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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화 (161/216)

161화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팔을 들어 코로 가져갔던 코이는 곧 민망해하는 얼굴로 자세를 바로했다. 그런 코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리얼이 그런데, 하고 말을 꺼냈다.

“네가 말했던 그 향기 말야, 사실이라면 꼭 오메가 페로몬 같지 않니?”

“오메가 페로몬?”

“그래.”

에리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메가 페로몬은 상대의 경계를 허물고 호감을 갖게 한다잖아. 향이 진할수록 성적인 유혹도 강해지고. 히트사이클이 오거나 하면 위험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잖아. 본인이 발정이 나기도 하지만 향이 진해지니까 베타까지 유혹해 버리는. 뭐 알파는 당연히 미치겠지.”

“그, 그렇구나.”

에리얼과 마찬가지로 코이도 학교에서 기본적인 성교육을 받았지만 사실 종에 관한 건 자신과 무관한 얘기라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았다.

앨은 기자니까 알고 있는 정보도 많겠지.

잠자코 귀를 기울이자 에리얼은 기억을 더듬듯 미간을 모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는 극오메가 같은 경우는 상대의 마음까지 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에리얼이 의심스러워하는 시선으로 코이를 바라보았다.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눈만 깜박이는데, 에리얼은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우린 발현할 나이도 지났고, 마안약에 네가 변이를 했다면 페로몬 향기가 날 텐데 지금은 전혀 아무 냄새도 안 나거든.”

“정말이야?”

“물론이지.”

에리얼이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오메가가 있어. 페로몬 향기를 맡아 봐서 알아, 너한테서는 아무 향기도 나지 않아.”

당연히 그렇겠지.

코이는 왠지 민망해져 입을 다물었다. 발현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극알파의 페로몬을 받아들이고도 발현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변이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 코이를 보며 에리얼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했다.

변이를 해서 극오메가가 됐다는 얘긴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극오메가는 모든 형질의 법칙에서 예외적인 존재다. 마치 오만한 극알파에게 벌을 주기 위해 신이 만들어 낸 존재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형질상 페로몬을 조절할 수 있는 건 극알파와 극오메가뿐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극알파와는 달리 극오메가는 일반인과 구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의지에 따라 페로몬을 감춰 버리면 외견상으로는 베타와 다름없게 되니까.

그 때문에 형질 검사를 해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유로 극오메가를 찾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한.

“……혹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너네 부모님이 알파나 오메가셨어?”

코이는 즉시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했다.

“아냐, 우리 가족은 다 베타야.”

극오메가라면 평생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에리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따지면 가능성이 있는 쪽은 코이의 어머니겠지만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다. 어머니가 아니라 그 전대(前代)에 알파나 오메가가 있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니까.

그것도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지.

에리얼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추측을 내놓았다.

“만약에 네가 오메가로 변이한다면 원인은 애쉬뿐일 텐데, 고등학교 때도 안 했던 발현을 지금 갑자기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동의한다는 듯 코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 일반적인 오메가는 향을 인위적으로 감추거나 하지 못한다.

극오메가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 에리얼은 잘 알고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라도 볼 수 있는 극알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코이가 극오메가로 발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눈앞에 앉아 있는 동창의 모습에 형질을 겹쳐 보며 에리얼은 무심코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실성이 너무 없어.

무엇보다 확신을 가질 만한 근거가 너무 적다. 극오메가에 대한 자료 자체가 얼마 없고, 그 때문에 알려진 사실 또한 아주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보를 얻으려면 종 관련 협회나 전문 교수를 찾아가야 할 텐데, 기자라고는 해도 평범한 베타에 불과한 에리얼에게 과연 그것을 나누려 할지 의문이었다.

극알파라면 쉽겠지만.

극알파들은 협회나 연구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니 일반인과는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달랐다. 하지만 에리얼이 이런 일을 부탁할 만한 단 한 명의 극알파는 지금 이 상황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페로몬 검사를 해 봐야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다음에 또 열나거나 이번처럼 아프면 꼭 나한테 연락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에리얼은 꺼림칙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향기에 대한 얘기나 동료 직원들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코이가 그런 얘기를 꾸며 낼 타입도 아니고, 본인은 감기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때 그런 증상은…….

발현에 가깝잖아.

에리얼은 정색을 하고 덧붙였다.

“늦게 다니지 말고, 꼭 넓은 길로 다니고.”

이게 무슨 유괴를 걱정하는 부모나 할 말인가.

자신보다 큰 남자에게 할 당부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에 문득 에리얼은 허탈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 스페어키까지 받은 뒤 에리얼은 돌아갔다. 두 손에는 코이가 가져온 화분을 들고.

잘됐다, 좋은 주인을 만나서.

에리얼과 자신의 화분을 향해 손을 흔든 코이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혹시나 해서 전철을 탔지만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코이는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은 잠깐에 불과했다.

* * *

“하아아아…….”

집에 돌아오자마자 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코이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직원들이 다 빠지고 사장과 그, 단둘이 남아 버렸기 때문이다.

부디 있어 달라며 돈까지 주었던 사장의 태도는 어째선지 주말이 지나고 나자 태도가 돌변했다. 추측으로는 향기가 없어진 다음이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일은 많은데 제대로 된 직원은 하나도 없다니.〉

그는 쌓인 일거리로 인한 스트레스로 욕설을 내뱉는 일이 많아졌다. 공사가 지연되니 의뢰인들에게서도 불만이 쏟아지고, 그것은 곧 코이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졌다. 제시간에 퇴근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으며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집에 오는 날이 늘어났다.

그래도 언젠가는 쉬고 있는 직원들이 돌아올 테고, 그때는 이런 초과 근무도 줄어들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문제는 임금이 밀린다는 사실이었다.

〈일을 제때 못 하니 돈이 들어오질 않는다고.〉

사장이 그렇게 말하며 임금을 미룬 게 벌써 두 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코이가 그동안 모아 둔 돈도 점차 바닥을 드러내 급기야 그는 하루 한 끼만 먹게 되었다. 그나마도 싸구려 빵에 납작한 패티 한 장이 전부인 작은 햄버거에 음료는 물을 마셨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빈곤에 시달리다 보니 사장이 주는 돈으로는 방세를 낼 수도 없었다.

급기야 주말까지 일하게 된 어느 날, 코이는 중대 결심을 했다.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참고 견디며 일했지만 돈은 쌓이기만 할 뿐 도무지 손에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면 길에 나앉게 될 것이다.

이럴 땐 법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지만…….

밀린 임금을 해결하지 않으면 그만두겠다고 사장에게 말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별로 효과는 없어 보였다. 소송을 건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간단한 방법은 없을까? 너무나 협소한 자신의 인맥에 한탄하며 코이는 어쩔 수 없이 에리얼에게 연락을 했다.

- 그걸 왜 지금 말하니?

사정을 듣자마자 에리얼은 화를 내며 곧바로 해결책을 내놓았다.

-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최고의 변호사를 소개해 줄게.

“고마워, 앨.”

코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밀린 임금을 받으면 에리얼에게 가장 먼저 보답을 해야겠다. 애슐리와 함께 갔던 회원제 레스토랑을 떠올렸을 때, 마침 전화 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며 코이는 에리얼이 말했던 바로 그 변호사일 거라고 짐작했다.

이렇게 빨리 연락이 오다니, 고마워 앨.

“네, 코너 나일즈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대답했으나 건너편에서는 뜻밖에도 침묵이 흘렀다. 어? 스팸인가? 뒤늦게 당황해 눈을 깜박였을 때,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 나야, 코이.

그 순간 코이는 놀라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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