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코이는 너무나 묻고 싶었지만 해서는 안 될 질문이라는 걸 잘 알았다. 둘은 벌써 10년 전에 헤어졌고, 이젠 친구다. 그런데 과거 일을 시시콜콜 캐묻다니, 너무나 꼴불견이지 않은가.
“이제 괜찮아, 고마워.”
코이는 대수롭지 않은 척 가벼운 말투를 꾸며 내 말했다.
“피곤하지 않아?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줘서 고마워. 너도 어서 씻고 자야지, 내일도 바쁠 거 아냐.”
여기까지는 제법 괜찮았다. 스스로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자만심에 그만 코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니면 같이 씻을래?”
나가 죽어, 코너 나일즈!
머릿속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크게 뜬 눈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입은 벌렸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괴성을 지르고 말 것 같아 차마 무언가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눈앞의 애슐리는 정말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보라색 눈이, 젖은 셔츠를 통해 비치는 엷은 살색이, 헝클어진 백금발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이 코이의 시선을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게다가 피부에 달라붙은 천 때문에 그의 페니스는 너무나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진심이야?”
애슐리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코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만 봤다. 갑자기 고등학교 샤워룸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당시엔 그저 미숙하기만 해서 애쉬가 뭘 하고 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못 하고 그저 기다리기만 했었지.
애쉬, 그때 넌 내 치어리딩복으로 뭘 했던 거야?
애슐리가 손을 들었다. 마치 자신에게 오라는 것처럼 내민 손에 코이는 머뭇거리다 걸음을 뗐다.
한 발자국씩 둘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둘이 친구라는 사실과 애슐리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잠자코 기다리는 남자만이 시야에 가득 찰 뿐이었다.
코이는 여전히 애슐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주저하던 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손을 맞잡기 직전 멈칫한 코이가 입을 열었다. 잔뜩 가라앉고 쉰 목소리로.
“……너도 나랑 같은 생각해?”
두근거리는 심장만큼 떨리는 음성을 한껏 억누르며 물었다. 애슐리가 눈가를 기울이며 엷은 웃음을 지었다.
“아나콘다?”
그 말에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잔뜩 긴장했던 어깨에 힘이 풀리고 자연스러운 웃음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을 때.
갑자기 애슐리가 그의 손을 잡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방심했던 코이는 놀라 숨을 삼키며 끌려갔다.
“아……!”
짧은 비명에 이어 그대로 애슐리가 그를 품에 끌어안았고, 무게 중심을 잃은 채 둘은 동시에 욕조에 빠져 버렸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일어났다. 반 이상 차오른 물이 그들의 몸을 흠뻑 적셨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은 코이는 자신이 욕조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하게는 애슐리의 위에 걸터앉은 채.
코이는 당황해 고개를 들었으나 곧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괜찮냐고 물어보려 벌렸던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내려다보는 애슐리의 보라색 눈동자만 정신 없이 마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그가 자신에게서 목소리를 빼앗아 간 것처럼.
애슐리가 손을 들어 천천히 코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코이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애슐리의 긴 속눈썹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것을 입술로 빨아들이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애슐리가 속삭였다.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멈추어라, 넌 진실로 아름답구나).” (* Goethe, 〈Faust〉, 1808)
무슨 의미인지 몰라 코이는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희미한 웃음을 지었던 애슐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가 키스를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이는 물러나기는커녕 눈을 감아 버렸다. 흐트러진 숨결을 숨기고 싶었지만 떨리는 몸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뺨을 쓰다듬고 내려간 손이 등 뒤로 돌아갔다. 천천히 등줄기를 따라 이동하던 손이 멈추고, 두 팔이 강하게 코이의 허리를 끌어안은 순간 입술이 맞물렸다.
부드럽게 닿을 거라 예상했던 키스는 그러나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깊게 입술을 겹치고 그대로 혀를 밀어넣은 애슐리가 한 손을 들어 코이의 뒤통수를 잡아 눌렀다. 반사적으로 멈칫했으나 억센 손에 머리를 잡혀 물러나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애슐리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으, 브.”
억눌린 소리가 신음처럼 새어 나왔다. 하지만 애슐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머리를 붙잡은 채 남은 손으로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젖은 상체가 물속에서 더욱 밀착되었다. 흥분으로 바짝 일어선 유두가 그의 살에 문질러지자 코이는 애슐리의 품 안에서 그만 자지러지고 말았다.
