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16)

160화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아팠다고?”

얼굴을 보자마자 사장이 묻는 말에 코이는 겸연쩍어하며 네, 하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감기에 걸려서…….”

주말은 물론이고 이틀이나 더 앓아누웠다. 그나마 사라에게 일찌감치 약속 취소 전화를 한 것은 다행이었지만 직장에는 물론이고 어디에도 연락을 하기는커녕 받지도 못했다.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는 전화벨이 울리다 못해 방전이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전화를 한 상대는 물론 에리얼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무척 놀라 안부를 물었으나 무사한 것을 알고 나자 그다음엔 화를 냈다. 물론 그것도 그리 길지 않았다.

〈다음에 만날 때 비상 키를 줘.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열고 들어갈 테니까.〉

마지막으로 당부한 뒤 에리얼은 전화를 끊었다. 연락이 두절된 동안 코이의 집에 찾아온 것은 에리얼뿐이었다. 그나마도 코이가 대답을 하지 않아 집에 없다고 생각했던 에리얼은 경찰에 그의 실종 신고까지 했던 참이었다. 그녀는 혹시 애슐리가 무슨 짓을 한 게 아닐까 의심했으나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다. 만약에 코이가 하루만 더 늦게 연락을 했다면 또다시 애슐리의 사무실에 쳐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코이는 거듭 그녀에게 사과한 뒤 조만간 만나서 신세를 갚겠다고 약속한 다음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회사에서는 코이가 달아났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화를 했을 때 적잖이 놀랐던 사장은 다음 날 코이가 출근하자 한껏 화가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유야 어쨌든 무단결근을 한 건 사실이라 코이는 거듭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건 꼭 갚아야 할 거야.”

사장은 한 번 더 으름장을 놓은 뒤 그에게 일을 지시했다. 서둘러 자리를 떠나 일할 도구를 챙기는데, 지켜보던 다른 직원 토니가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전화를 몇 번을 했는데 한 번도 안 받다니. 그 정도로 아팠어?”

“어, 응.”

코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원래 감기에 잘 안 걸리는데, 이번엔 엄청나게 힘들었어. 계속 열이 나고 몸이 무거워서 눈을 뜨질 못하겠더라고.”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하면 아프지는 않았다. 머릿속이 멍하고 계속해서 잠이 밀려와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지만 펄펄 끓는 열에 온몸이 달아올랐음에도 통증은 전혀 없었다.

요즘 새로 유행하는 독감인가?

내심 의아해했던 코이에게 토니가 한층 소리를 낮춰 물었다.

“설마 아픈 척하고 어디 놀러 갔다 온 건 아니지?”

“아냐.”

의심스러워하는 시선에 자신도 모르게 웃자 그는 “그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아까부터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서 혹시 어디 갔다가 향수라도 사 왔나 했지.”

“냄새?”

“그래.”

코이가 깜짝 놀라 묻자 토니가 말했다.

“꽃 냄새 같기도 하고 풀 냄새 같기도 하고 아무튼 굉장히 좋은 냄새야. 막 마음이 편해진다고 해야 하나.”

순간 긴장했던 코이는 흐뭇하게 웃는 그의 표정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은 냄새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혹시나 악취가 풍긴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엄청나게 당황했을 것이다.

“아, 집에 있는 화분에서 꽃이 피었거든.”

앓아눕기 전에 물을 줄 때까지도 한껏 다물려 있던 봉오리가 활짝 피어 있던 게 생각났다. 가게에 들렀다가 마침 할인하던 씨앗을 산 터라 이름은 뭔지 모르지만 꽃 향기라고 하니 화분에서 노랗게 빛을 내던 화초가 떠올랐다.

“아마 그 꽃 냄새일 거야. 한꺼번에 세 송이나 피었더라고.”

“그래?”

토니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돌아서며 중얼거렸다.

“꽃 향기가 그렇게 오래가나……?”

다행히 별일 없이 상황은 끝나 버렸다. 코이는 곧 그 일을 잊었고,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 되어 있었다.

