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다른 데 있었다.

“애들이 하루 종일 너에 대해서 떠들어 대…….”

아직 몽롱한 코이의 말에 애슐리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 하고만 반응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품 안에 있는 코이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마음껏 만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시 키스를 하려 고개를 숙이는데, 코이가 슬쩍 그것을 피하고 말했다.

“기분 나쁘지 않아? 다들 멋대로 떠들어 대잖아.”

“별로, 아무 생각 안 드는데.”

애슐리는 코이의 입술만 바라볼 뿐이었다. 바지 안에 손을 넣을까? 청바지가 헐렁한 걸 보니 될 거 같은데. 그걸 본 코이는 무안해하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러자고 한 건 맞지만, 그래도…….”

애슐리가 자신을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걸 보니까 애가 탔다. 정말 괜찮은 건지도 모른다. 애슐리는 다른 애들이 떠들어 대는 걸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코이의 마음은 달랐다.

“넌 너무 멋지고 좋은 앤데 애들이 저렇게 말하니까 화가 나.”

사실 애슐리는 그렇지 않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를 위해서 일부러 그런 나쁜 소문까지 감수하다니, 얼마나 굉장한 남자 친구냐고. 속이 상해서 입술을 깨무는 그를 보고 애슐리가 말했다.

“내가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는 건 너만 알면 돼.”

주저하던 코이가 조심스레 눈을 들었다. 애슐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입술을 훔친 뒤 미소를 지었다.

“난 너에게만 멋지고 좋은 사람이면 만족하니까.”

물론이다. 코이에게 애슐리만큼 멋있는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코이는 가슴이 벅차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혀끝에 담아 내밀기까지는 꽤나 용기가 필요했다.

“좋, 아해, 애쉬.”

어렵게 흘러나온 부끄러운 고백에, 애슐리는 미소를 짓더니 그의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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