“코이.”
입술을 지근거리며 애슐리가 속삭였다.
“젖꼭지 좋아해?”
“어? ……뭐?”
정신이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도 알지 못했다. 거친 숨결 사이로 웅얼거리는 코이의 말에 애슐리는 설명 대신 손가락을 움직여 셔츠 위로 작게 일어난 젖꼭지를 비틀어 버렸다.
“아, 아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으나 애슐리의 손이 여전히 그의 머리를 붙잡고 있어 그저 움칠한 게 전부였다.
“코이, 아파?”
애슐리 역시 숨이 거칠어졌다. 그는 입술을 옮겨 코이의 목을 깨물며 물었다.
“아픈 게 좋아? 응?”
그럴 리가. 아픈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싫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애슐리는 입술을 옮겨 코이의 쇄골에 키스를 하려 했으나 셔츠에 가로막혀 불가능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유두를 괴롭히던 손을 옮겨 셔츠 깃을 잡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거친 소리와 함께 낡은 셔츠는 활짝 벌어졌다. 사방으로 튀어나간 단추를 마지막으로 훤히 드러난 속살에 코이는 순간 망연해졌으나 애슐리는 거침없이 입술을 가져갔다. 이제 그를 가로막는 건 없을 듯했지만 여전히 팔에 걸려 있는 셔츠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었다.
“코이, 셔츠 벗어.”
애슐리의 음성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반사적으로 시키는 대로 한쪽 팔을 급히 빼낸 코이는 뒤늦게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잠깐 멈춘 사이 애슐리가 이번엔 그의 젖꼭지를 이로 깨물었기 때문이다.
“히이익…….”
저절로 높은 숨소리가 비명처럼 새어 나갔다. 온몸을 발작하듯 떨었으나 애슐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를 세워 아프게 지근거리는 감각에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렸으나 거기에 힘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애슐리를 부추기는 듯했다.
“좋아하는구나, 이런 거.”
애슐리가 젖꼭지에 입술을 댄 채로 중얼거렸다. 타액에 젖은 유두에 숨결이 닿아 찬기가 느껴졌다. 뜨거운 물 안에 있는데도 신경은 온통 젖은 젖꼭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애슐리가 다시 입술을 붙여 솟아오른 돌기를 빨아들였다.
“아, 아으…….”
저절로 신음이 흐르고 허리가 덜덜 떨렸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희로 몸을 만지고 핥는다는 걸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하는 건 달랐다. 자신의 젖꼭지가 이렇게 예민하다는 걸 그는 처음 알았다. 아래가 터질 것 같았다.
“코이.”
애슐리가 그의 젖꼭지를 혀로 눌렀다 떼며 속삭였다. 코이가 초점이 없는 눈을 깜박이며 내려다보자 그는 시선만을 들어 코이를 올려다보았다.
“침대로 갈까?”
코이는 무작정 고개를 끄덕였다. 애슐리가 지금 당장 죽으라고 말했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침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키스는 계속됐다. 셔츠는 이미 욕실에서 벗어 던졌고, 벨트는 복도에 떨어뜨렸다. 침실에 도착했을 때 코이는 이미 바지의 지퍼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끌어안은 채 키스를 거듭하며 침실에 도달한 애슐리는 등 뒤로 문을 열고 코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가볍게 등을 밀려 휘청거리며 들어선 코이의 시야에 넓은 방이 펼쳐졌다. 차갑고도 세련된 가구와 인테리어는 누가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으나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중앙에 놓인 거대한 침대였다. 잠깐 그대로 못 박힌 채 서 있는 코이의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자 애슐리가 그를 보고 있었다.
철컥, 또다른 소리가 들렸다. 문이 잠긴 것 같았다.
“기억나, 코이?”
낮은 소리로 애슐리가 물었다. 그저 눈만 깜박이는 코이를 보며 그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뚜벅, 뚜벅, 카펫이 깔려 있지 않은 바닥에 그의 구둣발 소리가 느리게 울려 퍼졌다. 코이는 다가오는 그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마침내 그의 앞에 선 애슐리가 걸음을 멈췄다. 천천히 코이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는 중얼거렸다.
“난 가끔 생각해. 그날 내가 널 가뒀으면 어떻게 됐을까?”
애슐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귓가에 그의 더운 숨결이 느껴졌다.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낮은 속삭임이 들리고, 이어서 그가 코이의 귓바퀴를 세게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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