* * *

“하아아.”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감기는 다 나았을 텐데 몸은 아직도 나른하고 무거웠다. 그나마 열이 내린 게 다행이었다. 무거운 걸음을 움직여 샤워실로 향하려던 그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아침에 보고 갔던 꽃이었다. 여전히 활짝 피어 있는 화사한 노란색 꽃을 보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곧바로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간 그는 한동안 꽃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잎을 매만졌다. 부드러운 꽃잎의 환한 빛이 손가락을 통해 전해지는 듯했다.

대체 어떤 향기일까.

토니의 말을 떠올리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이 꽃의 향기가 어떤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도 마음이 편해질까.

한동안 꽃을 들여다보고 있던 코이는 손을 내리고 좁은 욕실로 들어갔다. 대충 몸을 씻고 나오자마자 곧바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날 이후 애슐리는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 * *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꽃의 향기가 문제가 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가량이 흘렀을 때였다. 처음 토니가 향에 대해 말했을 때에는 별다른 관심 없이 넘겼으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코이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점차 더 진해졌다.

처음 그 향기에 끌려 코이에게 다가온 것은 토니였다. 갑자기 허리를 끌어안는 바람에 코이는 그만 놀라 토니를 밀쳐 버리고 말았다. 그 탓에 발을 접질리고 만 토니가 어쩔 수 없이 결근을 하고, 하루가 지나 또 다른 직원이 무리하게 코이를 붙잡으려다 넘어져 코가 깨졌다.

며칠이 지나고 나자 고작해야 너덧 명이 전부인 작은 사무실은 순식간에 휑하니 비어 버렸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마지막 직원이 코이의 옆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다가 사장과 대판 싸우고 그만둬 버린 뒤에는 남은 건 고작 코이와 사장밖에 없게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자신이라는 것을 코이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사장은 너무나 관대하게도 그런 그에게 괜찮다며 말하고 오히려 위로까지 해 주었다. 거기다 마지막 직원이 나가 버린 날 코이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 꾸준히 다녀 달라며 돈까지 줬다.

사장의 마음은 너무나 고마웠으나 어쨌든 자신의 탓인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거기다 전철을 타고 다닐 때도 수시로 누군가 말을 걸거나 몸을 만지려고 해 몇 정거장을 걷기 일쑤였다. 거리를 걸을 때는 공간이 훤히 트여 있어서인지 그나마 나았으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이 꽃 향기가 얼마나 강하길래 이러지.

코이는 아직도 싱싱하게 피어 있는 노란 꽃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다 마침내 결심을 했다.

아쉽지만 버리자.

동부에 와서 처음 피운 꽃이라 너무나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이 꽃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까.

코이는 조심스레 화분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마침 다음 날은 주말이었고 약속이 있었다.

내일 앨한테 보여 줘야지.

* * *

“어머, 예쁘다. 이번에 피운 거야?”

“응, 열흘 좀 넘었어.”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대답하자 에리얼은 작은 화분을 들고 한껏 향기를 들이켰다. 순간 코이는 당황했으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들고 말했다.

“자랑하려고 들고나온 거야?”

“어? 어…….”

너무나 태연한 반응에 코이는 어리둥절해 눈을 깜박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하고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전하자 진지한 얼굴로 듣던 에리얼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평범한 꽃 냄샌데?”

“그, 그래?”

코이는 어안이 벙벙해 그녀를 보기만 했다. 어떻게 된 거지?

에리얼이 코이처럼 냄새를 못 맡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눈을 깜박였던 코이는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야외의 카페테라스였는데, 테이블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은데도 주변 사람들은 전혀 코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내가 착각했나?

어리둥절해졌던 코이가 뒤늦게 에리얼에게 물었다.

“저기, 혹시 나한테서 무슨 냄새 안 나?”

“냄새?”

곧바로 코이의 팔을 잡아 끌어당긴 에리얼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상체를 기울여 깊이 숨을 들이켰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확인했던 에리얼이 팔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그래?”

코이는 또 한 번 당황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6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