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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화 (167/216)

167화

“아!”

순간적인 자극에 코이는 그만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애슐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귓바퀴를 깨물었다. 잇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물어 대는 바람에 코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결국 하소연하고 말았다.

“아파, 애쉬. 그만해. 정말 아파.”

반복해서 사정하는 말에 애슐리는 결국 입술을 뗐다. 코이의 귀는 빨갛게 달아올라 자국이 선명했으나 단지 그것뿐이었다. 자신이 물었던 자리를 바라보며 애슐리가 중얼거렸다.

“네가 오메가였으면 표식이 생겼을 텐데.”

꼭 그런 건 아니다. 표식을 남기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애슐리 역시 알고 있었으나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벌여 놓고서. 그런 그의 반응에 코이는 불안해하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애쉬……?”

망설이듯 흘러나온 음성에는 자신감이라고는 없었다. 방금 전까지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말투였다. 물론 코이를 그렇게 만든 건 애슐리였다. 그는 곧 후회했다.

멍청한 건 자신이다. 코이가 베타라는 걸 알면서 표식을 새기려고 한다니. 대체 뭘 기대하고.

“미안해.”

여러 가지 의미를 담아 말했으나 코이는 전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나 금세 “괜찮아.” 하고 말하며 웃는 그를 보고 애슐리는 오히려 기분이 복잡해졌다.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애슐리의 표정에 코이는 의아해져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다시 애슐리가 그를 끌어안고 입술을 겹쳤다.

아까와는 다른 부드럽고 다정한 키스가 이어졌다. 정중함마저 느껴지는 입맞춤에 코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리자 애슐리가 그 안을 슬며시 핥았다. 뜻밖의 간지러움에 하마터면 혀를 깨물 뻔했다. 하지만 애슐리는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기 전에 먼저 혀를 빼고 대신 코이의 어깨를 밀어뜨렸다.

무방비하게 뒤로 넘어간 코이의 몸이 침대에 떨어져 짧게 튀어 올랐다 다시 내려앉았다. 크게 뜬 시야에 애슐리가 그의 위로 올라오는 게 보였다. 무릎을 세우고 코이의 허리께에 멈춰 선 그가 여전히 코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넥타이의 각에 손가락을 넣어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긴 천이 뱀처럼 풀어져 침대 밖으로 내던져졌다.

둘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애슐리가 허리춤에서 셔츠 자락을 끄집어내더니 두 팔을 교차해 셔츠를 잡아 끌어 올렸다. 머리 위로 셔츠를 벗은 그는 넥타이와 마찬가지로 그것도 침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변호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몸이었다. 노동을 하는 코이보다도 크고 굴곡진 근육이 시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커진 가슴과 더 깊이 팬 근육의 조각들은 지방이라고는 전혀 머금고 있지 않았다.

넋을 잃고 바라보는 코이의 시야에 애슐리가 바지의 지퍼를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기억 속의 물건보다 훨씬 더 크고 탐욕스러웠다. 반쯤 일어선 페니스는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애슐리의 커다란 손에 꽉 찰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저것이 더 팽창한다고 생각하자 머릿속이 텅 비었다.

“코이.”

여전히 자신의 발기한 성기를 쥔 채 애슐리가 그를 불렀다. 흠칫 놀라 눈을 깜박인 코이는 애슐리의 서늘한 얼굴이 보고 말았다. 그가 쥐고 있는 성기와는 대조적으로 거기에선 흥분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순간 혼란스러워진 코이에게 애슐리가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걸 너한테 넣지는 않을 거야.”

코이가 당황해 그를 바라보자 애슐리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넌 베타잖아.”

코이는 자신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게 애슐리의 저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말 때문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명확한 것은 애슐리가 자신에게 명백히 선을 그었다는 사실이었다. 둘이 지금 한 침대에 누워 이토록 열정적인 순간을 나눈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서운해할 거 없어, 애쉬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코이는 황급히 자신을 달래며 과거를 떠올렸다. 페로몬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애슐리는 끝까지 코이에게 키스 이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둘은 이제 어른이고, 코이도 무섭다며 달아날 생각은 없었다. 그 증거로 코이는 애슐리가 보는 앞에서 바지의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엉거주춤 걸쳐져 있던 그것을 속옷과 함께 잡아 한 번에 끌어 내렸다.

그때까지 평정을 잃지 않던 애슐리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는 눈앞에 훤히 드러난 코이의 벗은 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애슐리의 보라색 눈동자가 다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코이는 부끄러움과 함께 작은 우월감을 느꼈다.

“내 다리가 마음에 들어?”

애슐리가로 하여금 저렇게 넋을 잃게 하는 뭔가가 자신에게 있다니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여전히 그의 다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채로 애슐리가 중얼거렸다.

“완벽해.”

코이는 기쁜 한편 뒤늦은 수치심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세우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코이가 미처 달아나기 전에 애슐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고, 코이는 그만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급히 팔꿈치로 몸을 지탱한 코이가 상체를 반쯤 들고 그를 바라보자 애슐리가 몸을 숙였다.

코이는 짐승이 네 발로 걷듯 무릎을 세운 채 몸을 숙이고 자신의 위를 덮쳐 오는 그를 그저 보기만 했다. 입 안이 마르고 관자놀이가 쿵쾅거렸다. 애슐리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그의 얼굴에 못 박혀 있었다. 눈동자에, 코에, 그리고 입술에.

마침내 입술이 닿고, 둘은 눈을 감아 버렸다. 마지막으로 코이가 본 것은 그의 망막을 가득 채운 애슐리의 긴 속눈썹이었다.

아…….

탄식과 같은 한숨이 애슐리의 입 안에 삼켜졌다. 코이는 상체를 버티고 있던 팔을 뻗어 애슐리의 목을 끌어안았고,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애슐리의 무게가 온전히 코이의 위에 실렸다. 코이는 숨이 막힐 것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방금 전까지 냉정하게 선을 그었던 남자가 지금은 자신에게 모든 걸 맡긴 듯했다.

“애쉬.”

잠깐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코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애슐리는 다시 키스하려 했으나 코이는 그의 뺨을 감싸 간신히 제지하고 물었다.

“내 다리가 좋아?”

차마 ‘내가 좋아?’라고 물을 자신은 없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음성이 거칠어진 호흡 때문이라고 생각해 줄까? 내심 불안해졌을 때,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네 다리는 내가 평생 본 중에 최고야.”

코이가 웃고, 애슐리 역시 웃음을 머금었다. 다시 이어진 키스를 코이는 이번엔 기쁘게 받아들였다. 여전히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로 애슐리의 손이 코이의 몸을 타고 내려갔다. 아래로 손을 밀어 넣은 애슐리가 엉덩이를 움켜쥐자 코이는 화들짝 놀라 그만 애슐리의 혀를 깨물 뻔했다. 그런 코이의 반응에 애슐리는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입술을 맞댄 채 말했다.

“여기도 그렇고.”

천천히 살을 주무르는 커다란 손에 코이는 전신이 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도 역시 잔뜩 흥분해 아래가 일어나 있었다. 맞닿은 몸으로 애슐리 역시 명확히 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수치스러움이 번졌으나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한 흥분으로 이어졌다.

애쉬는 내 엉덩이랑 다리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어릴 때도 그가 수시로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던 걸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데, 문득 다른 생각이 머리를 들었다.

그냥 엉덩이와 다리는 다 좋은 건지도 몰라.

자신이 특별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망상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렸다. 그와 함께 아래도 역시 시들었다. 그것을 민감하게 눈치챈 애슐리가 물었다.

“왜 그래?”

이렇게 몸이 밀착해 있는 상황에서 들키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애슐리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코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반응으로 코이는 자신의 표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모든 흥분이 식어 버리게 할 표정을 짓고 있겠지.

하지만 숨길 방법은 없었다. 코이는 머뭇거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넌 이런 거, 많이 했지?”

나와 헤어진 동안에.

다른 사람과.

한 명? 두 명? 아니면 훨씬 더 많이……?

코이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다시 평상시로 되돌아갔다. 순식간에 감정이 사라지는 얼굴에 코이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애슐리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어?”

코이는 애슐리의 얼굴을 그저 보기만 했다. 지금 그렇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애슐리는 선뜻 몸을 일으키고 모두 없었던 일로 만들까.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니.”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라니 정말 자신은 센스라고는 전혀 없다. 물러날 생각도 없으면서.

코이는 자책하며 다시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두고 싶지 않아.”

그 증거로 코이는 그의 뒤통수를 잡아 끌어당겨 먼저 키스를 했다. 다른 사람과 얼마나 많은 관계를 즐겼든 상관없다.

지금 애쉬와 함께 있는 건 나니까.

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끈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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